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지 않는 이야기
무작정
가을 밤에 기차를 타요
너무 늦지 않은 저녁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이름의 역으로 가는 표를 사는 거에요
양원역, 극락강역, 화본역, 오수역, 삼랑진역...
지금껏 앞만 보며 숨차게 왔다면 답답할 수도 있을 거에요
가다 섰다 자주 멈춰 서니 지나는 길을 천천히 바라다봐요
운이 좋으면 오늘 선 장날 소식도 생중계로 들을 수 있어요
배가 고파도 조금만 참아요
역전에는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허름한 식당이 있을 거에요
마침 식당에서 이야기꽃이 피었다면 활짝 귀를 열어두세요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귀뚜라미 소리 흉내도 내고
남몰래 묵혀 온 이야기가 있다면 달님에게 들려줘요
그러다 눈에 띄는 과수원이 있으면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따서 한 입 베어 물어요
마주친 찬바람에 잊고 있었던 옛 일이 떠오르기도 하겠죠
이번엔 놓치지 말고 잘 붙들어요
제 때깔로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락 흙으로 돌려주세요
이끼는 눅눅한 바위 곁에서
구름은 비, 바람과 함께
인연을 따라 흐르며
살아지고 또 저만치 섭니다
꼬깃꼬깃 접어둔 일기는 손 때 옅어진 책장 사이 꽂아둔 낙엽이 된답니다
첫댓글 흙으로 돌려놓은 기억이 무채색 가루가 되어 검푸르고 섹시한 하늘아래 옥수수를 타고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