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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순흥에 들어서면 코끝에서 마치 피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다. 500여 년 전,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꿈꾸다
순절한 수많은 의인들과 향민들이 무참하게 쏟아낸 피로 적신 죽계천.
긴 세월 동안 붉은 피빛을 씻어낸 개울에는 봄기운 가득한 솔잎 그림자를 띄운다. 시릴 것 같은 청푸르름이 감돈다.
소백산정의 물그림자를 드리운 순흥저수지를 끼고 죽계구곡 초입에 들어서면 멀리 국망봉을 하얗게 덮은 잔설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거기서 북쪽으로 3㎞쯤 가면 월명봉에 등을 기댄 성혈사에 이른다.
순흥면 덕현리 성혈사, 큰 법당 마루에 앉으니 햇살이 가슴팍을 데운다. 두 팔을 벌려 끌어안는 듯한 편안한 절자리는
진종일 햇살이 빠져나가지 않는 햇살둥지다. 마당 안으로 성큼 문필봉이 들어와 앉는다.
문필봉을 품어 안은 성혈사는 지혜의 도량이라는 미담이 구전되고 있다. 이곳에서 산승은 쉬이 득도에 이르고, 시험을
앞둔 불자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단다.
백 수십여 년 전에 순흥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최서방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전해온다. 천하고도 가난하게 살아온 최서방은
자신의 구차한 인생살이를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극락왕생하기를 희원하기 보다는 후세의 자손들이 지혜로 발복하기를
바라며 문필봉을 향해 정성껏 기도하였다.
불전에 놓을 공양미를 준비하기 위해 한 되 두 되 새경을 받아 모으고 절용하여 족히 한 섬이 넘는 백미를 마련한 어느날
하루는 힘겹게 성혈사로 걸음을 옮긴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지만 짧기만 하던 겨울 해는 어느새 저만큼 서산에 기울어져
있고 어스름이 몰려든 외진 절간에는 스님조차 보이질 않았다.
간간이 풍경소리만 들려오는 빈 법당에 앉은 최서방은 광명의 불, 비로자나불 앞에 108배를 하고 자신이 지고 간 쌀섬을
공양미로 올렸다. 그리고는 법당 앞 죽담에 앉았는데 전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산이 마치 붓끝처럼
부드럽게 솟아오르더니 자신의 가슴에 안겨들지 않는가. 그리고는 굵직하고 끝이 좋은 붓 하나가 자신의 손에 잡히더니
법당 벽 앞으로 가 순식간에 종횡무진, 일필휘지의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일자무식꾼이던 그가 대웅전의 벽면을
꽉 채울 만큼 많은 문장을 남기고는 황홀감에 빠져 있는 엑스터시를 경험한 것이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꿈속에서 깨어났지만 최서방은 문필봉 산신령이 자신에게 내린 깨달음의 선물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최서방은 문맹을 면하게 되었고 더불어 문필봉의 원력은 소문에 소문을 더해갔다. 최서방의 발복기원대로
머슴살이는 자신에게 끝을 맺고 그 후대들은 대학자로 발전해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그런 연유 때문일까. 지금도
문필봉을 바라보면서 공부하는 스님들은 물론이요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나 대학입시를 앞둔 부모들이 심심찮게
성혈사를 찾아 합격 기운을 기원한다고 전한다.
7세기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성혈사는 1985년 보물 제832호로 지정된 나한전과 유형문화재 제402호인 석조비로자나불자상,
그리고 문화재자료 제523호인 신중탱화 등 절 규모에 비하여 귀중한 문화재를 세 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 꽃살문양으로 그린 정토세계
1553년(조선 명종 8년)에 세우고 1634년(인조 12년)에 중창한 나한전은 석조 나한 16위를 모신 법당인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 구조의 소박한 건축물이다. 겹도리에 얹은 공포는 다포이나 화려하지 않으며 높지 않게 쌓은
기단 위에 자연 초석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기둥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비바람이 쉬고 간 자국일까. 군데군데 갈라지고 벌어진 구멍과 성건 틈새를
드러낸다. 나한전 앞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6개의 문짝에 촘촘히 투각한 꽃살문양이다. 출입을 허락하고 바람을
막는 여닫이 기능으로서의 문짝이 아니라 마치 여섯 폭짜리 나무 조각 병풍인양 심미적 친밀감을 더한다. 정면 3칸은 모두
통판으로 양각한 문양인데 한 폭의 화려하고도 거대한 꽃살문으로 조각된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특별하다.
전 안의 가운데에 위치한 나한상을 기준으로 보면 창호의 꽃살조각 작품은 아름다운 불정토의 정원을 그리고 있다. 오른쪽의
창호 두 짝은 모두 솟을모란꽃살 문양인데 자잘한 조각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하면서 넝쿨을 만들어낸다. 바깥 세계에서
나한의 세계로 옮겨 놓는 첫발자국을 환희와 여유로 맞이하려는 꽃길이다. 가운데 두 문짝은 연꽃 저수지에 여러 가지 새들과
어패류들이 노니는 모양을 형상화 한 연지수금꽃살문양이다. 문짝의 규모에 걸맞게 만개한 것과 갓 피어나는 햇봉오리 그리고
이미 시들어 고개를 숙인 여러 모양의 연꽃이 있는가 하면 연잎들의 모양새도 다양하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활짝 열린 것이나 혹은 주먹을 쥐듯이 오그라든 것이 뒤섞여 있으며 꽃잎 하나하나마저도 변화를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보인다. 그리고 연못 속에는 더부살이하는 여러 존재들 간의 호흡이 평화롭게 흐른다. 물고기, 게, 개구리, 학,
용과 여의주, 심지어는 연꽃 속에 미소를 짓는 해맑은 동자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들을 세밀하게 투각하고 있다. 문의
하단부에서 상단부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삶의 기운이 출렁거리는 듯한 아기자기한 관계로 정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꽃살문양을 다듬어낸 장인은 마치 속과 비속의 세계를 분리하지 않는 것 같다. 온갖 생명체들이 제각기 놓인 자리에서 자유롭게
교감하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왼쪽의 두 문짝은 대칭의 정형을 의식하지 않는 해체의 미를 던진다. 중간의 연지수금꽃살 문양
들이 문 전체의 중심을 자처하면서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준 반면에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면 다시 잔잔한 모란꽃밭에서 쉼 고르
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큼직한 잎줄기와 꽃받침 그리고 크고 작은 꽃 모양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문살에 눈이 멎으면 다시금
가슴이 뛴다. 6개의 꽃살문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자. 이것은 정토에 들어선 나한을 위한 꽃조각 공양이 아닌가. 좌우로 모란
정원에 에워싸인 연지, 그리고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의 어우림을 회화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조각이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예리하고 숙련된 칼끝이 지나간 것 같지만, 그 자리에서 오히려 질박하고 순수한 미감을 얻게 한다.
나한은 비록 깨달은 인간상이긴 하지만 부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하필 나한을 모신 나한전에 그렇게 정교하고도 미려한
문양으로 문살을 만들어냈을까. 이미 선정의 경지를 넘어선 부처야 어디 호불호, 낙불락을 가리랴. 그러기에 부처가 아닌 부처의
경지에 오른 나한 앞에 올린 화려한 찬사, 그것이 바로 조각꽃문살 공양이 아니던가.
◆ 조각공도 득도자이었으리라
나한전의 건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반승반한인, 어수룩한 차림의 중년 사내가 절을 찾는다.
행색과는 달리 반듯한 얼굴과 어딘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눈빛에서 그의 비범성과 내공을 엿보게 한다. 그가 둘러맨 바랑에는
오로지 끌 한 자루와 톱 그리고 전각에 사용하는 작은 칼 몇 자루가 전부다.
주지 스님에게 인사를 한 다음 날부터 그 누구도 그의 일상에 눈길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나한전 공사판 한 켠
에서 나무를 켜고 고르면서 꽃문살을 조각하는데만 일념을 기울인다.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마치 손맛 좋은 아낙이 도마 위에서 무를 썰고 채치는 듯 거침없다. 오랜 기간 해수에 저려 말린 아름
드리 금강송은 단단하면서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겉과 속이 불그레한 통나무로 켜고 다듬어 꽃살문양을 입체적으로 투각해 내는
사내는 말이 나무 장인이지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오른 듯하다.
반가에서 태어난 이 사내는 집안의 기대와 달리 경학(經學)을 외면하고 서민들이 하는 목공일에 영육의 흥취를 더하였다. 그는
강원도의 깊은 산 속에서 수많은 나무를 살피고 켜고 다듬는데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목공 장인이나 다름없는 숙련공이 되었다.
그의 희망은 불국정토를 조각으로 완성시키는 일이었다. 마침내 하산 길에 이른 그는 나한전을 조성한다는 소문을 듣고 성혈사로
찾아든다. 선정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나한들에게 무한의 자신을 받쳐 공양하고 찬송하고 싶었던 것이다. 장인은 나한을 모신
전각의 문짝을 끝없는 열락세계로 조각하여 공양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그 세계에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그는 다만 장인의 기예에 매달린 사람이 아니라 부처와 일체화된 자신이고 싶은 것이리라. 그가 생각하는 정토의 세계는 부귀의
모란이 피어나고, 인고의 늪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지 속 뭇 생명들처럼 걸림 없이 살아가는 공존의 장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대신한 해맑은 동자상을 정성껏 조각한다.
조각공은 마침내 작은 부처가 되어 맑고 광활한 정토에서 크고 작은 물고기들과 새들과 어울려 공생과 공존을 하는 것이다.
불성을 해학적으로 유감없이 표현하는 장인은 이미 지락의 선정에 들어간 것이리라.
비록 채색이 소박하고 질박하지만, 문양의 변화와 화폭 속에 담아낸 다양한 이야기는 문양미와 함께 스토리를 즐기는 기쁨을
한껏 안겨 준다. 꽃살문에 홀릴 듯이 정신을 팔고 뒤로 돌아서려니 한 쌍의 용이 꿈틀거리면서 서로 부둥켜 안은 모습을 부조한
석등을 만난다.
김정식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대구일보2013.04.18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