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에 친구자녀 결혼식이 서울 강남에서 있어서 모처럼 서울로 올라왔다. 결혼식을 보면서 3개 층에 하객이 분산하여 식사를 하였다. 미리 식탁에 초등학교 친구석, 중고등학교 친구석,....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준비를 세밀하게 잘하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일은 11월 첫째 주 일요일 광명시제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성남에 있는 친척집에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토요일이라 비가 내려 판교역에 편의점까지 우산을 구입하기 위해서 비를 맞으며 한 100m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걸으면서 내일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시제가 걱정되었다. 비가 오면 묘소에서 거행 못 하면 실내에서 봉행하는지도 궁금하였다.
저녁에 임하군파 총무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예정대로 한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도권에 살지 않는 관계로 성남에서 광명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지도상의 거리는 가까이 느껴졌는데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예정이라서 내일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버스는 몇 번 버스를 타고 안양시에 내려서 다시 몇 번 버스를 타고 광명시 가락골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계로 지하철를 이용하여 가는 것이 더욱 익숙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11월 03일 아침8시에 야탑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강남구청역에서 환승하여 광명사거리역에 내렸다.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광명시 노온사동 가락골 정류장에서 내렸다. 건널목을 건너니 정선전씨 임하군파 묘소라는 표지석이 있고, 종이로 안내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묘소에 도착하니 10시 20분경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와 있었습니다. 강릉에서는 4분이 자가용 1대를 이용하여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버스1대를 이용하여 왔었는데 올해는 바쁜 분들이 많아서 5명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전영래 부회장님과도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전인재 종인도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만났습니다. 전영래 부회장님께서는 핸드폰에서 집안의 가승을 보여주었는데,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보였다. 그리고 출생 일자와 사망 일자를 서기로 표시되어 있어 친척들의 제삿날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족보를 이런 방향으로 편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정선전씨 석릉군파 임하군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전정구 종인한테서 전화가 와서 대화를 하였습니다.
올해는 정선시향에 참석하였고, 내년에는 광명시향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참석하여 묘제 진행 과정을 녹화하여 카페에 올렸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행부에서 헌관을 선정하였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제가 제일 하단에 종헌관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처음 제례복을 입을 생각을 하니 설렜습니다.
산신제는 전한석(연천),
상단 초헌관 전성표(강릉) 아헌관 전재우 종헌관 전상호(광주)
중단 초헌관 전청일(양동) 아헌관 전진래(파주) 종헌관 전용규
하단 초헌관 전상원(광주), 아헌관 전찬득(강릉) 종헌관 전과웅(강릉)이었습니다.
상단에서 진행되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중앙에 있는 선조가 39세이고 왼쪽이 40세이고 오른쪽이 41세 임하군이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중앙에 있는 비석이 조금 뒤에 배치되어 있어 상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단에서는 충근정량 호성공신 석릉군 시제를 봉행하였습니다.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므로 역사적 발자취를 축문에 반영하여 내용이 많았습니다.
‘고이성(告利成)’에 관심이 많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제례의 거의 끝 부분에 있는 절차인데 축관(집사자)이 초헌관(주제자)를 향해 걸어가서 읍(揖)하고 이성(利成)이라고 큰소리로 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초헌관(주제자)은 이에 답해서 읍(揖)하였습니다.
이성(利成)은 이롭게 완성하였다는 뜻인데 정성을 다해서 상서롭게 완성하였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초헌관의 역할이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헌관은 신위 전에 나아가 술을 따르는 일을 행합니다. 헌관은 총 3명으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있습니다.
그 중 초헌관은 헌관을 대표하여 제례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진설된 제수가 제대로 놓여있는지 살핍니다(점시진설, 點視陳設).
두 번째, 신위 앞에 나아가 향을 피우고 폐백을 올립니다(전폐례,奠幣禮).
세 번째, 신위에 첫 잔을 올립니다(초헌례,初獻禮).
네 번째, 참석한 전체 유림을 대표하여 신이 내리는 축복을 받기 위해 술과 안주를 받아 마십니다(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마지막으로 축문을 태우거나 태우는 곳에 나아가 지켜봅니다(망료례,望燎禮).
작성부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 胙 제육 조, 나라 이름 작
1. 제육(祭肉)
2. 음복 고기
3. 섬돌, 계단
4. 임금 자리
5. 갚다, 보답하다
6. 복을 내려주다
a. 나라 이름 (작)
b. 성(姓)의 하나 (작)
(1건)
◎ 受胙(수조)
제사(祭祀)를 지낸 뒤에 제관(祭官)이 제사(祭祀)에 쓰고 난 고기를 나누어 받던 일
◎ 燎 횃불 료(요)
1. 횃불
2. 화톳불(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으고 질러 놓은 불)
3. 땔나무
4. 밤사냥
5. 야화(夜火)
6. 제사(祭祀) 이름(섶을 때어 하늘에 지내는 제사)
7. (불을)놓다, 태우다
8. 타다
9. 굽다, (불에)말리다
10. 밝다
11. 비추다
출처: 네이버 】
하단에서는 제가 종헌관을 하게 되었는데, 제례복을 입는데 익숙하지 않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입게 되었습니다. 관모(冠帽)와 대(帶,허리띠)와 혜(鞋,신발)를 정제하니 더욱 엄숙해 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차례가 와서 찬인의 안내를 받으면서 관세(손을 씻고) 예묘전(묘 앞으로 나아가기) 궤(끓어 앉기) 헌작(잔 올리기) 국궁재배(절 2번하기) 순서로 진행하였습니다. 큰 실수 없이 정성껏 조상님에게 예경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종헌관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제례복을 조금 개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단추, 지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매듭으로 하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찍찍이를 이용하여 조금 편리하게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신발도 미끄러지기 쉬운 재질로 되어있어 요철을 가미한 신발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찬인의 역할이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찬인[ 贊引 ]
제사를 거행하면서 예의(禮儀) 절차대로 도와 인도함. 또는 그러한 직책을 맡은 관원.
[네이버 지식백과] 찬인 [贊引]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저부터 시제에 참여하는 것이 1년에 한 두 번이므로 절차를 잘 모르고, 또 알았다고 하더라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집행부에서는 알자와 찬인을 묘제 진행하기 전에 소집하여 간단히 교육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더불어 A4용지 한 장 정도에 알자의 역할과 찬인의 역할을 인쇄하여 배포함으로서 사전교육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현대교육을 받은 사람은 시제봉행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으므로 찬인의 역할을 몰라서 그 자리에서 구두로 교육을 받으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어수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인은 헌관을 손 씻는 곳으로 안내하고 묘전으로 안내하고, 복위할 때 안내하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상단, 중단, 하단의 묘소에서 시제가 끝난 후 종인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임하군파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전한석 회장님의 결산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전계표 총무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전한석 회장님의 임기가 완료되어서 임원선출이 있었습니다.
제일 연장자이신 전제욱 종친의 진행으로 회장단 선출이 있었습니다.
회장은 전한석회장이 재선되었으며 감사는 전광옥종인이 선출되었습니다.
회장 당선 인사에서 시제에 종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곧 종중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중이 활성화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구표, 전신재 전임회장에게 표창패를 전달하였습니다.
실적보고에서는 족보 한글화 작업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시조에서부터 42세 석릉군까지 상계를 한글화 작업을 진행 중임을 보고하였습니다. 소요예산은 5,500,000원이며, 지금은 교정중이고 작업이 완료되면 오늘 등록한 주소로 무료로 배포할 예정임을 보고하였습니다. 이 상계보는 60갑자를 서기로 전부 변환하여 작업 중임도 공고하였습니다.
성주에 있는 석릉군 선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표충재를 다녀온 결과도 보고하였습니다. 건물이 낡아서 새로 건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묘소 부근에 보금자리 아파트 건설과 관련하여 지금은 보류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보고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철 등을 고려하여 적당한 장소에 땅을 물색하고 구입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시제 날짜가 매년 11월 첫째 주 일요일인데, 10월 09일 한글날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기존의 시제 날짜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인들이 날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제는 비가 왔었는데, 오늘은 화창하고 바람 없고 청명한 날씨인 것은 조상님들이 공덕을 누대에 걸쳐 쌓은 결과로 생각된다고 하였습니다.
정기총회가 끝난 뒤 광명토성 식당으로 이동하여 오리장작구이를 먹으면서 종중발전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강릉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광명 묘소 성역화에 대한 일화를 들었습니다.
1983년경 묘소가 양지쪽에 있어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묘소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는데, 강릉 종중에서 상석을 만들어서 묘소 성역화을 시작하였다고 전찬진 원로께서 증언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포클레인 등 운반 수단이 미비하여 도르래를 이용하는 등 원시적인 방법으로 운반해 왔다고 했습니다.
이를 시발점으로 해서 수원 등 수도권 종인들이 묘소 도래석을 시설하고 차츰 현재의 모습으로 성역화가 진행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릉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오늘 일정을 마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