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6월22일주일설교.hwp
2008.6.22. 온고을교회 주일설교 (황의찬전도사)
「만 2년 후에」
창41:1~24
창세기 41장은 『만 2년 후에~』로 시작된다.
요셉이 감옥에서 애굽 왕궁에서 왕이 먹고 마시는 음식을 관장하는 고위 관료들을 만나서 그들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 해몽대로 술 관원장은 복권되어 왕궁으로 다시 돌아가고, 떡 관원장은 효수되고 난 이후 만 2년이 지난 후를 일컫는다.
그때 요셉은 술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신원하면서 복직이 되면 꼭 자기를 내보내 줄 것을 당부했었다. 그러나 술 관원장은 복직이 되면서 요셉의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요셉은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 있을 수밖에.
그 2년 동안 요셉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그 2년 동안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셨을까?
이곳 중화산동에 자리잡은 온고을교회는 오늘로부터 꼭 2년 전에 “전북도성회 목요성경공부방”을 시작하여 지난 6월 8일에 창립 및 입당 예배를 드렸다. 늦깎이 신학도에게 사회생활 중 가까워진 선배들이 “당신이 목사 되면 나도 그 교회 나가야겠네!”라고 듣기 좋게 건네는 인사말을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더불어 성경공부방 예배를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났는데, 대지 177평에 건평 100평의 교회를 건립했다. 결코 작은 사건이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요셉은 복권되어 복직한 술 관원장이 자기의 청탁을 망각함으로써 꼼짝없이 감옥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그냥 팽개쳐 두지 않으셨다. 요셉 역시 체념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다. 그는 이웃에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자였고,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요셉의 꿈은 시들지 않았고, 그의 소망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때 어떻게 섭리하고 계셨을까? 본문을 통하여 믿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 분이신지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변명하는 자로 만들지 않으신다.
만약에 술 관원장이 복권 즉시 요셉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노력하여 요셉이 풀려났다면 요셉은 곧장 고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고향에 가면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물론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으니 한없이 기쁘겠지만, 그를 노예로 팔아먹고 아버지를 속였던 열 명의 형님들 입장은 어떻게 될까? 온 집안이 벌집 쑤신 꼴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어떤 한 사람이 변명하여 자기의 억울함을 푸는 것의 유익함이,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그에게 해를 끼쳤던 이들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면 오히려 변명을 참아야 한다. 하나님은 요셉의 경우가 그렇기에 그를 변명하는 자의 자리에 세우지 않으셨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권세 가진 자와 대등한 위치로 올려주신다.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해 억울해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아마도 이렇게 응답하셨을 것이다. ‘요셉아 네가 내 앞에서 범죄하지 않으려고 너를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것, 내가 알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더 큰 것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렇게 응답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애굽의 왕 바로에게 한가지 꿈을 꾸게 하셨다.
그 꿈은 나일 강가에서 살찐 암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한편에서 비쩍 말라빠진 암소 일곱이 나타나 살찐 암소를 잡아먹어버렸다. 꿈에 놀라 깨었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풍성하고 잘 익은 곡식의 이삭 일곱 개가 역시 나일강가에 있는데, 바싹 마르고 비틀어진 이삭 일곱이 나타나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잡아먹는 내용이었다.
꿈이 하도 기이하기에 그는 온 나라 안에 있는 술객들과 점쟁이들을 다 불러서 꿈 해석을 시켰지만, 제대로 해몽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때 마침 술 관원장은 2년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그때 자기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했던 히브리 출신 노예 요셉을 떠올리고, 왕에게 추천했다. 그래서 요셉은 왕이 꾼 꿈을 왕의 면전에서 해석하는 대단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강함과 담대함을 허락하신다.
애굽 왕 바로는 자기의 꿈 해석을 위해 감옥에 있던 히브리 노예 요셉을 불러서 “네가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기에 불렀노라”고 말하자 요셉이 대답하기를,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꿈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해 드립니다.”고 대답했다.
이 당시 애굽 왕의 면전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기 전에는 불가능한 말이었다. 애굽 왕은 사람이 아닌 신으로 숭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굽의 왕은 신이기에 죽어서도 사람과 똑같은 무덤에 묻힐 수 없다고 생각한 이집트 사람들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만들어 파라오(바로)의 무덤으로 썼다. 그래서 애굽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왕)을 위해 평생 동안 노역을 해야만 하는 나라였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8:21~22)고 하셨다.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팽개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아니다. 산자가 죽은 자를 위해 평생 노역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왕의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이 말을 신으로 자처하는 이집트의 왕 앞에서 할 수 있는 담대함과 강함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앞에서 자기의 무죄를 증명키 위해 바들바들 떨면서 진술할 뻔 했던 요셉의 입술을, 하나님을 드러내는 크고 위대한 일에 쓰셨다.
요셉이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술 관원장이 풀려 난지 만 2년 동안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고 계셨다. 이렇게 요셉의 영혼을 손질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눈물의 감옥, 눈물의 골짜기는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섭리 깊은 계곡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그에게 가해했던 형님들이나, 보디발의 아내를 손 봐 줌으로써 한풀이를 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요셉을 들어서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그를 통하여 장차 있을 인류의 고난에 대비하시고, 또 그의 형님들과도 감동어린 눈물의 만남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죄를 정죄함으로써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보다는 그들도 용서하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다. 졸지도 않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