카자흐스탄에서 17년째 인술 베풀며 현지인들과 함께 살아
중 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 1세들은 숨을 거두면서 자손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독립투사였던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의 끄즐오르다에서 고려극장 수위로 자 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보고 싶다고 했다지만 많은 평범한 고려인들은 자녀들에게 “서울 땅을 꼭 한번 밟아 볼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남과 북이 분단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서울 땅’은 조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려인들의 바램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1994년부터 카자흐인,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삶’ ‘나누는 삶’을 살고 있는 김창남(金昌南.69. 세례명 디에고) 수사.
천주교 알마티 주교좌 본당에서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에게 고려 수지침을 놓아주고 있기도 하는 김 수사는 고려인 고국 방문과 무료진료소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주변의 관심을 받거나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 하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이다.
17년째 현지인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있는 그는 마침, 오는 14일(금) 조국을 한번도 구경해 보지못한 고려인 고국방문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바쁜 그에게 잠시 짬을 내달라고 사정(?)을 해서 고려인 고국 방문과 무료 진료소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려인 2세, 3세로 구성된 7명의 한국 방문단은 오는 14일 알마티를 떠나서 2주간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둘러보게 된다. 서울의 고궁과 민속촌, 광주, 진주, 산청을 둘러 본 후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속초까지 올라 오면서 동해 바다를 구경하고 조국의 자연과 국가 발전상을 보게 된다. 특히, 이번 고국 방문은 현대중공업에서 공식 초청을 해 주었다고 한다.
비용 문제로 인해 매년 하지 못하고 2~3년에 한번씩 추진한다는 그에게 고려인들의 고국 방문행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묻자 “고려인들은 꼭 조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며 “한국을 다녀온 동포들은 몇 개월 동안 주변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애기를 할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방문단의 비용은 동포들이 항공요금을 부담하되 한국에서의 숙식과 여행경비는 김 수사를 파견한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대부분을 부담한다고 한다. 그래서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계획이 아니고 오래전 부터 준비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17년째 무료진료를 하는 한국인
또한 그는 현지 의사 1명과 약제사, 간호사 등 6명의 의료진으로 무료 진료소를 17년째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주 목요일에는 알마티 이외에도 우슈토베, 캄차가이, 쟈나샬, 꼬쉬만벡, 아만길디 등 주변 무의촌으로 진료를 나가는 그에게 지금까지 무료시술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현지 병원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부인병을 앓고 있던 한 현지인이 치료를 받은 후 완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24명의 불임환자들이 아기를 낳았고, 심지어 결혼한지 15년이 되었데도 아기가 없던 현지 소아과 의사도 치료를 받고 아기를 낳았다”며 “치료를 받은 중풍환자들도 완치가 되거나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환자가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초상을 당한 고려인 동포들로부터 영정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밤 늦게라도 어린 시절 배웠던 서예 솜씨를 살려 영정을 써주는 것을 마다 하지 않는 그는 카자흐스탄 주에서 임명한 산림 보호 요원이기도 하다. 그는 무의촌 진료를 다니다가 지저분한 것을 주 정부에 리포트하면 1주일이나 열흘 이내에 그곳이 깨끗이 정리된다고 한다.
또한 그는 99년부터 행려자 무료급식소도 운영하고 있다. 월,화,목,금 일주일에 4일 동안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는 평균 100명 이상이 몰린다. 심지어 10여명은 그릇을 가지고 와서 음식을 타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기도 한다고 한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며 “이 일은 사랑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부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알마티=한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