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에 걸친 고린도 선교는 바울의 재판 사건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 재판은 바울에게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갈리오 총독은 유대 종교와 신앙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로마정부의 공식입장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시기의 클라디우스 황제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 때 로마에서 쫓겨나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갈리오 총독의 입장은 바울로 하여금 고린도에서 자유롭게 전도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다음에, 이 재판은 바울에게 로마 본토에 복음을 전할 동기를 부여하였습니다. 이 재판을 경험한 바울의 전도의지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재판과정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는 누가의 기록처럼 이 재판은 주께서 도우신 사건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재판으로 바울은 로마관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로마관원의 관용을 힘입어 로마로 접근할 기회를 찾아 소아시아로 옮겨간 것입니다.
에베소 전도를 앞두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에서 소아시아로 떠난 바울은 겐그레아에 도착하여 서원을 마치는 의식을 하였습니다. 서원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민 6:5절을 볼 때 바울이 이 서원을 마치는 의식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것은 바울이 한 서원은 나실인 서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을 예로 나실인 서원에 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한 그 서원이 마칠 때 까지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우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자기의 전체를 바치기로 서원하였었고, 2차 전도여행을 마치는 즈음에 겐그레아에서 서원한 것을 마치는 의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유대 율법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머리털을 바쳐야 했지만 바울이 그렇게는 하지 않았던 것은 그 서원이 율법적인 규범을 지키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칫 포기하기 쉬운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자 하는 다짐을 표하려고 서원한 것입니다.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맹세입니다. 서원한 사람은 하나님에게만 책임이 있고,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것은 서원이 그 자신과 하나님의 밀접한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부흥회나 수련회 같은 곳에서 강요된 서원이나, 자기 부모가 했던 서원이나, 혹시 잘못 서원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풀 수도 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서원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정하고 뜻을 정하는 신앙의 자세는 드높여져야 할 것입니다. 단 1:8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뜻을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원은 다니엘처럼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 속에 던져져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바울과 같이 신앙의 순수한 동기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자세로 특별한 일에 뜻을 정하고 서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가진 삶이 보다 더 성숙되고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이웃을 돕고자 하는 선한 사업을 위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에 뜻을 정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마친 바울은 에베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오기를 기약하며 안디옥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칠 때 들른 곳이자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들르는 곳이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최후의 선교 중심지로 정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전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볼로라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초기에 그를 믿고 전도활동을 한 인물입니다. 곧,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수난과 부활 사건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성령강림 사건을 모른 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아볼로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따라 기독교 신앙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보편적인 신앙고백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과 또 그 이후에 나타난 여러 가지 신앙고백문이나 신조는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보편적인 신앙고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교회를 공교회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사람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일찍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곳입니다. 헬라 학문이 번성한 도시입니다. 아볼로는 이러한 지방에서 났기 때문에 구약성서는 물론, 헬라어, 철학과 웅변술, 수사학 등에도 능통했습니다. 그는 바울 못지않은 학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과는 달리 초대 교회와 예수를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세례” 밖에 몰랐다는 것은 성령세례, 성령강림을 몰랐다는 뜻인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몰랐습니다. 아마 그는 위대한 스승이나,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볼로는 성령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령에 대해 들어본 일도 없고, 오순절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강림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볼로가 뛰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중요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있으나 아볼로와 같이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과,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지 못하면 그것은 중요한 약점을 가진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적인 신앙에 벗어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 3:1절에서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신 것과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충고를 수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볼로의 설교를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는 그의 신앙에 부족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볼로를 초청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믿는 사람과 함께하시는 성령에 대하여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가르침은 이들 부부가 가졌던 개인적인 신앙의 견해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사도들이 전한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반영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사도적인 교회에 관해서 배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구성되어진 교회입니다. 저마다 알고 있는 예수님이 다 다른데 그것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힘이 벅찼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질서 유지를 통해서 진리를 바로 전한다”는 실제적인 필요성에서 예수님의 직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교권을 세우고 사도중심적인 교회를 이루었다고 보여집니다.
고전 3: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 이후에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바울과 동등한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고,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지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볼로는 복음을 전하는데 바울과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아볼로를 배척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서로 용납하기를 말한 것입니다.
한때 “캠퍼스 베뢰아 아카데미”라는 모임이 대학생과 평신도들 가운데 큰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이라 부르는 모임입니다. 그러나 그 모임이 기존교회에서 가장 큰 반발을 산 것은 귀신론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기존교회는 그 귀신론을 잘못된 견해라 말했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 가정이 이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이분들을 잘 가르쳐보고 잘 설득해 보라는 말씀을 듣고 심방을 갔었습니다.
저는 아는 대로 방언을 해야만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 안 믿고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병은 귀신 주는 것이 아니다 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그 귀신론의 잘못된 점들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실이야 어떻든지 자신들은 지금 그 모임에 나가면서 신앙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어떤 기준이 없이 개별적인 경험만 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의 설득은 실패로 끝났고 그 후로 저는 그분들을 다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일군이요,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배움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배움이 없으면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기 쉬운 것입니다. 아볼로는 올바른 가르침 앞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비추어보고자 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를 무시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올바르게 배워 다른 것과 잘못된 것을 분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볼로의 훌륭한 면은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일에 자기를 개방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학문이나 성경의 지식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보다는 우위에 있었던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복음과 사도적인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그들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아볼로에게 복음의 진리를 잘 가르칠 수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훌륭함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아볼로가 자신이 몰랐던 한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며, 사도적인 전통 속에 자신을 내어줄 수 있었던 진리 앞에서의 겸손함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초대교회의 발전에 한 몫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딤후2:15절 아래에서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있느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예수가 구주이신 것과,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을 신앙의 올바른 기준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이 빠진 아볼로의 신앙을 바로 인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올바른 일군이 되기 위하여 다른 견해와 잘못된 견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오래전에 잠간 일어난 일입니다만 후에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큰 결실을 거두는 사역자가 되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 교회의 설립자요, 주춧돌이 되었으며 그 공적이 오늘날까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모두는 예수를 배우기에 더욱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배우되 지식만 느는 배움이 아니라 삶이 달라지는 배움에 힘쓰시고, 사도적인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받아들이시고,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