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은 변화될 수 있는가?
흔히 기질이라는 말은 단순한 기분에 따라 변화되는 태도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측면을 가리킨다. 즉, 내가 평소에는 부모님께 살갑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가 오늘 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계속 밥 먹으라고 부르는 부모님에게 짜증을 냈다고 "저 아이는 기질이 예민해."라고 하지는 않는다.
율곡 이이는 리기(理氣)론에 대해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두 실체 간의 결합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가 성립하는 데 있어서 그 요소를 이루는 두 계기로 파악하였다. 즉 리는 세계가 성립하도록 하는 보편적 도덕 원리이고, 기는 각각의 개체들이 가지는 서로 다른 기질, 성격, 조건 등으로 설명하였다. 이이에게 리와 기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면서도 서로 떨어지지도 않고, 서로 섞이지도 않는 묘한 관계이기에 이를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설명한다. 또한 리는 보편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두루 통하는 것이지만, 기는 개별적인 조건에 국한되어 제약을 받는다는 이통기국(理通氣局)의 논리를 제시하였다. 즉, 현실세계에서 인간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기의 국한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간 사이의 도덕적 차이 또한 본성(理)의 차이가 아니라 기질(氣)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또 이이는 리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기만이 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氣發理乘一途說). 리가 스스로 발한다고 보는 것은 리에 작위성을 부여하여 성리학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적 수양의 대상은 실제로 발하는 기이며, 이를 바로잡는 수양이 바로 교기질(矯氣質)이다.
이번 수업을 통해 내가 생각해볼 주제는 바로 이러한 이이의 주장처럼 '기질은 변화 가능한 것인가'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기질을 생애 초기에 나타나며 생물학적 기반을 지닌 비교적 안정적인(연속적, 지속적) 정서적·행동적 특성으로 본다. 토마스와 체스 등의 뉴욕 종단연구는 영유아기에 나타난 활동성, 적응성, 반응 강도 등의 기질적 차이가 성장 과정에서도 일정한 연속성을 보인다는 점을 밝혔다(Thomas, Chess, & Birch, 1968). 다만 현대 심리학도 기질을 완전히 고정된 것으로 보지는 않으며, 환경과 경험, 자기조절 능력에 따라 그 표현 방식과 발달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질과 이이가 말하는 기질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현대 심리학의 기질이 생물학적 기반을 둔 개인차를 의미한다면, 이이의 기질은 본래 선한 본성(=理)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이이의 교기질을 현대 심리학의 관점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면, 타고난 성향 자체를 완전히 없애거나 다른 성향으로 바꾸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질의 편중을 바로잡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조절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동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충동 자체를 전혀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면 기질의 발현 방식은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입지(立志)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입지라는 것은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그 방향을 확정하는 것으로, 즉 도덕적인 인식과 실천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기질 자체는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지만, 기질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기질을 바로잡으려는 실천적인 수양과 경험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이의 교기질은 타고난 조건(기질)의 악함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조건에 그대로 지배되지 않고 도덕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태도가 중요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