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 장군이 총포를 사용해 독도와울릉도를 사수했다는 기록이 담긴 '장생죽도기'.
울릉도와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이 독도·울릉도를 지킬 당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당시 신무기인 조총을 들고 싸웠다는 문헌이 새롭게 발견됐다.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가 21일 본보에 제보한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용복이 독도·울릉도를 사수할 때 무기를 지참하지 않고 온몸으로 싸웠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두 종류의 사료를 보면 안용복과 2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신무기인 총포(조총)와 대포(大砲)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문서가 입수돼 공개한다"고 밝혔다.
안용복이 총포와 대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는 요나꼬(米子)의 어선선주 오야구우에몬(大谷九右衛門)과 무라이 이찌헤이(村井市兵衛)가 독도·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고 귀국, 도쿠가와 막부에게 보낸 '죽도에 관한 7가지 답변서'라는 보고문에서 나타났다.
보고서에는 제2조에 '원록(元祿) 5년 4월 6일 죽도 도해시 조선인이 총포를 소지하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인을 데리고 일본에 와서 심문을 받을 때 무기는 소지했지만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또 안용복이 총포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사료에도 기록돼 있다.
1801년 병전(兵田)에 살았던 야다다카아다 (矢田高當)의 장생죽도기(長生竹島記)에 '죽도도해 6번째 조선인을 만나 놀란 것'이란 고백서에도 '동굴에 총포, 대포를 걸어 놓고 있었다', '총포 2~3정이 있고, 바로 발사할 수 있는 석화시(石火矢 대포:서양인의 전래한무기)가 무서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서는 이로 인해 일본어선들은 무서워서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결국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안용복이 총포를 소지하고 독도와 울릉도를 지켰다는 내용이 기록된 문서들은 도쿠가와 막부에게 보낸 '죽도에 관한 7가지 답변서' 보고문은 1724년 4월 3일에 기록한 원본을 보고 1953년 7월 31일에 다시 기록 한것이며 '장생죽도기'도 1801년에 기록한 원본을 보고 1953년 10월에 재출판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기록된 '죽도에 관한 7가지답변서'는 지금 시마네현 하마다시 시립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표지에는 대출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김문길 교수는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발표한 신도 요시타카 등 4명의 자민당 '영토특위' 소속 의원들은 명치유신 때의 후예들로 대륙침략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독도가 우리땅 이라는 역사자료 수집에 모든 정성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경북일보 201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