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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비라 원문보기 글쓴이: 어질이
나방 보살님의 공양
(출처 - 화산장님글) 사춘기 시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고민해 보았을 ‘사람이 죽으면 아니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나 역시도 그러했다. 맑은 서쪽 하늘에서 엄청난 울림이 있었지만 그 나이에 이 생에서 난 세속의 생활을 택한다.
내 나이 27살, 한 동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모습에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내가 말한다고 해서 내가 화낸다고 해서 저 사람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나만 바른 모습으로 가면 되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마침 옆 동료가 절에 간다고 하길 래 ‘이제 내 마음을 닦을 때가 되었구나’고 따라 나섰다. 그때가 백중 기도 중 이었나보다. 난생 처음 절에 가서 예불보고 스님 앞에 3배 드리자 ‘성질이 급하다. 하루에 200배해라’
그 날부터 하루에 200배씩 하는데 하고는 잘 걷지도 못한다. 지금은 3000배하고도 이렇게 끄떡없이 잘도 다니는데...
그렇게 며칠을 하고 이 보살님이 3000배하러 백련암엘 가자고 하네.
“그러지 뭐.”
관음전에서 토요일 저녁 7~8시에 시작해서 새벽 5~6시에 끝난 거 같다. 성철스님께서 지어 놓으시고 손수 써 놓으신 불명 화산장(禾山藏), 불기자심(不己自心), 삼서근 그리고 하루 108참회를 원인스님으로부터 받았다. 원인스님(대구 정혜사에서 주지스님으로 역임하셨다가 지금은 인도 대성석가사에서 주석하심)께서 ‘화산장은 산 속에 쌓아 놓은 보물’이라는 뜻이라고 풀이 해주셨는데 그 당시는 별 감흥 없었을 뿐... 같이 간 거사님은 ‘무등’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것이 내 것인 줄 알았네요 처음에는... 인도해주신 보살님이 능엄주도 해야 된다고 하길래 ‘내 마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지 이런 것에 의지해야 되느냐’고 하니 자기 어머니께 여쭈어 보니까 절만 해도 된다고 하셨다네요...
이런 저런 세속 일에 일과를 까마득하게 잊고 그 새까만 업을 지었죠. 부처님 그저 감사합니다, 참회 속에서 다시 거듭날 수 있게 해주셔서...
2002년 뉴질랜드를 가려고 하면서 그동안 놓았던 절과 능엄주를 다시 들었고 놓았던 예불대참회문과 테잎을 챙겼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뉴질랜드에 가서는 능엄주 테잎을 틀어 놓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모른다 ‘나 자신에 의지하고 살아야지. 이런 것에 의지하고 살아서야 되는가?’하던 내가 왜 능엄주를 하게 되었는지 언제 하게 되었는지...
그러던 어느날 ‘아비라 기도’라는 말이 생각났다. 처음 날 절에 이끌어 준 보살님이 ‘아비라 기도’라는 걸 해봐야 진짜 기도가 뭔지 안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어느 보살님께서 법보신문에 올리신 아비라 기도 후기를 읽게 되었다. ‘내 마음의 대 청소’ 뒤도 보지 않고 그 해 여름 아비라 기도에 참여하게 되었다. 집에서 한 부분씩 매일 했었기에 그 당시에 마음이 많이 급했었기에 다리가 아픈 줄도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그냥 눈앞이 환해지는, 주위가 온통 빛으로 변해가는 속에서 첫 날 밤 부처님께서는 이 생에서 나에게 가르침을 모두 주셨다. 한 줄기 빛과 함께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 ‘무(無),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삶, 걸림 없이 사는 삶, 선행을 하되 한 것이 없는 삶’에 깨어났다. 아비라 기도 마치고 법당 청소 후 한 보살님을 해인사 아래에 모셔 드리면서 아비라카페가 있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인연��� 되었다.
이리 저리 인연 있는 분들이 주위에 한 둘이 알고 찾아오시면 부처님 법을 설해 드리기도 전에 절에 따라 가신단다. 3000배도 하시고, 아비라 기도도 하시고... 지금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리라.
그러다가 내 복의 한계였겠지만, 경계에 부딪쳤다. 거기서 선지식이 필요했던 거였다. 능엄주를 놓으니 할 때는 몰랐는데 분명 나를 감싸고 있던 백산개가 벗겨졌다. 서서히 그리고 빨리.그리고 모진 세파를 만나니 견뎌내질 못했다. 기도도 놓고 안으로 안으로 숨쉬는 것조차 죄의식으로 다가왔다. 끝내야 환청이 들리고, 이명이 나고 우울증으로 빠져들었다. 결정적인 순간 성철스님 뭐라고 물으시는데 ‘살려고 하면 죽고 죽을 려고 하면 산다’고 말한다. 나는 분명 환한 미소를 지었고 ‘모든 중생 제도하는 거룩하신 부처님들...’ 낭랑한 새벽예불을 올리는 보살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태우던 불도 나를 괴롭히던 모진 환상도 모두~ 다 내 스스로가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친정 식구의 도움(친정엄마는 아버지의 대장암 덕분에 백련암에서 3000배하고 불명을 받으셨다)으로 백련암에 올라 혼자 밤 새워 3000배하면서 아무 아픔 없이 무사히 그냥 3000배 마치고 마침 아는 대구 보살님께서 기도 오셔서 무사히 함께 돌아왔다. ‘일체유심조’였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려있다. 내 마음이 극락이면 거기가 극락이고 내 마음이 지옥이면 그 자리가 바로 지옥이라고. 정말 처절히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에 다른 중생을 해치는 마음이 없었기에 그 마지막 순간에 환하고 편안했다.
다시 세속에 꺼달려 기도를 게을리 하니 내 나이 42(만)에 오십견에 걸렸다. 옷을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 게 되자 한의원에서 침 맞으며, 약 먹으며, 물리치료하며 다시 절과 능엄주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2년 반 걸린다는 치료가 6개월여 만에 거의 나았다. 한번 놓았던 능엄주가 잘 잡히질 않는다. 1년, 2년, 3년 올해 겨우 ‘내가 능엄주를 하고 있구나!’ 지난해 여름부터 옥천사 능엄주 철야기도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어언 10여년 만에...
2014년 3월 29일, 아비라카페 삼천배에 합류했다. 백련암 모든 법당이 우리 보살님들과 거사님들로 꽉 찼다. 우선 그 많은 대중에 감동했다. 적광전에 너무 가득한 대중에 고심원으로 옮길려고 하다가 그냥 한 번 편 자리를 고수했다. 가족같은 너무나 따뜻한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달랐다. 고견 거사님의 자애로우신 법어를 시작으로 정명심 보살님의 낭랑하시고 정확한 '지심귀명례'와 다른 대중들의 불명호 소리에 적광전의 대중들은 3000배를 향하여 익숙한 절 수행을 행하고 있을 쯤 백련암 다른 법당에서도 '지심귀명례 ~불'이 들려오며 백련암자 전체가 절 삼매에 빠진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대중기도의 힘이구나!
나 혼자 힘이 아니라
이 많은 대중들의 힘이 모여지는구나
개개인이 모두가 되고
전체가 개개인이 되는구가!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별 무리없이 삼천배를 마칠거라 여겼는데, 왠걸 2,700배에 들어서자 어지러움이 동반되어 중간에 쓰러질까봐 다른 대중들과 속도를 살짝 달리하며 현재의 육신에 맞추어 낭랑하시고 정확한 정명심 보살님의 '지심귀명례'와 다른 대중들의 불명호 소리를 들으며 그냥 너무나 신비롭게 절을 이어갔다. 다시 한번 대중 기도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놓친 절을 회향문 낭독때 ��워갔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크고 분명한 소리로 능엄주를 100명이 넘는 모든 대중이 한 목소리로 정확하고 또랑또랑하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한자도 놓치지 않고 낭독하니 나의 소리에 취하고 대중의 소리에 취하고 감동의 연속이었다. 새벽 예불 때 부처님 주변에 광명의 빛이 훤했다. 그렇게 2014년 3월 3000배 기도는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2014년 7월 나방 보살님의 공양
해인사 입구에 애마를 세워 놓고 백련암으로 향하는 중 보살님들께서 백련암 가는 길을 물어 보신다. 해인사에서 내려가면서 백련암으로 드는 길을 놓치기가 쉬워서 이미 만원인 차에 동승을 해서 무사히 백련암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리 어~질이님께서 주차차량 정돈중이시다. 보시더니
“관음전 가세요~”
“적광전 갈 건데요.”
행여...
관음전가서 자리를 펴놓고 눈부신 부처님 전에 3배 드리고, 전 법당을 돌며 인사드린 후 3,000배전에 108배 드리려고 관음전으로 다시 갔는데 눈앞에 습기가 보인다. 20여 년 전 처음 3,000배 한 법당이었는데 감회가 있기도 했지만... 적광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떨 결에 청수 담당이 되었다. 적광전에서 청수 드신 거사님, 보살님들은 이미 부처님이셔요. 물론 모든 거사님, 보살님 다 부처님이지지만요. 2,500배 절을 마치고 청수를 주전자에 붓는데 나방 보살님이 주전자 속으로 점프하시네여. ‘이를 어쩌면 좋아’ 이미 거사님, 보살님들께서는 청수 드시겠다고 줄을 서 계시고... 마침 혜정하님이 옆에 계시길래 여쭈었더니, 그냥 드리라고 하시네요. 거사님과 보살님들께 청수 다 나눠드리고 식물, 지옥, 아귀, 축생도에도 나누어 드리고, 청수 보살님께서 주전자 입으로 청수를 살짝 받아서 다�� 식물아래 부어서 나방님을 보내드렸답니다. 원효대사님의 ‘해골 물’ 사연 다 아시죠~ 원효대사님께서 의상대사님과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시다가 밤에 굴 같이 생긴 곳에서 주무시다 목이 말라 감로수로 드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 속에 썩은 물이었다는... 원효대사님께서는 그 해골 속 썩은 물을 보시고 ‘어제 밤에 그렇게 달게 마셨던 감로수가 해골 속 썩은 물이었다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구나!’ 하시고 중국으로 가시지 않고 다시 신라로 돌아오셔서 법을 펴셨다는, 바로 그거였어요. 나방 보살님께서 몸을 날려서 공양을 올리셨네요. 청수 드신 거사님, 보살님, 너무나 행복해하셨잖아요~ ‘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요 마음의 조화여요. 사실 저는 봇 봤지만, 고 앞에도 나방보살님이 청수 잔속에 몸을 던지셨다고 하시네요.
유난히 힘들긴 했지만, 이 달 3,000배는 참 신비롭네요. 정말 부처님 법은 신기해요. 그냥 어떤 분을 위해서 마음으로 염원했는데...
과거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過去心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으며(現在心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또한 찾을 수 없느니라(未來心不可得).
(금강경: 18장 一體同觀分)
모든 보살님들 처처에서 여여하게 각 자의 부처님자리 원만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이 번 달도 함께해서 행복했고 지금까지 애써주시고 이끌어주신 어질이님, 구수한 법담으로 원만 회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견님, 여전히 청아하신 정명심 보살님,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 지키신 모든 도반님들 감사드립니다. 2014. 7월. 거사님들과 보살님들의 불보살 명호 합창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