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8. 목포노회 신년감사예배] 출 14:21-22 희망 2024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 된 강아지가 아니고 태어난 지 1년이 된 강아지라는 뜻입니다. '하릅'(태어난 지 1년이 된 짐승)이 변형된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속담에 강남은 서울에 있는 강남이 아니고 중국의 양쯔강 아래 지역을 의미하는 강남(江南)이며 '가을에 제비가 강남으로 날아간다.' 할 때의 그 강남입니다.
고독하다: 부모를 잃고 없는 사람(자식), 자식을 잃거나 없는 사람(늙은이)
아름답다: 나답다. 나를 알고 나다울 때 아름답다.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을 보면 모두 멋지다 할 것입니다. 가장 다윗다웠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출전할 자격도 없는 다윗이 칼과 창으로 골리앗을 이긴다는 것은,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이길 수도 없습니다. 사울 왕의 갑옷과 칼은 남의 옷과 같은 것입니다. 잘하는 물맷돌로 승부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다윗다운 것이고 자기만의 색깔입니다. 다윗이 자기다울 때 이겼고 멋졌고 아름다웠습니다.
목회를 흉내 내다가 세월을 허비하고 자기 색깔조차 잃어버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장에 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삐를 붙잡고, 아들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막을 지날 때, 주막 앞에 모여 있던 장사꾼들이 두 사람을 보고 ‘하하하’ 웃었습니다.
"여보게 저기 저 어리석은 사람 좀 보게. 당나귀를 타지 않고 힘들게 끌고 가고 있잖은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로군. 아마 저 사람은 당나귀를 상전처럼 떠받드는 모양이야." "저렇게 어리석은 주인을 만나면 당나귀 팔자도 참 편할 거야. 우리 집 당나귀는 매일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 다니는데 말이야.”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창피해졌습니다.
'정말 장사꾼들의 얘기가 맞아. 당나귀는 원래 짐이나 사람을 태우는 데 쓰는 동물이 아닌가 말이야.'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고 당나귀 등에 아들을 태웠습니다. 얼마쯤 가다 보니 마을 정자가 나왔고 노인들이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나귀 위의 아들을 보고 혀를 찼습니다.
"저 고얀 경우가 있나. 아버지는 힘들게 당나귀를 끌고 가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은 편안하게 당나귀를 타고 가다니!" "요즘 젊은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 큰일이야. 통 어른 공경을 할 줄 모른다구" "애비란 사람도 그렇지. 아들 버릇을 저따위로 가르쳐서야. 원."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노인분들 말씀이 옳아. 내가 아들놈 버릇을 망치고 있군.'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가 당나귀 등에 올라탔습니다. 얼마 가다 보니 개울가 빨래터에 다다랐습니다. 아기를 업은 아낙네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유 가엽기도 해라. 조그만 아이가 뙤약볕을 맞으며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어." "정말 못된 아버지야." "아들을 저렇게 학대하며 키워놓고 나중에 늙으면 아비랍시고 대접이나 받으려 들겠지? 흥!" 아버지는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두 사람이 타고 갔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우물가를 지나게 되었지요. 동네 아가씨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가엾어라. 저렇게 조금만 당나귀 위에 두 사람이 타고 가고 있어."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 또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가씨들의 말이 옳아. 장에 닿기도 전에 당나귀가 힘에 부쳐 죽어버리면 큰일이 아닌가.'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아버지의 고민을 듣고 껄껄 웃으며 "여보시오. 그러지 말고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면 될 것 아니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그래 그것참 좋은 방법이로군!" 이리하여 두 사람은 당나귀를 짊어지고 걸어갔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였습니다. 당나귀가 갑자기 푸드덕하고 버둥거렸습니다. 그 바람에 당나귀를 떨어뜨리게 되었고 당나귀는 다리에서 떨어져 물속에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
1. 우리가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2. 남의 말에 너무 신경을 씁니다. 어떻게 다 맞추고 살 수 있습니까?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전 7:21-22)
2024년에는 나다운 목회를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또한, 힘들 때마다 희망의 하나님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1. 홍해 밑에 대로 준비하신 희망의 하나님
보이지 않지만 준비하신 길이 있습니다.
2. 까마귀 새끼를 먹을 것을 준비하신 희망의 하나님
우리는 까마귀 새끼보다 더 귀한 존재입니다.
3.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셔서 고쳐주신 희망의 예수님
38년만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희망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희망입니다.
절대 신뢰하며 나답게 목회할 때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면서 인내의 열매를 2024년에 꼭 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