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발톱에 채인 이무기, 생명이 위태롭다
[태종 이방원 140] 민씨 형제의 자백
이정근 (ensagas)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병조정청
임금이 편전이 아닌 병조정청에서 대소신료들과 마주 앉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문의 형벌도 가할 수 있다는 암시다. 병조에는 부속 시설로 순군옥이 있다. 주리를 틀고 불인두질을 하는 참혹한 형벌이 실시간 진행되는 곳이다. 임금의 친국명령은 없었지만 병판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언제라도 실시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 없이 시행해야 한다.
국문에는 친국(親鞫)·정국(庭鞫)·추국(推鞫)·삼성추국(三省推鞫)이 있는데 어떠한 국문에서도 죄인에게 형벌을 가하되 죽으면 책임추궁을 당한다. 그래서 형리들은 형을 가하면서도 당하는 사람 못지않게 진땀을 흘린다. 강하면 죽을 것 같고 약하면 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을 모신 친국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매우 쳐라'는 구령에 따라 움직이고 죄인이 죽어도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이 정좌하고 좌우에 대소신료들이 자리했다. 싸늘한 냉기만 흐를 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이조판서 황희가 입을 열었다.
"민무휼 형제가 서로 죄를 숨겨준다 하더라도 그 정상이 이미 나타났으니 대질을 하지 않더라도 그 곡직이 이미 판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자와 함께 대질하는 것은 서로 송사하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신하가 어찌 같이 앉아서 그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사필(史筆)에 전할 것이니 그리 하도록 하소서."
"옛날에 이와 같은 일이 있어 내 몸소 처결하여 그 진망(眞妄)을 변정하였는데 별로 해됨이 없었다."
"이무의 일은 전하가 친히 결단하여 그 죄가 곧 밝혀져 천토(天討)를 당하였으나 이 일은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황희는 죽음으로까지 가야 할 크나큰 일로 생각하지 않았고 태종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그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서로 대질 변론케 함으로써 그 진망(眞妄)을 결정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임금의 의도는 분명했다. 세자와 인친이 관련된 일이니 대소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처리하여 후일의 잡음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세자 양녕대군이 중앙으로 나와 앉았다. 모든 신료들의 시선이 세자에게 쏠렸다. 뒤이어 민무휼 민무회 형제가 나와 무릎을 꿇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장내를 감돌았다.
세자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중궁이 편찮으실 때, 내가 효령, 충녕 두 대군과 함께 병구완을 하고 있었는데 두 외숙과 민계생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두 대군이 탕약을 받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민무회 외숙이 가문이 패망하고 두 형이 득죄(得罪)한 연유에 대하여 말하기에 신이 듣기 거북하여 '민씨 가문은 교만 방자하여 화(禍)를 입음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민무회 외숙이 화난 목소리로 '세자는 우리 가문에서 생장하지 않았습니까?' 하며 눈을 치뜨고 바라보기에 내 마음이 언짢아서 바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민무휼 외숙이 따라와서 나를 세우고 말하기를 '잡담이니 잊어버리기 바랍니다'고 한 일이 있었는데 위의 말들을 두 외숙이 하지 않았습니까?" - <태종실록>
이 때 세자 나이 스물한 살이다. 양녕은 이방원 잠저시절 외가에서 태어났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효령과 충녕을 비롯한 다른 대군들보다 외가에서 자란 외손자가 차세대를 이끌어 갈 세자가 되었으니 민씨 가문 또한 기대가 컸다. 허나 기대는 정반대로 흘러 가문의 몰락을 불러왔다. 태종이 잠저시절 대학연의에서 공부한 외척 척결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혼매(昏昧)함이 너무 심하여 기억해 낼 수 없습니다."
민무휼은 바짝 얼어붙었다. 항상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양녕의 성장에 놀랐고 기억력이 두려웠다.
"외숙이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무슨 까닭에 이런 망령된 말을 하겠습니까?"
드디어 입을 연 민씨 형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때 세자가 말한 것을 두 형들의 득죄 때문에 저희 일문(一門)을 욕하는 것으로 여겨져 속으로 불평을 품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민무회가 시인했다. 그러나 민무휼은 부인했다.
"저는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자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형조판서 윤향이 물었다.
"듣지 못했습니다."
"민무회는 이미 자복하였는데 공은 어찌 솔직하지 못하는가?"
우사간 이맹균이 다그쳤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민무회가 이미 자복하였으니 공이 비록 말하더라도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형조와 대간을 비롯하여 좌정한 대소신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민무회는 자복하여 진정을 다 말했는데 민무휼은 간사하기가 더욱 심하여 아직도 숨기고 있으니 청컨대 유사(攸司)에 내려 고문(拷掠)을 가하여 국문(鞫問)하소서."
"그들의 노모가 병을 얻었으니 아직은 그리 할 수 없다."
형조와 대간에서 재삼 형문을 청했으나 임금은 거절했다.
적막을 깨고 임금이 입을 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병조정청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동생 민무휼을 바라보고 있는 민무회의 안타까운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민무휼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적막을 깨고 임금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묻겠다."
한 박자 건너뛰며 호흡을 가다듬은 태종이 민무휼을 노려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육조(六曹)·대간(臺諫)과 나를 모두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가? 너에게 형문을 가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겠는가?"
임금의 목소리는 추상같았다. 복더위의 열기로 가득한 정청을 금방이라도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임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장내를 울리자 민무휼이 삼복더위에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태종의 목소리는 민무휼에게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잡담이니 잊어버리기 바랍니다'고 한 것은 신의 말입니다."
민무휼이 시인했다.
"너는 무슨 마음을 품었기에 그와 같은 말을 하였는가?"
"그때 헤어지는 순간이었기에 신이 말하기를 '잡담이니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하고 각자 돌아갔을 뿐입니다. 무슨 마음이 있어서 이 말을 하였겠습니까?"
"내가 평상시에 항상 너희들을 가르침에 있어 왕도(王導)와 왕돈(王敦), 주공(周公)과 관채(管蔡)의 일들을 인용하기까지 하면서 간절하게 말하였는데 너는 아직도 살피지 못하고 묻는 일에 대해 사실대로 고하지 않는단 말이냐?"
왕도는 진나라 때 중부(仲父)라 일컫는 충신이었으나 그의 동생 왕돈이 부마가 된 후 난을 일으켜 멸문했으며 주공(周公)은 주나라 때 문왕의 아들로서 형을 받들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고 주나라 왕실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이다. 관채는 주공의 동생들로 조정에 반감을 품고 은나라의 반경과 함께 삼감(三監)의 난을 일으켜 멸문지화 당했다. 형제간의 우애와 의리를 논할 때 등장하는 고사다.
"헤어질 때에 '잡담이니 잊어버리기 바랍니다'고 한 말은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한 말로서 진실로 사심 없이 한 말입니다. 무슨 마음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전하, 이들의 불충이 드러났으니 극형으로 다스려 후일의 경계로 삼으소서."
"경계로 삼으소서."
"삼으소서."
모든 대소신료들이 머리를 주억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외방에 안치하라."
민무휼, 민무회 형제는 경기도 해풍에 안치되었다. 이들이 귀양 떠나던 날을 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원 안치된다는 소리를 들은 대부인(大夫人)이 '내가 늙었으니 어찌 이 세상에 오래 살 수 있겠느냐? 두 아들을 따라 가고 싶다'고 하였다니 그 말이 슬프다. 특별히 늙은 할미를 염려해서 국론을 거부하고 너희들에게 죄주지 않는다. 내 진실로 조정대신들의 비평을 받을 줄 아나 사정(私情)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다. 대언이 의금부로 하여금 압송할 것을 청하나 내 마땅히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보내겠다." - <태종실록>
실록은 쓴 자의 기록이다.
2007-08-12 17:13 ⓒ 2007 OhmyNews
첫댓글 용의 발톱이 무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