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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상권 상당 대기 12. 그대들에게도 단주의 바늘이 있느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그대들에게도 단주의 바늘이 있느냐. 있거든 한번 가져와 보아라. 있느냐, 있어?"]
운문선사가 상당하여 한 말씀의 향상일구(向上一句)를 든집니다.
“대중들이여, 그대들에게도 단주의 바늘이 있느냐?” 여기서 단주의 바늘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단주는 박달나무나 전나무로 염주알을 크게 만들어 11개의 둥근 나무 구슬로 만들어 손에 들고 다니는 염주를 말하고 염주 중에 제일 많은 것은 108번뇌를 표현하는 108염주가 제일 맗습니다. 요즘은 단주를 가지고 다니는 스님은 주로 선승들이 많이 들고다니며 선원에 수좌스님이나 회주자 주지스님등이 선승들의 규율이나 규정을 지키지 않을 때 이 단주로 선승들을 꾸짓을 때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선승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단주에 대한 한편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선원의 해제철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방선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잠시도 좌복 위를 떠나지 않던 수좌 스님도, 지대방에 딩구는 것이 즐거움인 선객도 해제한 선방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날 동안 운수의 행각을 마치고 저녁 무렵 찾아든 선방은 추녀 밑 노을만 황홀할 뿐 숨죽인 고요만이 흐른다. 그 고요 속을 사뿐한 걸음으로 포행을 하다보면 어디선지 “딱 딱’ 하는 나무 부딪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 나는 진원지를 찾아 살며시 선방의 문을 열어 보면 어김없이 혼자 남은 노승이 척량골 곧추 세우고 좌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노승의 손에는 으레 탁구공 크기 만한 윤기 나는 구슬 다발이 들려 있으니 , 이것이 바로 단주이다. 단주는 이처럼 선원의 수좌스님들이 화두를 참구할 때 돌리며 사용하는 완구품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긴 호흡의 한순간 한순간마다 단주를 돌릴 때 알들이 부딪혀서 나는 것이다. 출가 사문이라면 누구나 처음 출가했을 때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도는 선원의 적막이 좋아서 선방의 뒷 뜰을 배회하다가 노스님의 손에 들려 있는 이 단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주는 주로 향나무나 먹사쿠라나무처럼 재질이 단단하고 향기로운 나무로 만든다. 보통 열 한 개쯤의 구슬을 철사에 끼워 둥그렇게 만들어 사용한다. 예불할 때나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릴 때 사용하는 염주(念珠)는 백팔 개지만 그 절반인 쉰네 개의 작은 알로도 만들어지는데, 이것의 재료는 율무나 보리수 열매이다. 흔히 염주가 염불이나 절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면 이 단주는 참선할 때 주로 사용한다.
선 수행을 히는 이들에겐 누구나 이 단주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날 한바탕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시간에 정진 자리를 지키며 수마와 다투느라 정신을 놓고 있으면, 선원 조실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그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단주 세례를 받는 기억 말이다. 눈에 불이 나게 한대 얻어맞으면, 수마는 깨끗이 달아나고 새로운 마음으로 화두 길을 찾아가게 된다. 어쩌면 수선 납자는 장군 죽비보다 단주세례를 받을 때 스승과 상좌사이의 정겨움을 느낄 것이다.
칠십 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선방에는 이 단주가 무척 많았으나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편리하고 간편한 것만 쫓는 요즈음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수행의 길에 마음이 흔들릴 때나 길이 막힌 듯 답답할 때면 이 단주의 경책이 무척 그리워지곤 한다. 단주와 비슷한 염주에 대하여 그 내력을 좀 알아보고자한다.
염주(念珠)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등 인도 계열 종교에서 염불(念佛)ㆍ독경 등을 할 때 손에 들고 번뇌를 없애고 횟수 등을 헤아리는 데 사용하는 법구(法具)를 말한다. 염주를 가리키는 다른 단어로 수주(數珠)ㆍ송주(誦珠)ㆍ주주(呪珠)ㆍ불주(佛珠)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염주라 하고, 일본에서는 수주(数珠)[1]라고 한다. 산스크리트로는 자빠말라(japamala)라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도 염주와 비슷한 수브하를 사용하는데 알은 99개이다,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짧은 기도문 3개(수브한 알라ㆍ알 함두릴라ㆍ알라후 아크바르)를 각 33번씩 하고 마지막으로 이마메(imame)라 불리는 기둥모양의 구슬에서 일라하 일랄라 1번 하므로 작은알 99개, 이마메 1개로 구성된다. 혹은 33번씩 하는 기도를 하고 한바퀴 새로 돌려서 시작하기 때문에 구슬 33개+이마메 1개로 된 것들도 있다. 특히 지크르라는 기도를 하는 수피즘 신자들이 많이들 쓰며 터키와 시리아에 흔한 알라위파에서도 비슷한 기도도구를 자주 사용한다. 염주의 기원에 대하여 좀 알아본다면 불설목환자경에 기록을 보면 변방의 작은 나라 난국(難國)의 왕 파유리(波流離)가 보낸 사신이 왕의 명을 받고 '근심할 일이 많아 일념으로 불도를 닦을 수 없으니, 손쉽게 불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처님께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무환자나무(목환자)를 깎아 만든 알 108개를 한 줄로 꿰어 이 알을 헤아리면서 불-법-승 삼보의 이름을 부르는 염불법을 가르쳐 주셨다. 덧붙여 이 염주를 항상 지니며 염불하기를 20만 번에 이르면 명이 다해 죽더라도 천상에 태어날 수 있으며, 100만 번에 이르면 모든 번뇌가 사라져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설하셨다.
위 경전은 동진 시대에 번역된 것으로 전해지나 역경사의 존재가 잊혔다. 염주를 착용한 최초의 보살상이 북위 시대로 소급해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염주는 기원후 4~5세기 경이 되어서야 대승 불교를 통해서 중국인들에게 존재가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 대승 불교에서의 염주는 주로 재가 불자가 착용하는 것이었으나, 중국에서는 출가 승려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중국에서 염주가 염불 수행과 연결되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정토종의 승려 도작(道綽, 562~645)에 의해서였으며, 7세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염주를 착용한 승려들의 초상화나 목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불교에서 말하는 염주의 시초이지만, 가톨릭의 묵주나 이슬람교의 타스비흐(Tasbih) 정교회의콤보스키니(comboschini)등 전세계의 종교를 통틀어 염주와 비슷하게 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기도도구들이 존재한다. 구슬, 매듭을 이용해 수를 세는 방법은 고대 여러 문명에서부터 수를 세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아주 흔하고 원초적인 발상이니...
특히 가톨릭에서 쓰는 묵주와 유사해보여서 헷갈리는 사람이 꽤 많다. 불교 염주에서 가톨릭의 묵주가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으나 근거 없는 주장이다. 불교의 염주도 불교 이전 힌두교의 염주(Mala)에서 받아들인 것이거니와, 기도문 횟수를 헤아리고자 헤아림 도구를 만드는 것은 별로 희한한 발상도 아니다. 불교에서 하는 염주와 천주교의 묵주는 기도도구로서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기도방법이며 정확한 유래, 의미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염주와 묵주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은 일종의 수렴 진화인 셈이다. 염주알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본다면 「금강정유가염주경」에 따르면 구슬들은 보살의 훌륭한 과(果), 이 구슬들의 중간에 구멍을 뚫은 것은 번뇌를 근절시키는 것을, 실로 꿰는 것은 관세음보살, 주불은 아미타불을 의미한다.
또 염주알의 재료에 따라 그 공덕이 다르다고 하는데 역시 「금강정유가염주경」에 따르면 자거(硨磲)로 만든 염주 그 복이 1배(倍), 목환자로 만든 염주 그 복이 2배, 철로써 만든 염주 그 복이 3배, 숙동(熟銅)으로 만든 염주 그 복이 4배, 수정과 진주 등 모든 보배로 만든 염주를 굴리면 그 복이 1백 배나 된다고 한다. 제석자(帝釋子)로 만든 염주 그 복이 1천 배, 금강자(金剛子)로 만든 염주 그 복이 구지(俱胝), 연꽃의 씨앗(蓮子)으로 만든 염주 그 복이 1천 구지, 보리자(菩提子, 보리수 나무 열매)로 만든 염주 그 복이 한량없다고 한다.
주의할 점은 경전에서 말하는 보리자는 국내 불교상점에서 파는 보리자가 아니라, 인도에 나는 인도보리수 열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절/불교계에서 흔히 보리수/보리수나무라 부르는 것은 피나무속에 속하는 보리자나무나 염주나무, 찰피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 열매들은 동그랗고 단단하여 염주알로 사용하기에 좋다.
부처가 그 밑에서 성불했다고 하는 인도보리수는 무화과나무속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기후 때문에 온실 없이는 자라지 못한다. 그런데 일부 비양심적인 불교매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경전의 '보리수' 구절을 들먹이며 피나무속 나무 열매로 만든 염주로 폭리를 취한다. 수정이나 산호 염주는 국내에서도 진품을 의외로 싼 값에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특히 제주도에 가면 기념품점 곳곳에서 특산물인 흑산호 염주를 판다. 물론 일반 수정 염주보다는 좀 비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불설목환자경에서 목환자(무환자)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를 권하기 때문에 알음알음 수요가 있다. 그런데 막상 무환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혼선이 있다. 불경에서 말한 무환자는 학명을 무환자나무속이고 '모감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모감주'라고 불리는 다른 나무가 있다. 또다른 모감주나무는 학명이 모감주나무속이다. 둘 다 열매가 염주 만들기 좋게 크기가 적당하고 새카만 데다 명칭도 혼동스러워서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나무를 아는 사람 눈에는 두 나무가 구분된다고 한다. 일단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무환자나무, 모감주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염주라고 하면 108염주를 말한다. 108개를 꿰는 이유는 108번뇌를 뜻하는 것으로, 이것을 하나씩 손가락 끝으로 넘기며 염불을 하면 인간의 번뇌를 하나씩 소멸시킨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주불을 넣어서 108이냐 안 넣어서 108이냐는 항상 소소한 다툼을 일으키는데 이건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된다.
이 외에 108의 절반인 54주는 보살의 수행을 상징하며, 27주는 상좌부 불교에서 수행자들의 27종류를 상징한다. 14주는 '관세음보살의 14가지 두려움 없음'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보살 수행의 42지위를 상징하는 42주, 보살 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십지와 보살이 실천해야 할 10가지 덕목인 십바라밀에 깨달음을 뜻하는 불과(佛果)를 합쳐 21위를 뜻하는 21주 등이 있다.
「금강정유가염주경」에 따르면 염주는 4가지, 즉 상품ㆍ최승ㆍ중품ㆍ하품으로 나눈다. 1080염주는 상품(上品)이고 108염주는 최승(最勝)이고 54염주는 중품(中品), 27염주는 하품(下品)이다.
조선시대에 만든 염주는 흔히 모주(母珠)/주불(主佛)이 두 알 있다. 하나는 현대 염주의 주불과 같은 위치에, 다른 하나는 염주알들의 중간에 있다. 두 주불을 구분하여 상주불(上住佛)/하주불(下主佛)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적어도 흔히 볼 수 있는 자료에서는 두 주불 중 무엇이 상주불이고 무엇이 하주불인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하주불은 미륵불을 상징한다고 한다.
염주 중엔 1000주ㆍ1080주ㆍ3000주 등도 염불이나 절의 회수를 헤아리기 위해 사용되는 염주도 있다. 1000주 정도 되면 보통 일반 염주처럼 양 끝을 연결하지 않는다. 사용법은 한 쪽에 똬리를 만들어 쌓아놓은 뒤 다른 쪽으로 구슬을 하나하나 옮기면서 염불하는 것. 보통 절에 가면 불단 옆에 작은 바구니를 놔두고 그 안에 똬리를 틀어서 보관한다. 사용해 보고 싶은 사람은 바구니 채로 들고 가서 쓰고 다 쓴 뒤엔 다시 똬리를 틀어서 제자리에 두면 된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염주는 알이 크고 개수가 적은 단주이다. 사실 단주는 단지 편하게 쓰기 위해 줄어든 염주이다. 스님들도 편의상 단주라고 부를 뿐, 별개의 법구가 아니다.
염주를 돌릴 때 종종 가장 큰 구슬인 주불(主佛), 흔히 '주불 구슬'이나 모주(母珠)라고 부르는 알에서 "안에 부처가 계신데 어찌 감히 그냥 굴릴 수 있나?"라고 하면서 주불에서 손가락을 돌려서 돌리던 방향의 역방향으로 다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방법은 100% 잘못된 방법이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불교의 방식이 아니라 힌두교의 염주 사용방식이다. 여러 불교 서적에서 항상 지적된 사항이지만, 이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꼭 주변 사람들을 가르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이상한 예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그냥 과감히 주불을 넘겨서 돌리는 게 낫다.
미국ㆍ중국ㆍ유럽ㆍ일본 등 외국 불자들을 만나보면, 대한민국 염주와 달리 디자인이 쓸데없는 장식을 달아 화려하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상(相)에 집착함을 경계하는데 화려한 염주에 집착하는 것도 하나의 상(相)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팔에 차고 다니도록 만든 단주나 합장주는 알의 개수가 더 적다. 위에서 말한 대로 숫자를 지켜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그냥 팔에 맞게 만드는 듯. 과거에는 보리자나무 열매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산호ㆍ수정ㆍ벽조목ㆍ복숭아나무ㆍ플라스틱으로 만든다. 무교에는 대추나무와 복숭아나무에 귀신을 쫓는다는 신앙이 있기 때문. 중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복숭아나무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는 민간전승이 있다.
일본에서는 종파에 따라 염주의 모양이 모두 다르고 알의 개수도 다르다. 정확하게는 모주에 달리는 술의 모양에서 차이가 나뉘고, 종파에 따라 잡는 방법도 다 다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마음대로 잡는 경우가 많아서 염주를 사면 가게 직원이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제일 희한하게 생긴 염주는 정토종 염주. 대한민국 염주와 가장 비슷한 염주는 선종(임제종ㆍ조동종)의 염주이다.
일본에서는 단주를 편수수주(片手数珠), 편수염주(片手念珠) 또는 약식수주(略式数珠)라고 부른다. 그냥 '수주'라고만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래 편수(片手)란 한쪽 팔, 또는 외팔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약식'이란 뜻으로 쓰였다. 편수수주는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일본 드라마에서 장례식 때 나오는 술 달린 단주가 바로 편수수주인데, 장례식과 제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장례식(남의 장례식 포함)이나 제사에 참석하려면 필요해서 한 번 사놓고 쓸 때 말고는 집에 묵혀두는 듯? 편수수주를 왼손에 쥔 채 향을 피운다. 신토 신사에서 신주와 무녀가 쓰기도 하며 일반인들도 많이 쓴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운문선사의 상당화두는 “대중들이여, 그대들에게도 단주의 바늘이 있느냐. 있거든 한번 가져와 보아라. 있느냐, 있어?”라고 하시였습니다. 여기서 단주의 바늘이 있는냐?라고 하시었습니다.
이 말씀은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염주나 단주는 그 구슬을 꿰어야만 보배가 되듯이 모든 삼라만상의 형상도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지듯이 무엇인가 구슬이라는 것도 용의 작용을하려면 이것을 역어 꿰어줄 바늘이 있어야 염주나 단주를 만들어 내듯이 용은 바로 선기 방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그렇게 작용을 잘 할 수 있는 선기방편인 바늘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화두를 던지고는 이렇게 말씀을 이어갑니다.
“있거든 한번 가져와 보아라. 있느냐, 있어?"라고 소리칩니다.
여기서 다시 있다 없다라는 양변을 들고 나옵니다. 모든 것은 차별적 분별심으로 바라보면 다 빛나가는 것입니다. 있다 해도 없다라는“무(無)”를 해석할 수 없으며 본래공을 어떻게 설파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없다라고 한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양변을 벗어나는 길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는 빛의속도로 찰라간을 설명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두면 바로 연기법으로 변해버리니까 답이 아닙니다.
삼세인과법으론 진리의 당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지금 여기라는 찰나간의 빛이 빛으내는 성품은 시공을 초월 할 때에만 그 진리의 당체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운문선사는 “있느냐? 있어?라며 역순경계로 그대는 그런 선기방편(禪機方便)이 있으면 내오보라고 다구칩니다.
여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요 . 굳이 답을 한다면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그 자리를 떠는 것이 바른 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대중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없다면 옷 입고들 그만 나가거라." 하고는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라고 하시면서 다 옷입고 그남 나가거라. 그대들을 상대하여 선문답을 하면 무엇하겠는가 이 미련한 중생들아 하시면서 상단에서 내려 와 버렸든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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