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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부터 받은 다윗의 영성[1] Spirituality of David under the auspices[2] of his Mother, unknown but faithful woman-“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호시야[3] 레벤 아마테카-시편 86편 16절)
들어가는 글:
시편은 모두 150편으로 되어 있다. 그 중 다윗과 관련된 시편은 모두 73편이다. 시의 장르 구분상 다윗과 관련된 시편은 다음으로 구분된다.
다윗의 노래 (미즈모르[4] 레다비드: 3-6, 8-9, 12-13, 15, 19-24, 29-31, 38-39, 40[5][6], 108, 143)
다윗의 기도[7] (테필라 레다비드: 17, 86)
다윗의 지혜[8] (레다비드 마쓰킬: 32, 52[9], 53[10], 54[11], 142[12])
다윗의 편지[13] (믹탐 레다비드: 16, 56[14][15])
다윗의.. (레다비드: 25-28, 34[16], 35, 36[17], 37, 103, 138, 144)
다윗을 기념하는 노래 (38, 70)
다윗의 찬송 (테힐라-145)
다윗의 식가욘[18] (7)
다윗의 영장에 맞춘 (라메나쩨아흐 레다비드: 11, 14, 18[19], 61[20])
시편 86편 분석:
시편 86편은 다윗의 기도다. 따라서 시편 86편은 노래로 불려지거나 시로 낭송되기 보다는 기도로 아뢰어지는 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 (86:9)
이 부분을 시로 낭송할 때와 노래로 부를 때와 기도로 드릴 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본 시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히브리어 한나 (통촉하소서)와 니함 (위로하소서)를 사용하여 자신의 처지를 아뢴다. 개역성경은 이 두 단어를 모두 긍휼로 번역한다: 3절 긍휼히 여기소서 (하네니-통촉하소서). 15절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하네니-통촉하소서). 16절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니함타니-위로하소서).
왜 시인은 하나님의 위로와 통촉하심을 구할까? 그것은 시인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1절), “나의 환난 날에” (7절),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13절),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사오며” (14절)
한마디로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경건을 유지한다. 여기서 시의 중심 메시지 중 하나가 나온다. 즉, 환난을 당하나 경건한 삶을 유지하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경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21]의 원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경건하오니” (‘하씨드 아니’).
‘경건하오니’로 번역된 ‘하씨드’의 원래 의미는 ‘긍휼하심을 입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성도의 경건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 없이 신앙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본 시편의 다윗의 기도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절규요, 선포요, 믿음의 고백이며 감사인 것이다.
주요내용:
시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기도를 들어주소서 (1-7절).
둘째, 하나님을 찬양한다 (8-10절).
셋째, 마음을 같이하여 간구하며 여호와께 감사하겠다는 맹세를 함 (11-13절).
넷째, 적으로부터 구원을 간청함 (14-17절)
본문에서 나타나는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살펴보자.
1. 호칭
여호와 (‘예호바’)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타 엘로하이’)
주여 (‘아도나이’)
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아타 아도나이’)
2. 주의 성품에 대한 찬미
주는 선하시다(‘아타 아도나이 톱’-당신은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주는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신다(‘쌀라흐’)
인자하심이 후하시다(‘랍 헤쎄드’-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십니다)
신 중에 주와 같은 분 없도다(‘에인 카모카 바엘로힘’)
주님은 광대하시다(‘가돌 아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다(‘오쎄 니플라옷’)
주 만 하나님이시다 (‘아타 엘로힘 레바데카’)
주 여호와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리가 풍성하신 분이시다(‘아도나이 엘 라훔 베하눈 에렉 아핌 베랍 헤쎄드 베에멧’)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신다(‘아타 아도나이 아자르타니 베니함타니’).
3. 다윗의 신앙.
첫째, 종일 기도한다.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3절)
둘째, 주를 의지한다.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2절)
셋째, 주님을 찬송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12절)
4. 기도의 내용.
내게 응답하소서 (‘아네니’ 1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쇼므라 낲쉬’ 2절),
종을 구원하소서 (‘호샤 아브데카’ 2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네니’ 3절)
주를 우러러 봅니다 (‘낲쉬 에싸’ 4절)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아지나 아도나이 테필라티’ 6절)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호쉬야 레벤 아마테카’ 16절)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아쎄 임미 옷 레토바’ 17절).
주해: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다윗이 자신을 주님의 종;[22] 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점이다. (시편 18편-여호와의 종 다윗; 36편도 동일한 제목을 갖고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부문은 자신을 주의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23]
중세 유대인 주석가 라쉬[24]의 견해를 살펴보자.
여종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표현이다. 여종의 아들은 주인의 집에서 태어나 주인의 품에서 자랐다는 뜻이다.[25]
라닥[26]의 견해:
주의 여종의 아들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주님을 섬겼던 어머니를 기억해 달라는 간구가 들어있다. 이유인즉, 어머니는 아들을 낳은 분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컸고 그 모태에서 자랐으며 태아형성시기를 보냈다. 모태에서 나온 후에는 어머니의 모유를 먹었으며 어머니의 특성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고 이 영향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 보다 더 많다. 이와 같은 예로 열왕기 기록에 보면 어머니 이름이 나온다 (왕상
보통 다윗은 이새[28]의 아들로만 알려져 왔다. 그런데 본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주님을 섬겨왔던 여종이 낳은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다윗의 경우 아버지는 이새였다. 그러나 성경증언에 의하면 이새가 생각하는 다윗은 8명의 아들 중 막내에 불과했고 그가 왕으로 세움을 입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29]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이새의 한 아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을 세우기 위해 찾아갔을 때 이새의 생각에는 다윗은 제외한 일곱 아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래서 첫째 아들 엘리압ba'ylia/ (나의 하나님은 아버지시다)을 내세운다. 첫째 아들은 용모와 신장이 출중해서 아버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당황한 이새는 둘째 아들 아비나답bd'n"ybia] (자원해서 아버지를 섬긴다)를 내세운다. 하나님은 아비나답도 선택하시지 않는다. 그러자 이새는 세 번째 아들 삼마hM'v;[30]를 내세운다. 이렇게 일곱을 다 내세우지만 다윗은 아버지의 뇌리 속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아버지로서 신앙의 멘토로서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아버지가 관심을 갖지 않은 막내아들, 들에서 양이나 치는 목동인 다윗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더욱이 사울 왕에게 악신이 들어 그를 괴롭게 할 때에 왕을 고치기 위해 사람을 추천할 때 추천된 사람이 다윗이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을 추천한 사람이 어릴 때부터 다윗을 주목해 보아왔던 동네 사람이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 즉 탈 줄을 알고[31] 호기[32]와 무용[33]과 구변이 있는[34] 준수한 자[35]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36] (삼상
다윗의 어릴 적 신앙은 그가 골리앗과 싸울 때 한 고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삼상
참으로 놀랍다. 어떻게 해서 다윗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까? 본문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대답을 준다. 다윗이 환난 날에 고백한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라는 기도 속에서 다윗의 어머니가 다윗에게 신앙을 물려주었음을 알게 된다.
성경은 다윗이 추천될 때 구변이 있었다rb'D' !Abn[37]고 말한다. 이것의 의미는 말씀에 있어 총명이 있었다 뜻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입술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이 총명함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고 배우고 암송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멘토가 누구일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버지 이새는 아니다. 혹 성경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베들레헴의 선지자나 무명의 스승이었을까? 아마도 다윗의 멘토는 다윗의 어머니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을 추론해보자. 성경에서 어머니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준 예들을 찾아보면 그 코드가 밝혀질 수 있다.
첫째 사례는 리브가이다.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였다. 리브가의 주된 공헌은 남편 이삭의 축복권이 바로 흐르게 만든 것이었다. 이삭은 하나님의 예정에도 불구하고[38] 입맛대로[39] 장자인 에서를 축복하려고 한다[40]. 이 때 속임수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 이삭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대를 잇는 작업을 리브가는 감수한다[41] 리브가가 속임수를 통해서까지라도 야곱을 축복의 자리로 밀어 넣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더라 (창 25:34). 에서는 결혼도 마음대로 하였고 이로 인해 이삭, 리브가 부부는 마음의 근심[42]을 얻게 되었다 (창 26:34-35). 반면 야곱은 왜 어머니의 마음에 들었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7-28). 이 부분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장막에 거한다는 의미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아마도 신앙전승교육이 일어나는 배움터가 아닐까? 리브가는 야곱에게 소망을 두고 그를 신앙으로 가르쳤고 야곱은 히브리어 탐에 어울리는 삶을 살게 된다.
두 번 째 사례는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이다. 라합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기자의 기록을 보면 살몬은 가나안 기생 라합과 결혼을하여 보아스를 낳는다 (
몬 (!Aml.f;)은 동일 인물인가? 두 사람 다 아버지의 이름은 나손으로 동일하다. 단지 이름의 주요 어근인 씬, 라메드, 멤은 동일하고 다른 점은 첨가된 부분이 다를 뿐이다. 히브리어 음역으로 쌀몬은 삼손 (!Avm.vi 히브리어 음역으로 쉼숀)이나 시므온(!A[m.vi)의 형태를 가진다. 샬마는 끝부분이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정관사 알렙이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이름의 형태는 에스라 (ar'z>[,에즈라) 를 들 수가 있다. 다윗의 세 번 째 형의 이름을 보았듯이 샴마(hM'v)와 시므아 (a['m.vi)의 경우처럼 이름이 각 지역에서 다르게 불리워진 것을 반영하였을 가능성이 높거나 이름에 어떤 특정 의미를 부여하여 불렀던 것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 혹은 살마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가나안의 기생이었던 라합이 보아스에 미친 신앙적 영향을 추론해보자. 물론 보아스의 경우는 아버지 살몬과 라합의 연합작품의 결과였다. 룻기 기록에 의하면 보아스가 어떤 사람이었음이 비교적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유력한자 (
결국,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시어머니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가 되고 아들 오베드를 낳고 그를 양육하게 된다. 그 후 오베드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낳고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 혹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게 된다. 성경의 증언은 막내아들 다윗에게 집중된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외형적 조건을 가꾸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한 형들과 또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아버지의 눈밖에 난 막내 아들 다윗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비록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 이새에 가려 무명 처리되고 있지만 훗날 다윗의 기도 속에 어머니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떠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시편 86편의 역사적 배경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작은 단서이지만 위에서 나열한 추론의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다윗의 어머니는 라합, 룻을 잇는 신앙의 줄기 안에 무명으로 서 있다. 다윗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귀한 메세지를 전해준다. 신앙의 멘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앙의 멘토는 이름이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때론 무명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호시야 레벤 아마테카 (^t,m'a]-!b,l. h['yviAh)
참고문헌
J. Day,
P.W. Flint, The
Zeb Bradford Long & Douglas McMurry, Receiving the Power: Preparing the Way for the Holy Spirit, (1996: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라),
Wilf Hildebrandt, An Old Testament Theology of the Spirit of God (구약의 성령 신학입문),
S. Mowinckel, The Psalms in
James W. Sire, Learning to Pray Through the Psalms (시편 기도),
Cas J.A. Vos, Theopoetry of the Psalms (신의 시 시편), 김선익,
Gordon S. Wakefield, A Dictionary of Christian Spirituality (기독교 영성사전),
Olam Ha Tanakh (The World of the Bible), Psalms II, Tel-Aviv, 1994 (히브리어)
Mikra’ot Gedolot ‘Haketer’ (Great Crown Bible), Psalms II, Bar-Ilan Univ, Ramat Gan, 2003 (히브리어)
히브리어 성경 (BHS)
이윤재외 14인 지음, 영성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별세목회연구원 주최 제 19회 전국 목회자 세미나, 교회 발전을 위한 영성개발 2, 쿰란 출판사, 2006.
[1] Spirituality (영성)의 의미는 동방신학에서는 신학이란 추론적인 이성의 활동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관상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영성의 의미를 영적인 삶으로 이해한다. 기독교 영성사전, 고든 S. 웨이크필드 편,
[2] 사전적 의미론 patronage and kindly guidance: protection 이다. 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Vol 1, G. & C. Merriam Co., 1966, p.145
[3] 역대상
[4] ‘미즈모르’ 란 단어는 시편에만 나온다. 항상 제목으로만 쓰인다. 동사 형태인 ‘자마르’ 는 시편 외에도 삿
[5] ‘레다비드 미즈모르’. 시편 101편의 제목도 ‘레다비드 미즈모르’ 이다.
[6] ‘레다비드 미즈모르 쉬르’ (시편 87편의 제목은 리브네이 코라흐 미즈모르 쉬르 이다. 반면 88편은 ‘쉬르 미즈모르 리브네이 코라흐’ 이다). 참고로 시편 92편의 제목은 ‘미즈모르 쉬르 레 욤 하 샤밧’ (안식일에 부르는 노래 시) 이다.
[7] 시편 90편의 제목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테필라 레모세 이쉬 하엘로힘’) 이다. 반면 시편 102편은 가난한 자의 기도를 제목으로 갖고 있다 (‘테필라 레오니’)
[8] 70인경의 해석에 따르면 ‘마쓰킬’ 의 뜻은 “길 안내하다, 가르치다, 혹은 안내서, 교훈”이다. 히브리어의 의미는 “지혜를 얻어 형통케 된다” 이다. 아마도 시편에서 ‘마스킬’의 사용은 시편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고 이해하는 지에 대한 지침서의 뜻이거나 아니면 노래의 장르의 하나일 수가 있다. 상게서, 18쪽.
[9] 32편과 다른 것은 ‘라메나쩨아흐’ (영장에 맞춘, 혹은 따른) 이란 표현이 첨가되며 ‘마쓰킬’의 순서는 다윗 앞에 나와 있다는 점이다.
[10] 52편과 다른 점은 영장과 ‘마쓰킬’ 사이에 악기 이름인 듯한 표현이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 마할랏’—멸하지 마소서?)
[11] 53편과 같은 패턴이며 단지 다른 것은 악기 이름이다 (‘빈기놋’-전치사 ‘벹’과 악기 이름혹은 연주 방법을 의미하는 ‘네기나’의 복수형태 ‘네기놋’이 연결되어 ‘빈기놋’이라 발음한다)
[12] 재미있는 것은 다윗의 ‘마쓰킬’인데 그가 굴에 머물면서 드렸던 기도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13] 칠십인경과 테오도션 번역본은 이 단어를 돌판에 새겨 넣은 글자로 번역한다. 아카드어의 도움을 받아 이 단어를 “죄를 덮다” 로 번역하기도 하며 이럴 경우 믹탐 시편은 죄를 씻는 예식이거나 정결예식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상게서, 18쪽.
[14] ‘레다비드 믹탐’. 16편과 달리 다윗이 처한 자세한 상황이 묘사된다.
[15] 57, 58, 59편은 영장과 ‘알 타슈헷’이 첨가된다.
[16] 자세한 상황묘사가 나온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여 그가 다윗을 쫓아내었을 때)
[17] 다윗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부르며 영장에 맞추어 부르는 시편이다.
[18] 시편 7편의 ‘식가욘’은 복수형태로 하박국 3장에도 나온다 (‘식요놋’). 아카드어 segu 의 의미는 애통스럽게 울다, 애가를 부르다. 따라서 ‘식가욘’은 ‘애통스러운 노래’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상게서, 20쪽.
[19] 주변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36편과 제목 (여호와의 종 다윗의 영장에 맞춘)이 일치한다.
[20] 악기가 첨가되어 있다 (‘알 네기낫’-55편 (‘빈기놋’-전치사가 서로 다른 점을 유의하라)과 다른 점은 ‘마쓰킬’이란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21] 이 단어는 “성도”라고도 번역된다.
[22] 자신을 종으로 부르는 의미는 두 가지이다. 주님의 주권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기에 종에 대한 주인의 의무도 계심을 알려드립니다. 즉 종을 거두시고 돌보실 책임이 있습니다. 칠십인경 헬라어 성경은 종을 두가지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다. 2 절to.n dou/lo,n sou 주의 종을, 4절 tou/ dou,lou sou주의 종의 16절 tw/| paidi, sou어린 아이 혹은 노예소년을 의미하는 “파이디온”에서 나옴 (어린아이, 어린 종에게) 으로 번역한다. 여종도 문자 그대로 “파이디스케” th/j paidi,skhj sou-주의 여종의-로 번역한다.
[23] 본 시편 외에 시편 116편 16절에서도 시인은 자신을 여종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24] Solomon ben Isaac (1040-1105), of
[25] Mikra’ot Gedolot ‘Haketer’ (Great Crown Bible), Psalms II, edited by Menahem Cohen , Bar-Ilan Univ, Ramat Gan, 2004, p. 54 (히브리어)
[26] David Kimhi (1160?-1235?), of
[27] Mikra’ot Gedolot ‘Haketer’ (Great Crown Bible), Psalms II, p. 55. (히브리어) 다윗이 어머니를 거론했던 것처럼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을 거론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지 마옵시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대하
[28] 사무엘서의 기록과 역대기 기록의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이름 철자가 다르다. 역대기는 사무엘서yv;yI와 달리 이새의 이름에 알렙이 첨가되어 있다 yv;yai.
[29]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삼상
[30] 역대상 2장 13절에선 쉬므아 a['m.vi란 이름으로 나온다
[31] 요데아 나겐!GEn: [;deyO -연주경험이 많다
[32] 기보르 하일lyIx; rABgI-아름다운 용사
[33] 이쉬 밀하마hm'x'l.mi vyai-전쟁의 사람
[34] 네본 다바르rb'D' !Abn>-말씀에 총명한 자
[35] 이쉬 토아르ra;To vyai-용모가 단정한 사람
[36] 아도나이 임모AM[i hw"hy-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다
[37] 구변이 있다는 의미를 구약의 예로는 아론의 말 잘함을 아노라
aWh rBed;y> rBed;-yKi yTi[.d;y" (출
[38]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세기 25:23)
[39]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창 25:28)
[40]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4)
[41]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