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이화원을 찾아서
우중충하다. 을씨년스럽다. 희뿌연 스모그에 찌들었다. 베이징의 겨울에 대한 첫인상이다. 수십 년 전에 맡아보던 연탄가스 냄새도 난다.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질 탓도 있겠지만 푸른 나무는 거의 구경할 수 없어서 들뜬 기분이 머쓱해진다.
일행 중에 꽤 깨죽거리는 이가 계속 공해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 우리가 더 선진국 같아서 기분 좋다고 대받는 이도 있다. 그냥 먼발치에서 지구촌의 경제 대국 2위의 수도로만 바라볼 걸 직접 와서 바장이다 보니 먼지가 더께로 앉은 낙후된 환경 상태에 실망이 크다.
이화원을 가는 날이다.
청나라 왕조 말기의 역사를 쥐고 흔들었던 여걸 서태후의 카리스마를 상상하고 고궁에서 벌어졌다던 세계사 속의 일을 한둘 그려보며 다소 누진 인수전을 거닐기 시작한다.
인수전(仁壽殿)이라 명명한 것은 어진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란다. 서태후가 정무를 보던 곳으로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집기들을 관광객들이 유리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우리의 고궁은 마루가 주로 나무지만, 이 지역에는 옥과 대리석이 많이 나는 곳이라 옥과 대리석이 대부분이다.
정원에는 중앙에 서태후 본인을 상징하는 봉황을 세우고 양쪽 옆으로 왕을 상징하는 용을 세워 놓았으니 왕의 위에서 군림한 그녀의 권위를 실감 나게 한다.
현관 입구에는 양쪽으로 계단이 있고 중앙에는 통돌(옥)에다 아홉 마리용을 조각해 놓은 것이 매우 정교했다. 밑에서부터 4단계 그림이 있는데 밑에서부터 물을 건너고, 산을 넘고, 구름을 넘어, 천당에 이른다는 조각이며 그 위에 아홉 마리용이 꿈틀댄다.
서태후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70만 냥의 은을 들여 지었다는 덕화원(德和園)은 3층 건물로 호사 취미에도 관심이 많았던 서태후의 전용 극장으로 거대한 무대를 갖추고 있다. 이 극장에서 연극을 보거나 직접 경극에 출연하기도 했다니 과연 다방면에 능력이 많았음엔 틀림없다. 또한, 높은 학식과 뛰어난 화가였던 서태후라 1만 4천여 개의 그림이 쭉 그려져 있는 긴 복도 장랑(長廊)을 따라 걸으며 정무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 난간에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삼국지>와 <서유기> 등의 명장면도 그려져 있다. 728m의 장랑을 따라가면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배 석방(石舫)에 닿는다. 조각 하나하나가 화려한 이 석주(石舟)를 타고 곤명호 너머로 떠오르는 달맞이를 했다고 하며 수천의 궁인들이 촛불을 들고 춤을 추며 그녀의 흥을 돋우었다니 과연 그녀의 위세가 짐작이 간다.
드디어 곤명호(昆明湖)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베트남과 접경한 서남 지방 윈난 성의 주도인 쿤밍의 이름을 딴 호수에 서역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나의 귓전을 얼린다. 이 호수는 인공 호수로 전체 면적의 3/4을 차지할 만큼 큰 호수이다.
이 호수에서 파낸 흙을 쌓아 만수산(萬壽山)이라는 인공 산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큰 역사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 엄청난 호수와 산을 보면서 한편으론 대역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땀과 피가 얼마나 많이 배어있을까 생각하니 그들 백성의 삶이 측은하다.
해군 군함 건조비를 유용하여 이화원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그 후 청일전쟁의 대패 요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베이징 주변에 큰 강이 없다는 것을 볼 때 이 점을 염두에 둔 공사가 아니었나 하는 연민의 정도 생긴다.
지춘정(知春亭)이라는 봄을 알려준다는 정자 앞에서는 호사스러웠던 서태후의 생활상과 그녀의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권력은 역사와 시간 앞에서는 무위한 것, 그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객들에게는 세월의 무상함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제 지춘정 앞을 거니는 이는 황제나 서태후가 아니라 관광객들이다. 거대한 스케이트장이 되어 있는 호수 앞에서 그 엄청난 역사의 뒤안길을 상상해 본다.
이화원을 다 둘러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파고다 공원이 생각났고 서태후를 생각하니 대원군이 떠오른다. 서태후나 대원군은 시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살았으며 정치적으로 국제환경적으로 비슷한 갈등을 겪으며 살았다. 어린 아들을 내세워 섭정한 것이나 근정전 등을 개축한 것과 이화원을 조성한 것이나, 세계사 속의 조국을 정확히 보지 못했던 점, 황권에 너무 집착했던 점 등 너무나 같은 맥락으로 묶인다.
청 왕조의 마지막 영화가 깃든 이화원이 백성들과 관광객의 쉼터로 자리매김 했지만, 서태후의 욕심으로 청나라를 망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곳이기에 후세들에게 많은 교훈과 반성을 주리라.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화를 자초한다는 지혜를 또 하나 줍는다. 나라고 욕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니, 이후로는 이화원을 반추하며 자중해야겠다.
청 왕조 말기의 여인 천하였던 무대에서 서슬 퍼렇던 태후도 되어 보고, 영화 속에서 머리를 정수리만 그냥 두고 파랗게 깎아 올린 어린 황제도 되어보며 시간을 뛰어넘는 꿈속에서 헤맨다. 겨울이라 정원의 진가를 맛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꽃피는 봄철에 다시 한 번 오리라 다짐하며 광활한 호수를 뒤로한다. (*)
첫댓글 너무나 예쁜 사진들을 올려주셨는데 이제야 봤군요.
감사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