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 서울국제법연구원(연구원장 이근관 서울대 교수) 주최로 유엔사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아래 제 토론문을 다시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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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법연구원 2019. 12. 5. 세미나 토론문 (정태욱. 인하대)>
오늘 유엔사 관련 중요한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2007년에 유엔사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글을 쓴 것이 있는데, 오늘 많은 연구자들을 새로 알게 되고, 또 좋은 발표를 들을 수 있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토론은 제성호 교수님 발표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오늘 세미나 전체가 같은 주제 같은 논점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성호 교수님 발표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적 차원에서 토론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지하듯이, 최근 유엔사의 재활성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반환 이후에도 미국이 유엔사를 통하여 우리 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주한미군이 단지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 목적이 아니라 중국에 대항하는 아시아판 나토 형성을 목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유엔사 재활성화라는 미국의 정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기보다 유엔사에 적극 참여하여 발언권을 확보하는 것이 실용적 태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유엔사의 재활성화는 국제법적으로도 그 정당성이 의심스러울 뿐더러, 또 우리 한반도 미래의 운명을 생각할 때에도 우려스러운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엔사의 재활성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결문제로 유엔사의 법적 지위 그리고 유엔사의 존속과 해체의 문제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유엔사의 법적 성격 문제입니다. 발표자들께서 그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우선 유엔사는 ‘유엔 관련 기관’일 수는 있어도 ‘유엔 소속의 보조기관’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유엔사는 현재 유엔 공식 보조기관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유엔은 유엔사에 대하여 지휘통제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인사적으로도 유엔의 관여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근관 연구원장님이 참고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유엔 자체도 유엔사가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사의 창설에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유엔 총회도 유엔사를 인정하였습니다. 유엔사가 유엔의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유엔사의 법적 성격이 논란이 됩니다. 이는 유엔사 창설에 관련된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의 해석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엔 안보리의 강제조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유엔사가 유엔 헌장 제43조에 따라 창설된 유엔의 보조기관은 아니지만, 유엔 안보리가 그 강제조치의 권한을 유엔사에 위임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엔의 강제조치 차원이 아니라 유엔 헌장 제51조의 집단적 자위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는 다만, 그 집단적 자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후자를 지지하지만,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은 유엔사 존립 문제입니다. 저는 유엔사를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보든, 안보리 수권에 의한 강제조치 집행 기관으로 보든, 집단적 자위를 위한 통합사령부로 보든, 유엔사는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목적을 위한 일시적(ad hoc) 기구로서, 북한군의 격퇴 및 정전협정 체결로 그 목적을 달성하였고, 이제 유엔사는 다만, 정전 체제의 유지를 위해 존속할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유엔사는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엔 보조기관이라면 유엔의 결의로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할 것이고, 유엔 안보리 강제조치의 위임 기관이든,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의 통합사령부이든, 각 참전국들의 군대라고 본다면, 참전국들의 결정으로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 목적이 달성되었으면, 국제 무력의 개입은 종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오늘 토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유엔사 재활성화 문제입니다. 저는 현재 진행되는 유엔사의 재활성화는 법적으로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토론의 요점은, 유엔사 재활성화는 유엔사의 법적 성격에 따라 i)그것을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으로 보거나, 적어도 안보리 강제조치의 수임기관으로 볼 경우라면,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ii)그것을 집단적 자위를 위한 미국 지휘의 연합군으로 본다면, 직접 당사국인 우리 한국의 동의가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 혹은 우리 한국의 동의 없는 유엔사 재활성화는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 헌법적으로도 유엔사 재활성화는 기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넘어서는 것이 될 수 있어 조약의 개정 및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북한이 다시금 무력 공격(armed attack)을 감행하는 경우를 대비한 유엔사 재활성화입니다. 북한의 재침이 있다면 이는 현 정전협정을 파기한 것이고, 한반도는 다시 전쟁 상태로 회귀하여, 유엔사가 복원되어 참여국들의 전력제공과 무력적 개입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6.25 전쟁이 끝난 후 이제 70년이 다되어 가는데, 북한의 재침이 이전 전쟁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더욱이 Julius Stone이나 Joram Dinstein이 말하듯이 정전체제로 한국 전쟁은 종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구성도 1950년대와 달라져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 재침의 경우에도 유엔사 복원에 대한 추가적 법적 근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엔사를 유엔 안보리의 강제조치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수권이 필요하고, 유엔사를 집단적 자위의 연합군으로 본다면, 각국의 승인, 특히 당사국인 우리 한국의 승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의 재침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유엔 안보리의 결의나 우리 한국의 승인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 두 번 째 단계로 북한의 핵 위협의 제거를 위한 군사행동의 경우입니다. 즉 이른바 ‘선제적(pre-emptive) 자위’를 위한 유엔사 재활성화입니다. 이 경우는 기존 유엔사의 복원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새로운 유엔 안보리의 결의(유엔 강제조치로 볼 경우) 혹은 당사국인 한국의 동의(집단적 자위로 볼 경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제적 자위는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도리어 선제적 무력 공격이 될 수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그러한 선제적 자위의 무력 개입 권한을 회원국의 군대에게 위임하는 것은 유엔의 존립 목적에 반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선제적 자위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방어 목적을 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미국이나 우리 한국 쌍방이 서로에게 북한 핵 위협 제거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 및 그 준비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러한 요구가 있어도,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해야 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동아시아 판 나토의 구상으로서의 유엔사 재활성화입니다. 이는 유엔의 목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오히려 유엔이 지향하는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서 유엔은 이에 대하여 어떤 수권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방어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조약 개정 사항이며, 근본적으로 우리 헌법의 침략전쟁 부인의 국제평화주의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도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유엔사 재활성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발언권을 높이는 전략보다, 유엔사 재활성화에 거리를 두며 평화와 안전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견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