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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 春帖子, 斬新한 自己着想을
‘ 吉兆’ㅡ 復活의 象徵, 不死의 神秘
■일깨워지는 知慧와 幸運은ㅡ.
"입춘 날ㅡ, 야아 선염한 진주 베일이네. 길조죠?"
창밖을 내다보며 무심코 말해버린 아내였다. 짙은 안개, 엷은 베일에 가린 꿈의 고향 입춘(立春)ㅡ.
立春大吉 建陽多慶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天增歲月 人增壽 春滿乾坤 福萬家 天下泰平春 四方無一事
입춘 날 풍속이 그립다. 몇 해 전만 해도 春祝을 切紙에 써서 도어 밖에 써 붙였는데 그만 두었다. 대신 고서를 꺼내 杜甫의 唐詩 명 구절을 읽고 입춘 전경을 회상하는 것으로 머물렀다.
기둥에 당시를 써 붙이고 대문에 사자성어를 발라두면 집안이 환해 보였다. 옛 선비들은 기둥이나 출입문에 걸레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위에 漢詩를 적은 종이나 현판을 즐겨 이용했다. 먼지를 위장하기 위해—.
물론 위의 견해는 악의에 찬 왜놈들이 중국 대륙으로부터 수입된 화려한
우리의 풍습 문화를 깎아내리는 속셈으로 비웃었던 표현이다—. 뱀띠 설명절을 닷새 앞두고 썰렁한 대지는 잿빛 안개로 우중충하다.
아내는 내게서 어떤 반응을 떠보자는 관심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예사롭지 않게 이채로운 변화가 있을 때 그냥 지나가지 않는 끝 물음 말투가 언제나 이렇게 의례적인 것을—. 그 때마다 여운 뒤는 으레 ‘길조(吉兆)’였다.
아내의 감탄은 옛 말의 패러디일까? 하긴 말투를 트집 잡기보다, 이미 언어적 주체가 희귀성을 떠난 탓도 있다. 언어란, 용량 빈곤으로 동일한 표현을 반복하면 참신성이 반감되거나 시들하고 만다….
■저 쪽엔 어떤 世界가 있을까ㅡ?
문제의 전문 표현 `길조'ㅡ. 화투나 치고 패를 떼는 버릇 때문이 아니다. 길과 흉, 그 자체를 성경의 지혜문학(智慧文學)에서 익힌 탓이라고나 할까,
자기전용(?) 용어가 행운을 시사하는 기대감을 내포해, 어휘 자체부터 갱 안의 광맥이듯 빛을 뿜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실상 그녀가 가톨릭 교리교사로 요행과는 삶이 현격한데다가 하나 더 하기는 둘이란 이외의 변화를 알지 않았고, 또 알기를 꺼려했다. 이는 M. T. 키케로가 말한 ㅡ`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행운이지 결코 지혜가 아니다' 는, 지혜문학의 산물이다.
지혜와 행운—! 직접적인 혜택은 없겠지만 그녀의 삶에서 지혜의 존재는 행운을 위해 빛을 띠곤 해왔다.
눈보라를 뿌리다가, 햇살을 동원해 칠판에 쓴 분필 글씨를 지우듯, 무겁고 어두운 검은 구름을 여기저기서 넝마처럼 끌어 모으거나, 찬바람을 불러들이거나… 그 같은 최근과 달리, 포근한 기운은 더 겨울답지 않다.
버라이어티쇼처럼 오후면 즐거운 레퍼토리를 연출할지 모를 立春 날씨ㅡ. 아내는 문학을 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 증폭되는 전승문학의 영역이, 예쁘고 작아도, 그녀에게 넘치는 그것은 곧 이미지의 원천이었다.
■復活을 향한 生命의 發芽를ㅡ.
내가 소품을 집필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곧잘 나를 끌어들이는 화제를 번갈아 빚어내곤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독백할 뿐이었다. 그녀의 매르헨은 시골 할머니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곳에 가지는 않았지만, 예비 신자로 교외에서 성당에 나와 교리교육을 받고 난 휴식시간에 물어 채집한 민속학적인 얘기가 아닌—, 아내 자신이 만들어 낸 창작이 꽤 넉넉했다….
누구나 인간은 하나의 대상에 묶일 때, 그로부터 또 다른 세계를 찾아내 현실의 광경과 부합시켜 일어나는 스파크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아내에게는 그것이 Kunstmarhen이든, Volksmarhen이든, 시야의 황금 볕기가 불타오르는 꿈 수레로 보였을까—?
"휘황한 베일 저쪽엔 어떤 세계가 있을까? 필경 사람이 모르는 고귀한 신비와 환상의 환희가 머물러 있을 거야…."
오늘과 같은 立春 날, 빛과 상관된 이질 현상이 배거나 우러나 있을 때, 아내에게는 불쾌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분석되는 경우, 천재거나 미치광이일 뿐이다.
부활을 향한 영원한 생명의 발아를 위해, 하늘에서 일제히 살포하는 소생의 안개가 습기를 얻게 한다. 아내는 따뜻한 고기압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일까? 대지는, 나무나 풀, 무덤의 영혼이 속삭이는ㅡ 부활의 상징 같은 볕뉘로 불사(不死)의 신비를 보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그 행운을 종용하는 저 괴이한 마력의 작용ㅡ! 그것에 의해 인간의 의지는 넘치는 기회의 순간을 왕래하며 날렵한 생명력으로 온 영혼을 조명한다. 눈에 띄는 그것은, 아내를 들뜨게 한, 변화된 심상찮은 밝은 조짐이었다. 나의 아내도 이 신화의 현(絃) 위를 배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장미 빛으로 화려한 하늘에 난황의 선명한 햇무리를 따라 춤을 추듯 빛나는 맑고 밝은 황금 날개들이 신화의 문을 날아 나온다….
■神으로부터 삶을 받은 힘을ㅡ.
레온 거필드와 에드워드 블리센의 동화「그리스 신화」(1970)「금빛 그림자」(1973) 등이 다 같이 신화를 소재로, 베일에 싸인 신비의 세계를 오늘의 각도에서 그 빛을 푼 듯 하는 놀라움을 담고 있다.
번식력의 신으로부터 삶을 받아 소생할 지상의 온갖 생명의 힘을 위해, 그 씨앗으로 변신해 내리는 정령(精靈)…. 아내는 정령과의 만남으로 이를 `길조'라고 했나 보다. 무료했던지 잠깐 돌아보며 미소를 보내오는 아내ㅡ.
아내는 부신 햇살 누리에 풍선으로 들떠 무한히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그 때까지 날고 있었다. 사려 깊은 두 눈의 광채에서 그것을 판독하게 했다.
무가치한ㅡ, 잊기 쉬운 내용을 문자화해서 정착시킨 작가들의 채집이, 열망했던 시기에 도용되고 표절한 형식으로 연구되지 않은, 그런 순수하고 소박한 짧은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온 얼굴 가득 욕망의 성취로 충족되는 행복을 퍼뜩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이제 말하려는 내용은, 다만 계획의 시작일지라도 아내는 이미 저쪽에 반쯤 깊숙이 진입된 경과의 보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여보, 한 성에 꿈 수레를 타고 날아갔다 와도 되겠죠? 성안에서 기다릴 당신이 뭘 하는지 알구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후딱 밖을 내다보는 아내—.
■黃金 말 같은 보송한 별 언덕ㅡ.
꿈 수레ㅡ 황금 말의 엉덩이 같은 보송한 작은 볕 언덕…. 그 말을 타고 요정처럼 가공된 프리즘의 세계로ㅡ. 우리의 도시는 이제 정신적 혁신의 광장으로 바뀐다.
이 무렵, 늘 나는 마음의 멍에를 목에 메고, 내 가정의 우주를 쟁기 보습으로 갈아엎는다. 일소와 쟁기! 아내의 두뇌와 손은 그 영혼의 보습이다. 실상 남편을 보러 나간다지만ㅡ, 그 어휘부터 그녀의 표현엔 진실이 왜곡돼 있었다.
그녀의 Volksmarhen이야 고작 매너리즘 테마의 패러디인 것을—. 그래서 이쪽도 다음과 같은 한마디…,
"나도 지금 허전해, 그 성 안의 녀석 데려오라구…!"
상쾌한 눈빛으로 홱 돌아서는 아내ㅡ!. 매혹적인 공상 작품을 보고 나면 눈앞의 모두가 가공의 화려한 세계로 보이듯, 그녀의 팬터지 속에 이 순간 내가 무엇으로 보일 것인가?
"가구 싶었는데."
하면서 달려드는 아내가 내 두 팔을 펴고 휘엉청 품 안에 추락해 든다.
"내 꿈의 금수레가 여기 있었네!"
숨 가쁜 목소리로 웃으며, 그녀는 내 뺨 위에 자기 얼굴을 겹쳤다.
■知慧를 채우려는 思想의 힘ㅡ.
아ㅡ 한 떨기 아픔의 향기와 생명의 꽃…. 그리고 그 뒤는 더 말 할 수 없다. 무한히 채우려는, 지혜라는 사상의 힘으로 기울이는 자신만의 기쁨ㅡ. 아내에게는 그 기쁨이 함초롬했다.
Fairy tale과 Phantasie 위를…— 동화의 수레로 뛰는 비현실적 황홀한 박진감은 한 편의 리얼리즘 형태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독창적 상상의 비상(飛翔)이 아닐 수 없었다.
창밖 안개의 싸늘한 촉감은 살갗을 시리게 했다. 검게 젖은 거리, 가로의 간판, 건물, 나무 숲…. 길 건너 교회의 뾰족탑 십자가만 벌겋게 불빛이 밝을 뿐, 거기 그렇게 을씨년스럽도록 침묵을 입에 물고 서 있다.
말이 立春이지 벌거벗은 검은 나무들은 안개에 물씬 젖어 부들거리고, 개똥지빠귀들은 이리저리 빈 가지에 날아 앉거나 청승맞게 서성거리고 있다. 거기 시선이 머무는 동안, 고독과 몸부림하는 노후의 갈등은 인간 상실로 ‘나’ 만의 세계에 도취하게 한다.
몬든 것에 만족하며 체념할 수 있는, 무 집착에의 연륜에 아내는 최고의 반려로 더욱 빛난다. 그녀는 항상 무엇을 볼 때마다 이를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여성의 참된 인권과 인격이 거기 있었다.
그 환상적인 매력은 입춘대길 건양다경—, 역시 봄날을 맞는다는 준비 없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도 그녀에게 `길조'를 머금게 했다. 참된 삶의 완성! 결국 진정한 삶의 조형을 立春 절서에서 받아들이게 하는가….
봄 안개 짙은 立春의 하늘을 우러러,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를 올린다. 이에 자아를 사랑하고 이웃과 사회를 사랑하는 삶! 온 세상이 나를 축복해 주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참 고마움이 거기 있는 줄 알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