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
그때그때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그것이 행복인 것을…….
그것도 모르고 수많은 시간을 고민과 걱정으로 앞만 보며 달려왔다. 한 가지 걱정이 끝나면 그다음 걱정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중 가장 마음을 꿈틀거리게 했던 것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기쁨을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더라. 더욱이 가까운 인연일수록, 믿었던 사람일수록 상처는 더 진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제 내 삶에서 불필요한 만남과 소음을 줄여가려 한다.
젊은 날의 고독은 차갑고 쓸쓸해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복작이며 외로움을 채워보려 애썼다. 텅 빈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헛헛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 했다.
하지만 삶의 시간이 쌓이고 무게가 깊어진 지금쯤은 딱 알맞은 고독이 필요함을 느낀다.
고독은 더 이상 가파른 절벽이 아니라 안온한 나의 쉼터다.
밖으로 나갔던 시선을 오롯이 내 안으로 가져올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결을 만지게 된다. 세상의 소리 대신 내 안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면 나 자신의 목소리를 반갑게 만나게 되리라.
얼마 전, 친구를 만나 ‘묵언수행’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교회에 다닌 지가 오래되었는데 항상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을 좀 자제하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을 세웠다고 한다.
말은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번져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참아야 할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후회한 적도 많다. 때론 바른말을 해도 화근이 되고,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오해가 생길 때가 있다.
말 많은 세상,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옛날에 말이야’로 시작해 유머인지 농담인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돌아오면서 알맹이 없는 대화 속에 시간을 버리고 온 듯한 허전함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니 만남부터 줄여가야겠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만남에 마음을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묵언수행’이란 외부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함으로써 자기 인식을 높이고 정신적 평안을 얻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즉, 자발적 고독은 외로움과 사뭇 다르다.
적당히 비워진 공간에 알맞은 햇살과 바람이 채워지듯, 내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고요한 시간이 된다.
마음이 너무 차가워서 시리지도 않고, 너무 뜨거워서 나를 지치게도 하지 않는 찻잔의 온기 같은 따스함으로 말이다.
어떤 철학자는 ‘외로움은 혼자 있는 슬픔이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라고 했고, 또 어떤 문학가는 ‘나는 고독만큼 좋은 벗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독이야말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무런 긴장 없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숨구멍이 된다.
왜 그걸 여태껏 몰랐을까.
침묵은 때로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용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느린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혼자 영화 보기, 혼자 천천히 산책하기, 혼자 식당 가기, 혼자 찻집에 가기, 혼자 여행 가기 등 그동안 못 해 본 일들을 하나씩 해 보리라.
그리하여 시냇물 소리를 더 오래 듣고,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보고, 꽃들의 흔들림과 따스한 햇살을 온전히 누리리라.
누군가와 함께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듯, 혼자라고 해서 외로운 것도 아닐 테니.
이제는 나 자신과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우며, 내게 딱 알맞은 고독을 누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