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대동여지도의 뜻, 현대에 되살려낸 故 이우형선생

[옛길따라載弘]

매년 9월이면 필자는 어머님 제사를 위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용미리 추모의 집을 찾는다. 1층 제례장소에서 제사를 지낸 뒤에는 3층에 안장된 납골묘를 찾는데, 이때 꼭 함께 찾아뵙는 곳이 고(故) 이우형 선생의 납골묘다. 고인과 어머님이 돌아가신 해가 같기 때문에 같은 층에 안장되어 있다. 올해는 고인을 위해서도 술잔을 올렸다.

돌아오는 길에 고인이 생전에 고산자 김정호 선생을 위해 두 번이나 제사를 모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1985년 고인이 <대동여지도>를 복간한 뒤 생몰연대가 미상이고 후손조차 없는 고산자를 위해 제사를 모시자고 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고인의 주선으로 민태정(국립지리원), 이상태(국사편찬위원회), 성남해(측지기사), 김상수(내무부 지적과) 그리고 필자와 함께 ‘고산자회’를 만들어 매달 한 번씩 모여 지도에 대해 격의 없는 담론을 펴던 때였다.

▲ 원본 크기의 대동여지도 복간판 120매 전체를 이어 붙인 대형 괘도 아래 서 있는 고 이우형 선생. 이 괘도의 크기는 세로 약 7m, 가로 약 4m에 이른다.

고산자를 위한 첫 번째 제사는 1993년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 자락에 위치한 봉원사(奉元寺)에서 지냈다. 이날 고인을 비롯하여 박용기(방송인), 이상태, 성남해, 필자 등이 봉원사 대방(大房)에 모여 고산자의 고혼을 천도하는 위령재(慰靈齋)를 드렸다. 두 번째 제사는 4년 뒤인 1997년 11월 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었던 삼성출판박물관(현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소재)에서 모셨는데, 이때는 전통의 격식과 규모를 갖춘 꽤 성대한 제사였다.

이날 제사에는 고지도학계, 지도학계, 출판문화계 등 많은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조선 전통방식으로 제상을 차리고, 박용기씨가 제주가 되어 옛 의식에 따라 치러졌다. 제사를 마친 뒤에는 고산자에 관한 학술발표회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성신여대 양보경 교수의 ‘김정호 선생의 지지와 학문’, 이상태 박사의 ‘김정호의 생애와 사상’, 이인제 박사의 ‘초등학교 국어읽기 김정호 단원의 개정’이었다.

필자가 고인을 만나게 된 때는 1968년 고인이 등산 전문지 <산수>를 창간한다고 한창 분주할 때였다. 당시 KCC(한국등반기술위원회) 회원이었던 한덕정(동국대 OB), 변형진(외대 OB) 두 선배가 그 팀에 합류해 있었는데, 민중서관에 근무하던 필자에게 선배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 왔을 때는 이미 필자도 따로 등산잡지 창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듬해인 1969년 필자가 펴낸 <등산>지는 5월호로 창간되고, 고인이 펴낸 <산수>지는 6월호로 창간되었다. 문공부의 잡지등록은 <산수>가 <등산>보다 앞섰으나 출간이 늦어진 것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탓이다. 당초 광고를 맡기로 했던 김초영(산악사진 작가)씨가 손을 떼는 바람에 잡지 발간에 드는 비용을 고인이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다. 친지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다니던 직장까지 내던졌던 고인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통권 4호를 내놓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잡지에서 손 뗀 뒤 지도를 시작한 것도 비슷하다. 고인은 산에 대한 지형도를 구입하느라 자주 드나들던 중앙지도문화사의 제의로 1973년 제주도와 경주 관광지도의 편집을 맡으면서 지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71년 <등산>지에서 손을 뗀 필자는 <등산가이드>를 발행한 교진사라는 출판사에 들어가 <등산코스안내집>, <설과 암> 번역판, 김홍철의 <산노래>를 펴냈고, 1974년 동양출판사로 옮기면서부터 지도제작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개념 되살려내고 전파한 주역

그 뒤 고인은 개인적으로 펴낸 지도 때문에 사상 초유의 불법지도 제작이라는 죄로 검찰에 입건되면서 일약 ‘현대판 김정호’로 유명해지게 되었고, 1983년에는 아예 광우당(匡祐堂)이란 출판사를 차려 본격적인 지도 사업을 시작했다. 대동여지도 연구에 몰두하던 고인에게 지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와 대동여지도를 보고 싶다고 간청하자, 고인은 대동여지도를 복간해 보급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대동여지도 원본을 백방으로 찾던 고인에게 원본을 선뜻 내어준 사람은 서울 인사동의 통문관(通文館) 이겸노 사장이다. 팔려고 내놓은 대동여지도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고인의 끈기에 탄복한 때문이었다. 1985년 12월 20일에 복간된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이후 무려 124년 만의 일이었다. 대동여지도를 연구하다가 접하게 된 신경준의 <산경표>에 빠져든 고인은 ‘우리 땅 산줄기 물줄기’를 찾는 데 다시 몰두했고, 그 결과 백두대간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0년에는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분석한 <大東輿地圖의 讀圖>란 소책자를 펴냈다.

이 책은 불과 48쪽에 지나지 않는 소책자지만 고지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될 만한 귀중한 책이다. 앞쪽에는 이상태의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와 동여도(東輿圖)’, 류중달(한글학회 연구원)의 ‘한자 표기 땅이름에 대하여’, 황의열(성균관대학교 강사)의 ‘대동여지도 지도유설(大東輿地圖 地圖類說) 국역’이 실려 있지만 17쪽부터는 고인이 쓴 ‘대동여지도의 편집과 제작(編輯과 制作)’, ‘산경·수경(山徑·水經)’, ‘도로·경계·도서(道路·境界·島嶼)’, ‘대동여지도와 산경표(大東輿地圖와 山徑表)’ 등이 실려 있다.

대동여지도의 편집과 제작 편은 지도 제작자의 눈으로 보고 느낀 대동여지도를 지도학적으로 분석해낸 내용으로 고산자의 선행작이었던 청구도와 동여도의 내용을 다루고, 대동여지도에 대한 이용 성과와 도화(圖化), 축척, 지도표(地圖標), 주기명(註記名)의 편집, 도엽의 구성과 제책, 목판의 수정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산경·수경 편에서는 산경의 기준, 산들의 표정, 수경의 독도를 다뤘고, 도로·경계·도서 편에서는 도로와 이정(里程), 군현의 경계, 도서와 위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끝으로 대동여지도와 산경표 편에서는 산경표의 산줄기 기준이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표현과 일치하고 있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의 끝말에서 고인은 고산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산자는 신분과 관계없이 실학에 서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우리 땅의 지도를 그려 온 지도인(地圖人)이다. 당시까지 있었던 많은 지도와 자료를 정리하고 보완해 지도제작에 시방이 되는 지지(地志)를 집필하고 이를 기본성과로 백리척의 전국도를 제작·발전시켜 목판각의 인쇄본인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를 60대 나이에 이룬 것은 도(圖)와 지(志)는 하나의 대경(大徑)으로 위국 곧 치국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실천한 것이다.”

몇 년 전  고인이 생전에 모으고 연구했던 많은 문헌과 자료가 우여곡절 끝에 필자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도 고인과의 질긴 인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세삼 느낀 고인의 지도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도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 지도사(地圖史)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한 성과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월간 산/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