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잔치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이미 형성된 다른 마을들도 있었지만, 한 사람 두 사람 모인 게 어느덧 버젓이 동네를 이뤄갔다.
처음에는 원주민 몇 가구만 있었으나, 가까운 곳에 이주민들이 들면서 거리를 이룬 것이 합쳐져 한 마을이 되었다. 예전에는 원주민만을 마을 주민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주민들도 모두 마을 주민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주민들만으로는 세상과 등을 진 고립무원의 오지 마을일 수 밖에 없었는데, 삼삼오오 늘어나는 그들로 인해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한 대접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물정을 잘 아는 이주민들이 발벗고 나서야 마을 일에 잘 풀리다 보니 원주민이냐 이주민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광장과 공원을 만들어 갔다. 무질서하게 자기 집 앞만 열심히 꾸민다고 손가락질 하는 이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마을은 왠만한 전문가가 설계한 것 보다 정교한 구조로 틀이 잡혀 갔다.
누구의 공이라고 치켜 세울 것도 없이 마을 모든 주민들이 일궈낸 성과였다. 그렇게 마을은 주민들과 더불어 번성해 가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있어서 마을은 제집과 진배없는 한가족이었다.
마을은 잔치를 벌이는 일이 가장 중대한 일과로 꼽혔다.
어제는 김대감네서, 박대감네서 오늘은 개똥이네서, 쇠똥이네서 경쟁하듯, 자유로운듯 잔치를 알려댔다. 원주민이 초대하기도 하고, 장사치들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잔칫집 마당에서 판이 벌어지는가 싶으면, 부엌에서는 주인과 객이 따로 없이 음식을 만들고 나르기 바빴다. 그게 잔치를 더 흥이 나게 하는 비결인지도 몰랐다. 그 흥이 지나쳐 다소간의 고성으로 비화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사람 사는 맛이 더 해지는 것이었으리라. 마을 안에서는 꽹과리 소리, 나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도시마다에 각각 분포된 같은 성향의 마을끼리는 서로 왕래를 했다. 합심하여 떠들썩한 잔치를 벌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한 잔치만을 찾아다니는 친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작은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작은 마을들도 예외없이 들어 앉았다.
마찬가지로 그 작은 마을에서도 골목마다 크고 작은 잔치를 매일 벌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을회관에서 벌이는 잔치는 성대했다.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마을회관 때문에 왠지 주눅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줍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잔치판을 일부러 피하는 이도 있어서 마을회관 잔치에 누가 가랴 싶었다가도 막상 잔치가 시작되면 예외 없이 주민들로 법석댔다. 마을회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나돌아 초상집 분위기라고 했지만, 푸짐한 음식과 선물공세가 이어지는 마을회관의 잔치는 어쨌거나 늘 북적댔다.
대문 앞 널다란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도 편리했고 그럴싸 해 보여서 마을에서 흥 깨나 부리는 사람들은 빠질래야 빠지기 어려운 잔치였다. 서로 티를 안 내긴 했지만, 다음 번 마을회관 잔칫날이 언제인지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마을 생활의 낙이라고 손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을회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 년에 한 번씩 바뀐다는 것 빼고는 마을회관을 지키는 이장님과 그 식솔들에 대해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장님이 그 마을에 살지는 않는다고 수근거렸다. 출근도장 찍으러 온다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다. 잔치 때 마을회관 대문이 열리면 잠시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다른 도시의 마을도 비슷하다고들 했다.
사람들은 이장님과 그 식솔들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아 했다. 잔치가 일상인 그들에게는 그저 성대한 판이 벌어지기만 하면 그만이지 더 이상은 관심사 밖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마을이 형성된 이후에 조그맣던 집 한 채가 몇 갑절은 더 호화롭게 증개축하여 마을회관이 세워졌었다. 하지만, 마을회관의 내부를 제대로 구경해 본 마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방은 몇 칸인지, 가구는 어떤 것을 쓰는지, 광에는 곡식이 얼마나 들어차 있는지 등은 각자 상상으로나 가늠해 볼 따름이었다.
다시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다.
꽃장식이 즐비하고 사물놀이 패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춤과 노래가 펼쳐졌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전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막걸리 한 순배도 돌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이윽고 대문이 열리고 이장님이 식솔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때깔 고운 한복이 빛을 반사하며 눈이 부셨다. 함께 잔치에 섞여 주민들과 어울리기에는 불편한 복장임직 했다.
"이장님 나오십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이 빠져 나오더니 쏜살 같이 이장님 쪽으로 뛰쳐 나왔다.
과묵하기로 평이 자자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들 다음 상황이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왠지 모를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그다지 친분이 있지도 않은 그는 이장님을 향해 과장되게 반가운 척을 하며 쪼르르 달려 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장니~임!"
번번이 큰 잔치를 열어주는 이장님이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의외의 인사말에 주변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순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취기가 화근이었다.
인사말을 제대로 다 하기도 전에, 술에 취한 그 사람은 돌부리에 발이 걸렸고 달리던 속도에 의해 몸뚱이는 공중돌기를 했다. 그러면서 냅다 이장님을 향해 던져지고 있었다.
이장님이 재빨리 몸을 피하자 그 사람은 대문간을 지나 마당 안쪽으로 철푸덕 엎어지고 말았다.
이장님이 슬쩍 눈짓을 했고, 식솔 두엇이 얼른 달려들어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광장에 있던 마을 사람중 일부는 걱정되어 대문 쪽으로 다가왔다.
"많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조신하던 양반이 왜 오늘 저렇게 주책이래?"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대문에 다다를 즈음, 이장님은 마당을 거쳐 안채를 향하고 있었다.
식솔들은 그 사람을 도와서 대문 밖에 이르는가 싶더니 내팽개치듯이 부축을 풀어버렸다. 그 사람은 다시 땅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노기가 들어찬 이장님의 입에서는 나즈막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이런, 여기가 지들 집이야? 어디라고 감히 발을 들여!"
"관아에서 음식 풀어 주라고 해서 판 좀 열어 줬더니만 내가 지들 친구인줄 알아?"
"빨리 문닫지 않고 뭐해! 사람들은 광장에서 놀다 가라고 햇!"
공기를 타고 울려오는 그 중얼거림은 대문 닫히는 삐그덕~ 소리와 함께 너무도 또렷이 사람들의 명치로 박혀 들고 있었다. 너울지듯 두 번, 세 번 파동치며 박혀 들었다.
순식간에 어깨가 축 늘어지고 입은 반쯤 열린채로 마지 못해 서 있는 얼빠진 사람들의 몰골이 대문 앞 적막 속에 갇히고 있었다. 그대로 넋이 나간채 몇날 며칠이 흐르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흥에 겨워 하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오랜 동안 마을을 지키고 가꾸고, 악다구니 쳐가면서 마을을 일구고, 투박하지만 정겹게 살아오며 즐겁게 잔치를 나눴던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휑한 바람이 사람들 사이를 감싸 돌고 지나갔다.
광장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떠들며 잔치에 빠져 있었다. 푸지게 떡과 고기를 양손에 들고 번갈아 뜯으며 껄껄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음식을 싸 가겠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한 줌 더 달라고 밀치는 사람도 있었다.
꽹과리 소리, 징소리가 점점 더 요란하게 울려 갔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 왔다.
"품바, 품바, 잘도 허인다."
"작년에 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씨구 넘어 간다~"
대문 앞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이제까지 한가족처럼 지내던 같은 마을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였다.
대문에 들어서서는 안되는 마을 사람들, 그저 던져지는 떡이나 음식 받아 먹고 즐거워해야 하는 게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품바타령에 마을 사람들이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정지화면 같던 대문 주변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대문 쪽문을 빼꼼이 비집고는 몇몇 마을 사람이 고양이 걸음으로 안채로 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문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전 대문 앞 마을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듯 싶었다. 마치 마을 전체로 안내방송이라도 하는가 싶게 웃음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다.
반대로 마을 전체는 찬물을 끼얹은듯 고요해졌다.
조금전까지 시끌벅적하던 놀이판도 완전히 멈춰섰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마을 회관 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물인지 불인지 모를 어떤 것이 빛을 내며 번져가고 있었다. <옳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