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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자 - 9월 첫째주 개봉영화 |
올 추석 연휴는 조상님들이 심술이라도 부리셨는지 주말과 겹쳐 달랑 사흘밖에 안되는군요. 연휴가 짧기도 하고 한국 영화가 불황을 겪는 중이라 올 추석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네요. 추석 시즌 선보이는 한국 영화는 이번 주 [신기전]과 다음 주 [영화는 영화다], [울학교 이티] 이렇게 삼파전 구도가 형성되는군요. 먼저 이번 주 강력 추천작인 다큐멘터리 [지구]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구 (감독. 각본: 알래스테어 포더길, 마크 린필드, 우리말 녹음: 장동건, 전체관람가)
'뭐 그저그런 극장판 [동물의 왕국] 아닌가'하는 선입견이 보기 좋게 박살났습니다. 제작기간 5년, 제작비 300억 원, 40대의 카메라로 지구촌 200여 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영상은 극영화의 어떤 장면들보다 예술적입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북극곰 가족이 첫 주인공들입니다. 얼음 경사면을 조심스레 내딛는 하얀 북극곰 새끼들의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을 즈음, 먹잇감이 있는 해안으로 가는 길의 얼음이 얼어있는 동안 무사히 배를 채우고 돌아오지 못하면 굶어죽는다는 절박함이 숨겨 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죽을 때까지 한 번 보지도 못할 지구 곳곳의 숨겨진 비경을 배경으로 깔고 북극과 남극, 사막과 열대우림 등 각각의 근거지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태와 변화된 기후환경이 얼마나 위험하게 그들의 생존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보여줍니다. 방송국에 다니는 어쭙잖은 직업정신이 발동해 장면 장면마다 "와~! 어떻게 저 장면을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발동할 만큼 신비한 장면들이 즐비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동안 물을 찾아 아프리카 벌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코끼리떼를 항공촬영으로 잡아내고, 굶주린 사자가 체면 불구하고 한밤중에 떼를 지어 코끼리를 습격하는 약간은 비겁한 장면, 적도에서 남극 앞바다까지 바닷길 6400킬로미터를 이동한 혹등고래 떼들이 둥글게 물거품을 만들어 그 안에 크릴새우를 가둬놓고 맘껏 포식하는 장면, 지구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무서운 눈보라를 뚫고 편대비행으로 넘어가는 쇠재두루미떼의 아슬아슬한 비행 등 흥미진진한 명장면들이 많습니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위엄을 갖춘 아름다움을 뽐내는 지구의 모습에서 인간의 상상력이나 예술성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여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한국어 내레이션 연출을 맡은 이명세 감독은 이 영화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끼고 메시지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담겨 있고 그리고 그걸 따라서 가다보니까 감정이 느껴지는 아주 좋은 영화의 전형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편하게 보다보면 감동도 있고, 눈물도 있고, 웃음과 모험을 즐기다 보면 마지막에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인간 앞에 던져진 숙제들이 있구나 하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독일,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인기 상업영화들과 나란히 경쟁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은 [지구]는 남녀노소, 진보보수를 떠나 모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해드리는 영화입니다.
신기전(감독: 김유진, 주연:정재영, 한은정, 15세 관람가)
현재 설계도면이 전해 내려오는 로켓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 '신기전'을 모티브로 조선과 명나라의 대립 속에서 비밀리에 이 신무기를 개발한다는 설정은 일단 흥미를 끌만합니다. 새로운 병기의 발명과 활용은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고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신무기로 압도하는 설정은 많은 할리우드 영화나 만화 등에서 봐 온 것이지요. 영화의 전제는 고려 말 최무선부터 시작해 조선 초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조선이 최초의 다연발 로켓포인 신기전을 개발하고 있는데 위협을 느낀 명나라가 이를 막기 위해 사신으로 위장한 특급무사들까지 파견해 기술자들을 도륙해 씨를 말려버리려 한다는 거죠. 명나라에 영혼을 팔아먹는 정신 나간 고위 관료도 있지만 위대한 우리 선조들은 결국 그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비밀리에 신기전을 개발해 조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비밀 병기를 개발하는 과정을 둘러싼 과학 드라마와 명나라와 벌이는 전투 외에 몇몇 액션 장면, 남녀 주인공의 멜로 라인 등 많은 요소들을 품고 있습니다. '쿠키는 별로라고? 그럼 초콜릿은 어때? 껌도 있어.'하는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각 요소 자체의 완성도와 요소들 사이의 유기적인 결합 두 가지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됩니다. 내금위장(허준호)이 신기전 제조의 핵심 기술을 알고 있는 도감의 딸 홍리(한은정)를 설주 집에 피신시키는데 명나라 무사들이 목숨을 노리는 홍리는 몸을 꼭꼭 숨겨도 모자랄 판에 신기전 개발의 핵심이 되는 책자인 '총통등록'을 가지러 혼자 불쑥 옛 집을 찾아갑니다. 홍리에 호감을 갖고 있는 설주 일행이 동행해 숨어있던 명나라 무사들의 습격을 무사히 물리치는 액션이 나오고요. 그렇게 중요한 문서라면 아버지가 습격 받을 때 미리 챙겨 나오거나 명나라 무사들이 잠복하고 있는지 없는지 먼저 정찰을 했어야 하지 않나요? 또 홍리가 신기전을 개발해야하는 절박성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가 모호합니다. 명나라가 모월 모일에 침공하겠다고 날을 받아놓은 것도 아닌데, 다시 말해 신기전을 개발한다면 조선의 멸망이 예견된다는 배경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유민 출신인 설주는 그렇다쳐도 돈 되는 일에 매달리는 속성을 지닌 설주 휘하 상인들이 보상도 없고 성공 비전도 별로 없는 신기전 개발에 생업을 팽개치고 달려든다는 것도 의아하고, 설주는 화약 담당이고 홍리는 총감독 격인데 개발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서로를 탓하는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획기적인 병기라도 원활한 대량생산으로 공급이 충분해야 할 텐데 신기전이라는 로켓포를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얼마만큼 빨리 많이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고, 엄청난 공물을 챙겨들고 돌아가는 명나라 사신단을 몰살시키는 외교적 결례를 범한 조선에 대해 명나라 황제가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는 설정은 너무 안이한 선택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백에 불과한 우리 병사에 맞서는 명나라+여진족 병사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했는데 그 넓은 스크린을 가득 메울 정도로 수가 너무 과도하게 많더군요. 태양을 가릴 정도로 빗발처럼 쏟아지는 신기전 화살에 맞아 죽는 적군 병사들이 헤아릴 수 없게 많은데 그 다음 장면에서 모래밭에 널브러져 있는 병사 수는 수십에 불과합니다. 퇴각하는 적군들이 그 많은 전우들의 시신을 모조리 수습해갈 경황은 없어 보였는데.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듯한 결말도 바로 앞부분 전투 장면의 비장미와 비교할때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 합니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도록 액션과 멜로, 코미디 등 여러 요소가 들어가 있어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게 두 시간을 볼 수 있지만 가슴 한구석에 불을 지핀다든지 하는 결정적인 한방이 아쉬운 형국입니다. 정재영, 허준호와 관록 있는 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영화 전체의 불안정감을 잠재우지 못하고 여주인공 한은정은 사극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깔고 있는 민족주의를 살짝 자극해 한 자락 깔고 들어가 보겠다는 것이 이 영화 제작의 출발점일 텐데 자꾸 이 영화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생각나더군요. 그 영화나 이 영화나 핵심적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관객 탓일까요. 만든 사람 탓일까요. 그건 올림픽에서 소중한 메달을 단 선수들에게서 이제는 국민들이 '국위선양'이라는 가치보다는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를 찾아내 감동과 공감을 느끼는 게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
첫댓글 나도 이젠 명절 특집으로 지나간 영화 재방해 주는 것만 보지 말고 영화관에서 개봉작 보고수워~~~
'나 지구 꼭 봐야지...' 이렇게 마음 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