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깔린 실레이야기길을 걸었습니다.
춘천지역 문화답사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기로 실레이야기길은 반만 걷고 지름길로 내려왔습니다.
오후부터는 이천수씨가 동참하였습니다. 각각 가져온 차를 타고 서면 방동리에 있는
장절공 신숭겸 묘역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신숭겸, 그는 본래 전라도 곡성 사람이었으나 후삼국 시대, 유랑농민이 되어 떠돌다가 춘천까지 왔습니다. 당시 원주지역의 양길 아래에서 군사활동을 하던 궁예가 이곳 춘천지역을 지나는 길에 신숭겸을 수하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숭겸은 곧 왕건의 측근이 되고, 왕건을 도와 궁예를 축출하는데 기여합니다.
후삼국 시대 후백제의 견훤은 막각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구 공산지역 전투에서 왕건은 절대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 데 이때 왕건과 비슷한 체격에 용모를 갖고 있던 신숭겸이 왕건의 옷과 바꾸어 입고 후백제군들을 유인, 그틈에 왕건은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집중공격하여 죽게하고 그의 머리를 잘라 갔습니다. 다시 전장터로 돌아온 왕건은 신숭겸의 넙적다리에 있는 북두칠성 별자리 모양의 점을 보고 신숭겸의 유해를 거두어드립니다. 머리가 없는 신숭겸을 위해 그는 나무로 두상을 조각하게 하고, 후에는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자신이 쓰려고 준비해두었던 춘천 방동리의 능 자리에 신숭겸을 안장시키고 왕릉의 수준으로 묘를 써줍니다.
우리나라의 평민들은 적어도 조선조 중기까지 성씨가 없었습니다. 신숭겸 역시 성씨가 없었습니다. 능산이라는 이름은 있었지요. 왕건을 따라 왕건의 할머니가 계신 평산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던 능산, 그는 명궁이었습니다.
왕건의 요청에 따라 하늘에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 몇 번 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화살로 쏘아 맞춥니다. 왕건은 감탄하여 능산에게 평산 신씨라는 성을 하사합니다. 장절공은 신숭겸이 죽은 이후 받은 시호입니다.
문화해설사에게 장절공에 대한 설명을 듣는 68뜸팡이들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 3개의 봉분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멀리 강건너로 춘천시와 봉의산이, 강원대학교 건물이 보였습니다.
봉분 앞에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왕건의 심복이었던 신숭겸과 김락의 이름은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나옵니다.
고구려 시대의 노래로 <공후인> <황조가> 백제의 노래로 < 정읍사>와 <가시리>
신라의 노례로 삼국유사에 수록된 향가 14수, 그리고 균여전에 수록된 11수,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옛날 신라의 노래 향가를 본딴 <도이장가>가 전해옵니다. 조선조에는 시조가 대표적인 시가형태가 되고요.
<도이장가>는 고려 예종 15년 (서기 1120년) 왕이 직접 서경(평양)에 행차하여 불교행사인 팔관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개국공신 신숭겸과 김락의 탈을 쓰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시를 씁니다. 그것이 도이장가 입니다.
고구려시대의 무덤은 장절공 묘역 안에 있습니다. 삼국시대 춘천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었습니다.
천여 년 전, 이 지역에 살던 고구려인 누군가의 무덤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일본 나라현 아스카 지역에 있는 이시부타이의 축소형으로 보입니다. 아스카에 있는 것은 왕족 소아마자의 묘자리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있는 고구려 고분은 그래도 그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세도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 계획은 청평사의 이자현 거사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또 청평사를 찾았던 김시습, 이황, 정약용의 이야기까지 함께 하고 싶었는데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다음에는 사창리 가는 길가에 있는 곡운구곡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들, 명목상 금병산 실레이야기길도 걸었고, 문학촌에서는 계속
문학 강의를, 장절공 묘역과 고구려 고분 앞에서도 문화강의를 들어야 했던 관계로
모두 지친 모습들, 신메대교를 건너 육개장 칼국수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기호에 따라 육개장 칼국수와 해물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오늘 칼국수 값은 성춘희가 맡았습니다.
서늘한 바람 속에서 서서히 몸이 얼었던 뒤끝이라 뜨거운 칼국수가 맛있었습니다.
다시 우리들, 소양 2교 건너자 마자 있는 찻집에서 모여 차를 마셨습니다.
오늘 저녁의 찻값은 황병호 선생이 맡았습니다.
내년 꽃피는 봄에 만나자고, 이번에는 춘천을 벗어나 멀리 동해바다 바람이라도 쐬어보자고 하는 의견........
이젠 그저 핏줄처럼 편한 그리고 소중한 이웃이 된 우리 68 뜸팡이 동기들,
황병호 선생이 그의 번역서 < 숲과 함께 살아보자>를 한 권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 동기들, 여전히 열심히 건강하게 사는 모습, 그저 고맙기만 하였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즐겁게 삽시다.
2017. 10. 17 사진 및 글 유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