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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7일 주일메시지ubf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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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한복음 7 : 53 - 8 : 12
요절 / 요한복음 8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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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f 유대 초막절에는 첫째날 밤 금촛대에 촛불을 켜고 촛불의 춤을 추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속지말자 화장빨, 다시 보자 조명빨’ 이란 오래된 개그가 있지요. 어두운 밤 은은하게 비추이는 촛불은 해가 지고 온 세상에 내려온 어둠을 분위기 있게 밝힙니다. 취지는 빛의 고마움을 충분히 느껴보자는 것인데, 불빛 속에 서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딴 생각들을 합니다. 초막절 촛불 축제에서 어떤 사람은 경건해지고 어떤 사람은 헌팅 할 대상을 찍고, 어떤 사람은 불꽃처럼 증오를 가슴에 살아오르게 하였습니다.
ubf 우리 젊음은 불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은 자기 청춘이 칙칙 거리기만 하고 불을 당기지 못하는 고장난 라이타돌 같다고 여기는 문제입니다. 뭘 열심히 했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뭘 열심히 준비 하였는데, 오라고 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이 칙칙 불꽃만 튀기고 정작 불을 당기지 못하는 고장난 라이타돌 같습니다.
ubf 오늘 성경말씀에는 젊음의 불꽃을 잘못 사른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ubf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우리가 꼭 명심하여야 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불장난 잘못하면 큰일난다’는 단순하고 딱딱한 논리 이상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ubf 우리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을 진지하게 비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ubf
1. 어떻게 말하겠나이까?(7:53-8:9a)ubf
ubf 7장 5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초막절 명절을 즐긴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8장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 나가 말씀을 전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ubf
2-5절을 보십시오. 동이 트고 날이 밝아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데 부담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ubf
유대인들에게는 난해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계명 중에서 가장 첫째 계명은 무엇인가? 유대 랍비들과 종교 지도자 그룹에서 논란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문제들은 결론을 낼 수 없는 어려운 이슈였습니다.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가? 그냥 살려 둘 것인가? 이것도 어려운 문제 였습니다. 율법에는 간음한 자에 대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기록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당시 사형을 판결할 수 없고,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돌로 쳐서 사형 하라고 하는데, 유대를 지배하는 로마 법에서는 벌금형이었습니다. 율법은 중범죄로 정하고 사형 이지만, 현실은 율법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간음하는 여자를 잡아서 나온 것입니다.
ubf 이 상황은 사람들에게 아주 자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를 보고 비정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죄지은 여자다! 현장에서 잡았단다! 여자의 모습이 처절할 수록 사람들은 여자를 더 야멸차게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여자가 있는가! 벌 주어야 한다! 소리 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ubf 아주 극단적입니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 이런 충격적인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7장 53절은 사람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초막절 촛불 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초막절 촛불 아래에서 춤추고 노래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ubf 집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각자 무엇을 했는지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몸이 피곤하니 자자! 행사를 치렀으니 쉬자! 자기 몸을 생각하는 사람, 육체 피로 해소가 우선인 사람들은 각각 집에 돌아가 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두운 밤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 발동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감정을 중시하고 감성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 육체의 쾌락에 빠져 들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들 보는 데에서는 거룩 하였고 초막절 명절에는 하나님 앞에 경건과 감사를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예수님을 공격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초막절 이후에 남녀가 죄에 빠지는 행태를 알고 그들을 사냥감처럼 찾아다녔습니다. 어둠을 헤치고 이집 저집 처마밑 창 밑을 돌아다녔습니다.
ubf 그에 비하여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셨으며, 영적인 힘을 공급받으셨습니다. 시대의 문제를 품고 기도 하셨으며, 양들을 섬길 힘과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기도하셨습니다.
ubf 각자 집으로 돌아가 무엇을 하였는지에 따라서 밝은 날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 사건에 저마다 다른 역할을 하며 나타난 것입니다.
ubf 예수님을 공격하고 여자를 죽이고자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악독함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추구한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자가 수치스럽게 간음하는 도중에 잡혀 끌려 나오고 수치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정죄 아래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은 그녀가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 해온 죄의 결과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들을 때는 아멘, 아멘 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여자를 향해 고함지르고 정죄와 저주를 퍼붓는 성난 무리가 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육적인 삶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ubf 상처 주는 일, 상처 받는 일, 죽이려고 하고 저주하고 비난하고 비난 받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뜻밖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ubf
마음에 품은 것들이 드러난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해온 일들이 오래 누적 되었다가 때가 되어 겉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ubf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였는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았는가?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 품은 것을 진실하고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떼를 쓰는 기도보다 하나님 앞에서 육적인 생각과 욕심을 버리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ubf 6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드디어 예수님을 함정에 밀어 넣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요구하였습니다. 무리들도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갑자기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여인을 향해 정죄와 비난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ubf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뭔가 쓰고 계시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더 세차게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유대인들의 고민은 율법에서는 사형시켜야 할 죄로 규정 하였는데, 율법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벌할 수 없다면 과연 처벌할 수 없는 죄를 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였습니다.ubf
예수님께서는 간음은 죽을 죄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구약 레위기20:10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22:22-24절에도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ubf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거나 율법을 무시할 의사가 전혀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율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ubf 율법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거나, 율법은 폐하여졌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일점 일획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 죄인은 돌로 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ubf 단, 유대인들의 고민한 것이 처벌의 문제인데, 처벌할 때 주의 사항을 한 가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써 이 사형 집행을 주도적으로 실행할 사람을 지정하십니다. 죄가 없는 사람! 율법 앞에서 거리낌 없는 사람이 간음한 여인에 대한 처형을 주도적으로 집행하라고 하십니다.
ubf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예수님께 향하였고 예수님께 향하던 시선이 이제 그들 자신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ubf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각 사람들 마음에 역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흥분 하느라 잊었던 자아를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돌을 내려 놓았습니다.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더러운 여자를 처단하겠다'고 자신있게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ubf 이상의 말씀은 죄에 대하여 우리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잘 증언하고 있습니다. 죄로 들어가는 문은 의외로 문턱이 낮습니다. 죄 짓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죄는 달콤함을 제공합니다. 죄는 죄가 주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짐은 무겁습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처음엔 달콤함도 주고 즐거움도 주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들키면 어쩌나 걱정됩니다.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이 찾아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여기서 중단하고 싶습니다. 중단이 되지 않습니다. 끊어지지 않습니다. 짐이구나 깨닫는데 여기서 그쳐 지지가 않습니다.
ubf 죄를 지을 때, 낌새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걸어놓습니다. 전화를 어디가서 혼자 받습니다. 통화 하느라 오래 있다가 들어옵니다. 방문을 잠궈 놓습니다. 이런 낌새만 나타나도 사람들이 하는 정죄의 시작은 충분합니다. 그러다가 몇 가지 정황증거가 나오면 정죄는 가차없이 시작됩니다. 정죄는 뼈아프고 정죄는 아주 날카로운 칼날과 같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사람들의 날카롭고 아픈 정죄는 그동안의 나의 선행과 나의 친절, 나의 관계를 모두 무색하게 합니다. 그게 다 위선이었다. 거짓이었다며 좋은 것도 나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이것들도 그 결말이 비하면 약과입니다. ubf
ubf 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죄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정죄는 결말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보았습니다. 평생 자기만 위해 살며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고 사람의 할 도리 하지 않고도 오히려 감사제목이 되고 칭찬의 대상이 되는 사람 보았습니다.
ubf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도 세상과 사람의 정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죄는 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실 때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두번째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고 간음하고 형제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들은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옵니다. 이날은 무서운 날입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이날 그 누구도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ubf
죄는 생각보다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죄는 약간의 달콤함이 있으나 그 짐은 무겁습니다. 죄의 짐은 무겁지만 죄의 댓가는 무섭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하는 인간은 쉽게 죄에 빠져 듭니다. 평생 죄의 짐에 눌려 고통스럽게 살아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바닥이 없는 무저갱 암흑에 갇혔다가, 때가 되면 멸하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은 심판의 불구덩이에서 영원토록 고통받아야 합니다.
ubf화려한 명절의 축제, 부드럽고 아름다운 불빛 속에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고 쾌락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돌 맞아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이 비참한 여인과 같이 우리 인생도 잠깐 인생의 즐거움에 취하여 살다가 순식간에 날카로운 정죄의 칼날 아래 놓이고 있습니다. 누가 이 여인을 살려 줄 수 있습니까? 누가 이 여인과 같은 우리 인생을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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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10-12)ubf
ubf 10,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ubf 사람들은 갔습니다. 여자를 고발하던 사람들도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정죄를 멈추었습니다. 손에 쥐어 들었던 돌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것은 모두 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죄가 없습니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ubf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정죄하지 아니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이신 분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말씀하십니다.
ubf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오셨는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ubf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습니다. 죄문제를 해결하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죄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문제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치루어야 할 값이 ‘사망’, ‘생명의 피’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치루어야 할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죄 값을 대신 치루고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추한 육체를 입으실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반인 반신 상태 였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 완전한 육체가 되셔서 그 육체로써 죄값을 치루셔야 죄값이 치루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시고 우리와 같이 육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셨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손과 발목은 굵은 대못에 못박히셨으며,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등에는 갈갈이 찢겨 나가도록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시편22:14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이사야서 53:5절은 예언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였습니다. ubf
ubf 예수님께서 여인 대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이 받을 저주를 받으셨고 예수님께서 이 여자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그 몸이 못박혀 죽지 않으셨다면, 이 여자의 머리통이 터져야 합니다. 그 뼈가 으스러지고 그 살과 피가 사방으로 튀며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첫번째 사망일 뿐입니다. 두번 째 사망이 더 무섭습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의 뜨겁고 고통스러운 불길이 이 여인의 몸과 영혼을 영원히 영원히 고통속에 부르짖게 할 것입니다. ubf
ubf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의 용서는 결코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소중하고 귀한 용서를 여인에게 내려 주십니다. 이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매우 무거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여자가 죄송하다며 마다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용서외에는 여자가 살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ubf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여인은 살았습니다. 이제 여인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죄에 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으로의 출발은 예수님의 희생과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ubf 12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ubf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이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살기는 어렵습니다. 12절 말씀은 범죄한 여인과 같은 우리가 앞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줍니다. 죄에 지는 삶, 죄와 타협하는 삶, 죄와 싸우다가 중단하는 삶 이런 삶은 어두움에 다니는 삶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하려면 말씀에 기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ubf
ubf결론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정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인이라고 정죄 받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죄 받지 않도록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죄 받으셔서 우리는 정죄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죄값을 치루어 주셔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육신을 입고 사람과 같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다 사하여 주신 예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 정죄받지 않는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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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seoul University / 남서울대학교 건축조형관, 인문관, 도서관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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