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일, 월요일, Colonia, Uruguay, No-name Hotel (오늘의 경비 US $28: 숙박료 50, 버스표 290, 점심 300, 식료품 175, 기타 75, 환율 US $1 = 30 peso) 배를 타고 Buenos Aires를 떠나서 Rio de la Plata 강 하구 50km를 2시간 반에 건너서 우루과이 Colonia에 도착했다. Rio de la Plata 강 하구는 강이기보다는 바다라고 할 정도로 넓다.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간에 위치한 인구 3백 5십만의 소국이지만 백인 인구비율이 남미에서 제일 높아서 (88%) 남미의 선진국으로 자처하는 콧대가 높은 나라란다. 축구도 강해서 월드컵을 두 번이나 우승했다. Colonia는 인구 3만의 소도시지만 우루과이에서는 옛날 건물들이 제일 잘 보존된 아담한 도시다. Colonia는 1680년에 Buenos Aires를 상대로 밀무역을 하기 위해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세운 도시다. 왜 밀무역이 필요했을까? 스페인은 신대륙에 거대한 식민지를 개척한 후 경제적인 이득을 독점하기 위해서 멕시코와 페루에서 나오는 은과 아르헨티나에서 나오는 소고기는 싼값에 사오고 식민지에서 필요한 공산품과 기타 물품들을 비싼 값으로 팔았다. 간단한 예로 스페인은 아르헨티나에서 소 한 마리를 2 peso에 사오는 대신 손수건 한 장은 20 peso에 팔아먹었다. 신대륙의 스페인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손수건을 한 장 사는데 소 열 마리 값을 내야했던 것이다. 스페인은 손수건 같은 공산품을 식민지에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 아예 식민지에서는 공산품을 만드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따라서 식민지에서는 모든 것을 본국으로부터 비싼 값에 사야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 오는 것도 법으로 금지시켰다. 한마디로 스페인의 독점 무역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스페인은 꿩 먹고 알 먹는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16세기만 해도 벌써 스페인은 유럽의 후진국으로 떨어지기 시작할 때라 식민지에 팔아먹는 손수건 같은 공산품은 스페인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공업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만든 것을 스페인이 사다가 식민지에 팔아먹는 식이었다. 진짜 꿩 먹고 알 먹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 당시 스페인 왕은 유럽의 국제 금융사들에 빚을 너무 많아 저서 식민지에서 버는 돈을 전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공산품 제조회사들이나 국제 금융회사로 갔다. 16세기의 국제 금융사가 도대체 무얼까 하고 생각하다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생각이 났다. 결국 국제 금융사는 국제적으로 돈놀이하는 "큰손"들이고 지금이나 그때나 돈놀이 큰손은 유대인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불리한 무역제도에서 제일 손해를 많이 보는 곳은 아르헨티나였다. 스페인에서 공산품을 실은 배가 Buenos Aires로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지금 파나마의 카리브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 Porto Bello로 온다. 배에서 내려진 공산품은 Porto Bello 장에서 신대륙의 스페인 식민지의 각 지역에서 온 상인들에게 팔려 나간다. 페루에서 온 상인들에게 팔린 공산품은 당나귀 등에 실려서 Porto Bello에서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Panama City 항구에 정박해 기다리고 있는 배로 옮겨진다. 거기서 다시 태평양을 따라 남하해서 페루의 Lima로 옮겨진다. Lima에서 다시 장이 서고 Porto Bello에서 가져온 공산품의 일부는 Buenos Aires에서 온 상인들에게 불린 가격에 팔린다. 그 공산품은 다시 당나귀에 실려서 Andes 산맥을 넘어서 일부는 그 당시의 신대륙의 최대 도시였던 볼리비아의 은광의 도시 Potosi에 내려지고 나머지는 아르헨티나 북부 도시 Cordoba를 거쳐서 Buenos Aires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공산품이 Porto Bello를 떠나서 Buenos Aires까지 오는데 6개월은 걸렸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 같은 무역제도 때문에 밀무역을 하는 Colonia가 생기고 그곳에 유럽으로부터 공산품이 배로 직접 오고 다시 강을 건너서 Buenos Aires로 들어왔던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공산품은 페루를 거쳐서 온 공산품보다 훨씬 싼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불법적인 밀무역은 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Buenos Aires 사람들은 좋아했겠지만 스페인으로서는 큰 손해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려고 Colonia를 여러 번 공격해서 점령하곤 했다. 옛 콜로니아의 밀무역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Colonia는 Buenos Aires에서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제법 분주한 관광도시가 되었다. Buenos Aires의 번잡을 피해서 잠깐 잘 쉬어갈 만한 도시다. 1600년대 포르투갈 사람들이 지은 집, 성벽, 교회, 수도원 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조용한 도시다. 대낮에는 더웠는데 저녁때 부둣가를 산책하니 서늘해져서 참 좋았다. 부둣가 근처 바닷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 모래사장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로 한가로운 풍경이다. 바다 건너 멀리 Buenos Aires가 아련히 보인다. 그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일몰 경치는 장관이었다. 여행지도 우루과이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Buenos Aires 시내 풍경 수평선이 보이는 흙탕물의 Rio de la Plata (은의 강) Buenos Aires와 싸움을 많이 한 Colonia의 옛 요새 1680년에 건설된 Colonia의 old town 풍경 Rio de la Plata 강의 일몰을 즐기는 Colonia의 젊은 남녀들, 수평선 너머에는 아르헨티나의 Buenos Aires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