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월애(2000) ost 에 수록된 곡입니다. 전지현, 이정재 주연 오래된 영화인데 지금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애틋한 사랑이야기. 두 배우 다 풋풋함을 느낄 수 있어요^^ 아래 음악과 동영상을 듣고 보면서...
1998년 1월엔 눈이 많이 왔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일마레'로 이사온 성현(이정재 분)에게 이상한 편지가 남겨 있다. 1999년, 2년 후로부터 온 편지. 그 편지에 있던 내용들이 예언과도 같이 현실 속에 나타난다. 그날은 거짓말같이 함박눈이 내리고. 자신의 편지가 1998년 12월로 갔다는 것을 믿게 된 은주(전지현 분)는 자주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성우인 그녀는 옛날,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녹음기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성현은 은주가 얘기한 시각에 그 장소로 가는데, 스쳐지나가듯 성현 앞을 지나는 은주. 두사람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연락이 없는 애인 때문에 쓸쓸한 은주에게 성현은 그렇게 얘기한다. 이것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은주가 보내준 아버지의 유고집을 보고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성현.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자신이 편협했음을 고백한다. 은주의 애인이 미국에서 돌아온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옆에 있었고,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었던 은주는 애인과 만났던 마지막 장소로 가줄 것을 성현에게 부탁한다. 이미 은주를 사랑하고 있는 성현. 성현은 은주의 부탁에 괴로워한다. 시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또다시 지하철에서 은주와 맞닥뜨린 성현은 자신을 몰라보는 은주에게 말한다. 성현의 사무실로 찾아간 은주는 성현이 그날 대학로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서야 자신이 성현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은주. 은주는 자신이 얘기한 장소로 가지말라는 편지를 들고 일마레 앞 우편함으로 달려가는데... (네이버 영화 줄거리 펌) 영화비평 - "동감" VS "시월애" 시간여행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주는 가설 중에 '웜홀'(Wormhole)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개념에 기초한 두 편의 한국영화가 있다. 하나는 무선통신인 HAM을 통해 과거와 현재 혹은 현재와 미래가 소통하는 <동감>과 다른 하나는 우편함을 통해 소통하는 <시월애>가 그것이다. <동감> 1979년의 소은(김하늘)과 2000년의 인(유지태)은 다른 시간대에 신라대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있다. 그리고 <시월애>에서는 1997년의 성현(이정재)과 1999년의 은주(전지현)가 '일마레'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시간이 역전되어있다. 조금은 다른 개념의 웜홀인 HAM을 통해 소은은 인에게 일기를 쓰듯 자신의 짝사랑이야기를 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씩 확신을 주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들은 시간을 넘나들게 된 사실을 믿게 된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들은 마침내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건 바로 인의 아버지가 소은이 짝사랑하는 학교의 선배이고 그 선배는 소은의 단짝 친구, 선미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로 인해 인의 미래가 흔들릴 운명에 처해진다. 다시 말해 운명을 알아버린 소은이 선배와 결혼하게 될 경우 인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는 그래니-패러독스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미친 과학자가 과거로 돌아가 어렸을 때의 외할머니를 죽였다고 하자. 그러면 어머니도 태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미친 과학자도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외할머니를 죽인 과학자는 어디서 온 것일까? 마찬가지로 <동감>에서 인의 얘기를 듣게된 소은이 운명을 바꾸어 선배와 결혼하게 된다면 소은에게 사실을 알려준 인의 존재는 아예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예는 <시월애>에서도 볼 수 있다. '일마레'라는 바닷가의 집에 처음 이사 온 성현은 자신보다 뒤에 이사 올 은주에게 편지를 받는다. 자신이 이사간 뒤 중요한 편지가 올 테니 자신이 적어 놓은 주소로 편지를 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1997년의 성현은 1999년의 은주가 보낸 편지를 단순한 장난이나 착각으로 생각한다. 마찬가지인 <동감>에서와 유사한 과정으로 1999년의 은주의 일기에 기초한 예언은 맞아 떨어지고 성현은 은주가 전철역에 놓고 왔다는 워크맨을 찾으러 갔다가 그녀를 처음 보게 된다. 연락이 없는, 유학간 애인을 기다리는 은주와 아버지 때문에 건축을 포기한 성현은 서로에게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조금씩 열어 간다. 하지만 은주가 기다렸던 애인은 결혼할 여자와 돌아오고 은주는 성현에게 그 사람이 떠나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그래니-패러독스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성현의 도움으로 은주가 애인과 헤어지지 않는다면 은주는 성현과 연락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은주가 애인과 헤어지지 않게 해준 성현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단순하게 보았던 두 영화가 과학을 들이 대면서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그래니-패러독스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 '여러 세계 가설'이 그것으로 우주가 시간 여행자들의 개입에 의해서 여러 가지 시간의 층위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감>에서 인이 소은의 운명에 개입했다 하더라도 결국 소은은 인의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으며 <시월애>에서의 은주는 애인과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듯 간단하다. 각자의 운명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하지만 <동감>과 <시월애>는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동감>에서 소은은 운명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 인은 죄책감 때문에 미래의 그녀를 찾지만 결국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위치하며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시월애>의 경우는 다르다. 성현은 은주의 부탁대로 은주와 유학가는 애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성현은 과거의 은주가 창 너머로 바라보는 가운데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로 죽게 된다.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미래의 은주는 과거의 성현에게 그 장소에 나가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성현이 나가기 전에 도착하고, 결국 성현은 영화의 도입부였던 은주가 이사를 하는 날에 나타나며 미래는 모두 바뀌어 버린다. 결국 그래니-패러독스를 뒤집으며, 다시 말해 <동감>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물론 덮어 놓고 <시월애>를 비난하기에는 지나친 부분들이 있다. <동감>에 비해 화면의 구성이나 앵글, 공간의 배치와 활용, 그리고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전환등을 뛰어난 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중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전환에 대해서 다뤄 보면, <동감>의 경우는 1970년대 말과 1990년대 말이라는 명확한 시간차를 보인다. 그래서 장면의 전환이나 시간의 전환의 경우 그 구분이 명확하다. 하지만 <시월애>의 경우는 동시대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시간차를 보인다. 그런 이유로 시간의 전환이 <동감>보다 매끄러운 장점을 가지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써 짓고 있던 건물이 완성되는 장면이나 놀이 공원에서 주인공들이 같은 공간에서 교차되며 보여지는 장면, 그리고 보문리를 다녀오는 이정재와 전지현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교차되는 장면 등을 자연스러움을 보인다. 물론 공간에서 시간의 전환의 경우 <동감>에서도 나타난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유지태와 김하늘이 서로를 시계탑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이나 김하늘이 걸어간 돌담길을 유지태가 지나가는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시간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공간의 구분도 <시월애>보다 명확해지는 약점을 가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동감>과 <시월애>를 내러티브와 스타일적인 면에서 비교해 보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두 영화는 내러티브와 스타일적인 면에서 일승 일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기를 다룰 때 중요한 것은 칼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얼마나 뼈와 살을 잘 분리해 내느냐이다. 앞에서 다룬 두 편의 영화를 비유해 보면 한편의 영화가 내러티브라는 보통의 칼로 영화를 잘 다루었고, 다른 한편의 영화는 스타일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서툴게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재료의 정도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한국 멜로 영화의 재료는 어느덧 수준급으로 성장했다. 이제 중요한 건 그것을 다루는 솜씨이다. 물론 지금이 기획영화의 시대라는 걸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시월애>에서의 스타일에 중심을 둔 기획은 일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서툴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 기획에 휘둘려 영화 자신은 묻힌 듯 하기 때문이다.[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