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2)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윤동주(1917-1945), 『윤동주★전 시집』, 스타북스, 2019(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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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다들 고향에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저도 고향에 다녀 왔습니다. 가는 길은 그리 밀리지 않아서 일찍 도착했는데 오는 길은 군데군데 막혀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매년 겪는 일이어서 그러려니 하니 마음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어떠셨는지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추석이 지난 날이기는 해도 이번에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시를 들려드리고 싶어 「별 헤는 밤」을 찾아 읽다가 버릇처럼 쭉 이어 읽는 중에 위 시 「간」에서 딱 멈춘 건 “코카서스”니 “프로메테우스”니 하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코카서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이릅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이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중 조지아에는 그리스 신화 중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전해지는 카즈베기 산이 있는 곳입니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카즈베기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아 먹히고 다음날이면 다시 살아나 같은 형벌을 반복해서 받았다지요. 이 코카서스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지난달에 다녀 왔습니다.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성 삼위일체 대성당)에도 들렀는데 한여름이어서일까요, 얼음산, 빙하봉, 만년설산이라고도 불리는 카즈베기 산에서 눈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시인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꽤 자주 읽었을 시인의 시 「간」에 새삼스레 눈길이 머문 건 가보기 전에는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이 이름을 다시 만났기 때문일 겁니다. 시 「간」은 1941년 11월 29일에 쓴 시로 시인의 시집으로는 1948년에 처음으로 발간한 시집의 3부에 실린 시입니다. 이 시는 같은 해 11월 20일에 쓴 「서시」 다음에 쓴 시로 이 해에 시인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부에 「서시」를 포함한 19편으로 된 자선 시집을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시를 쓴 날짜로 보건대 제 나름대로는 자선 시집을 출간하지 못한, 암울한 시대상에 크게 절망한 시인의 마음이 어쩌면 이 시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반복해서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시인은 혹 자신을 보았을까요.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거북이야!/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오늘도 ‘해당지역에 폭염영향예보, 폭염 특보 발효 중’이라는 기상청 날씨 알리미의 소식만큼이나 궂은 소식을 날에 날마다 듣는 날들이 반복되어도 시인이 애써 그러모았을 다짐을 우리도 일단은 가져 봐야겠습니다.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편이라고 하는 생각이 서글프기는 합니다만, 우선은 견디면서요. (20240918)
첫댓글 코카서스와 프로메테우스가 조지아 카즈베기 산과 관련이 있군요. 동주는 이걸 다 알고 <간>을 썼네요. 우리들의 동주!
교토에 가면 도시샤대학(동지사대학)이 있는데, 동주가 도쿄의 릿교대학을 다니다 정지용을 사모하여 정지용이 다녔던 도시샤대학으로 옮겼는데, 그 대학을 가 보고 싶네요! 또한 일본 동밀(진언밀교)의 시초가 된 교토 도지(동사), 교토와 시가현에 걸쳐 있는 태밀(천태밀교)의 총본산 히에이산 엔라쿠지(연력사)도 가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