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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지금부터 읽으시는 내용은 인터넷과 각종 언론 보도를 취합하여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몇개의 비행장이 있을까?
그리고, 나이 든 분들이나 공군들은 왜 비행장을 K-2, K-16이라는 식으로 부를까?
K-SITE CODE는 미 공군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이북 5도)의 군사 공항, 비행장을 부를 때 사용했던 코드이며 지금도 쓰이고 있다. 통상 전선에 위치한 관측기/연락기/수송기가 이용할 목적으로 건설된 야전비행장이었다.
흔히 대구공항을 K-2라고 부르는데 이때 K-2가 바로 K-SITE다. 성남비행장이 K-16이라 불리는 것도 같다. 전쟁 당시에 쓰인 명칭이다 보니 현재는 없어진 비행장들도 상당히 많다.
참고로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때 사용했던 호칭이므로 그 이후에 건설된 공항, 예를 들어 1992년경 건설된 인천국제공항, 1997년부터 착공한 양양국제공항 같은 경우에는 K-SITE 번호를 부여받지 않았다. 다만 공군에서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부호로는 추가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선 비행장은 1916년 건설된 여의도비행장이다. 이후 일제는 대륙진출의 근거지로 활용할 수 있는 두만강 인근지역이 전략 요충지로 떠오르자 1932년 3월 경성에서 함흥을 거쳐 청진에 이르는 신항로 건설을 결정하고 1938년 10월 1일부터 매일 취항시켰다. 김포공항은 1939년 일본군이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1930년대 비행장은 울산, 대구, 경성(여의도비행장), 청진, 광주, 신의주, 함흥 등이 있었고, 불시착장은 이리(전북 김제시 황산면 남산리), 오산(경기도 수원군 성고면 오산리), 해주(황해도 해주군 영산면 공해리), 강릉(강원도 강릉군 감덕면) 등에 있었다.
현재는 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하여 김포공항, 김해공항등 총 15개 공항이 운영 중이다. 무안공항이 2007년 건설되면서 목포공항은 2007년 11월 8일 폐쇄되었다. 15개 공항중 8개 공항이 국제공항이며, 울산, 여수, 목포, 사천, 포항, 군산, 원주공항은 국내선만 운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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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당시의 비행장 (K code)
앞으로 소개하는 공항들은 먼저 K-CODE / 정식명칭 / IATA CODE / ICAO CODE / 활주로 방향(360도 자침방위의 10단위) / 길이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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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1 김해국제공항(PUS/RKPK).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에 있는 군-민 공용의 국제공항이다. 이용객 수 기준으로 인천, 제주, 김포에 이은 대한민국 4위의 공항이다. 김해공항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원래 공항이 건설될 때에는 경상남도 김해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부산시와 김해시는 공항 명칭 때문에 투닥투닥거리고 있다.(1978년 2월 15일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부산시에 편입되었다. 2011년 10월 부산광역시가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 내에 위치한 김해국제공항의 명칭이 부산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산국제공항으로 변경을 추진하기로 해 경상남도 김해시가 이에 반발하였다. 부산광역시에서는 공항이름을 바꿔야 할 근거로 김해국제공항이 특별한 이유 없이 도시명과 공항명이 서로 달라 국내외 이용객들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과 공항이 김해군에 속했던 기간은 1년반에 불과한 반면 부산광역시에 속한 기간은 30년이 넘었고 이용객의 59%가 부산시민이라는 점을 내세웠는데, 김해시의 반발 등 여러 문제로 인해 명칭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중 김해비행장 출처 : ds1jxm님의 블로그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이 주둔하고 있다. 제5공중기동비행단은 성남 서울공항의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과 함께 수송기와 조기경보기 등을 운영하는 부대이다.
김해국제공항은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서부산공군기지 Pusan West (K-1) Air Base로 건설되었다. 이후 1940년에 일본 육군 비행장으로 건설된 부산비행장(수영비행장)에 있었던 국제공항과 제5전술공수비행단이 이전해왔다.
영남권 국제선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김해국제공항은 군용 공항을 겸하는데다 소음피해 문제가 있어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고 신어산, 돗대산 등의 지형상의 장애로 활주로 이용에 제약이 있어서 이 공항 대신 영남권의 국제선 항공수요를 담당할 신공항 건설이 검토되었다. 이에 부산광역시는 24시간 운영이 용이한 해상공항으로서 가덕도 남쪽 해상을 신공항 부지로 주장하였으나,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울산광역시가 영남권 각 지역과의 접근성이 좋은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을 신공항 부지로 주장하며 대립하였다. 2011년 3월 30일 국토해양부는 과도한 건설 비용에 비해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 검토를 백지화하였다. 그럼에도 또 한 차례 건설 요구가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넣은 결과 여전히 경제성 없음으로 나와서 2016년 6월 21일 국토교통부는 신 공항 대신 제 3활주로를 북서쪽으로 추가 건설하여 김해국제공항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김해국제공항 확장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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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2 대구국제공항 (TAE/RKTN) . 동촌비행장으로도 불리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대구 북동쪽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이었다. 1936년 일본 조선군 육군항공대가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곳이다. 이후, 6.25 동란이 발발하자 한국공군과 미공군이 들어왔다. 최초는 일본에서 미태평양공군의 F-51D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도받은 BOUT onE 부대였다. 이후 미공군이 들어오자, BOUT onE 부대는 진해비행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공군 제11전투비행단과 미공군 1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다가 1990년대 초 미공군은 철수하고 유사시 증원전개기지로만 유지중이다. 1969년 동북아 최초로 F-4D PHANTOM을 운용하기도 했고, 현재는 F-35를 제외하면 동북아 최강이라는 F-15K를 운용하고 있다.
민간공항 기능은 1961년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 설치로 시작된 대구국제공항의 역사는 1996년 처음으로 대구와 오사카를 잇는 국제공항이 취항하였고 이어 2001년 중국 상해노선과 청도 노선이 취항하여 운항중이다.
현재, “행동하는 보수의 양심?(퍽이나 개뿔!)”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로 유승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군공항기지 이전 특별법”의 대상공항으로 광주공항과 함께 대구공항 이전사업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대구국제공항이 F-15K를 주력으로 제11전투비행단 뿐만 아니라, 공군군수사령부ㆍ공중기동사령부, 제2 MCRC, 81 항전창,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예하 부대 및 미공군 부대까지 있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양심 유승민 의원님의 노력으로 군위나 의성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1전비와 여타 부대들 역시 이전이 결정되었다.
대구 국제공항
1969년 8월 29일 대구기지 팬톰 도입식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형 강신구 중령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는 배우 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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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3 포항공항(KPO/RKTH)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옛명칭은 영일비행장. 일본이 건설한 육군비행장으로 6.25 전쟁 중에는 포항지구 전투에서 학도병들이 목숨을 걸고 사수했던 비행장이기도 하다. 미공군 및 미해병대 제40전투비행대대가 주둔했었고, 미해군 함재기들의 비상착륙기지로도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해군 제6항공전단이 같이 있다. 해병대 부지 안에 있으며, 인근부대로는 제1해병사단, 포항3특정경비지역사령부(포특사), 해병대교육훈련단, 군수단 및 해군포항병원이 있다.
민간 공항은 1970년 2월 포항비행장으로 설립되어, 1970년 3월 대한항공이 김포 노선을 개설하였다. 1992년 4월에 아시아나항공이 김포 노선을 개설하고 1999년부터 공항 확장공사를 시행하여 2002년 6월 신 여객터미널을 개관하였다.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였던 제주 노선이 수요 부족으로 2004년 12월 폐지되었다가 2009년 7월 31일에 운행을 재개했다.
2014년 7월1일부터 2016년 3월 30일까지 활주로 재포장 공사를 진행하여 공항 기능이 중지되었으며, 공사 완료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KTX 개통으로 인한 적자 우려로 복항을 꺼려하다가 5월 3일부터 김포 노선에 대한항공이 계속 운항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2018년 2월 7일부터 에어포항이 매일 2회 운항한다.
길이 2,133m*46m 활주로 1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활주로 방향은 10/28) 10활주로 방향으로 LLZ/DME 장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최근 활주로 개량 공사를 진행하면서 신규 장비가 설치되어 최저 착륙시정은 800m급으로 최저 운고는 200피트로 개선되었다.
활주로 앞에 서쪽에 인덕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바람에 권장 활공각인 3도 넘어서 거의 5도에 가까운 각도로 접근한 적이 있다. 지형 덕분에 1990년대엔 동해방향 접근(VOR RWY 28)이 우선 사용됐으나 1990년대 말 결국 대한항공기가 악천후 속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를 내게 되고, 이후 해군과 포항시 그리고 당시 공항공단에서 인덕산을 깎아 산의 해발고도를 낮추는 사업을 진행했고, ILS도 정상 절개 사업과 같이 설치는 했는데 비행기 진입 좌우각도를 안내하는 로컬라이저는 정상 작동하는데 활공각을 안내하는 글라이드슬로프의 전파가 제대로 안잡히는 문제가 생겨서 결국 글라이드슬로프 장비를 철거하고 정밀 유도 레이더(PAR)를 대신 설치하게 된다. 하지만, KTX 개통후 취항한 모든 항공사가 적자를 보고 있다.
출처 : 경북매일 http://m.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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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K-4 사천공항(HIN/RKPS) :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요람 제3훈련비행단과 제52비행시험평가전대가 주둔하고 있다. 일본이 육군비행장으로 건설한 곳이다. 이 곳은 6.25 전쟁 때부터 미군이 4번째로 접수하여 사용되어 왔던 대한민국 공군 기지였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제10전투비행전대가 강릉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주둔하면서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공군 최초의 전투비행단인 제1전투비행단이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1953년 사천비행장 공군 제1전투비행단 부단장 김영환 대령(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1967년 5월 진주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개항되어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항공공사에서 DC-3로 주3회 김포 - 진주 간 노선을 취항하면서 민항기가 운항하기 시작하였고 1969년 3월 대한항공의 설립 이후에도 노선은 유지된다.
1969년 7월 사천공항으로 개칭되었으며, 1970년에는 김포 노선이 1년간 대구를 경유하는 노선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1973년 8월부터 활주로 공사 및 여객청사 개축공사 관계로 공항 운영이 잠시 중지되었다가 1975년 2월에 다시 취항하였다. 1977년 8월에는 제주 노선에 취항하게 된다. 1986년 10월에는 출발 여객청사를 완공하여 현재까지 사용 중이며, 이후 제2민항인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하면서 1992년 4월에 김포 노선에 취항하게 된다. 1994년 7월에는 신 청사가 완공되어 일반 대합실로 사용 중이다.사실 김포 노선은 굉장히 장사 잘 되는 노선 중 하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탑승률이 98%까지 나온 적이 있었고 평균 탑승률 90% 이상이었다.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MD82와 보잉 737의 중소형 기체를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였다. 이 때문에 1997년에는 주말 한정이기는 하였지만 대한항공은 에어버스 A300을, 아시아나항공은 보잉 767을 투입했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진주시 및 사천시와 같은 경상남도 서부지역으로 가려면 자가용 및 버스를 이용하더라도 경부고속도로 및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우회해야 했고, 기차를 이용해도 경부선과 경전선, 전라선 등을 거쳐 왔기 때문에 이 지역 교통은 불편한 편이었다. 게다가 인근 거제시에 위치한 조선업체들의 비즈니스 수요까지 추가되어 위와 같은 현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 아우토반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진주시까지 개통되면서 공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주 제작공장이 공항을 같이 사용하면서 해당 공장에서 KT-1, KF-16, T-50, F/A-50 등을 제작, 시험비행을 같이 실시하고 있다.
사천공항 터미널
사천 한국우주항공(KAI)
5. K-5 대전 비행장(QTW/RKTF): 대전시 서구 탄방동 대전시청 인근. 공군교육사령부가 대전에 소재시 사령부 내부에 있었던 훈련 및 연락용 비행장으로 초등비행훈련을 담당하는 공군 제212 교육훈련비행대대가 주둔했었다. 1945년 해방직전 일본군이 건설하여, 한국전쟁기간에는 한국과 미공군의 작전기지와 미제5공군의 수송기지로 사용되었다. 1952년이후 공군 항공병학교, 공군기술고등학교, 공군 통신전자학교 등이 주둔했고, 1956년 8월 1일 공군기술교육탄이 창설되었다. 1973년 4월 10일 공군교육사령부로 개편 창설되었다. 1988년 11월 10일 신도시 조성사업과 대전정부청사 건립으로 공군교육사령부가 진주로 이전하면서 폐쇄. 현재는 보라매공원이라는 조그마한 공원과 구 활주로를 이용해 만든 대로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1950년대 대전비행장
대전비행장 출처 : http://thebluesky.info/147
현재의 대전 비행장 위치 출처 : http://thebluesky.info/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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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K-6 평택 비행장(RKSG) : 활주로 방향 14/32 길이 2178미터.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 또는 험프리스 미국 육군 기지(USAG Humphreys)로 불리우는 미본토 이외의 세계 최대급 미군 주둔지이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위치한다. 미국 육군 시설 관리 사령부의 태평양 지역대에서 관리하고 있다.
1919년, 최초에는 평택 비행장으로서 일본 제국에 의해 건설 계획이 세워지고 한국인들의 인력으로 완성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미국 해병 항공대와 제614전술통제단이 주둔하기 위해 개조가 된 이후로 K-6으로 명명되었다. 1962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제6수송중대의 벤저민 K. 험프리스 준위(CW2 Benjamin K. Humphreys)의 이름을 따서 캠프 험프리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 전쟁 중, 그리고 그 후에는 대추리, 안정리, 두정리, 함정리, 내리와 동창리 지역 등으로 기지가 확장되었다.
험프리스 관구 사령부는 1964년 미국 제8군의 지휘에서 분리된 기지가 되었으며, 1974년에는 제19지원여단(현재 제19원정지원사령부:19th ESC, 캠프 헨리)의 활성화와 더불어 미군 기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1985년에는 전시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 구조 조정이 되었으며, 모든 지원, 공급, 관리, 훈련 그리고 미국 제8군 우유 공장을 운영하는 제23지원단으로 지정되었다. 1996년에는 독립된 미국 육군 지원활동 USAG-H가 활성화되어 기지 작전들과 커뮤니티 지원을 하게 되었다.
2004년 12월, 주한미군 기지 통합이전 계획에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의 확장계획 (3,734 에이커에서 6,585 에이커로)에 동의하여 주한미군사령부, 미육군 제 2사단 예하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전방지역에 분산배치된 부대들이 모두 이전하게 되었다.
공군 제7항공통신전대, 미육군 2사단, 미육군 제1통신여단, 제2전투항공여단, 501지원여단, 501군사정보여단, 58항공연대, 주한미육군 교도소등이 주둔중이다.
2013년 6월 20일 개봉한 미국 영화 월드워Z(World War Z, 브래드 피트 주연)에서 전 세계 주둔 중인 미군부대 중에서 최초로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좀비가 보고된 가상의 공간으로 캠프 험프리스가 등장하였다. 비가 내리는 암흑의 저녁시간으로 설정된 이 장면은 실제 한국의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에서 촬영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작 소설에서는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이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지이다.
1945년 해방 직후의 평택비행장. 일본군 Ki-51 99식 급강하 폭격기
1950년대 평택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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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K-7 광주 비행장(Gwangju Airdrome) : 1948년 11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개설된 비행장. 1949년 2월 DC-3 기종이 취항하면서 민항기 운항이 시작되었다. 1964년 1월에 현재의 광주공항으로 이전하면서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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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K-8 군산공항(KUV/RKJK) 전라북도 군산시. 대한항공과 이스타항공이 제주를 오가는 노선을 매일 1회씩 운영중이며, 이스타항공 거점이다. 오산비행장과 더불어 미공군이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공항 중 유일하게 주한미군이 운영하는 비행장을 사용하는 곳이며, 미국 태평양공군 제7공군 소속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고 있다. 예하 2개 비행대대 모두 F-16을 운영 중이며, 주한 미공군 이외에도 대한민국 공군 소속 제38전투비행전대도 배치되어 있다. F-5 기종을 운영하다가 현재는 KF-16을 운영 중이다.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을 운영하는 주한 미육군 35방공포병여단 예하부대도 배치되어 있다.
1938년 일본육군항공대의 전투요격기기지로 5000피트(1500미터)의 비포장 비행장이 건설되었으며(이 활주로는 현재 TAXIWAY CHARIE로 불리우는 동서방향 예비활주로 06/24이다.) 8.15 광복 후에는 주한미군에 의해 접수됐다. 이후 파견대가 유지되다가 미군이 철수하면서 운용이 중단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1일 F-84 전폭기를 운용하던 27전투호위비행단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 3폭격비행단이 B-26 폭격기를, 미해병대의 VMFA(N)-513도 운용했다. 한국전쟁 정전후 비행장은 다시 운영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1953~54년에 미공군은 현재의 주활주로를 건설했고, 오산비행단 분견대가 주둔하면서 주기적으로 전술기들이 파견운영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공군이 F-86을 주기종으로 이동배치되었고,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과 EC-121 정찰기 격추사건 이후 미공군 F-4E 팬텀이 상시배치되었다. 1974년 9월부터는 현재도 주둔중인 미공군 제8전투비행단이 태국에서 이동전개하였다. 2018년 2월에는 12대의 MQ-1C Gray Eagle 무인정찰공격기가 2018년 3월~4월 중에 배치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1970년 8월 대한항공이 서울 - 군산 노선에 취항함으로써 민항기가 운항하기 시작했으나,.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하여 유류절감 차원에서 1974년 3월 공항이 폐쇄되고 잠시 운항을 중단하였다.
약 17년이 흐른 후 민항기 재취항이 추진되어 1991년 12월 공항청사 공사가 시작되고 1년뒤인 1992년 12월 재개항과 동시에 대한항공이 다시 김포 노선에 재취항했다. 1996년 6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이 김포 및 제주 노선에 취항했다.
2001년 10월 10일 : 아시아나항공 단항 (군산 ~ 제주 노선)
2002년 5월 15일 : 대한항공 김포 ~ 군산 노선 단항
2008년 5월 : 대한항공 군산 ~ 제주 노선 매일 1회 운항
2009년 2월 : 이스타항공 취항 (군산 ~ 제주 노선)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직후 군산비행장에 배치된 일본군 항공기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미해군 정찰기
군산비행장
군산비행장과 미 제8전투비행단 WOLF PACK
이스타항공 취항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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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9 동부산 공군기지(East Busan Base RKPP) : 수영비행장. 원래 부산공항이 있던 곳. 일본이 1940년에 지금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벡스코 부지에 개설한 육군 비행장이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미군정이 C-47 항공기 여덟 대를 투입해 김포비행장을 기점으로 서울 - 대구 - 부산 간 노선을 주 2회 운항하면서 비로소 민간인들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1948년 10월 30일부터 대한국민항공사(KNA)에서 서울 - 부산 간 국내선 노선을 운항하였다. 수영비행장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부터 정전 후 여의도비행장이 임시국제공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임시국제공항으로 지정되어 운영되었다. 1953년 12월부터 수영비행장을 기점으로 해 광주, 군산, 대구, 제주를 잇는 노선을 부정기로 운항하였다. 1957년 12월 17일에는 항공통신소가 설치되었다.
1958년 1월 30일에 수영비행장의 명칭이 부산비행장으로 변경되었고, 1963년 9월 30일 교통부에 의해 정식 국제공항으로 승격하였다.
1976년 8월에 부산비행장이 김해군 대저읍으로 이전하고, 김해국제공항으로 명명되었다. 부산비행장 부지는 공군의 전시 예비비행장으로 지정되었으나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사용되다가 1987년에 폐쇄되었고, 현재는 센텀시티와 벡스코가 들어서 있다.
공식 사료에는 등재되지 않은 한국공군 최초의 항공기. 일본제 타치카와 Ki-9 95식 1형 중급훈련기. 부산 수영비행장에서 노획된 기체로 한국공군과 북한공군 양측에서 같이 사용되었음. 날개에는 태극마크가 동체에는 미군마크가 그려져있다. 1951년까지는 훈련용으로 사용하다가 모두 제적되고 "공군사"에도 언급이 안된다.
1950년대 부산 수영 비행장
수영비행장에 착륙 중인 미공군 B-26 경폭격기
수영비행장에 착륙중인 일본항공 B-727
부산국제공항(수영비행장) 터미널. 1970년대.
수영비행장에서 이륙중인 대한항공 YS-11과 B-727. 1970년대
수영비행장 자리에 들어선 벡스코와 해운대 센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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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K-10 - 진해 해군비행장(CHF/RKPE) 활주로방향 18L/36R, 길이 1148미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덕산동에 있는 비행장이다. 덕산비행장으로 불렸으며, 1949년 4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식이 개최된 장소이다.
한국전쟁 중 공군사관학교와 딘헤스 소령에 의해 지휘되는 대한민국 공군 BOUT onE 부대가 운영하기도 했었다. BOUT onE 부대는 대구비행장에 최초 주둔하다가 미공군이 전개해오면서 대구비행장이 복잡해지자 사천 비행장을 거쳐 진해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활주로가 2750피트로너무 짧아 F-51D 전투기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이륙은 한국군 조종사가 해서 김해비장에 착륙하면 미군 조종사가 갖고 다시 진해비행장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이 공항은 한때 대한항공에 의해 민군 공용 비행장으로 운영되었다. 지금은 군용으로만 사용되게 되면서 대한민국 해군에 관할권이 넘겨져 있다. 비행장 운영시설은 모두 유지되고 있으나 고정익기가 운용하기에는 너무 활주로가 짧아 현재는 회전익기만 사용 중이다.
해병대 창설식
1951년 진해비행장
딘 헤스 소령의 한국전 100회 출격 기념사진. 진해비행장
현재의 진해비행. 한국전 당시와 활주로 방향이 다르다.
11. K-11 울산 비행장(Ulsan Airdrome) 한반도 최초의 국제비행장. 지금 운용중인 울산공항과는 다른 비행장이다. 현재의 노른자위 땅인 달동~삼산동 일대에 건설된 활주로 600m 길이의 공항으로, 1928년12월에 개항하였으나 1937년에 대구비행장에 경상도권 비행장 기능을 넘기고(이 과정에서 반대가 대단했다고 한다) 불시착장으로 활용되어, 1980년대까지 비상용 활주로로 사용되다가 이후 모든 부지가 민간에 불하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일본 본토와 조선,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을 계획, 비행장과 관계시설 건설을 추진하였다. 조선에는 경성의 여의도가 비행장으로서 정비되었으며, 동해안에 위치한 울산에서도 1928년부터 약 6만평의 용지매입이 시작되어, 태화강 남쪽의 논에 남북 600m의 활주로를 건설하였으며, 이후에 동서방향으로도 600m 확장되었다. 격납고는 350평, 일본항공 사무소 35평, 공항사무가가 30평이었다. 운송 수요를 고려하면 이 지역의 비행장은 부산에 건설하는 것이 적절했지만, 부산은 요새지대(부산요새(ja))로 지정되어 민간 비행장을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안에 위치하며 부산에서도 가까운 울산이 선택되었다.
1928년 12월 2일 울산비행장이 개항식이 열리고, 평양비행연대의 정찰기 3대가 축하비행을 하였다.
1929년 4월 1일, 일본항공수송(jal)이 운항하는 첫 번째 항공편이 다롄에서 울산에 도착했다. 일본항공수송은 이후 후쿠오카-울산구간을 더해, 도쿄와 다롄을 연결하는 노선으로서 운항하여, 울산비행장은 중간기착지로서 기능하였다. 1930년 7월에는 울산항공무선국이 설치되었다. 1935년에는 울산교가 개설되어 비행장으로의 교통조건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기재의 대형화가 진행됨에 따라 울산비행장의 시설로는 대응하지 못하게 되어, 1937년에 대구비행장이 개설되면서 경상도의 비행장으로서 대구비행장이 이용되었다. 주민들은 이전에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울산비행장은 불시착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에 일본육군이 인수하여 연습기용 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
한국 전쟁때 미군의 비상용 활주로로 지정되었다. 휴전 후에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인수하여 유사시에 대비해 활주로의 일부를 보존하였으나, 울산의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1980년대까지 모든 부지를 불하하여 비행장이었던 장소는 주택단지가 되어있다.
일제시대 울산비행장과 93식 중등훈련기 아키톰보 출처 : ds1jxm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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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K-12 Marigun Airdrome : 영광군에 있는 G-712 비행장으로 추정된다. 논밭 한 가운데 있는 석분 활주로로 예비항공작전기지에 해당하며 딱히 촬영금지구역은 아니지만 주변에 시설물 설치가 제한되는 수준의 군사보호구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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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K-13 수원 공군기지(SWU/RKSW)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장지동 일대.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주둔하고 있다.
일본 육군이 1938년 화성군의 허허벌판에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용되었다. 일본의 패망 이후 수원비행장은 미군정의 관리에 들어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한국 공군이 창설되었지만 여전히 미군의 수중에 있었다. 한국공군은 1950년 소규모 파견부대가 수원비행장에 주둔하고 있었다.
6.25전쟁 초기 수원비행장은 미대사관 사절단과 한국군 고문단의 이동을 위한 기지로 사용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수원비행장은 유엔군 수송과 보급기지로서 김포 및 영일비행장과 함께 미 제5공군의 폭격기 발진 기지가 되어 유엔군 작전을 지원하는 중요한 비행기지였다. 송탄에 오산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미군기지가 건설되기 전까지 수원비행장은 미군에게 가장 중요한 군사시설물 가운데 하나였으며, 미공군 제8전투비행단과 51전투비행단의 F-86이 주둔했다. 1953년 10월 한국공군이 재배치되었고 관리권은 1955년 5월에 한국군에 이양되었다. 미 공군이 1957년 6월 철수하였으나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1968년에 미국은 기지를 재편하여 미군의 베트남전쟁 지원을 위한 전진기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미군기지는 1972년 11월에 다시 한국공군에게 양도되었다가 1981년 미군의 주요 군사시설로 재편되었고 1992년 감축하여 현재에 이른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은 과거 청주기지 등 중부권 기지가 건설되고 나서도 한동안 공군의 주력 전투기들이 운용되던 기지로 수원기지의 비행대대장으로 보임하는 것부터가 진급 코스로 여겨지던 중요한 부대였다. (부대원들 말로 대통령 친위부대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는 3선기라 불리우기도 민망한 KF-5E/F 제공호와 F-4E를 운용하는 2선급 부대로 전락했다. 거기다가 수원 시민들과 화성시민들이 서로 토스하는 미운오리새끼이기도 하다.
보수의 바른 양심 유승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군공항이전 특별법에 의해 광주 대구와 함께 이전대상으로 제일 먼저 이전계획이지만 이전 대상지인 화성시의 반발로 언제 이전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이다.
1953년 수원비행장 미공군 제51전투비행단 F-86F
하늘에서 본 수원비행장
수원비행장 정문
전성기 수원비행단 운영기종과 시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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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K-14 김포국제공항(GMP/RKSS)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동/오쇠동.
서울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이라고 명명된 이유는 건설될 당시에는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이었고, 1954년 정식 공항으로 개항하여 김포공항이라는 명칭이 부여된 이후, 1963년에 와서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도 김포시와 서울시는 공항 명칭 때문에 다툼이 잦다.
(유사한 경우로 인천시와 서울시간의 서울인천공항, 부산시와 김해시 간의 부산김해공항, 포항시와 울산시의 공항명칭에 경주를 넣는 문제 등이 있다.)
김해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과 더불어 한국공항공사를 먹여살리는 4대 흑자 공항 중 하나다. 다른 지방 공항의 적자를 이 공항들이 커버하고 있다
김포공항은 1939년 여의도비행장을 대신할 김포 구릉지대를 확정하여 70여만평 규모로 동양에서 제일 큰 비행장을 건설하는 취지로 지하1층, 지상 2층, 연건평 2,000평의 대규모 공사에 착공하여 일본군이 1,317×16m의 활주로를 건설, 1944년 완공되었다. 일부 자료에는 일본군 가미가제 특공대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근거가 없다.
해방과 동시에 미군이 접수해서 민군겸용 공항으로 사용을 하였다. 1948년 7월 27일에는 국방경비대 항공기지부대가 김포공항앞 송정리로 이동하였다.
1948년 9월 1일부로 항공기지부대는 김포비행장내 병사로 이동하였고, 동년 9월 13일 김포비행장내 항공기지부대를 항공기지 사령부로 개칭하고, 미육군으로부터 연락기 L-4 10대를 인수하게 되었다.(이때 인수받은 연락기의 미군마크의 별위에 태극을 그려 넣은 것이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공군 마크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후 여의도기지와 함께 대한민국공군의 주요 운용기지가 되었다.
북한군의 남침과 더불어 점령된 김포비행장은 이후 북괴공군이 운영을 하면서 유엔군의 집중공격목표가 되어 폐허가 되었고, 수복 후에도 방치되다가, 1951년 3월에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징발 운영을 시작하고, 미군이 2,468×45m의 활주로를 새로 건설하고, 전투기들이 운영하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26일 김포비행장 항공정찰사진
1950년 10월 김포비행장에서 노획된 북한공군의 일본제 타치카와 Ki-54 상급훈련기(VIP용으로 사용)
1950년 10월 멀쩡한 상태로 김포비행장에서 노획된 북한공군 소련제 IL-10 지상공격기
1953년 김포비행장 미해병대 헬리콥터
1953년 김포비행장 미공군 제4 요격전투비행단 F-86F
1954년 김포비행장
1954년 4월에는 한국측에서 김포비행장 활주로 일부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1958년 1월 30일에는 대통령령 제1319호으로 김포국제공항으로 지정되고, 공항관리권을 단계적으로 미공군에서 한국측에 이양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여의도공항의 국제공항기능을 인수 운영하기 시작했다.
1959년에는 김포공항 종합청사가 신축되었다.(국제․국내선)
1971년에는 활주로가 2,468×45m에서 3,200×45m로 연장되었다.
1972년 4월 ~ 1980년 8월에는 1단계 확장사업이 시행되어, 국제선 1청사(현재의 국내선 청사), 화물청사가 신축되었고, 유도로가 신설되고, 주기장이 확장되었다.
1973년에는 주둔중이던 한국공군 부대들이 성남비행장으로 이전하면서 순수한 민간공항이 되었다.
1982년 ~ 1987년 4월 1일에는 2단계 확장사업이 시행되어, 활주로가 3,200×45m에서 3,600×45m로 확장되고, 3,200×60m의 활주로가 서편에 추가로 건설되는 한편, 주기장이 확장되고, 국제선 제2청사가 건설되었다. (현재의 국제선 청사. 국제선 제2청사는 대한항공이 건설하고 기부체납하는 대신 일정기간 사용권을 받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에 따라, 1청사는 대한항공을 제외한 기타 항공사들이, 2청사는 대한항공 전용 청사로 이용되었다.)
1960년대 김포공항 대한항공공사(KNA) DC-3. 승객들 짐을 리어카로 운반.
1962년 김포공항 관제탑
1970년 김포공항과 대한항공 DC-9
1991년 ~ 1992년에는 국내선 청사가 증축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외국인들의 한국 입국 증가와 함께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라 해외여행객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김포국제공항은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거기다 인근 거주지역으로 인해 공항 운영시간의 제한(커퓨 타임) 및 확장이 불가능한 점 등의 한계점이 보임에 따라 결국 1992년 인천의 영종도 및 용유도 사이를 매립한 부지에 신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착공하기에 이른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직전인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포화상태를 한참 넘긴 수준이라 러시아워가 되면 지연출발은 기본에 마치 교통체증 마냥 비행기가 줄줄이 서서 대기하면서 1분 간격으로 이륙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착륙까지 치면 그야말로 아비규환. 승객 탑승후 PUSH BACK까지 30~40분 기다리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둔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2분경 김포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는 우리나라 공항에서 일어난 유일한 테러 사건이다. 서울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현 국내선 청사) 1층 외곽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에 위치한 음료수 자동판매기 옆의 철제 쓰레기통에서 고성능 사제 시한폭탄이 갑자기 폭발, 전송객 부부 등 일가족 4명과 공항관리공단 직원 1명 등 총 5명이 숨지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23년 후인 2009년이 되어서야 이 사건의 범인과 전모가 드러났다. 범인의 이름은 아부 니달 . 1985년 로마, 빈 공항 습격과 1986년 팬암 여객기 납치 등을 주도했고, 온건파인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측근까지도 서슴지 않고 죽였던 '사막의 독사'라 불리던 인물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관련 자료들을 통해 아부 니달이 북한의 청부를 받고 그 하수인들을 국내에 잠입시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
이 판단의 근거 자료들 중 핵심은 스위스 베른 신문의 한 일본인 기자가 발견했다는 동독의 첩보기관 슈타지의 비밀 문서다. 당시 동독은 이슬람 테러단을 지원했으나 동독이 테러기지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슈타지에서 아부 니달을 비밀리에 조사하자 슈타지의 도움이 필요했던 아부 니달은 자신이 저지른 범행 전모를 털어놓았고, 그 중에 김포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의 내막도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빨치산 투쟁'에 공감대가 있던 김일성과 아부 니달은 친밀한 관계였고 아부 니달은 핵심 조직원들을 북한에서 훈련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이 폭탄 테러를 사주했고 아부 니달은 자신의 조직 2인자인 삼린과 독일 적군파 출신의 여성 크라베에게 그 임무를 맡겼으며, 북한으로부터 대가로 미화 5백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삼린은 폭발물 제조기술자인 아부 이르바힘에게 폭발물 제조를 지시했으며, 이브라힘은 자신의 동거녀 크라베에게 한국으로의 폭발물 운반을 맡긴다. 크라베는 루마니아 정보기관인 세쿠리타테에서 만들어준 위조여권을 사용하여 영국인으로 한국에 위장입국하여, 김포국제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홍콩으로 출국했다.
테러가 성공하자 북한 정권은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한 은행의 아부 니달의 비밀 계좌로 500만 달러를 송금했고 북한이 준 이 돈은 현재도 은행에 묶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김포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북한 노동당과 아부 니달이 이끄는 아랍 테러조직 그리고 루마니아 정보기관의 합동 작전인 셈이고, 안기부를 비롯한 우리나라 수사 당국에 혼선을 주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2001년 3월 28일 21시 10분에 호놀룰루발 노스웨스트 009편의 착륙, 21시 50분에 타슈켄트행 우즈베키스탄항공 514편의 이륙을 끝으로 김포국제공항은 국제선 업무를 인천국제공항으로 이관하고 국내선 전담 공항이 되었다.
하지만, 국제선을 죄다 빼고 나니 전체적으로 활주로가 그야말로 텅 비었고, 운항 가능 용량에 비해 취항지 수가 적은 건 곧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김포국제공항의 운영 기관인 한국공항공사 측이 건설교통부와의 협의 끝에 하네다 공항과의 셔틀형 국제선을 2003년에 취항시키면서 국제선 기능이 부활하여 다시 김포국제공항으로 회귀한다.
이후 국제선이 차츰 확충되어 2007년에는 중국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 2008년에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 2010년에는 나고야, 2011년에 중국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2012년에 대만 타이베이 쑹산 국제공항 노선을 취항시키면서 말 그대로 동아시아 셔틀 노선을 전부 갖추며 수도권 제2의 국제공항이 되었다. 김포공항은 도심 접근성에서 인천국제공항보다 상당히 유리하며, 약 1달러만 내면 20~40분 내로 갈 수 있는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김포국제공항이 노리는 것은 아시아 비즈니스 셔틀 공항인 것으로 보인다.
2014년부터 김포국제공항 측에서 기존에 영업하고 있던 이마트, CGV, 공항 아울렛 등을 줄줄이 영업 종료시키고, 여기에 공항지원시설, LCC 사무실, 국제선 게이트를 대폭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국제선 확충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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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K-15 목포 비행장(MPK/RKJM)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 K-15라는 코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비행장이다. 필자의 능력부족으로 언제 건설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해 임시정부 귀국시 제2진이 목포비행장으로 귀국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군용 및 민용으로 사용된 것 같다.
민간공항으로서의 목포비행장은 1967년 4월 28일 기공하여, 길이 1160M 폭 30M 활주로 및 여객 청사를 보유한 공항으로 개항하여 1970년 4월 대한항공이 김포-목포-제주 노선에 중간지로 취항하면서 민항기 운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목포에서 비행장까지의 거리가 먼데다가 배와 버스를 번갈아 타야 하는 불편과 공항내 시설의 미비 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나마 70년대 초 닥친 석유파동으로 1973년 1월 19일 휴항하였고, 오랜 동안 운행이 재개되지 못하였다.
이후 해군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던 중 다시 민항기 취항이 추진되어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여객청사와 항공기 계류장 신축 및 활주로 길이를 1500m로 연장하였고 1992년 7월 대한항공이 F-100으로 다시 취항하였다.
원래 공사를 1990년에 완공시키고 재취항할 예정이었으나 대한항공이 투입하기로 했던 F-27 기종이 1989년 10월 운항을 중단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당초 계획은 활주로를 40m만 연장하려고 했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퇴역한 F-27 대신 대한항공은 F-28을 투입하려 했으나 활주로가 짧아서 이착륙이 불가능했었다. 이 때문에 활주로를 340m 연장하는걸로 계획이 변경되어 재개항 시기가 2년 정도 늦춰지게 되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해 12월 같은 노선에 B-737로 취항하였다. 이후 대한항공은 목포-제주 노선에도 취항하였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전이라서 서울에서 목포까지 5시간 이상 걸렸었고 덕분에 탑승률은 제법 좋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으로 공항의 짧은 활주로와 항행 시설에다가 ILS같은 정밀착륙접근장비는 없고 VOR과 DME가 전부였기 때문에 착륙에 필요한 최저시정이 무려 2,800m였다. 이 이상의 시정이 안나오면 항공기가 결항되거나 인근의 광주공항으로 회항하였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착륙은 남서쪽에서 접근하는 06 방향만 가능했고 이 때문에 뒷바람이 5노트 이상만 불어도 착륙이 금지되었고,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서 안개, 주변 산의 영향으로 낮은 구름이 자주 생성되었었다.
이러한 악조건의 연속은 결국 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설립 후 첫번째 항공 사고인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로 이어졌다. 탑승객 110명, 승무원 6명 중 68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인하여 정부는 대체 공항으로 무안국제공항의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아시아나항공 추락사고에 대한 대응책으로 활주로 연장 공사를 실시했기 때문. 활주로 길이 100m, 활주로 폭을 15m 연장하여 길이 1600m 폭 45m로 확장하였고 기존에는 없었던 로컬라이저가 설치되었다. 이 확장공사로 결항률이 그나마 좀 낮아지는 효과를 거두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하루 김포 8편, 제주 2편, 부산 1편 등 하루 총 11편의 항공편이 운항했었으나 점점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우선 2000년 10월 목포-부산 노선이 중단되었고, 뒤이어 2001년 10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과 2004년 호남선 목포역의 KTX 열차 영업으로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2007년 11월 무안국제공항의 개항으로 폐쇄되어 현재는 해군의 군 전용비행장으로 사용 중이다. 이 때문에 포항공항이 국내 공항들 중 유일하게 해군이 관할하는 공항이 되었다.
해군 제6항공전단 609교육훈련전대가 주둔하고 있다. 교육훈련전대답게 비행교육대대가 있어서 해군 및 해병대 회전익 조종사와 조작사를 양성하고 있다. 알루에트 대잠헬기와 UH-1H를 이용하고 있는데, 알루에트 같은 경우 현재는 대잠임무에서 완전 제외되어 순수 교육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비행교육대대 소속 CARV-ll 고정익기는 이곳이 아닌 무안국제공항에 파견대 형식으로 있다. 목포공항이 폐항하고 나서 비행안전구역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지원항공작전기지"에서 "헬기전용작전기지 겸 예비기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알루에트 대잠헬기를 운영하는 623비행대대가 있었다. 이외에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항공대도 이곳에 있어서 AS-565 팬더 헬기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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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K-16 - 서울 공군기지(SEL/RKSS) : 원래는 여의도비행장이었다. 현재는 성남 서울공항이 K-CODE를 사용하고 있다. 있었던 위치는 현재의 여의도공원. 1916년 3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선 비행장이자 공군비행단이 창설되었던 곳이다. 여의도 비행장은 1916년 3월 일본 육군에 의해 당시의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현재의 여의도) 일대에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9월에 활주로와 격납고를 완공하고 10월에 개장하여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 처음으로 항공기다운 항공기가 이착륙했던 것은 1920년의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가 일본과의 우호 친선을 목적으로 비행중, 여의도 비행장에도 착륙, 항공기 이착륙을 선보였다.
1922년 첫번째 조선인 조종사인 안창남도 이곳에서 이착륙과 선회비행을 선보였다. "떴다 떴다 비행기 안창남"이라는 노래가 널리 유행할 만큼 이 역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이특히 무엇보다 이 이착륙에서, 안창남이 몰고온 애기(愛機)에는 조선반도가 새겨져 있어 감동을 더했다.
안창남이 이착륙을 선보인 7년 뒤인 1929년, 여의도비행장은 여의도공항이란 이름으로 정식 비행장으로 개장했다. 한강에서 홍수가 나면 섬이 잠겨버린다는, 비행장으로선 상당한 악조건이었으나 서울에 위치한 비행장이라는 접근성은 크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일본 - 조선 - 만주를 잇는 항공수송의 허브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고질적인 침수문제 탓에, 김포에 비행장이 건설된 뒤로도 번갈아 이용되었다. 김포비행장이 있음에도 완전히 기능을 김포로 이전하지 않은 것은 압도적인 접근성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공항을 경성항공사가 이용했다.
광복 이후 여의도공항은 서울과 대한민국의 관문이 되었으며,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 234호에 따라 공군이 창군되었을 때, 1천여 명의 장병과 20여 기의 경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최초의 비행단이 존재했다. 이와 동시에 민간비행장으로도 운영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KNA)도 여의도 비행장에서 첫 취항을 개시했다.
6.25 전쟁이 끝난 1954년 1월에는 임시 국제공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의 여의도 공항은 현재의 여의도 부지를 거의 모두 사용하는 공항이었다.
하지만 잦은 한강의 범람으로 공항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결국 1958년 1월 30일에는 대통령령 제1319호으로 김포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지정되고, 국제공항기능을 김포공항으로 인계하고 군 전용비행장으로 전환되었다.
- 1971년 1월 개장 54년만에 공군기지 기능을 성남에 있는 현재의 서울공항으로 이관하면서 폐쇄되었다.
1971년 2월에 이후 여의도 공항 부지를 일부 활용하여 만든 것이 여의도광장과 여의대로다. 특히 여의도광장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유사시 비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곳이 비행장으로 쓰인 적은 없었고 국군의 날 기념식이나 국풍81 등의 관제행사가 드넓은 여의도 아스팔트 광장에서 열리곤 했다.
여담으로 서울시는 여의도공항을 폐쇄한 후인 1960년대 후반 이 자리를 개발하면서 범람을 막기 위해 여의도 둘레에 둑을 쌓은 뒤 그 위에 여의도 일주도로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매년 봄철 벚꽃축제 명소로 알려진 여의도 윤중로(여의동로·여의서로)다. 또 과거 여의도공항의 일부 공간이었던 여의도 버스환승센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벙커도 있다.
1951년 여의도비행장 한국공군 F-51D
1950년대 여의도 부근
1950년대 여의도 비행장
1960년대 여의도 비행장
1960년대 여의도공항 자유중국 CAT 항공사 DC-4
1980년대 여의도광장(구 5.16광장) 국군의 날 기념식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집전한 한국순교성인 103위 시성식. 100만명이 운집. 당시 기네스 신기록.
현재의 여의도 공원
성남 서울공항 : 성남공군기지(SSN/RKSM / K-16) 경기도 성남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미육군 항공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VIP 접객 용도로도 사용한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있는 공군 기지이다. 이곳에는 2개의 활주로(19/1,20/2)가 있으며, 활주로에는 ILS가 갖추어져 있다.
현재 서울공항은 군사시설 위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민항기의 이착륙은 특수 목적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통령의 해외방문 및 해외 국빈들의 방한 시에 자주 이용되며, 비상시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의 대체공항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970년 여의도 비행장의 15전투비행단이 이전해 왔고, 보유기종은 F-86F, F-5E이었으나, 1992년 전투기 대대들이 다른 비행단으로 이전하면서, 2012년까지는 제15혼성비행단(15th Composite Wing)으로 개칭되었다. '혼성비행단'이란 명칭은 말 그대로 전투기, 수송기, 정찰기 등등 다양한 기종을 운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KA-1을 운용하던 237대대가 제2 롯데월드 건축 이후 다른 비행단으로 이전한 후 2013년부터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개편되었다.
서울공항은 기본적으로 성남 공군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유일의 전략정찰수단인 금강 정찰기, 백두 정찰기가 주둔하고 있다. 그 밖에 유사시 증원전력과 탄약, 의약품, 장비와 부품 등을 전방으로 추진하고 중상자들을 후송할 수송기 전력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은 유사시 서울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소개(疏開)하고 중환자를 부산이나 광주 등 후방이나 일본에 이송할 작전 전개를 위하여 주한미군 의무 헬기대대를 성남 공군기지에 주둔시키고 있다.
서울공항은 유사시 국가지휘부를 이동시키는 미국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며, 후방의 광주, 예천, 대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반도 밖에서 들어오는 증원 전력들이 전개하도록 되어 있는 중요한 전술 공군기지이다.
제2 롯데월드에서 보이는 성남공항. 전망 정말 좋다.
17. K-18 강릉 비행장(KAG/RKNN) : 제 18전투비행단. 빨간 마후라의 고향. 강릉비행장은 전란으로 소실된 시설의 보수가 마무리된 1958년 정식 비행장이 되었다. 병설되었던 강릉공항은 강원도 강릉시 남항진동에 존재했던 공항이다. 2002년 4월 양양국제공항 개항으로 속초공항과 함께 폐항되어 현재는 공군의 군전용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길이 2740m, 폭 45m 활주로가 1개 설치되어 있다. ILS는 동해바다에서 착륙하는 26 방향에만 설치되어 있다. 공군 제18전투비행단이 주둔하고 있으며 F-5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 9월 초 한반도에 왔었던 태풍 루사로 인해서 기지가 물에 잠긴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1930년대에 강릉 불시착장으로 900미터 길이로 만든 후 일본군이 처음 군공항으로 만들었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9월 28일,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가 한국공군 단독의 첫 전투비행부대로 창설, 예하 P-51 머스탱기 10여대가 최초로 전개하였고, 대한민국공군 최초의 단독출격작전과 그 유명한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평양대폭격 작전 등 수많은 전과를 이곳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올렸다. 또한 조종사들의 상징인 빨간마후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민항기 운항은 1949년 2월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사가 소형 스틴슨 단발항공기를 투입해서 서울-강릉 노선 운항을 시작한 것이 최초. 그러나 얼마 못가 발발한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운항은 곧 중단되고 만다. 1961년 10월 다시 운항이 재개되었으며, 1969년 현재의 민영화된 대한항공이 출범하면서 YS-11 기종으로 운항하게 된다. 1971년 5월에는 강릉-대구-부산-제주 노선에 취항하였으나 1974년 3월 운항을 중단하였다.
1969년 12월 11일 이 곳에서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이륙하여 서울을 향하던 대한항공의 YS-11기가 납북된 적이 있다. 북한은 이중 39명만을 송환했다.
이후 영동고속도로 개통의 영향으로 승객수가 줄어들어 결국 1976년 6월 서울-강릉 노선이 중단되어 공항이 폐쇄되고 만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1986년 7월에서야 다시 재취항이 이루어진다. 1993년 1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활주로 및 유도로 보수공사로 인하여 여객기 운항이 완전 중단된 적이 있었으며 공사기간 동안 서울-속초 노선 항공편 운항횟수를 늘려서 이용승객을 흡수하였다. 이후 공사가 끝나면서 1994년 6월 1일 대한항공은 MD-82 기종을 투입하여 서울-강릉 노선에 복항하고 강릉-부산 노선에 신규 취항하였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같은 날 서울-강릉 노선에 신규 취항. 1995년 8월에 아시아나항공이 강릉-부산, 강릉-광주 그리고 1997년 7월에 강릉-제주 노선에 신규 취항하였다. 그러나 강릉-광주 노선은 IMF로 1998년 운항을 중단하였다.
1996년 3월부터 2001년 6월까지 시티항공에서 부정기 노선으로 강릉-울릉도 노선의 헬기 운항을 한 적이 있었고, 1995년에는 대한항공에서 부정기 전세기 노선으로 강릉-후쿠오카 노선에 취항한 적이 있다. 1999년 9월~10월에는 주말 한정으로 대한항공이 A300, 아시아나항공이 보잉 767 기종을 투입했던 적이 있다. 당시 속초시에서 열렸던 99강원국제관광엑스포에 맞추어 이루어진 조치. 이를 위해 계류장과 유도로를 확장하고, 조명시설을 확충하였다.
2002년 4월 2일 양양국제공항의 개항으로 존재 이유가 없어져서 폐항되었다. 운항 중이던 서울 및 부산 노선은 그대로 양양국제공항으로 옮겨갔지만 바로 운항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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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K-37 서대구 공군기지 (Daegu West Air Base) 대구시 봉덕동 캠프워커내의 구 A-3 활주로. 2010년 경 대구시로 반환되어 도로로 용도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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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K-38 원주 비행장 (Wonju Airdrome) 원주시 단계동 1군 사령부 앞 주한미육군 camp long이 있던 곳. 2010년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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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K-39 제주국제공항 (CJU/RKPC)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활주로는 2개로 주 활주로인 07/25(3180m×60m)와 보조활주로이자 원래 활주로였던 13/31(1910m×45m)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이던 1942년에 일본육군이 건립한 비행장으로 당시 이름은 '정뜨르비행장'이었다. 정뜨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비행장 건설 과정에서 넓은 들판 부지 한가운데에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우물 정(井)자에 들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 '드르'가 합쳐진 것이다.
8.15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공항을 인수하였고 최초의 민항기 운항은 1946년 미 군정청 소속 C-47이 서울 - 광주 - 제주 노선에 주 2회 취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사가 1949년 서울 - 부산 - 제주 노선에 취항하였다.
1950년대 정뜨르 비행장
그러나 한국전쟁의 여파로 제주도를 오가는 항공노선은 한동안 전무하였다. 이후 1955년에 다시 정기 항공노선이 부활하였고 1956년 활주로를 포장하고, 1958년 정부에 의해 서울, 부산, 강릉, 광주와 함께 정식 공항으로 개항하였다. 그 이후 취항 편수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1966년에는 서울 - 광주 - 제주 노선이 다시 부활하였다. 1968년 4월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으며, 1969년에는 대구 - 제주 노선과 최초의 국제선 노선인 제주 - 부산 - 오사카 노선이 생겼다.(공항이 활성화되는 시기와 제주도가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는 시기가 정확히 맞물린다.)
섬 특성상 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여객수용 한계치를 계속 초과하여 근 20년째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초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현재 메인 활주로(3,000m*45m)가 신설되었으며, 기존 활주로는 보강되었다. 여객청사, 계류장, 주차장이 확장되었다.
1982년 신활주로 준공식
1980년대 제주공항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여객수요를 감당하고자 1991년에는 국내선 여객청사 증축, 1995년에는 유도로 신설,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화물터미널 신축, 계류장, 유도로, 주차장 확장공사를 진행하였다. 계속 감당되지 않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착륙대 확보, 장애구릉제거, 관제탑 신축, 활주로 길이 연장(180m), 계류장 확장, 여객터미널 확장을 또 실시하였으며, 2004년에는 현재 운영중인 신 관제탑 운영을 개시했다. 2007년 5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여객터미널 증축을 비롯한 종합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마무리하였다.
국내선 여객터미널의 연간 수용인원이 2,300만명, 국제선 터미널이 연간 245만명인데 LCC 항공사 상승세 및 중국 관광객의 제주공항 무비자 환승제를 실시하면서 여객 수용인원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미 2015년 연간 이용객이 2,600만명을 돌파하였으며, 2005년 이후 해마다 10%씩 이용객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국토교통부에서 예측한 2015년 제주공항 항공수요는 2,309만명이었다)이 속도라면 향후 2~3년 이내에 이용객이 3,000만명을 돌파하고, 2025년에는 4,000만명을 돌파할 수 도 있다. 폭발적인 여객수요를 대응하고 공항 포화를 막기위해 2018년까지 여객터미널을 확장하여 연간 3,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게 하고 고속탈출유도로(high speed taxiway) 확충 (3개→6개)을 통한 슬롯 증대(최대 40회), 계류장 증설, 이륙 대기장을 신설중이다.
본토와 육로로 연결되지 않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리적 위치상 한국의 여러 공항 중 국내선 항공 교통이 가장 발달된 지역이며, 그 중에서도 서울(김포)~제주 노선은 2016년 1,160만 명이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승객이 오가는 노선이자 가장 많은 항공편이 오가는 노선이며 가장 많은 좌석이 공급되는 노선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운행간격(?)도 매우 짧아서, 거의 시내버스 수준인 5~10분이다. 이 덕분인지 당초 55분 혹은 60분이던 운행시간은 언제부터인지 65분이 되었고, 오후나 저녁 항공기의 20분 지연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제주공항에서 주기장에서 나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진입하는 데만도 15~20분 가까이 잡아먹는 경우도 잦다. 이는 이미 제주국제공항이 수용능력을 초과한 항공량을 소화하다 보니 생긴 일이며 신공항 건설의 주된 이유가 된다. 이미 10분 단위의 출도착 스케줄이 설정되어 있고 김포발 또는 김해발 항공기가 지연출발하면 해당편으로 다시 비행이 이루어지는 준비 과정과 관제탑에서의 출발 순서 조정이 이루어지는 대기시간의 소모 등으로 인해 정시 운행은 사실상 어렵기 마련이다.
또한 국내선 항공편에 투입되는 기종은 거의 보잉 737, A320 계열의 저가 항공사 협동체로 통일되어 있는 데 비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서울(김포) - 제주 노선에는 광동체 기종(대한항공은 777/747/330을, 아시아나항공은 A330과 보잉 767)을 투입한다.
서울(김포) - 제주 노선은 휴가철 성수기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비수기에도 표를 구하기 어려운 걸로 악명높다.
따라서, 대체 공항 개발요구가 꾸준히 있어왔다.
제주공항의 문제는 여객 청사의 사이즈 문제와 활주로 수 문제다. 제주공항에는 이미 활주로가 2개가 있지만 한개는 길이가 짧고 방향이 주거지역과 바다인지라 보잉 737기 이상 크기의 기체를 운용하기가 힘들고 주거지역 덕분에 착륙도 못한다. 거기에다가 짧은 활주로에서는 계기 착륙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주공항의 활주로는 매우 포화되어 있어서 1분 30초마다 한대씩 뜨고 내리는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을 정도이다. 일단 지형 문제로 활주로 추가 가설이 거의 불가능하고, 제주도 근처 대륙붕까지 매립한다고 하면 13/31 활주로를 3,000미터까지 연장 가능하기는 하다.(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또 수용량 문제 외에도 측풍(windshear) 문제가 심각하다. 한반도는 북서-남동 계절풍이 주로 부는 지역이라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공항은 활주로가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제주의 경우에 현 부지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활주로를 설치하면 항로가 한라산에 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 활주로는 남서-북동 방향으로 나 있다. 북서-남동 방향으로 난 보조 활주로도 있지만 항로가 도심 한복판을 지나는 관계로 바다 방향 이륙만 가능하며, 길이도 짧아서 보잉 737급도 날씨에 따라 이용이 불가한 날도 있다. 게다가 교차 활주로라 동시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기상조건이 괜찮은 날이면 보잉 737은 종종 보조 활주로를 이용한다. 공항이 워낙 포화상태라 없는 것보다는 낫다. 과거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이 프롭기를 운용할 때 측풍으로 주 활주로가 폐쇄되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줄줄이 결항이 뜨는데 두 저가항공은 보조 활주로로 정상 운항을 하여 프롭기의 위엄(...)을 보여준 적도 있다.
이처럼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측풍을 안고 이착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조종사들이 착륙하기에 애를 먹는데 제주도는 바람이 많은 섬이다. 따라서, 공항 폐쇄나 hard landing도 많고, 항공기 중사고가 난 적도 있다.
1994년 8월 10일에는 태풍 더그의 영향권 안에 있던 제주공항에 착륙하던 대한항공 A300여객기(승무원 및 승객 160명 탑승)가 제주 공항에 착륙하려다가 돌풍에 휘감겨 활주로를 이탈후 화재가 발생하여 불타버렸다. 탑승객은 전원 무사하게 빠져 나왔다. 당시 사고 후 기장이었던 캐나다인은 본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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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K-40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RKPM)
1933년 일본 해군이 임시 활주로를 조성하면서 비행장으로 만들어졌다. 6만 여 평의 평야에 폭 70미터, 길이 1400미터의 활주로가 깔렸다. 37년엔 주위 15만 여 평으로 확장했고, 폭 20미터, 높이 4미터 규모의 격납고 스무 개가 세워졌다. 작은 언덕처럼 생긴 이 격납고들은 여전히 들판 곳곳에 남아있다.
이곳에서 출격한 일본해군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육상폭격기가 중국 난징 지역을 폭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938년 11월에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해군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이에 따라 알뜨르 비행장도 연습비행장이 되었다. 1942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본격적으로 요새화되어 264 ha로 확장되었다.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레이더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들이 건설되었고 1945년 2월 9일, 결호 작전이 승인되면서 제주도는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한 중요 거점으로 요새화된 상태였기 때문에(결 7호 작전에 의해 1945년 7월 기준 7만여명의 병력이 주둔)연합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각 시설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알뜨르 비행장 이외에 제주도 전역에 10여개의 군사용 비행장이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에 있던 Ki-61 히엔과 Ki-45 토류
그러나 이 비행장의 활주로는 현대적인 의미의 포장 활주로가 아니라 땅을 단단하게 다진 길이 1km 남짓의 초기의 활주로이다. 방향마저 정확하게 주변 유일의 인구밀집지역(대정) 방향이다.
알뜨르 비행장의 경우 한 때 대정읍 지역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되는 등 군사적으로 중요했었기 때문에 해당 부지를 공군이 그대로 소유하게 되었었고 현재도 공군이 소유중이기 때문에 제주 각지에 있었던 비행장 중 가장 원형이 제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참고로 '알뜨르' 혹은 '알드르'라는 의미는 서울말로 표현하면 '아랫벌'에 해당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2006년 11월엔 격납고 등이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 3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활주로만은 군의 반대로 제외되어 논란이 일었다. 알뜨르비행장은 여전히 몇 년마다 군사적 활용이 검토되는 논란의 장소로 남아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청사나 지원시설을 위한 추가 부지 매입이 필수적인데, 이곳은 제주도에서도 땅값이 비싸고도 비싼 곳 중에 하나인 관계로 군용시설로 전환되는 것은 비상시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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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K-41 전주 비행장 (CHN/RKJU/G-703)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2가. 헬기전용작전기지.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예하부대 주둔.
1968년에 준공하여 1,000M 폭 30M 활주로 및 여객 청사를 보유한 공항으로 개항, 1970년 4월 대한항공이 김포 - 전주 - 광주 - 제주 노선에 중간지로 취항하면서 민항기 운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남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인한 항공수요 이탈로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었다. 이후 육군 항공대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전주 에코시티 개발로 해당 부지에 도시계획이 잡혀있으며, 현재 김제시와의 경계 근처인 덕진구 도도동에 새 비행장 공사가 2018년 완공 예정으로 진행하려다가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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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K-42 안동비행장(Andong Airdrome). 안동 낙동강변에 위치했던 간이비행장. 현재는 없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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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K-43 경주 비행장(Gyongju Airdrome) 현 경주시 황성공원 남서쪽 부지로 한국전쟁 당시 건설된 비행장이었다. 현재는 경주축구공원의 축구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리이다. 당시 활주로는 길이 약 560~570m에 폭 20m가량 되는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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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K-44 - 장호원리 비행장(Changhowon-Ni Airdrome) : 한국전쟁 중 건설되었다. 현재 육군항공사령부가 주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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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K-45 - 여주 비행장(Yoju Airdrome) :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3ㅡ6번지 남한강 변에 있다. 현재는 초경량 비행기와 모형항공기만 날릴 수 있다. 비밀 누설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이 소유한 여주 승진비행학교와는 다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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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K-46 - 원주공항 (WJU/RKNW). 2,743m×45m 크기의 활주로 1개가 있다. 원래는 육군이 사용하던 횡성비행장이었다. 1975년 제8전술통제비행단이 창설되면서 공군 소속이 되었다. 당시는 횡성군 관할이어서 자료에 따라서는 횡성비행장으로 나온다. 초기에는 O-1, T-28, O-2 등의 관측기를 보유한 237대대가 주둔하다가, 1983년 중등비행훈련용으로 사용되던 A-37B(구월남공군 소속)을 경공격 및 전선항공통제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제238전투비행대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1990년대 초 확장공사 후 전투기 대대들이 배속되면서 제8전투비행단이 되었다. 현재는 전선항공통제기들과 국산 F/A-50 경공격기, 공군공중곡예팀 블랙이글이 주둔중이다.
1995년 11월 민간공항 개항 공사에 착수하여, 1997년 2월 28일 개항 및 대한항공 원주 - 김해, 제주 노선을 신규취항하였다.(당시 취항을 위해 대한항공이 협의하던 원주공군기지 담당자 중 1명이 본인이었다. 나중에 대한항공에 입사하리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알았으면 좀 더 잘해 줬을걸...)
현재, 여객기는 대한항공이 제주 노선에 한해서 취항하고 있다.
산악지대 계곡을 따라 비행장이 건설되어 계기 접근 강하각이 깊어, ILS와 같은 정밀접근이 안되는 CATEGORY 1 공항이다.
원주공항터미널
원주공항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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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K-47 춘천 비행장(QUN/RKNC) 미육군 항공여단이 주둔하던 곳이다. 미군 명칭은 CAMP PAGE. 4000피트 길이의 활주로가 있었다. 캠프 페이지가 폐쇄된 후, 춘천시가 공여받아 2013년 6월 8일 춘천평화생태공원으로 개장했다. 미군 주둔 당시에는 UH-60, CH-47, AH-64 등이 주둔했었다. 1983년 5월 5일 오후 2시, 승객 96명(납치범 6명 제외), 승무원 9명을 태운 '중국민용항공총국'(중국민항) 소속 영국제 TRIDENT 여객기가 불시착했다. 당시는 냉전이 종식되기 전으로 공산국가라 미수교 상태였던 한중 양국은 이 기체의 반환을 위해 최초로 국가간 정식 만남을 갖게 되었다.
반환 전 캠프 페이지
한국전쟁중 춘천비행장. 미공군 전선통제기 OT-6 TEXAN.SMOKE ROCKET 장비
캠프 페이지 전면개방행사
캠프페이지 개발 조감도
비상착륙한 중국민항총국 트라이던트 여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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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K-48 - 익산 비행장(Iksan Airdrome) 전북 완주의 비행장들이라는 지명이 익산 비행장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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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K-49 동서울 비행장 (East Seoul Airdrome) : 위치확인 못함. 현재의 두물머리 양수리라는 자료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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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K-50 - 속초 비행장(SHO/RKND) 양양군 강현면 소재. 05/23 1560M의 활주로로 국내공항 중 가장 짧은 공항이다.(목포공항보다 40미터 짧다.) 한국전쟁 중 육군 야전비행장으로 건설. 1961년 포장 활주로로 건설되어 육군항공대가 사용하였다. 1969년부터 대한항공이 2002년 4월 3일 폐항되기 까지 F-27, F-28, F-100 등의 항공기로 전성기에는 1일 4회까지 취항했었다. 1985년 여객청사와 관제탑을 신축하고 활주로를 확장하고, 1995년에는 항공기상관측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요시설로는 F-100급 항공기 2대가 동시주기 가능한 주기장과 연간 43만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는 여객청사를 가지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미시령 4차선 터널 준공, 양양공항으로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의 통합으로 민간 여객기능은 폐쇄되고 육군 야전비행장으로만 사용중이다.
1990년대 속초공항
현재의 속초비행장. 주차장 경계선이 부대 담벼락이 되었다.
1071년 1월에는 서울로 향하던 65명이 탑승한 대한항공 F-27 여객기가 고정간첩에 의해 납치되었으나, 조종사들과 간첩간의 격투 끝에 수류탄이 폭발하는 것을 수습부기장 전명세씨가 몸으로 막아 사망하고, 강원도 소성군 초도리 앞바다 모래사장에 불시착한 사고가 있었다. 1명 사망, 4명 중상, 12명이 경상을 입었다.
32. K-51 인제 비행장(Inje Airdrome) :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 위치한 육군 야전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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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K-52 양구 비행장(Yanggu Airdrome)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 위치한 육군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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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K-53 사곶비행장(RKSE)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백령도 동남쪽 해안에 평균 200m 폭으로 2㎞가량 펼쳐진 천연활주로. 한국전쟁부터 1980년대까지는 공군 수송기가 사용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음.
‘사곶 천연비행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래 해변은 두껍게 쌓여 있는 미세한 석영질 모래층이 무거운 비행기가 내려앉아도 꺼지지 않을 만큼 치밀하고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문화재청은 사곶사빈이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두 곳밖에 없는 특이 지형·지질”이라고 설명한다. 1997년 12월 사곶사빈 전역과 사빈 경계로부터 1㎞ 앞바다까지 모두 천연기념물(제391호)로 지정한 이유다. 사빈을 잘 보전하기 위해 사빈을 직접 훼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빈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주변 지역의 개발행위까지 제한하는 두터운 보호막을 씌운 것이다.
하지만, 1991년 당시 농어촌진흥공사가 사곶사빈 남서쪽 끝단에서 시작돼 섬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갯벌 입구를 길이 820m의 방조제로 막아 매립 논을 조성해 농민들에게 불하하기로 하고 시작한 이 간척사업이 2006년 완공되면서 80여만평의 농지와 39만평의 담수호인 백령호가 생겨났다. 이후, 조류가 바뀌어 갯벌은 썩고 사곶사빈의 백사장이 물러져서 실제적으로도 기능을 못하고 있다.
1960년대 사곶비행장. 공군 C-46 수송기
1950년대 미공군 수송기로 추정. C-47
1980년대 공군 C-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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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K-55 오산공군기지(OSN/RKSO) : 09R/27L와 09L/27R 2개의 활주로를 갖고 있으며, 두 활주로 모두 길이 2744미터의 콘크리트 활주로이다.
오산공군기지는 경기도 평택시 송탄(신장동), 서탄면 일대에 위치한 대한민국 공군과 주한 미군의 합동 기지로, 미국 공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산공군기지라고 해서 오산에 있는 것으로 많이 오해한다. 실제로는 오산시가 아닌 경기도 평택시 송탄에 위치하고 있다. 1951년 미육군이 주둔하면서 야전비행장으로 사용하다가 1951년 11월 압록강 인근 MIG ALLEY에서의 공중전이 격화되면서 공군력 보강을 위해 미공군이 인수했다. 1952년 12월 26일 2,700m의 활주로 개장공사가 종료되어 동일 미공군 제18전투비행단 소속의 P-51D MUSTANG 전투기들이 도착했고, 1953년 F-86F로 기종전환했다.
1952년 오산기지 건설중인 모습
전쟁이 끝나고 이듬해인 1954년 2월 제5공군 사령부가 오산기지로 이전함으로서 오산기지는 한반도 공군력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휴전국면이 안정세에 들어서자 미 공군은 부대를 전면적으로 재배치하였으며, 이에 따라 제5공군사령부는 도쿄로 복귀하고, 오산비행장은 미공군의 전술기부대가 상시주둔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9년의 EC-121 격추사건과 푸에블로호 피납 때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F-102, F-106 등의 전술기들이 임시전개를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960년대 오산기지. 미공군 F-100
]1968년 오산기지
이후 국내외 정세 및 미 국방부 정책에 따라 주둔부대가 변경되었으며, 1971년부터는 제51전투비행단이, 1986년부터는 제7공군 사령부가 주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1년에 필리핀 클라크 공군 기지가 폐쇄된 이후 미국 공군의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공군기지이며, 미국 태평양 공군 예하 제7공군의 본부이기도 하다. 2015년 말에 기존 활주로에서 북쪽으로 212 m를 이격해 제2활주로(09L/27R)가 설치되었다.
한편 한국 공군작전사령부가 1961년 창설되면서 오산기지에 자리잡았는데, 이는 미 공군과 연합작전을 해야 하는 한국 공군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이후 작전사령부 예하 공군부대들이 필요에 따라 오산기지에 자리잡게 된다.
현재는 미공군 51전투비행단 소속 A-10, F-16C/D, U-2 정찰기 등이 상시 주둔하고 있으며, 미육군 방공포병 소속 패트리어트 PAC-3가 배치되어 있고, 한미양국군이 공동운영하는 모종의 비밀 시설(누구나 다알지만 말하면 안되는)이 위치한 한반도 방어의 핵심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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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K-56 양양비상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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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K-57 광주공항(KWJ/RKJJ) : 광주광역시 관산구 신촌동(리). 1948년 11월 최초 비행장 건설시에는 광주시 동구 학동에 위치했고, 1949년 2월 DC-3 기종이 취항하면서 민항기 운항이 시작되었다. 1964년 1월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2008년 5월 무안국제공항으로 국제공항업무는 이전되어 광주공항에는 국내선만 남았다.(그리고 두 공항 모두 절름발이가 되었다.) 현재는 주로 제주-광주 노선만 운항하고, LCC(제주항공/진에어)에서 김포-광주 노선을 운항중이다. 제주-광주 노선은 이륙하고 바퀴를 올리고 기장방송끝나면 다시 바퀴를 내리고 착륙해야 한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이 주둔중이다.
현재 비행장 이전대상으로 선정되어 이전대상지 선정작업 중이지만 옮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원래 광주비행장은 논바닥으로 이루어진 시골이었다. 하지만 광주시가 확장되면서 비행장 북방의 육군 교육사령부 소속 상무대가 전남 장성군으로 1995년 이전하고, 그 부지가 신시가지가 되면서부터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신도시인 상무지구가 건설되고 주민들이 입주할 때는 방음창 공사와 이후 발생하는 항공기 소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작성했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태도가 다른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 이후 소유주들도 바뀌고 시간도 흘러가면서 "시끄러워 못살겠다. 광주비행장 나가라!!!"라는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공군은 나가고 민항은 남으라고 했다가 2013년에는 민항까지 같이 나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한 때는 A-300-600이 취항할 만큼 여객수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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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K-58(예천공항 : YEC/RKTY). 제16전투비행단이 주둔중이다. 1975년 한국공군이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건설한 최초의 공군기지이다. (일설에는 소백산맥과 태백 산맥 때문에 북한과 일본 레이더에 이착륙하는 모습이 탐지안되는 유일한 비행장이라고 한다만... 지구곡면률을 생각하면 엉터리 소문이다.) 1989년부터 김포 노선이 운행하였다.
기지 옆의 컨테이너 가건물에 청사가 있다가 1999년 386억원을 들여 신청사를 다리까지 건설하면서 건설하였으나, 중앙고속도로 완공과 더불어 수요가 감소하여 2002년 8월 청사가 완공되기도 전에 김포 노선이 폐지된다. 당황한 지자체는 지원금을 약속하면서 아시아나 항공이 제주 노선을 운행하였으나 약속한 손실 보전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2004년 5월 제주노선이 폐지되고, 한국공항공사도 정부에 공항지정을 취소요청하면서 헛돈만 날리고 말았다.
구예천 공항 터미널. 가건물
예천공항 신청사
폐쇄된 예천공항
39. K-59 (청주공항 : CJJ/RKTU).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입상리에 있는 활주로 방향 06/24, 길이 9000피트(2744미터) 활주로 2개를 가지고 있는 군민합동국제공항이다. 항행안전시설은 계기착륙시설(ILS), 무선표지(TVOR/DME), 항공등화를 갖추고 있는 CAT-I (최저착륙시정 800m 이상) 공항이다.
1978년 9월 국내에서 2번째로 독자건설된 공군전투비행장이다. 당시, 공군 제17전투비행단이 창설되면서 공군사상 2번째로 중고기체가 아닌 새비행기를 유상도입하는 Peace Pheasant 사업으로 직도입한 F-4E를 운용하였다. 이들 기체들은 가장 최후기에 생산된 기체들에 해당되며 1979년 10월에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5057번째 기체도 17비에서 운용하였다. 이후, 공군 제17전투비행단은 공군 제 11전투비행단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 타격력의 상징이 되었다.
주력기인 F-4E는 도태중이고, 향후 도입될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A가 배치될 예정이다. 한국판 TOPGUN SCHOOL인 제 29전술개발전대도 같이 배치되어 있다.
공항 근방에는 비상리, 비중리, 비하동(비하리)라는 동네를 볼 수 있는데 청주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는 방향에 비상리가 있고 착륙하는 방향에 비하동(飛下洞)이 있다. 그래서 국제공항으로 확장될 때, 옛 선인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지명을 정했다는 전설이 회자되었었다.
1984년 4월 청주에 수도권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유력하게 검토되었고, 이계획은 1988년 3월 중부권의 민·군 공용공항으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1992년 3월 1,390억원을 투입하여 민항용 활주로를 신설하고, 계류장, 여객청사, 주차장 등을 건설하는 공사를 착공하여, 1997년 4월 28일 청주공항이 개항, 아시아나항공이 청주~제주 신규 취항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선까지 확장되었다.
현재 국내선은 제주 노선이, 국제선은 베이징, 선양, 항저우 노선이 운영 중이며, 2003년에는 지방 14개 공항 중 처음으로 화물기 취항을 시작하였다. 공항의 운영 적자 때문에 2009년 3월 이명박 정부가 민간매각 대상으로 선정했으나, 공항 운영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 끝에 2013년 1월 한국공항공사가 계약을 해지하고 계속 운영하고 있다.
청주국제공항은 2008년부터 시행된 24시간 공항운영과 2015년 4월부터 실시한 120시간 무비자환승공항 지정 등으로 공항 이용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5년 연간 이용객이 210만 명을 넘었고, 2016년 270만 명을 넘었다.
2016년 2월 4일부터 A380과 같은 날개폭이 65m 이상인 F급 대형 항공기가 기상 악화 등으로 인천국제공항이나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하지 못할 때 이착륙할 수 있는 대체공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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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K-60 (성무비행장, RKTE) 충청북도 청주시 지원항공작전기지. 공군사관학교 훈련용 비행장이다. 활주로 방향 16/34, 길이 1219미터, 콘크리트 포장이다.
41. K-75 (중원비행장, JWO/RKTI)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위치한 비행장이다. 공식 명칭은 중원 전투 비행장이다. 1991년 5월 15일에 창설되었다. 중원 비행장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창설당시에는 중원군에 소재하고 있었지만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주시와 통합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F-16 비행단으로 유명하다(하지만 원래 F-16도 대구기지에서 창설되어 운용되다가 이전했다.)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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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K-76 (서산공항 HMY/RKTP)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주둔. 면적은 11.9㎢(약 350만평)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공군 기지이며, 동아시아의 최대 규모 비행단이다. 7.3㎢인 김포국제공항의 1.63배에 이른다. 1989년 국방부에 의해 서해안 방어를 위한 K-Z비행장으로 계획되었다. 비행장은 1991년 착공하여 1997년 완공하였다. 기지 건설에만 5,000억원 이상이 들었다. 2,743m×46m의 활주로 2개와 평행유도로 4개를 갖추고 있다. KF-16이 배치되어서, F-15K가 배치된 대구기지와 더불어 공군 최강의 전투비행단이다. 인근에 서산간척지의 활주로가 있다. 민항 공항이 유치 확정이 되어 2022년 공항청사 등을 완공하고 2023년 취항이 목표라고 한다.(개인적으로는 수천억원의 세금이 허공으로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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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비행장
43. 영천비행장 경상북도 영천시
알뜨르 비행장처럼 일제시대 비행장으로 현재는 이곳에 포도밭이 있다. 문제는 이곳 포도밭 주인이 격납고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부동산 가격 폭락을 우려해 중장비를 이용해 격납고 1기를 파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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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고창비행장 RKJG 전라북도 고창군
국내에 몇 안되는 민간사설비행장이었으며 1기의 활주로와 격납고 시설까지 갖춘 곳이었으나 2007년 이후 폐쇄. 현재 터에는 고창 솔라파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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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장평비행장(JGE) 경상남도 거제시
과거 거제포로수용소 내부에 있었던 비행장.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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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삼척공항 SUK/RKNS 강원도 동해시 1960년 11월 27일에서 1974년까지 강원도 동해시에 존재했던 비행장으로, 1974년 3월 1일에 북평항 개발계획에 의해 폐쇄되었다. 1962년 3월 16일 대한국민항공사에서 김포와 삼척간 첫 운항을 시작하였으나 1974년 3월 1일 동해항 개발로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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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수색비행장 (RKRS)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 소재. 활주로 방향은 14/32, 길이 1200m 콘크리트 활주로이다. 한국항공대학교 내부의 비행장으로 수색비행장은 항공대가 실습용비행기 운항을 위해 1955년 건립했으며, 항공대가 사립대학으로 변경되면서 군(軍)으로 이관됐다가 다시 항공대가 관리권을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다.. 육군과 활주로를 공유중이며, 대한민국 육군 항공대대가 비행장을 소유하며, 제반 운영권은 한국항공대학교가 보유, 관리중에 있다.
활주로의 측면으로 경의선 화전역이 위치하여 있으며, 반대편으로는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하여 있다. 항공대 항공운항과가 비행교육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특히 최근 몇 년 새 상암DMC지구에 초고층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단순 소음문제를 넘어 항공기 충돌 우려 등 주민들이 불안이 커졌다. 상암 지구에 조성된 월드컵파크 1~12단지(약 6000세대)는 대부분 20층을 넘는 높이인데도 항공대 연습기들은 고도를 낮춰 운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암동 일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이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국방부와 항공대, 국토교통부, 정청래의원실, 주민대표 등이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꾸려 해결에 나섰다. 결국 굴러들어온 상암지구 주민들과 정청래 의원등의 압력에 의해, 한국항공대 항공운항과는 2014년 10월 20일부터는 군 진로 조종학생 훈련수요를 제주 정석비행장으로, 민간 진로 조종학생 훈련수요는 2015년부터 울진 또는 무안공항에서 이전 실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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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태안비행장(RKTA)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신온리. 한서대학교 비행교육원.
한서대학교의 항공운항학과, 헬리콥터 조종학과를 포함한 항공학부의 비행교육을 받는 학생들과 극동대학교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행교육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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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울진비행장(UJN/RKTL)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위치한 비행장이다. 대표적인 무계획적 선거용 건설사업으로 양양/무안/김제와 함께 인용된다. 활주로 방향은 17/35, 길이는 1800m 콘크리트 활주로이다.
경북 동북부 지역의 항공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1994년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 따라 1996년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고 길이 1500m 폭 20m의 활주로를 가진 소형 공항으로 건설 예정이었으나, 중소형 기종인 포커 100 과 보잉 737이 이착륙하기엔 너무 짧다는 이유로 길이 1600m 폭 30m로 조정되었고 여객청사 규모도 당초 연건평 2000㎡ 규모였으나 향후 여객수요를 추산해본 결과 2010년 53만6천명, 2020년 72만4천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건평 4000㎡ 규모로 확대하여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계획대로 2004년 말에 개항하려 하였으나, 취항하려는 항공사도 없고 감사원으로부터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개항시기와 사업규모 조정 통보를 받아서 2005년과 2007년으로 계속 개항시기가 연기되는등 개항이 불투명한 상황까지 몰리게 된다.
결국 2007년 4월에 정부는 2008년 말까지 개항하는 걸로 변경하고 "울진공항 개발 기본계획"을 변경해 확정 고시하였다. 변경내용의 주된 내용은 기존에 계획되었던 관리동과 화물터미널이 제외되었고 활주로를 기존 1600m에서 1800m로 늘리며 4700㎡로 잡혔던 여객터미널은 5664㎡로 확대되었다.
취항하려는 항공사랑 승객이 없어서 개항을 몇년째 늦추는 공항인데 오히려 예산을 더 배정하는 정치적인 악수를 두었다. 2007년 말에 AFP 통신이 뽑은 2007년 황당 뉴스에도 뽑히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개항이 가까워 올수록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메이저급 항공사는 취항을 주저하게 되고 지자체에서는 저가 항공사를 취항시키고 탑승률이 일정한 선을 채우지 못하면 지자체에서 항공사에게 손실보전금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해 보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항공레포츠 전용 공항으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대구국제공항에 주둔중인 제11전투비행단을 이곳으로 옮긴다는 계획도 나왔었고, 이 계획이 알려지자 울진군 의회랑 주민들이 아주 들고 일어났었다.(군부대와 군인은 혐오대상이다.)
계속 개항이 지연되다가 안정적인 조종인력 수급을 위한 비행교육원으로 사용하자는 계획이 나오게 되고 한국항공대학교와 한서대학교가 사업자로 선정되어 2010년 7월 8일 비행교육원으로 개원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교통 커뮤니티에서는 울진공항 지을 돈으로 포항시-삼척시 7번 국도 확장을 제 때 끝낼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항공대학교와 한국항공직업전문학교에서 비행교육원으로 사용 중이다.
49. 정석비행장 (JDG/RKPD)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동목장 인근에 있는 비행장이다. 활주로는 2개로 주 활주로는 방향 01/19, 길이 2300m, 아스팔트 활주로이며, 보조 활주로는 방향 15/33, 길이 900m의 아스팔트 활주로로 주 활주로만 주로 사용한다.
대한항공에서 조종사 양성및 훈련용으로 1995년 3월 착공하여 1998년 8월 29일 준공되었다. 높이 25m의 관제탑과, 격납고 3개동, 비행훈련원 본관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계기착륙장치인 ILS는 RWY01에만 설치되어 있다
현재는 한국항공대학교의 비행 훈련 목적으로도 사용 중이다.
길이 2300m, 폭 45m 활주로는 항공등화시설, 계기착륙장치(ILS)를 갖춰 A300급 중형 항공기는 물론 B747급 점보기의 이, 착륙도 가능하다. 주기장은 B747-400기 2대를 수용할 수 있다.
2002년, 제주국제공항이 시간당 운항편수 제한, 대형항공기 투입에 따른 주기장 부족, 여객 처리능력 등의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월드컵 등에 대비하여 정석비행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주 당국과 대한항공은 당시 건설교통부에 사용승인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2002년 6월 8일 처음으로 중국 응원단 등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하기도 했다.
현재 정석비행장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근처 정석항공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비행장 주기장에는 대한항공이 최초로 도입하여 90년대까지 운용했던 B747-2B5B과 A300B4-2C 그리고 록히드마틴 L-749 콘스텔레이션이 주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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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무안국제공항 (MWX/RKJB) 전라남도 무안군 망운면 피서리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광주공항과 목포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7년 11월 8일 개항하였으며, 9만692m², 연간 519만명(국내선 416만명, 국제선 103만명)이 이용가능한 여객터미널과 2,800m ×45m 길이의 연간 14만회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 대구국제공항과 비슷한 규모이다.
활주로 방향은 01/19, 길이는 2800m, CAT-I ILS 장비를 갖춘 아스팔트 활주로이다.
한때는 양양국제공항, 울진공항과 더불어 대표적인 묻지마 건설의 표본으로 거론되는 공항이었다. 개항 초기부터 2010년대 전반기까지는 그야말로 수송실적이 무안하다보니 무인공항, 無顔공항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2015년부터는 지방공항 이용시 72시간 무비자 입국 허용 정책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의 수요증가로 31만명이 넘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공기수송의 제왕이라는 딱지는 서서히 떼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객 정기편은 거의 없다보니 대체로 여행사 전세기에 의한 승객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1993년 7월 26일에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를 계기로 활주로가 짧고, ILS도 없는 데다, 기상 조건마저 안 좋은 목포공항의 민항기 취항 부분을 대체하기 위하여 계획되었고, 광주공항 국제선 대체 공항으로 1999년 착공, 2007년 완공되어 같은 해 11월 8일 개항하였다. 공사비는 총 3,056억원이 투입되었다. 개항 후 목포공항의 대체 국내선 공항으로 사용되다가 무안광주고속도로가 2008년 5월 28일 전 구간 개통 되면서 광주공항의 국제선 전 노선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되었다. 운영수익으로 자체 시설투자, 즉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캐시카우 광주공항은 1년새 처참하게 몰락해버린다. 그리고 무안으로 이전된 국제선 전 노선들은, 목포와도 가깝지 않고 광주와도 가깝지 않은 애매한 위치에 지어진데다가 목포와 근교지역의 인구수가 수익을 내기에 좀 적은 편이고, 그나마 인구가 많은 광주에 이미 공항이 있으니 광주지역 주민들이 굳이 무안까지 가서 공항을 이용할 이유가 없어서 수요 급감으로 단항되어, 고육지책으로 2014년 6월 울진비행장에 이어 두번째로 비행교육원이 설치 운영되기로 결정되었다.
현재는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전혀 없거나 개점휴업 상태는 아니어서 2016년 6월 기준 정규노선 국내선 주 7회 및 국제선 주 9회에 비정기 노선 및 여행사 전세기 등까지 하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5편 정도는 비행기가 뜬다. 2016년 1월에는 겨울 성수기라서 평시보다 조금 많은 편이긴 하지만 국내선 왕복 31회에 국제선 왕복 81회로 총 왕복 112회의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물론 이 수치도 절대 정상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아예 여객기가 없는 개점 휴업상태의 양양공항이나 울진공항, 아예 부지만 매입하고, 삽도 못 떠본 김제공항보다는 양호하다. 양양공항은 심지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정부가 B-777 등의 E급 대형 항공기 시설을 확충하는 데 143억1200만원(활주로 재포장 및 E급 항공기 시설확충, 주기장 추가설치사업ㆍ운영효율화 사업, 활주로 터닝패드ㆍ유도로확장 공사), 국제선 유치에 138억7000만원(국제선 의전실 설치공사, 도착컨베이어 교체, 대합실 재배치 등) 등 총 303억원의 금액을 사용했다. 이러고는 총 350편의 비행을 유치하려 했지만, 실제 운항은 18편만 운항했고, 18편중에서도 국제선은 5편에 그쳤고 나머지는 인천ㆍ김해공항에서 출발한 국내선 항공편들이었다. 항공기 한대를 운항하는 데만 7억9500만원의 금액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에 비하면 무안공항은 양양국제공항보다도 운항실적이 나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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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양양국제공항(YNY/RKNY)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활주로 방향은 15/33이다.
2009년 BBC선정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공항이다. 2008년 11월부터 2009년 8월까지는 비행기가 한 편도 안 떴는데 그래도 2012년에는 중국 관광객들의 이용이 늘어서 승객이 늘었다고 한다. 하루 평균 80~90명 정도이다. 참고로 양양국제공항의 직원은 70여 명이다.
심지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정부가 B-777 등의 E급 대형 항공기 시설을 확충하는 데 143억1200만원(활주로 재포장 및 E급 항공기 시설확충, 주기장 추가설치사업ㆍ운영효율화 사업, 활주로 터닝패드ㆍ유도로확장 공사), 국제선 유치에 138억7000만원(국제선 의전실 설치공사, 도착컨베이어 교체, 대합실 재배치 등) 등 총 303억원의 금액을 사용했다. 이러고는 총 350편의 비행을 유치하려 했지만, 실제 운항은 18편만 운항했고, 18편중에서도 국제선은 5편에 그쳤고 나머지는 인천ㆍ김해공항에서 출발한 국내선 항공편들이었다. 항공기 한대를 운항하는 데만 7억9500만원의 금액을 쏟아부은 셈이다.
처음 개항할 때는 대한항공이 서울-양양은 하루 3편, 부산-양양은 2편씩이나 운항했다.
그런 공항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양양공항은 1986년 처음 제안되었다. 이후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국제공항 건설을 내걸었다.(대통령 선거 때마다 대한민국에는 공항이 늘어난다. 그리고 망한다. 이때 노태우 후보가 같이 내걸었던게 서울-속초 KTX다.). 활주로가 짧아 대형 항공기 취항에 애로사항이 많았던 강릉공항과 속초공항 대체 및 통합의 목적으로 1997년에 착공하고 2001년 말에 완공되어 이듬해 4월 8일에 개항하였다. 양양국제공항의 개항으로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은 폐항되어 현재 각각 공군과 육군의 군용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강릉공항과 속초공항보다도 망해버렸다
영동권의 대체 공항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실적은 그야말로 거의 전무수준이다. 수도권 방면 이용객은 영동고속도로에 빼앗기고(이제는 영동 제2고속도로까지 생겨서 폭망), 해외 관광객도 거의 없다. 게다가 전세기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영동권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2010년 여객 수송 실적은 8,930명. 국내 공항 중 단연 꼴찌이다.(아예 개항도 못한 울진공항도 있으니 억울하려나?)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의 경우 각 도시의 도심부와 공항이 가까워 빠른 속도로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승객이 좀 있었다. 그래서 두 공항이 폐쇄되고 대신 '강릉과 속초 사이에 있는 양양군에 공항을 세워 주면 양쪽 이용객이 이용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건설한 모양이었지만 결국은 강릉시 주민도 속초시 주민도 양쪽 다 이용하지 않는 비참한 결과가 나왔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영동 지방에서 50분 정도의 시간으로 서울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비행기의 매력이었다. 강릉공항은 2000년에는 51만 명, 폐쇄 직전 연도인 2001년에는 40만 명이 이용했을 정도로 수요를 잘 뽑아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위치에 건설해 순식간에 망했다.
양양국제공항 신설 이후로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하다. 강릉시민과 속초시민이 비행기로 서울에 가려면 먼저 옆동네인 양양으로 이동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더 들게 되었다. 가뜩이나 비싼 비행기 이용료에 양양까지 가는 비용과 시간이 더 지불되니 차라리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게 더 나을 지경. 강릉 시외버스터미널발 양양공항행 시외버스가 소요시간 60분/운임 5,800원이다.(강릉에서 1시간이면 원주를 지나는 시점이다.) 영동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마의 구간이라 불리던 대관령 구간마저 터널을 직선으로 뚫어버리며 버스로 서울로 가는 시간이 옛날에 비하면 줄었으니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버스가 모두 낫다. 공항이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릉에서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까지 가는데 약 2시간 30분~3시간이 걸리고(자가용으로는 2시간에서 2시간 반), 강릉에서 양양까지 갔다가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갈 경우, 2시간~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래도 30분은 벌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행기 수속은 출발 40분 전까지 완료해야 한다. 즉 2시간30분~3시간 Vs 2시간40분~3시간10분. 이건 게임이 안된다. 인천과 경기 서북부를 빼면 경쟁력이 없다. 거기에 2017년에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완전개통되면서 그나마 양양이나 속초에 갈 때 중간에 홍천에서 국도로 내려와 미시령터널을 지나야 했던 불편마저 사라져 이 공항의 상황은 더 암울해졌다. 양양으로 갈 때에는 바로 양양JC에서 빠지면 되고, 속초로 가려면 동해고속도로 갈아탄 뒤 속초IC에서 나오거나 양양JC에서 나온 뒤 7번 국도를 타면 금방이다.
그리고 기상악화고 교통정체고 가격이고 그딴 거 다 씹어먹으며 모든 꿈과 희망을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경강선 전철이 2017년 12월 22일 개통했다. 거기다 기존 강릉역이 현 위치에 반지하로 재건축되었기 때문에 강릉 도심까지 다이렉트로 경강선 열차가 들어온다. 접근성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또한 동서고속화철도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함에 따라 비록 아직 삽도 안 떴지만 일단 완공만 되면 속초시 수요까지 완벽히 뺏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남북통일이 된다거나 하는 정도 이외에는 수요를 창출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만, 남북통일이 되어도 원산 갈마비행장을 이용하지 양양공항을 이용하겠는가? 금강산 좋다고 환장하는 것은 한민족 뿐이다.
강릉시, 속초시 주민들은 양양국제공항의 개항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교통지옥이 강림하는 명절 때마다, 서울 등의 대도시에서 오는 친인척들과 이야기할 때 가끔 항공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양양에서 무리하게 공항을 뺏어갔다며 비난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사실이다. 필자 고향이 속초이다.). 결국 일단 당선되고 보자고 마구마구 공약 내뱉은 대통령/국회의원 후보들과 지역 토호들이 결탁해서 만들어진 괴물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이 1년도 못 버티고 2002년 11월에 김포 노선 운항 포기, 대한항공도 2004년 9월에 운항을 포기하였다. 2006년 8월에 제주항공이 해당 구간 운항을 다시 시작하지만, 역시 1년도 못 버티고 2007년 7월에 포기. 마지막으로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가 2009년 11월에 운항을 재개하였지만 결국 또 1년도 못 버티고 2010년 8월에 철수하였다.
이스트아시아에어라인이 2010년 7월부터 2011년 9월까지 김해 노선을 운항했지만, 보조금 문제로 2011년 10월부터 울산으로 취항지를 바꿨다. 하지만 딱 석 달 운항하다가 중단했다.
부산 노선은 대한항공도 운항했었지만 2008년 6월에 쌓여가는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운항을 포기했었으며 마찬가지로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도 2009년 11월에 부산 노선에 취항했지만 적자를 못 이기고 2010년 8월에 단항했다가 3년 뒤 2013년 3월부터 복항하여 김포, 부산, 광주 노선을 만들었으나 이후 김포 노선은 수요 부족으로 없어졌고 국내선은 부산과 광주, 제주 노선만이 남아있었다.
2013년 12월에는 진에어에서 양양~김포~제주 노선과 국제선 노선 몇 개를 만들었다가 단항했고, 제주 노선도 단항했다가 중국 관광객의 증가로 2015년 5월 복항했다. 하지만 한국인 승객은 비정규편 운항이므로 구매불가이다.
2015년 3월부터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에서 광주, 부산 노선의 운항을 무기한 운행중지하였다. 한동안 중국인 단체 승객들로 기사회생하는 듯 하였지만, 최근 THAAD 배치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만 의존한게 현재 탑승률 0을 기록해 버려 나락에 빠졌고, 최근의 평창 동계올림픽은 양양공항에 쐐기를 박았다. 활주로 포장개선, 유도로 증설 및 활주로 끝에 터닝패드를 설치하는 등의 공사를 해서 아쉽게나마 보잉777급의 E급 대형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륙시에는 활주로가 짧은 관계로 부득이하게 연료주입을 최소화해서 인천국제공항 또는 일본 간사이공항에 착륙한 후 다시 연료를 최대주입하고 목적지로 가는 방식을 사용하게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다.
유령터미널 양양공항
텅빈 양양공항 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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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수공항 (RSU/RKJY)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공항이다. 활주로 방향은 17/35, 길이는 2100m, 양방향 CAT I ILS 접근이 가능한 아스팔트 활주로이다.
1969년 착공하여 1971년 5월에 활주로 및 주기장이, 8월에는 여객청사가 완공되었고 1972년 5월 23일 대한항공이 김포 노선에 취항하면서 운항이 시작되었다. 1976년 6월부터 약 1년간 운항이 중단되었으나, 77년 7월 김포노선 복항과 동시에 제주 노선이 신설되었다. 1985년 4월부터 1986년 9월까지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항공기 계류장 및 주차장이 확장되었고 여객청사가 기존의 비좁은 가건물 대신 확장된 신청사가 준공되었으며 활주로 길이도 기존 1200m에서 1500m로 확장되었다. 1992년 12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이 김포 노선에 신규취항하였다.
1995년부터 국고 2,229억원이 투입된 여수공항 확장공사는 2006년 마무리되었는데, 종전 1,500m*30m 활주로에서 2,100m*45m 활주로로 확장, 계류장 및 여객터미널, 주차장 공간을 증설하여 2005년 11월 25일 신 여객청사를 개관하였고, 2006년 6월부터 탑승교 운영을 시작하였다.
2011년 3월 28일 포항공항행 부정기 여객 노선이 개설되어 에버그린에어 소속 19인승 Let L-410 기종으로 매주 월~금요일 하루 왕복 2회 운항하였으나 낮은 탑승률로 인하여 오래가지 못하고 같은해 6월 운항이 중단되고 말았다.
2017년 현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김포행 노선을 각각 일 2회씩 총 4회 운항하고 있으며, 제주행 노선은 대한항공이 일 1회, 아시아나항공이 2회 총 3회 운항중이다. 그래도 현재 국내선 전용 공항중에선 유일하게 제주행 노선과 김포행 노선을 양대 국적사가 모두 운항하는 유일한 공항이기도 하다
원래 여수공항은 여객청사, 활주로, 항행시설 등이 빈약하였는데 특히 활주로가 길이 1550m 폭 30m에 ILS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착륙하기 까다로웠고, 기상이 조금만 나빠져도 결항사태가 속출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1998~2005년에 약 2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확장공사를 완료하였다. 주요 내용으로는 여객청사 및 관제탑을 신축하였고 활주로, 여객기 계류장, 주차장 등을 확장하고 ILS가 설치되었다. 특히 활주로 연장과 항행시설 보강 덕분에 결항률이 크게 낮아지고 야간운항이 가능해졌다. 기존 여객청사는 관리동으로, 구 활주로는 평행유도로로 사용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활주로 길이에 중간이 불룩 솟은 언덕형 활주로로 양끝단에 접근시에는 정상접근을 해도 깊어 보인다. 거기다가 접근 경로가 계곡 사이라 난기류도 심해서 조종사들이 꺼려한다.)
2012 여수 세계 박람회에 대비하여 현재의 활주로 길이를 약 400m 연장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갑론을박만 하다가 결국 박람회가 끝났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KTX가 완전 개통되고, 포-여수 항공편이 줄어들었고 여수공항-순천시 간 공항버스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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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서울인천국제공항 (ICN/RKSI)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에 위치한 국제공항이다. 현재 초대형 활주로 3개와 터미널 2개, 탑승동 1개가 운영중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공항으로, 대한민국 국제선의 약 80%가 이곳을 통해 운항된다. 이 공항은 국제선 전용 공항이기 때문에 이 공항의 국내선은 국제선 환승용이며, 간혹 심야에 제주발 국내선의 커퓨 타임(야간운항통제 시간)에 따른 대체 착륙용으로 이용된다.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3월 29일 개항과 동시에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김포국제공항의 당시 국제선 노선을 일괄 이관받았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메워서 만든 해상공항이기 때문에 내륙공항인 김포국제공항과 달리 24시간 운항된다.
1999년 2월 1일 설립된 인천국제공항공사(IIAC)에서 공항 운영을 담당하고 있고,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2005년 이후 계속 세계 공항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폴라에어 카고, 델타항공이 이 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기존의 김포국제공항이 인근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 발산동, 화곡동, 가양동 등 인구가 밀집한 주거 지역으로 인해 확장이 불가능하고 24시간 운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국제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1992년부터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간석지를 매립해 조성된 부지에 2029년까지 5단계로 나누어 47 km²의 부지에 5본의 활주로와 연간 1억3천만명의 여객을 처리하는 시설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현재도 건설되고 있는 공항이다.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을 이관할 신공항의 건설은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해 1984년 4월에 충청북도 청원군이 건설 예정지로 결정되었으나,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1988년 3월에 정부는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해 경기도 서남부(현 시화 간척지)를 신공항 부지로 검토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배후 도시의 규모, 서울 및 김포공항과의 접근성, 주변 군공항(수원, 오산, 평택, 서산) 등을 고려할 때 경기도 옹진군 영종도의 해안을 매립해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후 1990년 6월 15일에 현재의 인천국제공항 건설 계획이 확정·발표되었다.
*준비단계 : 인천국제공항은 1989년 3월부터 1992년 11월 10일까지 타당성 조사 및 기본 설계를 하고, 1992년 11월 21일부터 1994년 10월 30일까지 영종도·용유도·신불도·삼목도 등 네 섬 사이를 방조제로 연결하였다. 이후에는 여객터미널과 4개의 탑승동(Concourse), 5개의 활주로를 건설한다는 기본 설계에 따라 방조제 안의 갯벌을 구간을 나누어 20년 동안 순차적으로 성토(盛土)하였고, 이러한 성토 작업은 제2여객터미널이 건설 중이던 2014년 말에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1단계 : 여객터미널, 2본의 활주로, 관제탑, 교통센터, 화물터미널을 비롯한 제반 시설들을 건설하여 연간 2천7백만명의 여객과 170만톤의 화물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96년에 여객터미널 신축공사를 착공했고, 2000년 6월까지 인천국제공항 1단계의 공항 주요 시설물을 준공하고, 같은 해 12월에 5조6천억원을 투입한 8년 4개월간의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종합 시운전을 시행하고 여객과 수하물 및 항공기를 동원해 가상훈련을 실시·점검한 후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하였다. 개항과 함께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 업무가 이관되었다.
2단계 : 길이 4,000 m의 활주로 1본과 화물터미널을 추가하고 여객터미널의 북쪽에 탑승동을 설치하여 연간 41만회의 항공편과 4,400만명의 여객, 450만톤의 화물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원래는 2008년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승객이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6개월을 앞당겨 6월 20일에 완공하였다.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사이의 지하에 셔틀트레인이 건설되었으며, 2001년에 착공한 인천국제공항철도가 2007년 3월 23일에 1단계 개통(인천공항 - 김포공항)하였고, 기존의 영종대교 이외에 영종도와 송도신도시를 연결하는 세계에서 7번째로 긴 다리인 인천대교가 2009년 10월 19일에 완공되었다.
3단계 : 탑승동의 북쪽에 제2여객터미널을 건설하고, 계류장과 화물터미널을 확장하여 연간 7,200만명의 여객과 580만톤의 화물 처리를 목표로 하였다. 본래 이 계획은 탑승동 B, C, D 및 제4활주로를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건설해 연간 9천만명의 여객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2009년에 제2여객터미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변경된 계획은 2011년에 시작해 2015년에 완공될 예정으로 발표되었으나, 급증한 건설비 조달 문제와 인천공항 민영화 논란, 동남권 신공항 논란 등이 겹치면서 2년이 늦춰져 2013년 9월 26일에 제2여객터미널을 착공하여 2017년 9월 30일에 완공하였고 2018년 1월 18일에 개장하였다. 그 사이 늘어날 여객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여객터미널(T1)은 1천만명을 추가 처리할 수 있게 하였고, 제1여객터미널에서 제2여객터미널까지 공항철도를 연장하였다.
4단계 : 2020년까지 길이 3,750 m의 활주로 1본(제4활주로)을 설치하고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제2여객터미널을 확장해 연간 4,600만 명까지 여객 처리 능력을 확충함으로써 연간 총 1억명의 승객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종단계 : 2027년까지 길이 3,750 m의 활주로 1본(제5활주로)을, 2029년까지 제3여객터미널을 개장하여 총 47.428 km²의 부지에 여객터미널 3동, 탑승동 1동, 5본의 활주로, 여객 계류장 260개, 화물 계류장 105개를 갖추어 연간 79만회의 운항회수, 1억3천만명의 승객과 1,000만 톤의 화물 처리를 목표로 한다.
건설 당시에는 그냥 편하게 지역 이름을 따 영종도 신공항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했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공항이라는 점에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따 '세종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정할 예정이었지만 인천광역시의 반발로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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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울산공항(USN/RKPU) 울산광역시 북구 산업로 1103에 위치한 공항으로 1970년 11월에 개항했다.
활주로 방향 18/36 활주로 길이 2,000m, 폭 45m
기존에 있었던 울산비행장이 1937년 폐항된 이후 비상용활주로로만 사용되던 중, 1960년대 중화각공업단지가 들어서자 비즈니스 목적의 수요가 크게 늘어 1970년 11월 송정동에 울산공항을 개항, 대한항공이 서울 노선에 취항하면서 민항기 운항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1973년 1월 해당 노선이 중단되었고, 결국 1974년에 폐항되기에 이른다. 이후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1984년 7월 대한항공이 서울 노선에 복항하면서 공항 영업을 재개했다.
1992년 3월에는 제2 민항인 아시아나항공이 같은 노선에 취항하였고, 제주 노선에 대한항공이 1993년 2월,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해 5월 취항. 이때부터 울산공항은 길이 1500m 폭 30m의 짧은 낡은 활주로와 좁은 계류장 및 여객 청사로 인하여 큰 불편을 겪게 되는데 이후 공항 확장공사를 추진하여 우선 1995년 9월부터 12월까지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고 활주로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와 같은 길이 2,000m, 폭 45m의 활주로를 보유하게 된다. 이 공사로 인하여 대한항공은 그동안 투입하던 포커 100 기종 대신 MD-82 기종의 투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평행유도로가 없으므로 항공기가 착륙 후 활주로 끝까지 가서 180도 turn을 한 다음 활주로 택싱을 통해 공항 청사로 와야 한다.
이후 1996년에는 계기착륙장치가 설치되어 결항률이 감소하였고, 안전한 항공기 운항이 가능해졌다. 1997년 12월에는 드디어 새로운 여객 청사가 준공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공항 청사와 관제탑이 같은 건물에 붙어 있다는 것.
1999년에는 공항명칭 문제로 포항시와 마찰이 있었다. 울산광역시에서 공항의 명칭을 울산경주공항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던 것. 울산광역시 측에서는 경주시와 인접해있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에게 울산과 함께 세계적 문화유산인 경주시를 세계에 홍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당장 인접해 있는 포항시는 경주시는 같은 지자체인 경상북도 소속이고, 게다가 경주시로 가는 관광객은 포항공항을 더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처사라며 이에 맞서서 포항공항 명칭을 포항경주공항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했다. 결국 두 공항 모두 실제 명칭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경주시 의문의 1승!
2006년 5월에는 공항 자체 레이더가 설치되었다. 그동안 울산공항은 자체 레이더가 없어서 인근 포항공항에 설치된 ASR(Airport Surveillance Radar-공항감시레이더)을 이용해 접근 관제를 했는데, 지형적인 한계로 고도 1500m 이하는 레이더에 항적이 잡히지 않는 한계가 있었던 것. 자체 레이더 설치로 활주로를 포함한 저고도의 항적 추적이 가능해져서 안전한 운항이 가능해졌고, 결과적으로 서울 노선은 약 13km, 제주 노선은 약 45km 정도 운항 거리가 단축. 이와는 별도로 지금도 항로 관제와 울산공항 관제탑의 국지공역 관제를 이어주는 접근 관제는 포항공항에 위치한 포항접근관제소에서 실시하고 있다.
KTX 개통이전에는 하루에도 수십편의 정기편이 오가던 공항이지만, 개통이후에는 급격히 수요가 줄어 이제는 대한항공과 에어부산 제주에어만 취항중이고, 적자행진중이다.
울산 거점의 코스타 항공과 유스카이 항공이 창립되었지만 운항도 못해보고 망했다. 이제는 비행교육 학원들만이 상주중이다. 조종사들로서는 활주로가 짧고 계곡에 위치해 기류가 안좋고, 18 방향은 강하각마저 3.6도로 깊고 최종단계에서 MANEUVERING을 해야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항이다.
1970년 울산공항 취항식
1970년대 울산 공항 대한항공 포커 F-27
울산공항 주기장
울산공항 전경
북한
•K-17 - 옹진 비행장(Ongjin Airdrome)
•K-19 - 해주 비행장(Haeju Airdrome)
•K-20 - 신막 비행장(Sinmak Airdrome)
•K-21 - 평강 비행장(Pyonggang Airdrome)
•K-22 - 원종리 비행장(Onjong Ni Airdrome)
•K-23 - 평양 비행장(Pyongyang Airdrome)
•K-24 - 동 평양 비행장(East Pyoungyang Airdrome)
•K-25 - 원산 공군기지(Wonsan Air base)
•K-26 - 선덕 비행장(Songdok Airdrome)
•K-27 - 연포 비행장(Yonpo Airdrome)
•K-28 - 서 함흥 비행장(Hamhung West Airdrome)
•K-29 - 신안주 비행장(Sinanju Airdome)
•K-30 - 신의주 비행장(Sinuiju Airdrome)
•K-31 - 길주 비행장(Gilju Airdrome)
•K-32 - 외시천동(Oesichon Dong Airdrome)
•K-33 - 회문 비행장(Hoemun Airdrome)
•K-34 - 청진 비행장(Cheongjin Airdrome)
•K-35 - 회령 비행장(Hoeryong Airdrome)
•K-36 - 강계 #2 비행장(Kanggye #2 Airdrome)
•K-54 - 황해도 초도. (대동강 하구)
출처 : 다음블로그 無名人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비행장과 K-SITE CODE
http://blog.daum.net/af185/11751747
첫댓글 공항의 이력 대단한 자료네.. 항공역사 공부 잘 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