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모직 창립 53주년, 기업변신을 넘어 창조기업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창조기업
제일모직이 9월 15일 창립 53주년을 맞아 기업변신을 넘어 '미래를 디자인하는 창조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선언했다. 14일 의왕 R&D센터에서 진행된 제일모직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제진훈 사장은 "제일모직은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기업변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키워 왔다" 며 "이제 기업변신의 DNA를 전 임직원의 자발적인 창조의지로 계승, 발전시켜 미래를 디자인하는 창조기업으로 만들어 가자" 고 역설했다.
제일모직은 이를 위해 변화를 선도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미래 디자인의 최종 목적인 사람, 제품, 프로세스의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창조적 인 아이디어와 도전 의지가 넘치는 조직문화로 체질을 바꾸고, 첨단 소재와 디자인 분야의 핵심인재를 지속적으로 육성해 창조기업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업변신 도전의 역사를 창조적 DNA로
제일모직은 지난 1954년 직물사업으로 출발해 패션, 케미칼, 첨단 전자재료에 이르기까지 10년 주기의 기업변신으로 사업부문별 플랫폼을 재구축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확보해 혁신기업으로 거듭났다. 제일모직은 53년 동안 끊임없는 변신으로 미래에 도전해 왔다. 제일모직은 한국 제조업 성장의 모델 역할을 하며 영국과 이태리 등 선진국보다 앞서 세계 최고의 복지 '란스미어'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기성복을 출시하면서 시작한 패션사업에서도 빈폴과 갤럭시 등의 신화를 창조해 국내 패션 브랜드가 해외 주력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일모직은 1990년대 이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합성수지 사업으로 과감히 기업변신에 성공해 고부가 차별화 제품으로 특화된 사업구조를 보유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도전은 여기서 그치고 않고, 신수종 전자재료 사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능성 소재 등에서 첨단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전자재료 사업은 그룹의 주력사업을 뒷받침하면서 관련 소재 국산화로 수입대체 효과를 거둬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일조하고 있다.
케미칼,전자재료 소재사업 - 고부가 차별화
제일모직의 케미칼과 전자재료 소재사업은 진출 초기부터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로 고부가 차별화 제품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고기능 합성수지인 모니터용 난연 ABS와 냉장고용 압출(Sheet)ABS 수지, 2005년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내(耐)스크래치 ABS 수지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월드 베스트 제품이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인 GM에 들어가는 부품소재에 대한 글로벌 소재 승인을 획득하는 등 자동차 소재 사업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사업 고도화를 위해 지난 1994년부터 추진한 전자재료 사업은 2002년 구미에 IT 생산단지를 준공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고, 2003년부터는 반도체 소재에서 디스플레이 소재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제일모직은 에이스디지텍 인수를 통해 시작한 편광필름 사업을 조기에 정착시켜 디스플레이소재 사업을 본격화하고, 반도체 공정소재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패션사업 -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
제일모직은 국내 패션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일모직은 빈폴,갤럭시, 로가디스,구호 등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패션 선진국인 이태리와 뉴욕에 법인과 사무소를 설립하고, 세계적 명품 브랜드 육성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출신의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삼성패션 디자인펀드(SFDF)를 운영해 국내 디자인 인력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해외 디자인센터를 활용한 디자인 경쟁력 제고를 통해 빈폴을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시키고, 갤럭시, 로가디스 등의 신사복 브랜드는 아이템을 다각화해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여성복과 액세서리 사업을 확대하고, 신유통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온라인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글로벌 R&D 경쟁력 강화
제일모직은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첨단 소재 개발을 위한 R&D 역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의왕사업장에 통합 R&D 센터를 준공해 연구 인프라 기반을 확고히 했다. 이 센터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광학소재, 고부가 합성수지 등 첨단 신소재 연구를 담당하는 종합연구원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본사 조직이 함께 위치해 있다.
제일모직은 첨단소재 사업의 핵심 연구인력 육성과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글로벌 핵심인재 육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CEO가 직접 채용 설명회를 주관하고, 계층별 간담회를 통해 연구 여건을 보장하고 있다. 또 우수인력 멤버십 운영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KAIST, 성균관대 등과 차세대 연구를 위한 산학협력을 강화했다.
기업변신을 넘어 창조기업으로
제일모직은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의미에 대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현재와 전혀 다른 차원의 제품으로 시장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첨단 소재를 디자인해 세계적인 전자업체 제품에 탑재하고, 패션 디자인의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를 확보해 미래비전을 실현할 계획이다.
지난 53년 동안 수많은 기업들의 부침 속에서도 끊임없는 기업변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온 제일모직. 이제 기업변신을 이끌었던 DNA를 점 임직원의 창조의지로 확산시켜 미래를 디자인하는 창조기업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 제일모직 기업문화 단상
한 기업의 문화는 과거에서 미래까지 이어지는 고유 자산이다. 53년을 이어 온 제일모직의 풍성한 기업문화 이야기 중 몇 장면을 통해 훌륭한 일터(Great Work Place)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보자.
#1. 너희가 아이비(ivy)를 아느냐?
가수 아이비도, 미국 동부 사립 명문도 아니다. 1954년 담쟁이 덩굴(ivy)로 둘러싸인 아지트, 제일모직 기숙사를 일컫는 말이다. 2층, 7개 동의 제일모직 기숙사는 50년대 일류급 호텔에서만 가능했던 스팀 난방부터 한 곳에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생활 서비스 기반을 갖춘 당대 최고의 기숙사였다. 이 곳에서 제일모직의 젊은이들은 미래를 꿈꾸었다. 1997년 제일모직 직물 공장이 구미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 기숙사는 직원들에 대한 기업의 眞心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심지어 환갑을 넘은 할머니들이 과거를 추억 하기 위해 기숙사를 다시 찾는 분도 있었다. 그 분들에게 기숙사는 제일모직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2. "개코, 작업장은 다 돌았어?"
2003년 여수사업장 환경안전팀에서 오갔던 대화. 조직문화라는 개념이 보편화 되기 전부터 제일모직은 Exciting & Energetic (E&E)이라는 조직 활성화 운동을 전개했다. 팀장, 과장 등의 딱딱한 직책 대신 서로 별명을 부르며, 칭찬을 일상화 하는 등 유연한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재미있는 회사생활, 열정 컴퍼니' 구축을 목표로 시작된 E&E 활동은 직원들 의 성원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사업부별 성과 달성에도 큰 기여를 했다. 개인이 행복해야 직장도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조직 활성화의 행복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임직원들을 위해 마련된 가족참여형 봉사 활동 프로그램이나 자녀 대상 민족역사 교육 캠프는 많은 임직원들이 직접 참여해 가족과 정다운 시간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다.
#3. Great Work Place로 꽃피우는 조직문화
제일모직의 가족적인 기업 문화와 직원 중심의 복리후생은 최근 GWP (Great Work Place)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신입사원의 부모님을 회사에 모시고, 경영진이 나서 고마움을 표시하며 회사의 미래에 대해 공유하는 감동의 입사식을 열었다.
이 입사식은 사령장만을 수여하는 기존의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영상 메시지와 영화감상, 신입사원 프리젠테이션, 전시관 투어 등 부모님과 함께 감성을 나누는 이벤트를 준비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입사를 축하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특히 신입사원들이 글로벌 역량을 뽐내기 위해 8주 간의 그룹입문과 사내입문 교육과정을 영어, 중국어, 일어로 부모님들께 상세히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거침없이 진행해 임직원과 부모님 들의 큰 박수 갈채를 받았다.
행사를 마치고 부모님들이 귀가하는 버스에까지 올라 한 분씩 인사를 나눈 제진훈 사장은 "훌륭한 인재를 제일모직에 보내 주신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 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신입 인력들이 사령장을 받는 자랑 스러운 모습을 부모님과 함께 하기 위해 초청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 저를 비롯한 제일모직의 모든 선배들이 신입 인력들이 글로벌 핵심인재로 거듭나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제일모직은 CEO부터 사원까지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GWP 테마 이벤트를 매달 진행해 재미와 함께 조직 전체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지난 5월 진행된 스마일 페스티벌은 웃음이 가득한 일상을 선사했고, 9월에는 '칭찬 왕 선발대회'로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금요일 Jean Day, 베스트 드레서 선정 등 패션부문은 업의 특성을 살린 활동으로 '옷 잘 입는 회사'의 표본을 만들기 도 했다.
제일모직은 최근 GWP 홈페이지를 새롭게 열었다. 실시간으로 칭찬 사연을 올리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멀리 떨어진 사업장 임직원들의 소식을 접하며 훌륭한 일터를 함께 가꾸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홈페이지 여기저기서 묻어 나는 정(情)은 53년 전 제일모직의 시작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를 이어 주는 소중한 끈이기도 하다.
* 제일모직이 선도해 온 한국패션의 역사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있다.
패션의 전설로 불리며, 파리가 사랑하는 대표 디자이너로 꼽히는 코코 샤넬은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혁명가로도 불린다.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고급 주문복)의 아버지 찰스 프레드릭 워드(Chales Frederik Worth)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 파리, 밀라노 컬렉션은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전 세계 패션을 리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패션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광복 이후 60여 년의 짧은 현대 패션의 역사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역할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제일모직을 떠올릴 것이다. 제일모직의 역사는 바로 한국의 패션사 그 자체이다.
일류를 향한 치열한 경쟁
1950년대에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단연 미국이었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패션에서도 이런 미국식이 크게 유행했는데, 신사복은 어깨선이 자연스럽고, 허리를 조이지 않는 박스 실루엣이 미국의 아이비(IVY) 스타일로 인기였다. 여성복 역시 한복에서 양장으로 바뀌게 되는 시점으로, 서울에는 우후죽순 격으로 양장점이 생겼으며, 전후 양복 경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농촌 지역까지도 유행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당시, 양복의 원단은 마카오와 홍콩을 거쳐 들어온 영국 복지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우리 나라의 복지 생산 시설은 보잘 것 없었으며, 그 품질에 있어서도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이 시점을 놓치지 않고 100% 국내산 소모방직시설을 완성한 기업이 바로 1954년에 창업한 제일모직이었다. 제일모직은 순수 자체 기술과 자본으로 국내 최초의 양복지를 개발해 1956년 6월 8일 ‘골덴텍스'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이 시기(1958년)에 골덴텍스의 전시, 판매 및 맞춤양복점으로 지금의 롯데 백화점 옆 을지로에 문을 연 ‘장미라사'는 지금까지 최고급 맞춤 정장의 명성을 이어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 유일하게 입점한 국내 업체가 되었다.
최초의 기성복 브랜드, ‘댄디'를 아시나요?
1960년대에는 양복이 한국 남성에게도 보편화된 상용복장이 된다. 이후 70년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부각된 영패션(Young Fashion)이 한국을 강타한다. 국내에서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크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여성들은 머리를 부풀렸으며, 청년들 사이에서는 장발이 유행했다.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이 잇달아 개장하면서 기성복 유통이 활성화되었고, 신사복은 맞춤에서 기성복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
당시 제일모직은 의류사업 확장을 위해 1970년에 국내 최초의 남성복 브랜드인 ‘댄디(Dandy)'를 인수해, 기성복 주도 시대의 막을 연다. 1976년에는 디자인 개발센터를 열었으며, 이듬해 여성복 '라보떼(La Beaute)' 런칭을 통해 한국의 패션 시장에 디자인과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뿌리 내리게 했다.
이때부터 한국 패션계는 본격적으로 기성복 시장이 확대되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 남성과 함께 해온 25년, 갤럭시
1980년대는 한국의 고도성장기로 개인소득이 늘고,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사회진출로 인해 패션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던 시대다. 88 서울 올림픽은 패션업계에 큰 영향을 주어 '스포티즘(Sportism)'이라는 메가 트렌드를 형성했고, 스타일에 있어서는 유럽, 미국 등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볼드 룩(Bold Look, 페미닌 룩의 반대로, 남성적인 스타일), 파워 수트 (각진 어깨와 가는 허리가 강조된 재킷) 등 볼륨이 크고, 어깨가 강조된 스타일이 유행했다.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성복 업체들은 외국 패션업체와의 기술 제휴, 라이센스 브랜드 도입 등으로 본격적인 기성복 시대를 전개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국내 남성복브랜드들은 해외 고급 라이센스 브랜드들과 비교되면서 중저가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런 인의 틀을 깬 브랜드가 바로 '갤럭시(GALAXY)'였다. 1983년 첫 선을 보인 ‘갤럭시(GALAXY, 은하계, 혹은 화려한 대집단을 의미)'는 높은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단기간에 한국 남성복 시장을 장악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갤럭시는 국내 남성복 시장에서 한국 남성의 품격을 대표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 나가고 있다.
캐주얼의 신화 ‘빈폴'
1990년대 한국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캐주얼의 가속화'로 표현된다.
신사복에서도 편안한 실루엣이 인기를 끌었으며, 여가와 레저문화의 발달은 고급 캐주얼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90년대 후반 가장 큰 변화는 남성 캐주얼 시장의 성장세였다. 비지니스맨의 유니폼으로 당연시 되던 신사복을 대체하는 캐주얼이 인기를 끌면서 패션시장이 급속히 재편되었다.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바로 1989년 런칭한 ‘빈폴(BEAN POLE)' 이다. 빈폴은 유럽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멋을 살린다는 브랜드 컨셉을 일관 되게 지키면서, 당시엔 처음으로 백화점 단독코너 개설, 노세일 전략, TV CF 등을 시도해 브랜드 이미지의 고급화를 추구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명품 매니아로 소문난 '거스 히딩크' 감독이 빈폴의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축하 퍼레 이드에 참석했던 일은 제일모직뿐 아니라 경쟁업계 모두를 놀라게 한 화제거리였다.
세계인의 가슴에 우리 브랜드를
패션은 시점이 중요한 사업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제 아무리 훌륭한 디자이너의 최고 작품이라도 선택받지 못한다. 제일모직은 한국 패션의 현대사에서 시기별로 굵직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며 국내 최고의 종합 패션기업으로 위상을 이루었다.
60년이 넘는 긴 시간을 패션의 현대화와 함께 해 온 제일모직은 이제 한국 패션을 넘어 세계 글로벌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997년 중국에 첫 진출한 신사복 갤럭시에 이어 스포츠 브랜드 라피도(1998년), 빈폴(2006년)이 중국 시장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올해 들어 스포츠 캐주얼 후부(FUBU)까지 중국에서 런칭 하기도 했다. 이제 제일모직의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에 따라 이탈리아의 제냐, 영국의 버버리, 파리의 샤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았다.
* 제일모직 패션 브랜드 이야기
'패션'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국내 최초로 기성복 출시를 시작으로 패션사업을 발전시켜 온 제일모직의 역사는 한국 패션산업의 역사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명멸하는 가운데, 오랜 세월 한국 패션의 자존심을 지켜 온 제일모직 패션 브랜드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 성공한 남성들의 로망, 갤럭시 (GALAXY)
오랜 기술력과 노하우로 신사복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갤럭시'는 '대한민국 대표 신사복'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남성들의 로망이 된 '비접착 신사복'을 처음 선보인 것도 갤럭시였으며, 현재까지 국내에서 비접착 기술력을 보유한 유일한 브랜드다.
성공한 CEO가 입는 수트'로 상징되는 '비접착 신사복'은 옷의 골격 역할을 하는 심지를 접착제로 붙이지 않고, 수작업으로 바느질해 인체의 움직임에 따라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하는 방식의 신사복을 말한다. '비접착 신사복'은 입었을 때의 느낌이 부드럽고 편안하며, 고급스러운 원단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주어 최고급 신사복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비접착 신사복'의 대명사로 불리는 갤럭시의 주 고객은 고급스럽고 엘레강스한 감각을 추구하는 CEO, 대기업 임원 등이다. 유명인사나 고위급 인사가 입은 '신사복'이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이유도 그들 대부분이 '비접착 신사복'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피어스 브로스넌'을 통해서 'How to dress'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갤럭시는 대한민국 남성들로 하여금 신사복을 제대로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트의 기본과 원칙'을 전파하고 있다.
- 자유로운 감성의 그대, 빈폴 (BEAN POLE)
지난 1989년 첫 선을 보인 트래디셔널 캐주얼 빈폴(BEAN POLE).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표 명품으로 자리잡은 빈폴은 이제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자존심'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라는 광고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캐주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빈폴은 빈폴맨즈, 빈폴레이디스, 빈폴골프, 빈폴진, 빈폴키즈, 빈폴액세서리 등 모두 6개의 서브 브랜드를 갖춘 패밀리 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했다. 2005년에는 다니엘 헤니와 기네스 팰트로가 모델로 나선 CF 광고로 글로벌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올 가을부터는 젊고 트렌디한 감성을 반영한 '캠퍼스 라인'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스타일을 아는 당신에게, 로가디스 (ROGATIS)
비즈니스 신사복 브랜드 로가디스는 젊고 세련된 취향을 지닌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보여 주는 신사복을 원하는 젊은 비즈니스맨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로가디스는 이번 시즌 ‘스타일 수트(Style suit)' 를 새롭게 출시했다. ‘스타일 수트'란 일반적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되 원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최적의 실루엣'을 구현한 수트다.
올 가을 새롭게 선보이는 로가디스 광고에는 전 세계 모델 랭킹 1위에 오른 '마티어스 라우리드센'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수트에도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번 광고에서 마티어스 라우리드센은 스타일 수트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 디자이너 감성의 독창적인 디자인, 구호 (KUHO)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감각의 클래식한 의상으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 브랜드 ‘구호(KUHO)'. 구호는 디자이너 감성이 살아 있는 실루엣과 독특한 디테일, 고급스러운 소재로 유명하다.
새로운 시도와 독창적인 디자인 제안으로 늘 화제에 오르는 구호 패션쇼는 구호만의 특별한 디자인 감성을 확인하는 자리다. 구호의 정기 패션쇼는 주요 패션계 인사, 연예인들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열린 구호 2007 FW 컬렉션에서는 세계적인 모델 '혜박(Hye park)'이 출연하기도 했다.
시간과 트렌드를 초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구호는 올 가을 '레트로 미니멀리즘(Retro Minimalism)'을 컨셉으로 현대적인 감성과 네오 클래식 스타일을 선보인다.
- 젊은 열정과 앞선 패션감각의 상징, 후부 (FUBU)
후부는 1992년 뉴욕의 퀸즈 지역에서 데이몬드 존(Daymond John)이라는 젊은이가 모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어 탄생한 브랜드다. 1995년 캐주얼 웨어를 비롯하여 액세서리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한 후부는 1996년 삼성 미주법인과의 합작을 통해 성장동력을 마련했고, 이어 헐리우드 유명 톱 스타들과 NBA의 스타들이 후부를 즐겨 찾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아시아, 유럽 등 60여 개국에 진출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은 후부는 'For Us By Us' 즉, '우리를 위해 우리가 만든다'라는 젊은이들의 자유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2007년 한국, 후부는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을 제안하며, 젊은이의 문화와 감성을 상징한다. 특히 클럽문화, 라운지 뮤직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으며, 세미 힙합, 적당히 헐렁한 느낌이 주는 편안함을 갖춰 열정적인 패션 리더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