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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에는 [빈처] 전반부를 싣습니다.
아래 글은
번역하기 곤란한 어휘와 표현들을 현대문 형태로 살짝 바꾼
'빈처' 전반부입니다.
외국어(중국어 제외)로 번역하여 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진건 현창과 한국문학 외국 현창 차원의 마음으로
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료는 없지만, 책으로 묶을 양이 모이면
<현진건 번역 소설집>을 발간해 드립니다.
빈처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옷장 문을 열고 무엇을 찾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에 앉은 채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그렇게 물었다.
“비단 저고리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
“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내가 왜 그것을 찾는지 알기 때문이다. 전당포에 잡히려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도 배가 고프면 밥을 찾을 줄은 알았다. 그 탓에 아내는 줄곧 가재도구와 옷을 전당포나 고물상에 맡기고 돈을 꾸어 생활해 왔다.
지금도 아내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비단 저고리를 찾고 있다. 나는 책장을 덮으며 몰래 ‘후 -!’ 한숨을 내쉬었다.
봄이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그런데도 방에는 이슬에 젖은 듯한 밤기운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사람을 에워싼다. 밤이 아직 깊지 않지만 비가 오는 탓인지 인적이 끊겼다. 온 천지가 텅 빈 듯 고요하니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이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될 대로 되어라.”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쓰다듬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말이 더욱 처량한 생각을 일으킨다. 나는 또 한 번 ‘후 -!’ 한숨을 내쉬며 왼팔을 베고 책상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오늘 있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난다.
늦게 점심식사를 한 뒤 담배를 갓 피워 물었을 때였다. 한성은행漢城銀行에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놀러 왔다. 친척들은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나는 그들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산다.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도와달라고 조른 적도 없는데 내가 구차한 소리를 할까 봐 미리 눈살을 찌푸리며 말문을 닫게 만드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였다. 따라서 내가 그들을 찾는 일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그래도 T는 특히 가까운 친척인 까닭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T는 성실하고 공순한 성품에, 아주 작은 일에도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다. 나이가 같은 우리 둘은 친척들 사이에서 늘 비교가 되었다. 물론 나에 대한 평판이 항상 좋지 못했다.
“T는 돈을 알고 사람이 진실해서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한글을 낮춰서 부르는 용어)으로 뭔가를 써놓고는 제 주제에 모르고 조선의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고 떠들어대니! 거지같은 놈!”
이것이 그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가로 크게 성장하겠다고 하는 그 자체가 까닭 없이 그들의 비위에 거슬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들의 생일이나 혹은 결혼식 등에 돈 한 푼 보태준 일이 없다. 이른바 착실히 돈벌이를 한 T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어 왔다. 오촌 당숙은,
“얼마 지나지 않아 T는 잘 살 것이고, K는 거지가 될 것이다. 두고 보아!”
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듣게 말하지는 않지만 친부모와 친형제들도 마음속으로는 모두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부모님도 화가 나시면 꾸짖으신다.
“네가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살면 끝내는 빌어먹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도 위로를 하시고, 며느리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란 늦게 성공하는 수도 있는 법이지.”
성공하기 어려운 놈이라고 단념하시면서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셨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사례들은 T의 사람됨을 알게 해주는 일들이다. 그는 우리 집에 오면 일부러 쾌활한 웃음을 웃고, 의도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까닭에 T는 둘이서 조용하게 살아가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반가운 존재였다.
오늘도 그가 활발하게 집에 쑥 들어오더니, 신문지에 싼 길쭉한 것을 ‘이것 봐라’ 하는 듯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분주히 구두끈을 푼다.
“이것은 무엇인가?”
내가 물어 보았다.
“제 처의 양산입니다. 쓰던 것이 벌써 다 낡았고, 또 살이 부러졌다고 해서 새로 샀습니다.”
그는 마루에 올라설 때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는 나의 아내를 보며 갑자기,
“아주머니, 좀 구경하시렵니까?”
하면서 포장지를 벗기고 양산을 펴 보인다. 흰 비단 바탕에 매화 두어 가지를 수놓은 양산이었다.
“검은 우산은 좋은 것이 많았지만 너무 칙칙해 보이고 … 회색이나 누런 것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이것을 샀지요.”
그의 말투는 마치 ‘어느 누구도 이것보다 더 좋은 우산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큰소리를 치는 듯이 느껴졌다.
“이것도 아주 좋은데요.”
아내가 칭찬을 한다. 아내는 양산을 펴 들고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본다.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히 엿보인다. 나는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와락 일어났다. 그래서 아내의 양산 보는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T에게,
“여보게, 이야기나 하세.”
하고 방으로 끌어들였다.
T는 물가 폭등에 대한 이야기, 자기의 월급이 오른 이야기, 주식을 몇 주 사두었더니 꽤 이익이 남았다는 이야기, 얼마 전에 열린 은행원 능력 경시 대회에서 자기가 우수한 성적을 얻은 이야기 등을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T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소설의 결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 곁에서 들린다.
“여보!”
아내의 핏기 없는 얼굴에 살짝 붉은빛이 돌고 있다. 아내가 곧장 내 곁에 바싹 다가앉는다.
“당신도 살아갈 방안을 좀 강구해 보셔요.”
“ ….”
‘또 시작하는구나!’
나는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마땅하게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닫고 있었다.
“우리도 남들처럼 살아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는 T의 양산에 크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본래 아내는 가난한 예술가의 처답게 살아가려는 결심을 굳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것에 상당한 자극을 받으면 참고 참았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나도 아내의 그런 말을 들을 때 ‘아내가 저럴 만도 하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도 없지 않았지만, 불쾌한 기분을 참기도 어려웠다. 나는 잠시 동안 참다가 결국은 불쾌한 빛을 드러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차차 될 때가 있겠지…!”
“아이구, ‘차차’란 말씀 이제 그만하셔요. 어느 천 년에 ….”
아내의 얼굴에 붉은빛이 짙어진다. 아내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흥분한 어조로 심한 말을 내뱉었다. 자세히 보니 아내의 두 눈에는 은은히 눈물이 괴었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이윽고 성난 불길이 가슴을 치며 올라왔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어!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사나운 어조로 퉁명스럽게 ‘꽥!’ 고함을 질렀다.
“에그 …!”
아내는 살짝 얼굴빛이 변하더니 어이없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마침내 한 방울 두 방울 장판 위에 눈물을 떨어뜨린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내일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전당포에 가져갈 옷을 찾는 아내의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바람처럼 내 마음과 몸을 뼛속까지 긁어대는 것만 같다.
크게 들리다가 작게 들리다가 하는 쓸쓸한 빗소리가 적막한 밤공기 탓에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등잔 위를 덮은 바람막이에는 그을음이 가득한데,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은은하다. 어렵게 구입한 서양책의 금박 제목이 그 빛을 받아 문득 번쩍거린다.
2
옷장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아내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오호 … 옳지, 그날 ….”
내가 묻는다.
“찾았소?”
“아니야요, 벌써 … 인천 사시는 형님이 오셨던 날 ….”
“ ….”
아내가 애써 찾던 그것도 벌써 전당포 창고에 들어가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구나! 아내는 본디 작은 그릇 하나도 정성껏 아끼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비단옷을 전당포에 맡겼는지 맡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빈곤이 얼마나 그의 정신을 물어뜯었는지 알 만하다.
“ ….”
“ ….”
우리는 한참 동안 둘 다 말을 하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나 답답해져서 누구와 싸움이나 했으면 싶은 생각마저 일어났다. 소리껏 고함을 질러 보았으면, 실컷 울어 보았으면 하는 이상한 감정까지 부글부글 피어올랐다. 나는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아내에게 드러내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살림 때문에 사는 것이 지겹지?”
정신을 잃은 듯이 서 있던 아내가 흐릿한 눈을 둥그렇게 뜨며 되묻는다.
“네에? 어째서요?”
“그럴 텐데?”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말이 오가는 동안 나는 점점 흥분에 젖는다. 그래서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셔요?”
하고 반문할 때에도,
“나를 바보로 알아?”
하며 격렬하게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살짝 분한 빛을 눈에 띠면서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괘씸하다는 듯이 아내를 흘겨보며,
“내가 그것도 모를까? 오늘까지 잘 참아 오더니 점점 달라지고 있어! 물론 그럴 만도 하기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내 가슴에는 지난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어른어른 나타난다.
6년 전(그때 나는 16세, 아내는 18세였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시기 위해 집을 떠났다. 광풍에 나부끼는 버들잎처럼 오늘은 중국, 내일은 일본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학비가 떨어졌다.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흠뻑 마셔 보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시집 올 때 방글방글 피려는 꽃봉오리 같던 아내가 어느새 시들어가는 꽃처럼 변해 있었다. 두 뺨을 아름답게 꾸며주던 산뜻한 빛은 사라졌고, 이마에는 벌써 두어 줄 주름살이 생겨나 있었다.
나는 처가가 마련해준 집에서 아내와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었는데, 수입이 없었으므로 한 달 지나고 두 달 지나면서 점점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나는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와 작가로서 이름을 얻는 데 이바지하지 못하는 창작에만 몰두했다. 나는 해가 지는지, 아침이 밝아오는지, 집에 쌀이 있는지, 땔감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았다. 그래도 때때로 맛있는 반찬이 식탁에 올라오고, 입은 옷이 그런대로 더럽지 않은 것은 오직 아내의 노력 덕분이었다.
아내라고 해서 무슨 수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친정을 찾아가 식량과 의복들을 얻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 번이나 두 번이지 긴 세월에 걸쳐 줄곧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두 번에 그필 일인 것이다.
마침내 아내는 결혼할 때 가져온 의복, 가구, 그릇 등을 전당포로 들고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그렇게 하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아내는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나의 성공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나의 성공을 빌고 또 빌었다.
언젠가, 내가 글을 쓰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원고지를 집어던지며 혼자서 화를 내었을 때 아내는,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셔요? 저는 꼭 당신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도 장래에 잘 될 밑바탕이에요.”
하면서 스스로 흥분해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나는 한때 외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유행에 빠져 까닭도 없이 구식 여자를 싫어했다. 그래서 일찍 결혼한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어떤 남학생과 어떤 여학생이 서로 연애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공연히 가슴이 뛰어놀고, 부럽기도 하고, 슬픈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런 생각은 없어졌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를 겪어 보니 뜻밖에도 그에게서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였다.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 사랑이었다. 그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행복했으랴! 밤이 깊도록 다듬이질를 하다가 그만 옷 입은 채로 쓰러져 곤하게 자는 그의 파리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하고 깊은 감격이 젖어 혼자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다.
나는 천부의 재능이 별로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작가로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야망을 품고 끊임없이 창작과 독서에 있는 힘을 다 바쳤다. 물론 아직은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그 탓에 일상 생활이 최악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어려움을 아내는 거의 2년 가까이 견뎌왔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글 쓰는 일에서 보람을 성취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방 안에 놓였던 가구가 줄어들고 옷장에 가득 찼던 의복들이 거의 없어졌다.
그 바람에 참을성이 대단하던 아내도 요즘에는 때때로 탄식을 하게 되었다.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먼 산만 바라보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다 말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있기도 한다. 나는 유리창에 비치는 흐릿한 햇빛을 받은 채 앉아 있는 아내의 걱정 가득한 눈에 눈물이 고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럴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생각에 사로잡혀 공연히,
“마누라!”
하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아내는 몸을 흠칫하면서 고개를 저쪽으로 돌려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네에?”
하고 울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가느랗게 대답한다.
나는 등에 찬물을 끼얹은 듯 몸이 오그라지고, 처량한 생각이 싸늘하게 가슴에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 않아도 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하던 마음이 더욱 심해진다. 나는,
‘내가 남편으로서 자격이 모자라는 탓이다.’
하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그러자 더욱 견딜 수 없는 마음 상태가 된다.
‘아내로서는 그럴 만도 하지….’
아내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동시에 불쾌한 생각도 일어난다.
‘계집이란 할 수 없어.’
혼자 그렇게 불평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환등기로 비춘 것처럼 하나 둘 가슴을 짓누르니 이제는 뭐라고 말할 용기도 없어졌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고 위로해주던 아내마저 이제는 나를 그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구나! 아내는 마음속으로,
‘네가 6년 동안 내 살을 깎고 베었구나! 이 원수야!’
하며 나를 원망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내의 불같던 사랑마저 엷어져 가는 듯이 여겨졌다.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감상에 빠져 허둥대면서,
“나라고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었겠소! 비단옷도 해주고 싶고, 좋은 양산도 사주고 싶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있지요. 남 보기에는 줄곧 놀기만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줄곧 보고도 모르겠소?”
나는 강한 가면을 벗고 점점 약한 진상을 드러내면서 우스꽝스러운 변명까지 하였다.
“세상 사람이 모두 나를 비웃고 모독해도 상관이 없소. 그러나 마누라까지 믿어주지 않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요?”
그렇게 말하다가 나는 스스로 감정에 복받쳐 올라 마침내,
“아아.”
하고 탄식을 하며 그만 쓰러졌다. 그 순간,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입술만 물어뜯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여보!”
하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무너지는 듯이 내 얼굴에 쓰러진다.
“용서 ….”
하고는 북받쳐 나오는 울음에 말이 막히고, 불덩이 같은 두 뺨이 내 얼굴을 누르며 흑흑 흐느껴 운다. 아내의 두 눈에서 샘솟는 눈물이 자신의 뺨과 내 뺨 사이를 따뜻하게 젖어 퍼진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뒤숭숭하던 생각이 아내의 뜨거운 눈물에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한참 있다가 우리는 눈물을 씻었다. 나는 속이 어느 정도 시원한 느껴졌다.
“용서해 주셔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어요.”
말을 하면서 아내는 눈물 때문에 부풀어 오른 눈꺼풀을 아픈 듯이 꿈적거린다.
“암만 어렵더라도 싫증이야 날까요! 나는 한번 먹은 마음이 있는데 ….”
가만가만 변명하는 아내의 눈물 흔적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가까스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