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도선사
도선사에 들러 사찰의 경내를 둘러봅니다.
북한산 자락 우이동에 자리한 도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강북의 도선사, 강남의 봉은사」로 불릴 만큼
도선사는 서울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1천1백년 전 신라 경문왕 2년(862) 도선국사가 창건한 이 절은
호국의 분위기가 짙은 생활불교, 실천불교의 기풍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선사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오랫동안 암자 수준에 머무르다가
이청담대종사가 15년 간 주석하면서 사세가 커졌습니다.
도선사는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북한산국립공원 쪽으로
3㎞가량 걸어가면 백운대와 인수봉 등
수려한 경관에 둘러싸여 있는 사찰입니다.
일주문 양쪽 도로변에는 수 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으며
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이름 모를 화사한 원예꽃이 피어 있습니다.
대웅전 앞 배를 드러낸 불상에는 한 젊은 여성이
부처님의 배를 손으로 열심히 주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를 손바닥으로 돌리면서 만지면 부귀영화, 무병장수,
그리고 자식복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화려한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기도실의 처마에는 종과 물고기가 매달려
사찰의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바람이 불면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릴 것입니다.
사찰 뒤로 북한산 만경대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대웅전 앞 기도실안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저 마다의 소원을 열심히 빌고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 마애석불 앞으로 가니
이곳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
일어서서 절을 계속하는 사람 등 소원을 비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도선사 마애석불(Ma-ae Stone Buddha)(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호)은
신라 경문왕 2년 (862) 도선국사가 조성했다고 전하며,
높이 20미터의 암벽에 몸의 높이 8.43미터, 머리높이 2.15미터,
어깨폭 2.88미터로 몸통은 원통형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기도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장독대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습니다.
한 구비를 돌아 종각으로 가니 물고기 형상의 나무조각이 매달려 있습니다.
불교에서 이는 무엇을 뜻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도선사를 떠나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도선사]
서울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사찰 진입로인 포장도로길 청담로를 따라 '
도선고개'와 청담대종사의 진필 휘호인 "자비무적,
밤생도량"이 새겨진 자비문과 바위고개 청담폭포 등을 지나 2.5km쯤 오르면
삼각산의 주봉인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을
배경으로 도선사의 현관인 안양암과 마음의 광장이 나타난다.
호국참회 본찰 도선사는 1,100여 년전 신라말의 유명한 도승 도선국사가
명산승지를 답사하다가 산세가 절묘하고 풍경이 청수하여 천년후 말세불범이
이곳으로부터 재흉하리라 예언하고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도선국사는 신통력으로 사찰 옆에 서있는 큰 바위를 반으로 잘라
그 한쪽 면에다 20여책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새겼다고 하는데 ,
이 마애불상은 정으로 쪼은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조선조 광무 7년에 광무황제로부터 정식으로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은바 있는
도선사가 오늘날의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조계종단의 종정과 총무원장, 종회의장, 장로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신
한국불교정화유신운동의 총수 청담대종사의 대원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수행불교, 실천불교, 생활불교로 불교의 중흥을 꾀하자는 청담대종사의 호국참회 사상이
대종사의 뜻을 받든 제자들과 고 육영수 대덕화보살을 비롯한
뜻있는 신남신녀 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모아져 호국참회사상을 펼치는
근본도량으로 크게 중창되었다.
경내로 들어서면 호국참회원의 옹자와 마주치는데 이 건물의 청담기념관에는
청담대종사의 유물과 선필을 만날 수 있다.
천불전으로 오르는 길 옆 연못청담 심지에서는 참배객들이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명부전에는 생전 인연이 깊었던 고 박정 희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대덕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영정이 봉안되 있으며
명부전 앞뜰에는 200여 년전 어떤 고승이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고목이 되어 있고 12세 소년이 썼다는
기록이 새겨진 대웅전 현판글씨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