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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복음 전도와 교회 소개[스베덴보리 신학에 대한 개인 소견 첨부] . 이 글은 전도와 교회 소개의 관계를 필자가 경험하고 생각해 온 것을 소략하게 쓴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 신학을 소개하는 것은 불신자 비신자에게 전도할 때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신학적 지식이 있는 타 교파 평신도나 교역자에게 예수교회의 교리 노선을 알릴 때 비로소 필요한 단계라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간간이 나오는 스베덴보리 신학서와 신학에 대한 생각이랄까 반응이랄까.. 그것은 예수교회인의 전체 생각 반응 신뢰 지지 수용과는 상관이 없고 필자 자신의 것이라는 점도 글 첫머리에 밝히고 글을 시작합니다. 2011. 4.10 주일 밤. 성서주석(천계비의, 묵시록 풀이. 묵시록 시현) 내세론(천국과 지옥) 창조론- 우주론.- 신론- 인간론(신애신지) 섭리론(신령섭리) 인간 영육론(영과 육의 교류) 종말론(최후심판).. .그런데 그의 저서에 특이한 점은 그가 영계를 드나들며 그곳을 가서 보고 듣고 대화하였다는 체험담이 있는 것입니다. 영들과 대화한 것, 특히 그가 1757년 영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최후 심판을 목격한 것.. 1770년 새교회가 영계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을 보았다...역사에 실재한 인물들을 영계에서 만났다. 지구 외의 행성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달에 살다 죽은 후 영인이 되어 영계에 온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였다 등등.. 그의 목격담 증언이 하도 신비하고 경이롭고...(비판자 반대자의 눈으로 보면 황당무계하다고 합니다..) 새교회인들은 스베덴보리 저서를 성문서라고 합니다. 개인 생각을 전제로 하며 말하는데...나는-내 개인적 반응이고 소견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계시에 의해 저술된 것이라는데 까지는 동의합니다만... 후세 사람들이 그의 신학 저술을 성서와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수긍하지 아니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내가 쓴 책이 성서와 같은 권위를 가진다. 경전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새교회를 소개하였지만 자신이 새교회라는 이름과 조직의 교회를 창립하지는 않았습니다. 새교회는 그의 사후에 그의 책을 읽은 사람 생전에 그와 알고 지낸 사람들 몇몇이 모여.. 그것이 점차 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영국에서 시작] 그들 교파 중에는 스베덴보리 저술을 말씀 저술. 聖文書(Writings)라고 합니다... 더 진전하여 구, 신약과 맞먹는 경전으로 격상하여 존귀하게 여기는- 그 책의 글에 또 내적 의미가 있다는 교파... 주님의 새교회(the Lord`s New Church)는 제3의 언약(the 3rd Testament)이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서는 좋은 신학서들이고 경건서이고 또 영계의 실상을 보여 주는 문서들이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과학자입니다. 그런고로 그가 쓴 과학 관련 논설이나 책은 과학 저술(scientific writings)이라고 부르고.. .소명을 받은 후에 쓴 신학적 저서들을 신학 저술(theological writings)라고 분류하면 됩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보자는 각성이 일어나 뜻을 같이 하는 교인들이 만나 신앙적 교제를 하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그리고 전도하고.. 그러나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교회의 직분에 충실히 하는데... 그들의 기도와 전도가 너무 열렬하고 그들의 신앙에 동조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자... 특히 평양노회는 평양기도단을 지목하여.. 비합법적 무인가 조직이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감정적이다 신비주의다 이단 사상이 들어올 위험이 있다.. 하면서 1932년 4월 교역자회의는 타 교파 목사들을 초청하지 말라. 기도는 조용히 하라. 환자에게 안수 기도하지 말라..하면서 그들의 활동에 제약을 하고 해산을 종용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단은 30년 2월 이용도 전도사의 평양 중앙감리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은 장로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기도단체입니다) .당시 한국 기독교의 그리스도인 들 중에서는 이용도 목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용도 목사와 친하게 된 것입니다. . 박계주 씨의 평을 빌리면... ``당시 조선에서 가장 신령한 목사는 이용도. 가장 경건한 목사는 백남주``라고 하였습니다. 백남주 목사가 원산에서 선다싱 스웨덴볽 토마스 아켐피스 들을 읽는 그룹의 리더였습니다. 원산에서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이 기도와 성서읽기에... 스웨덴볽, 선다 싱, 토마스 아-켐피스를 읽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그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경건한 신앙인이고 또 남다른 영적 체험도 있어서... .그 영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으로 선다싱의 <영계의 묵시>와 스웨덴볽의 <천계와 지옥<을 접하자 기쁨으로 읽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선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가 천계와 지옥 신지와 신애 신려론을 번역하였습니다. 이용도 목사도 원산에 갔다가 <신지와 신애>를 선물 받아 읽게 되었고 몇몇 사람들이 그 책을 돌려 본 것 같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먼저 읽은 <신지와 신애>가 평양기도단원들..서울의 감리교인들 사이에 읽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저서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우자고 하여 일본이나 미국 새교회에 연락하여 선교사 선교자금을 지원 받아 세운 교회가 아니라.. 또는 미국 새교회 본부에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선교하여 한국에 새교회를 세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영생과 천국과 지옥..등에 대하여 다른 신학자들의 책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교리 신학을 발견하고 동감하였기에 스베덴보리의 신학저서를 애독한 것입니다. 예수교회가 설립된 후 원산신학산에서 그 신학을 가르친 것입니다 . (백남주 목사가 수도감,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이 교수진..남자 5인 여자 6인... 33년 9월 9일에 개원하여 일 년 정도 운영되다 문을 닫음) 당시 원산신학산의 교리가 이단이라고 지적한 김인서 장로의 글에도 선다싱 스웨덴볽의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교회 중앙선도원 발간 기관지 <예수>에 선다 싱 스웨덴볽을 소개한 분은 한준명 박계주 들입니다 ..박승걸 씨는 예수지에 글이 별로 없고[박시온 시온산인 필명으로 ]. .백남주 씨는 시 수필 성서공과.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번역. 요한복음 헬라어 원문에서 한글 번역을 34년 일 년 동안 예수지에 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사정으로 교회를 떠나며 그의 글은 게재가 중단되었습니다. 백남주 목사는 스웨덴볽의 이름을 글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8. 해방 이전 예수교회의 지도급 교인들은 스웨덴볽의 이름과 그 책에 대하여 개인 차이는 있었으리라 보는데. .대다수 교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35년 경 스베덴보리의 신학 저술 대부분이 예수교회에 소장되어 있었고.[ 한준명 목사 덕원 송천 예베딩].. 평양과 원산의 목사 복음사 집사들 중에 이 책들을 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교회의 평양 교인 목사들은 기성 교회의 신앙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평양에 중앙선도원이 있었고..선도감은 이호빈 목사..그리고 전영택 목사가 평양예배당 담임.. .그외에는 복음사였습니다.. 30년대 후기.40년대에 목사가 된 분들이 있습니다 (박재봉 진하룡 임학봉 전덕일 박명대...) 그분들이 전적으로 스웨덴볽 신학도는 아니었으나...어느 정도 이해는 있었으리라 봅니다.
9. 예수교회가 타 교파 교단과 다르다고 본 이유는.. 계시의 연속성 문제에서 장로교단과 충돌하였고... 교리적으로..믿음 만으로 의로워진다는 주장에 대하여 예수교회인들은 믿음은 사랑과 수반되는 것이다. 입술만의 고백 지식만의 믿음 행함 없는 형식적 위선적 종교생활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교회의 신전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사랑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라는 신앙고백이 예수교회 창립 때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고 또 스베덴보리 신학에서 재확인되는 것입니다. 그 외 원죄 문제 대속 사상 종말과 재림 성서의 문자적 영적 의미 관계 죽음과 죽은 자의 부활 문제...등에 있어 기성 교단과 다르게 주장하였기 때문에 예수교회 창립 때부터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0. 이정선 목사가 신학생 시절...평양 중앙선도원 임원이자 평양예배당의 박선관 집사의 권유로 스웨덴볽의 책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평양파와 원산파를 분리하여 신앙이 다른 두 파라고 보는 설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정선 목사는 산정현 장로교. 평양기도단의 일원으로...예수교회 창립의 기폭제가 된 1932년 11월 첫 주간..평양기도단 특별집회를 개최한 이조근 집사와 그 집회에서 성령의 입류를 받아 대언=예언을 한 이유신 집사의 아들입니다. 예수교회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스웨덴볽의 이름을 어렴풋이 들었을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책을 구하여 읽은 시기가 해방 후 월남하여 조선신학교=한국신학교 학생으로 신학 공부를 하며 서울 영등포구 흑석동에 한강예배당을 개척하여 신학생 전도사로 일하던 때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원산의 한준명 목사는 월남하기 전입니다. 11.한준명 목사는 해방 후 월남하지 않고 원산 송도원 예수교회를 지키고 있다... 50년 전쟁 직후 닷새 만에(6월 30일) 정치보위부에 검속되어..3개월 교화소에 갇혀 있었다고 합니다... 10월 9일. 한국군이 원산을 탈환하기 하루 전날 후퇴하는 공산군이 갇혀 있는 원산 지역 기독교인 우익인사 남녀들을 한꺼번에 총살하는 현장에서 살아났습니다 .12월 흥남 원산 철수 작전 때 배를 타고 월남하였습니다. 부산연희대학 교수. 서울 중앙신학교 교수 교목 학감 역임.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베덴보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분이고.. 예수교회 창립 전 평양기도단 집회 강사로 와서 이른바 강신극을 지휘하였다고 해서 이단으로 규정된 분입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영어 독어..등 외국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분입니다.) 12. 이정선 목사 미국 유학 기간 박선관 박승걸 이조근 집사들이 교대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나는 국민학교 저학년 때인지라..어른예배는 참석하지 않아 사정을 모르는데... 박승걸 집사 가족이 온 것은 기억합니다. 그 형제들이 몇 년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68년 여름 임마누엘 수도원에서 새교회 신학 세미나를 하였을 때 박승걸 장로님이 참석하였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유일한 행사 증거 사진이 되었네요. .[선다싱 영문판은 박승걸 장로님이 한준명 목사님께 보낸 것이랍니다. 그 덕분에 나도 영문판 몇 권을 얻었습니다] 13. 스베덴보리 신학의 흐름.= 학문적 脈은 이영근 목사가 담임을 한 서울 화곡동 제일예배당으로 이어지고 있고. ..90년대 예수인 출판사를 파려 스베덴보리 신학전집을 번역 출판합니다. 광주 동산 예배당[ 김국현 복음사] 인천 아름다운 예배당[ 조근휘 목사]가 있습니다. |
2018.8.7 화 재차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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