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을 쌓으며
가만히 때를 기다리다
: 김양수 화백의 적염산방
적염산방은 화백의 작업실이자 또 다른 수행처인 무문관이다. 자기를 스스로 가두고 문명의 이기들은 가능한 한 멀리한 채 작업과 수행에 몰두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자기 내면의 뜰을 가능한 한 살필 수 있는 여가를 많이 만들기 위한 또 다른 방편이기도 했다. 오래된 토담집과 가축을 기르던 우리를 나름대로 손수 다듬은 곳이다. 산방은 그야말로 토굴이었다 아궁이와 장작이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아란야(적정처)였다.
적염산방(寂拈山房)은 그 이름이 염화실(拈花室)을 떠올린다. 염화실은 고타마께서 꽃을 집어든(拈花) 곳인데 산방은 고요함을 들어보인(寂拈) 곳이다. 몸과 마음을 푹 쉬는 곳이다. 그의 호인 일휴(一休)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또 실존인물인 일휴선사는 동아시아 선종사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개울물이 불어나자 그 앞에서 버선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새댁을 등에 업고서 물을 건너게 해 준 장본인이다. 이를 보고 도반이 ‘수행자답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지청구를 하자 ‘나는 아까 이미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등에 지고 있다’고 일갈했던 인물이다.
그랬다. 화백은 은둔과 함께 모든 걸 내려놓았다. 스스로 내려놓은 것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만 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미술시장의 장기불황과 함께 시대는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수묵화가 벽에 어울리지 않게 된 대세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한류와 함께 한옥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 유화 대신 수묵화가 한옥은 물론 ‘한옥아파트’까지 장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휴식기에 정말 놀게 되면 기회가 와도 온 줄조차 모르게 된다. 늘 ‘내공’을 쌓으면서 가만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지혜도 함께 도모했던 것이다.
화백의 지난 시절 내공쌓기의 산실이 적염산방이었다. 그 사이에 고요함의 결과를 들고서 가끔 저잣거리로 나왔다. 인사동에서 몇 번의 전시회를 통하여 ‘고요의 내공’을 가끔가끔 보여주었다. 그 때마다 선기(禪氣) 가득한 그의 작품은 도심생활에 지친 나를 정화시켜주는 죽비구실을 단단히 해주었다. 이번 전시회 장소는 ‘가야산 해인사’라고 했다. 도심과 산사를 넘나드는 불이(不二)의 전시공간을 통해 내면세계를 시시각각 구현해 낼 것이다. 해인사는 십여년 전에 화백과 구광루의 전시회를 통해 처음 만난 곳이다. 그 인연으로 〈월간 해인〉에 글과 그림의 연재를 부탁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화제(畵題)가 더욱 나의 시선을 끌었다. 선시와 하이쿠(俳句) 정신을 이어가려는 시인의 역량까지도 읽게 되었다.
이번 두 번째 해인사 작품은 이전의 밝고 단순함 그리고 고요함, 또 여백의 미학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구름과 바람이 격정적으로 처리되었고 어두워 보이면서도 또 동적이었다. 이전의 주인공이던 새 꽃 개구리는 변함없는 소재이지만 전체 속에서 소품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대신 구름과 바람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흰여백도 회색으로 바탕처리를 하여 비워두지 않았다. 소재한 유일한 인물인 달마대사가 퀭한 듯하면서도 또 초연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화백의 또다른 내면적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었다.
또 이번에는 거의 화제(畵題)도 없었다. 그림으로만 모든 걸 다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언어란 이제 아궁이에 마지막으로 던져버린 부지깽이처럼 필요없는 경지를 증득했다고 선언한 것일까? 그야말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화였다. 그림에 제목까지 필요없어 ‘무제(無題)’라고 붙여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제목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가야산전시회가 설함없이 설하는 ‘무설설(無說說)’의 화백의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는 ‘염화실’이 된다면 적염산방이 가야산으로 날아온 까닭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토담집과 가축을 기르던 우리를 작업실로 꾸려낸 적염산방의 모습들
첫댓글 김화백님의 기운을 받으러 전시회에 함 가야겠음둥...
대구전시회에는 칭구들 대동하고 가겠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