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米山) 허형(許瀅)

목포 최초의 화가인 미산 허형(출처:《목포의 화맥》)
누가 묻는다. "남원(南原)이라는 지역명을 어째 당신이 당신 이름처럼 사용하고 있냐"고. 남원이 고향인 나는 남원이라는 지명을 내 별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목포 최초의 화가인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2~1938)의 제자로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이 있다. 의재는 미산의 아버지인, 진도 운림산방 주인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의 종고손(從高孫)이다.
의재의 제자중 한 사람이 광주에 사는 금봉(金峰) 박행보(朴幸甫, 1935~ )다. 금봉의 제자중 한 사람은 서포(西浦) 김주성(수원대 대학원 문인화 교수)으로, 나는 한때 서포 문하에서 문인화를 배웠다. 그때 서포 선생이 준 호가 바로 남원(南原)이다. 서포와의 인연이 길지 않았다. 서포는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를 거처 인천으로 올라 갔는데 나는 반대로 인천에서 광주를 거처 목포로 내려왔다. 엇갈린 운명이다.
각설하고, 목포 최초의 화가는 미산 허영이다. 미산은 바로 너무 유명한, 운림산방을 재건한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897)의 아버지다. 문헌에 나오는 목포 이주기(移住記)다. "허형은 소치가 작고한 후 한때 운림산방을 상속받아 그곳에서 기거했으나 그후 강진군 병영면으로 이주했다. 허형은 강진에서 8년여를 살았다. 1923년 허형은 목포로 이주했다. 허형은 1923년도 제2회 선전(鮮展)에 '허준'이라는 이름으로 산수화에 입선했다."(《원형의 섬 진도》이레, 2001)
"소치 허련은 1861년 2월 14일 네째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훗날 목포화가 효시가 되는 미산 허형이다.(…)강진보다는 한창 발전하고 있는 신흥도시 목포는 미산이 고객(그림 고객)을 가장 가까히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내 1925년 우람한 죽교동에 안착함으로써 목포 최초의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의 아들 남농 허건과 임인(林人) 허림(許林, 1917~1942)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셈이다.(《목포 예술인들의 빛과 그림자》뉴스투데이, 2009)
뉴스투데이에서 낸 《목포의 화맥》에는 "현대 목포미술은 1920년을 전후로 시작되었다. 목포 최초의 화가는 공식적으로는 1925년에 강진에서 목포로 이주한 미산 허형이지만 이에 앞서 의재 허백련이 1920년 목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고 했고 "목포 화단의 큰 기둥 중의 하나는 한국화, 특히 남종문인화의 전통이다. 이는 목포 최초의 화가가 진도출신으로 강진에서 1925년 목포로 이사해 온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1~1938)선생이라는 점과 관계가 깊다."고 밝혔다.
말이 나온 김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은 한국 남종화의 요람이며 성지이다. 운림산방을 거점으로 삼고 전개된 허씨 가문 4대에 걸친 예술은 진도가 이룩한 인문주의 에술의 절정이며 19세기 한국미술의 꽃이다."(김훈) 허소치 가문 4대를 살펴본다. 1대는 소치 허련이다. 2대는 미산 허형이다. 3대는 남농 허건과 남농의 동생 임인 허림이다. 4대는 임전(林田) 허문(許文, 1941~ )이다. 5대는 허진(1962~ )이다. 목포 남농미술관에가면 소치 일가의 그림을 볼수 있다.
출처:http://blog.daum.net/kcs1025/16883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