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최후까지 희망을 안고
김 재 웅
현역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로운 생활 디자인(설계)을 하게 되는 더 없는 기회라고 생각 하자. 더군다나 나이를 먹고 미지의 세계를 한 발짝씩 밟게 된다면 더 이상 즐거운 모험도 없을 것 같다. 정년이라고 하는 숙명적 현실을 맞게 되는 경우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갖가지 유전과 처녀지에 대한 자원을 발굴하여 결코 단념 하지 말고 격렬하게 사는 패션(정열)을 갖는 것이야 말로 고령자 차별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는 것이며 노화방지의 수단이라 생각된다. 인퇴 후 6~70대에서 인생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하면 더욱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인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한 언제나 젊다’라고 하는 말은 잘도 한 말이다.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존해 있는 한껏 사회에 봉사 하겠다고 마음먹고 새로이 시작함은 ‘더없는 삶의 기쁨’이요 보람이 아니겠는가.
수명이 길면 길수록 좋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은 삶의 보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자유로이 쓸 수 있어야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활동 없이 자리에 누운 채 오랜 삶은 의미가 없다. 또 오래 살 되 자신에게 연료燃料가 있어야 한다. 연료가 없으면 남의 마음을 태울 수 없을뿐더러 생존 가치와도 관련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은 움직임을 뜻함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매일 즐거운 일을 만들며 연속적으로 움직일 때 생존의 가치를 더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릴 때에는 무엇이든 마음껏 공짜로 얻으면 그뿐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부모님과 형제들로부터의 도움, 학교에서 선생님의 도움이나 갖가지 학업도구의 이용, 사회로부터의 편의시설과 복지 혜택 등 주저할 것 없이 그냥 이용 하고 얻을 권리가 주어져 있으며 사화와 국가는 이를 허락 하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와는 다르다. 반드시 얻은 만큼 아니 그 이상 갚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길러준 사회와 국가를 위해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봉사해야한다. 얻기만 하고 갚을 줄 모르거나 빚을 진채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죽어서 사회에 진 빚을 어떻게 갚는다는 말인가 도리가 아니다.
퇴직이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결심 없이 여행, 등산, 동창회모임 등에 참가하다가 보면, 은연중, 늘그막에 때늦은 한탄으로 이르게 되거나 봉사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되기 십상팔구이다.
돈이 있다거나 지위가 높다고 하여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 평안인 것이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일도 큰 기쁨으로 받아 드리고 기쁜 마음에서 남과 함께 일하고 푹 자고나면 또 다시 내일을 태울 수 있는 연료가 쌓일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난날 경험을 바탕으로 보충연료를 쌓기 위해 생각 끝에 ‘성천 생활문화 아카데미’를 찾기로 하였다.
성천(星泉)생활문화아카데미란, 심훈이 지은 ‘상록수’의 모델이었고 초대 재건운동 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고 땀 흘려 개간해온 농지를 희사하여 서울과 대구에 유달영(柳達永)박사께서 설립한 재단법인으로 다른 사설학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이 있었다. 각 분야에 권위 있는 저명한 학자를 강사로 초빙하여 전통문화와 동서고전 그리고 미래학에 대한 체계적인 강의를 하였고 6개월을 한 단위 기간으로 하여 12강좌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전개 하였다.
수료식 때에는 유달영 이사장으로부터 고덕중의高德重義라고 하는 휘필(揮筆)과 함께 독학상篤學賞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후 대구의 학술분과 위원장직까지 맡은바 되었다.
이에 이어 경북대학교 사회대학원 명예학생 과정에 입학하여 젊은 학도들과 함께 하며 3년간 일본문학의 이해에 깊게 접근하는 기회도 가졌었다.
그리고 지난날 공무로 4년간 일본현지에 파견되어 얻게 된 경험과 일본어 ‘1급 능력인정서’를 자원으로 하여 대구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금빛평생교육봉사자(전문직 분야 종사자) 활동에 합류하여 일본어 분야를 위촉받아 본격적인 활동에 참여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퇴직이후 20년을 한 결 같이 대구의 복지회관을 두루 다니며 봉사하게 되었고 덕분에 건강 또한 유지할 수 있게 되기도 했는데 이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하는 가르치고 배움이 상존한 교육 현장의 여러분들의 은덕이라 여겨지며 지난날 나는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을 만난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KBS, 대구방송국에서 수업공개의 청탁이 왔었다. 이질집단의 어려운 환경실태 임에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나아간다고 하는 ‘송사리학교’라는 제재를 설정하여 음악을 곁들인 통합 지도안을 작성하여 수업을 전개 하였던바 성공적이라 하여 TV에서 2일간 하루 3회씩, 일반에게 수업 장면이 방영 되니, 격려의 전화가 이곳저곳에서 날아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퇴직 이후 20여년, 대구 자원봉사 종합관리 시스템에 따른 ‘자원봉사수첩’에는 2,692시간의 봉사기록이 새겨져있다.
나이가 들어 지난 일을 생각하는 마음이거니와 지혜의 불꽃을 아낌없이 태우고 죽는 날 까지 봉사의 일념을 다 하고 유명을 달리한 선인 들이 얼마나 많은가. 같은 길에서 100세시대의 삶의 가치로서 봉사의 기간과 종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다시 설계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대구금빛평생교육봉사단선언문’에서는.
“나는 나눔의 주체인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나눔의 대상인 내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되어있다. 어떠한 역경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함은 중요한 것이다. 희망 이야말로 성공을 이끄는 신앙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후의 최후까지 희망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가 없다.
김 재 웅
〈문학미디어〉 수필 등단
데구문인협회 회원
(전)주일본국 한국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