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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62강
출애굽기 26:31-37
세 휘장막
본문은 지성소 휘장, 내성소 휘장에 대한 말씀이다. 실제 휘장 제작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36:35-38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 27:16에서 말씀하는 뜰의 휘장(뜰막)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뜰의 휘장 제작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38:18-20에 나온다.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서”(31절). “휘장”은 ‘파로케트’로 ‘가로막다, 차단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론되는데 오직 지성소의 휘장으로 표현되는 용어로만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성소의 휘장을 표현하는 ‘마사크’와 표현을 달리한 것은 지성소의 휘장이 최고의 직조술과 값나가는 휘장인 이유로 특별하고 유일한 명칭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성소의 휘장은 삼색 실 앙장막과 재료와 제작법이 일치한다. 둘 다 삼색 실을 섞어 그룹 문양을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서” 만들기 때문이다. 지성소의 크기에 비추어 보면 가로 세로 10규빗(5m)으로 만들어진다.
첫 번째 앙장막과 마찬가지로 세마포(베 실)에 최고가의 청색, 자색, 홍색의 삼색 실로 정교하게 “그룹들”의 문양을 새겨 넣는다. 그렇다면 휘장에 새겨진 그룹 문양이 어떤 것일까? 유대 문헌에는 그룹들 문양이 양쪽 모두에 수놓아졌는데 그것이 각각 사자와 독수리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룹 형상은 사람, 사자, 독수리, 황소인데 이 중 어느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겔 1:10, 10:14, 계 4:7). 또한 앙장과 휘장에 수놓은 그룹들의 크기와 개수에 대해서도 성경은 침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룹들”(히, ‘케루브’)을 단순히 천사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그 날개로 언약의 말씀으로 주신 돌판과 이스라엘의 죄의 증거들(만나의 항아리, 싹난 지팡이)을 덮고 있는 것을 통해 메시아가 오면 온전한 말씀으로 드러내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된다.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네 생물”은 생명체 전체의 질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네 생물이 하늘에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원천이 하늘에 있음을 말씀한다.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계 4:8)라는 말씀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성막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 성막에는 언약궤가 있고 언약궤는 그룹의 형상이 있어 보좌를 상징하는 속죄소라는 덮개로 가려져 있다. 그룹은 말씀을 보호하고 언약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상징한다(출 25:22).
이스라엘의 이동은 언제나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언약궤를 중심으로 레위 지파가 위치하고 그다음은 세 지파가 네 방향으로 위치한다. 이것은 네 생물이 보좌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계 4:8)다고 말씀하는데 네 방향의 세 지파가 두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을 한다면 여섯 날개를 가진 모습이 된다. 결국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배치되는데 이는 곧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라는 말씀을 나타내신 것이고 요한계시록 본문에서 네 생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존재하여 온전히 성취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휘장의 두께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는데 탈무드와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 두께가 한 손바닥 너비인 약 8cm였다고 보는가 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과도한 두께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과도한 두께로 볼 수는 없다. 분명히 당시 지성소 휘장은 그리 두껍지 않았고 생각보다 가벼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동할 때 휘장을 언약궤 위에 덮고 또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으며 그 위에 청색 보자기를 덮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단이 직조된 모직이기에 대단히 질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5 진영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칸 막는 휘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6 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민 4:5-6)
“32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31-33절).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32절)라는 말씀은 휘장을 걸기 위해 네 개의 기둥이 제작되어야 하고 각각의 기둥 위에 금 갈고리를 하나씩 제작하여 부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린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번역이다. “늘어뜨리되”의 ‘나탄’은 ‘놓다, 두다, 정하다, 정하여 세우다’라는 뜻이다.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32절)라고 말씀하였는데 네 기둥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을 입혀 각각에 은 받침 하나를 끼운다. 앞서 널판벽의 널판 아래에 두 개의 은 받침을 끼운 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로써 은 받침은 총 100개가 된다(출 38:27).
그런데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을 걸기 위한 네 기둥의 배치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입장하는 통로 확보를 위해 네 개의 기둥 중 가운데 두 기둥 사이의 공간이 더 넓게 세워졌을 것으로 추론한다. 왜냐하면 언약궤의 채는 늘 끼워져 있었고 휘장에 거의 닿을 정도가 되었기에 측면에서 들어간다면 채로 인하여 행동이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언약궤 앞에서 향연을 피우고 언약궤 위 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의식을 행하는데 두 채 사이에서 방향은 휘장이 걸려 있는 언약궤 동쪽에 선 채로 그 의식을 실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중앙의 기둥 사이가 넓었을 개연성이 크다. 대제사장은 안전을 위하여 휘장을 닫은 뒤 언약궤 정면에서 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의식을 수행하였을 것이다(레 16:12-16).
이렇게 보았을 때 본문에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휘장을 걸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긴 나무 봉, 즉 휘장걸이가 필요하다. 금고리들의 용도는 거기에 휘장걸이를 끼우기 위함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휘장걸이를 끼우는 기둥의 갈고리들과 휘장을 휘장걸이에 걸기 위한 갈고리들이 별개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또한 휘장걸이는 네 기둥이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히 붙잡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 네 기둥이 지성소에서 보였는지 아니면 내성소에서 보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자가 합리적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내성소에서는 지성소 휘장의 기둥들은 보이지 않고 휘장만 보인다. 즉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 그룹들의 형상이 온전하게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기에 휘장은 기둥까지 완전히 가리는 차단막으로 보여야 한다. 이는 내성소 휘장막과 뜰막 또한 마찬가지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그림 참고).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33절)라고 하였는데 휘장이 설치되고 언약궤가 놓여짐으로 지성소로 구분되었다. “성소”는 ‘코데쉬’로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라는 뜻이고, “지성소”의 ‘코데쉬 하코다쉼’는 ‘거룩하게 구별된 곳 중의 거룩한 곳’이라는 뜻이다. 지성소와 내성소를 구별 짓는 이 휘장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의 비참한 처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 육체를 찢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나타내심으로 구원의 길을 계시한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0-53)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새로운 살 길”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새로운”의 ‘프로스파토스’는 ‘프로스’(~에서부터, ~을 향하여)와 ‘스파조’(죽이다, 살해하다, 도살하다)의 합성어이다. “살 길”의 ‘자오’는 ‘병이나 죽음에서 회복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도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죽음에서 회복되는 생명의 길이라는 의미이다.
“34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35 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34-35절). 차단막 안에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34절)를 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내성소 비품들의 위치가 지정된다. 제사장들이 일상적으로 관리하는 성막 비품들, 곧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35절) 하였다. 아직 분향단에 대한 언급은 없다(우리는 이미 성막 평면도를 통해 비품의 배치도를 살펴보았다).
“36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37 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36-37절). 여기서 “휘장”(36절)은 ‘마사크’로 표현하였는데 가장 일반적인 ‘가림막’을 가리킨다. “수 놓아 짜서”(36절)라고 말씀하였는데 지성소의 휘장과 달리 “정교하게”라는 표현이 없다. 세마포 원단에 별도의 바느질로 문양을 새겨넣는 작업을 뜻한다.
혹자는 지성소의 휘장과 달리 그룹 문양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내성소 휘장에는 그룹 문양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정교하게”라는 표현이 없을 뿐이지 “수놓아 짜서”라는 표현을 하고 있기에 지성소 휘장과 같이 그룹 문양이 새겨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다만 지성소 휘장과 다른 두 막(내성소 휘장과 뜰막) 사이에는 자수 기술의 차이가 있었다고 본다(그래서 어떤 랍비들은 정교한 수놓기가 양면 수놓기라면 일반적이고 평이한 수놓기는 단면의 수놓기라고 본다).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37절)라고 말씀한다. 지성소의 휘장이 걸리는 기둥은 네 개였으나 내성소 휘장을 거는 기둥은 조각목에 금을 입힌 다섯 개이다. 기둥의 받침은 은이 아닌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37절)라고 말씀하셨다. 지성소의 휘장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기둥 위에 휘장을 거는 금 갈고리가 부착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제사장들이 내성소에 입장할 때 아래서 반 정도를 열고 몸을 구푸려 기듯이 입장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을 토대로 추론해 보자면 한쪽 측면을 넓은 공간을 입구로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매일의 분향과 등잔대 관리, 안식일마다 커다란 진설상의 떡을 운반해야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요세푸스의 기록처럼 힘들게 입장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성막 휘장의 제작 과정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휘장 문의 기둥 다섯과 그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와 그 가름대를 금으로 쌌으며 그 다섯 받침은 놋이었더라(출 36:38)
“기둥머리”와 “가름대”가 새롭게 기둥에 붙어 있는 장식처럼 언급된다. 기둥의 머리를 금으로 입혔다는 것은 기둥의 가장 윗면을 금으로 입혔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가름대”의 ‘하슈크’는 ‘띠, 고리’라는 뜻이니 1규빗의 정사각형 기둥의 표면과 상단 모두 금을 입히고 기둥 둘레에 금띠 장식을 넣었다는 의미이다.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출 27:16)
뜰 문이라 할 수 있는 뜰 막은 출애굽기 27장에서 마당의 울타리와 더불어 언급되나 여기서 함께 다루기로 한다. 뜰 막 또한 베실의 세마포를 기본으로 삼색 실을 섞어서 제작한다. 내성소 휘장과 마찬가지로 그룹 문양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순히 “수놓아”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수놓는 문양은 그룹들인 이유로 생략되었다고 본다. 내성소 휘장과 뜰 막은 문구 하나 차이가 없이 동일한 재료와 직조술이 사용되었기에 동일한 물품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의 세 휘장막은 성막의 세 공간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경계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내성소 휘장보다 저렴하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뜰 문 휘장은 네 개의 기둥에 걸어 세우고 길이는 20규빗(10m)으로 각각 한 개의 놋 받침을 끼운다(출 38:17). 20규빗은 뜰의 기둥들 사이의 간격 5규빗(2.5m)에 부합한다.
세 휘장막은 세 영역의 경계선이다. 세 영역은 이스라엘을 세 구분으로 언약을 설명하고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계시의 순서가 지성소 → 내성소 → 뜰(마당)의 순서로 주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찾아오신다는 과정으로 보여주시는 언약이다. 다시 말해서 성막은 구원의 과정이 아니라 계시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뜰(마당)에 입장이 가능하고, 제사장들은 내성소 휘장을 통과할 수 있으며, 대제사장은 지성소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여야 한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속죄일(7월 10일)에만 출입할 수 있었다.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향로에 향을 피우면서 들어간다(레 16:4).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레 16:13)
“향연”은 ‘아난 케토레트’인데 ‘케토레트’는 ‘연기, 태우는 희생 제물의 냄새나 향기’라는 뜻이고, ‘아난’은 ‘구름’이라는 뜻으로 시내 산에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구름”(출 19:9, 16, 24:16)이다. 시내 산에서 구름으로 가려 백성들이 죽음을 면하였듯이 지성소의 향연은 속죄소를 가려 대제사장의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즉 성막의 세 휘장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임하셔서 성전 삼아 언약을 주시고 또한 친히 성취하실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뜰 막의 휘장이나 내성소의 휘장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 자기 성전의 보좌에서 지성소 휘장, 즉 자기 몸을 찢는 죽음을 통해 부정한 세상을 향해 오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보좌에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자기 몸을 찢으신 십자가 죽음에 자기 백성들을 합류시키는 구원을 이루심으로 지성소가 보여주는 언약의 의미를 온전히 성취하신 것이다(2026052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