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 자리
봄기운이 바람에 실려 우리 곁에 다가왔다. 새봄을 맞은 산수유는 꽃잎을 방긋방긋 열지만, 해 묵은 산수유 열매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가지에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린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함이 이치이거늘. 먼저 떠난 이파리 빈자리가 못내 아쉬워 새잎을 영접하려 함인가.
외롭게 매달린 열매에서 아버지를 연상한다. 아버지는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새봄이면 환생하여 당신 곁에 다가오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당뇨병으로 오랫동안 고생 중이다. 말동무할 친구를 사귈 것을 권해보지만, 손사래를 치신다. 홀몸 아버지를 찾을 때마다 널브러진 옷가지와 약봉지, 먹고 남은 베지밀 봉지가 외롭게 뒹군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을씨년스럽지 않을 터인데...한 달에 두어 차례 병원에 모시고 다닌다. 약은 꾸준히 드시지만, 당뇨 수치는 제자리다. 의사는 입원을 권한다. 아버지는 "살 만큼 살았다. 조용히 살다 너희 엄마 곁에 갈란다." 입원 조치를 해야 함에도 완고한 성미를 빌미 삼아 나의 행위를 합리화함은 틀림없겠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 나의 외손자가 태어났다. 딸의 산후조리 핑계로 아버지께 소홀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방문하는 요양 보호사에게 온전히 맡긴 셈이다. 가끔씩 아버지를 찾을 때, 어머니 없는 집은 설렁하다. 벽에 걸린 어머니 사진을 바라본다. 무심한 표정이다. 다만, 멀건 죽으로 허기를 채우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운 듯 애잔한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액자 속 어머니를 쓰다듬는다. 뽀얀 먼지가 쓸려나간 자리에 나의 눈물방울이 또르르 구른다. 아버지의 눈가에도 뿌연 이슬이 맺힌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시로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계시리라.
전전긍긍하던 차, 아버지가 넘어졌다는 전갈을 받았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있듯, 어머니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쥐꼬리만큼 남은 효孝를 실천하리라.' 119에 전화했다.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은 상태론 입원할 수 없단다. 보훈병원으로 급하게 차머리를 돌렸다. 목숨을 경각에 둔 사람을 앞에 두고 코로나 검사 운운하니 절차가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보훈병원에서는자체 검사를 할 수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음성이다. 같은 하늘 아래 의료 기관인데, 모순 덩이다. 나의 강권에 떠밀려 아버지는 병원복을 입고 새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병실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허허롭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그렇게 허전하지 않았으리.
몸에 배지 않은 아버지 병원생활은 무척 불편했는가 보다. 간호사들이 주의 사항을 들을 때마다 잔소리로 여겼다. 수시로 혈액을 채취하고 Xray로 여러곳을 촬영했다. 아흔을 넘겼으니 검사 자체도 버거웠을 터다. " MRI사진에서 폐에 하얀 덩어리가 여럿 보이네요. 조직 검사를 해봐야겠다." 의사의 말에 불길함이 스며든다. 아버지는 당신의 병세를 예감이나 하신 듯 초연하다. 그러나 생명이 걸렸기에 마음이 어찌 흔들리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곁에 계셨다면 약해지는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 터인데.
결과는 예상대로 폐암이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짐작하시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정리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머니를 보내 드린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명치가 무두질한 듯 아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어떻게 잘 보내 드려야 할까? 루벤스의 시몬 과 페루 또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문득 뇌리에 스친다.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혀 아사 형을 선고받은 아버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면회하러 갔다. 죄수에게는 음식 반입이라 아버지께 아무것도 줄 수가 없었던 그녀는, 굶주려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자 눈이 뒤집혔다. 아기가 아닌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나는 무엇으로 어떤 선택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지 가슴이 먹먹해 왔다.
암 선고받은 후 아버지를 향한 나의 행보는 바빠졌다. 아버지는 챙겨드시는 것도 귀찮으신가보다. 냉장고엔 반찬이 그대로다. 눈에 띄게 쇠약해져진다. “소화가 잘 안되네." 아버지는 끼니때마다 죽으로 해결하고 계셨다. 맛난 음식, 약, 의술도 소용없는 현실 앞에 속수무책이다. 아버지와 차 한 잔 앞에 놓고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 시선이 문득문득 어머니 사진에 머문다. 딸자식이 아무리 잘 보살핀다고 하지만, 어디 어머니 같으랴. “아부지, 옷 자주 갈아입으시고, 보일러 기름 아끼지 마시고, 끼니 꼭 챙겨 드셔요.” “알아서 할 테니, 어여 가거라. 차 조심해서 몰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외면한다.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다. 우리의 인연이 같은 날 만나 같은 날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식물도 잎을 떨굴 때 열매도 떨어지면 외롭지 않을 터인데. 언제가 다가올 빈자리를 의연히 받아들이는 준비를 시나브로 해야할 성 싶다. 오늘따라 아버지께 어머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그 빈자리를 맏딸이 내가 채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