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歸農 꿈꾸나요? 歸漁도 있어요… 바다는 하는 만큼 꼭 돌려줘요
귀어·귀촌 종합센터 생긴지 6개월 만에 상담자 1000명 넘어서
배 한 척이면 새 삶 中古어선 값 수천만원대… 정부에서 정착금도 지원, 수산물은 換金性도 좋아
전남 완도·경남 통영 인기 바닷가 출신 도시인들, 고향 아니라도 쉽게 결심… 양식업은 6억~10억 필요
지난 21일 오전 10시 30분 부산 기장군 대변항(大邊港). 2.4t급 어선 '신흥호' 선장 최일천(51)씨가 날쌘 몸놀림으로 배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남쪽으로 2㎞쯤 항해하니 그의 연안 양식장이 나타났다. 배를 멈춘 뒤 작은 칼로 어린 다시마 줄기를 끊어내는 손놀림은 능숙했다. 최씨의 얼굴은 햇빛에 오래 그을린 구릿빛이었다. 누가 봐도 노련한 뱃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울산시청에서 15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중소기업 임원으로 10년 일했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40대에 들어서자 건강은 엉망이 됐다. 비만·고혈압에 허리 디스크 증세까지 나타났다. 정년 이후 노후에 대한 걱정도 컸다. 2009년 9월 그는 어촌 행(行)을 결단했다. 그는 "한 해 수입(5000만원)은 공무원 때보다 많다. 개인 시간도 넉넉하다. 70~80세까지도 거뜬하게 일할 수 있어 노후 대책으로도 좋다"며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도시의 삶을 버리고 어촌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 4월까지 해양수산부가 지원하는 귀어(歸漁) 정착금을 받은 사람은 모두 433명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정착금을 받은 귀어인은 전체의 10%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최근 4년 반 동안 귀어를 선택한 사람이 4000명을 웃돌 것이란 얘기였다. 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해 10월 귀어귀촌종합센터를 설립했다. 귀어를 희망한다며 이 센터에서 상담을 한 사람은 지난 6개월간 1000여명에 달했다.
지난 21일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최일천(51)·최명숙(51)씨 부부가 오전에 채취한 미역 다발을 들고 웃고 있다. 울산에서 15년간 공무원으로 일하고 중소기업 임원으로 10년을 근무했던 최씨는 2009년 귀어(歸漁)했다. 그는 “수입도 공무원 때보다 괜찮고 노후 걱정도 없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 김종호 기자
'바다의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바다와 함께 산다는 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거칠고 불안정하고 위험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왜 최근 바다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일까. 귀어귀촌종합센터는 "우선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껴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40대 남성과 명예 퇴직 등으로 노후 대책을 고민하는 50대 남성이 귀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상담을 한 1052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599명(57%)이 40~50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회사원 출신 A씨(46)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20대 시절 '무인도에 집 짓고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40대에 그 꿈을 이뤘다. 2011년 귀어한 그는 남해의 한 무인도 땅을 구입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 홀로 미역·다시마·전복 등을 기르며 산다. 그는 "처음엔 강하게 반대하던 아내도 건강이 크게 호전되자 섬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다"며 "70세 이후에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계속 이 섬에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 회사원으로 일하던 김모(41)씨는 최근 귀어를 결심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모험심·도전정신을 심어주는 바다 생활을 동경했다. 내 인생을 월급쟁이로만 끝내기 싫어서 귀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귀어도 최근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다. 귀어귀촌종합센터 관계자는 "상담자 중 20~30대 비율이 20% 정도 된다"며 "이는 너무나 어려운 우리의 청년 취업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귀어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어촌 출신이 도시에서 생활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U턴형, 어촌 출신이지만 고향이 아닌 다른 어촌으로 귀어하는 J턴형, 연고가 전혀 없는 어촌에 정착하려는 I턴형이다. 최덕부 귀어귀촌종합센터장은 "귀어 상담을 해오는 사람의 70%는 고향이 부산·인천·목포 등 바닷가 대도시이거나 어촌 출신, 즉 U턴형과 J턴형"이라며 "이들의 경우 정착 성공 확률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I턴형의 경우 전체 귀어 희망자의 30%를 차지하는데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어촌 삶에 대한 경험이나 추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성식 해양수산인재개발원장은 "서울 등 내륙 대도시에 살다 I턴형 귀어를 선택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 정직한 노동의 터전
귀어인들은 바다의 삶이 거칠고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혜택도 있고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장점으로는 환금성(換金性)을 꼽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곡식·채소·과일 등을 한 번 수확하기 위해 몇 개월 땀 흘려야 한다. 또 파종 후 수확까지 가뭄·질병·가격 하락 같은 불안 요소도 크다. 하지만 어촌에 살면 상품(商品)으로 내다 팔 수 있는 수산물을 즉시 수확할 수 있다.
바다는 노력한 만큼 되돌려주는 '정직한' 노동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동형(52)씨는 1995년 만 32세에 서울을 떠나 무연고지인 경남 남해 화계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18년 뒤인 2013년 마을 어촌계장이 됐다. '1세대 귀어인'인 그는 지난 2월 귀어학교를 설립했다. 전직 교사에서 버스 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귀어 희망자들의 문의가 몰렸다. 이씨는 "실직 등 아픔을 겪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꿈과 희망을 잃고 오시는 분도 있다"며 "어업은 정직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1차 산업이다.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면 바다는 반드시 그만큼의 대가를 내준다"고 말했다.
바다가 예전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귀어인(歸漁人)들은 "일반인이 가진 가장 큰 편견이 바로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기술위원 김대식 박사는 "초보 귀어인들의 조업 구역은 항구에서 수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근해(近海)다. 위성항법장치(GPS) 등 기술과 장비가 좋아져 조난당할 염려도 거의 없다. 일기예보 정확성도 높아져 바람 세기나 파도 높이를 미리 파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선해양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어선 사고 발생률은 2011년 1.21%에서 2013년 0.77%로 줄었다.
정부와 사회의 각종 지원책을 잘 활용하는 것도 귀어 과정에서 꼭 염두에 둬야 할 내용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창업 자금과 주택 자금을 합쳐 최대 2억4000만원의 정착금을 연 2%대 금리로 빌려준다"며 "지난해 106명이 자금을 지원받았는데 올해는 31% 늘어난 139명이 선정됐다"고 말했다. 정착금 지원자는 매년 1~2월에 신청을 받아 4월에 발표한다.
경상북도 문경 출신의 윤모(43)씨도 최근 귀어 정착금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으로 고기잡이 배를 구입할 계획이다. 내륙 지방에서 자란 그는 지난해 8월 경상남도 남해의 한 귀어학교에 입학했다. "오래 전부터 바다 생활을 동경해왔다"고 했다. 그는 "이제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바다로 나가게 됐다"며 "어촌엔 빈집이 많아 방 3개짜리 집을 보증금 없이 월 7만~10만원에 빌릴 수 있다. 주거 비용은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촌 공동체 동화에 성공 달려
귀어한 사람이 잘 적응할 수 있느냐는 어촌계(漁村契)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 제대로 녹아드는지에 달려 있다. 어촌 마을의 거의 모든 삶이 이 어촌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뱃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유대감은 내부적으론 대단히 끈끈하지만 지금도 바깥 사람에겐 대단히 배타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대변항 어촌계장 이동길(51)씨는 "한 번 어촌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면 평생 가족이자 동지 같은 존재가 된다"며 "하지만 그 안에 받아들여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고 했다. 올해로 35년째 배를 타고 있다는 이씨는 "'여기가 내가 죽을 판이다'는 결심이 선 뒤에 와야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뱃일은 원래 고되다. 인내심과 투지가 있어야 오래 할 수 있는 업(業)이다. 중국·동남아에서 온 외국 선원도 며칠 일하고 '힘들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바다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처럼 순탄치 않은 귀어의 길을 헤쳐가려면 가족 간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배우자의 지지는 절대적이라고 한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김영길(66)씨는 5년 정도 아내를 설득한 끝에 귀어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년 동안 서울에 살다 울산으로 이주해 17년을 살았고 2000년대 중반 귀어를 결심했지만 아내 반대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는 "도시 삶에 익숙한 아내에게 어촌에서 살아야 한다는 선택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며 "하지만 공기와 자연 경관 좋은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자고 꾸준히 설득해 결국 2010년 부안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아내도 만족하고 출가한 자식들도 '잘하셨다'고 응원해주고 있어 이곳 생활이 꽤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귀어/귀촌카페 http://www.sealife.go.kr/index.do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