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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제주평화문학상 - 가작
산 담
김태우
후덥지근하고 나른한 날씨에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기위해 빨래터로 향했다. 빨래터에 왔더니 먼저 온 친구들이 높은 빨래터 담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 들며 놀고 있었다. 나도 재빠르게 바지와 신발을 벗어 빨래터 높은 담벼락의 작은 구멍사이에 옷을 집어 놓고는 물속에 풍덩 뛰어들자 짠물로 코가 씽하며 귀속으로 바닷물이 뽀글뽀글 들어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물에 뛰어들어서인지 바닷물로 귀청이 막혀서 귀속이 윙윙거렸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물속 깊이 들어가자, 귀속에 들어 있던 물이 빠져 나오면서 물속에 있어도 친구들이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친구들과 헤엄치면서 놀다보니 몸이 차가워서 물속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오한이 걸린 듯 몸이 추워도 햇볕에 따뜻하게 말리지 않고 집으로 냅다 달려왔다.
집 앞에 오자 마당에 있는 팽나무에서는 매미 우는 소리가 올레까지 시끄럽게 들렸다. 우리 집 먼문 안으로 들어서자 먼뭇간에 놓인 펭상에서 할머니는 머리 밑에 곡물을 퍼내거나 담는 솔박을 뒤집어 베개로 베고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흰색 모시옷을 입고 돗자리를 요로 삼아 잠든 할머니가 내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깰까봐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정지로 달라가서 햇보리를 볶아서 만든 개역을 사기그릇에 넣고 밥에 버무려 먹고는 할머니가 주무시는 평상에 오자 할머니는 양팔을 벌리고 공중으로 손바닥을 휘저으며,
“학구야! 학구야!” 큰 소리로 잠꼬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깨우려고 양손으로 어깨를 짚자 할머니가 입고 있던 모시옷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 어깨를 손으로 흔들면서,
“할머니! 할머니 일어나세요?” 하는 소리에 할머니는 눈을 벌떡 떠 일어나 앉았다.
“성구 왔구나, 밥은 먹었니.”
“정지에 가서 밥을 개역에 버무려 먹었습니다.”
“정지 살레에 가면 밥반찬으로 콩에 자리를 바짝 볶아놓았는데, 그거 먹지 않고….”
“할머니 콩밭에 안 갈 거예요?”
“내 정신 보아라! 밭에 갈 시간이 다됐구나? 어둡기 전에 빨리 밭에 갖다 와야 할 것 같다.”
“그럼 빨리 가요.” 할머니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면서 땀으로 젖은 모시옷을 손으로 만지면서 냄새를 맡아 보고는,
“옷이 땀으로 젖어 상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마?” 할머니는 상방으로 가서 궤 속에 보관했던 풋감으로 빳빳하게 물들인 몸빼와 적삼을 입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고는 먼 문간으로 와서는 벽에 걸려놓은 골체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골체는 밭에서 잔돌을 나르거나 뽑아 놓은 검질을 밭 밖으로 내칠 때 쓰는 도구이다. 골체 안에 골갱이 하나를 안에 넣더니,
“성구야! 밭으로 갈려면 더운데 윗도리라도 걸치라.” 나는 밥만 먹으면 하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물가에서 살다보니 몸뚱이가 햇볕과 바닷물에 쩔어서 몸에는 하얀 물집이 터지고 껍질이 벗겨져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물집이 생기면 몸이 따끔거리면서 윗도리를 입으면 불편해서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게 편해 보였다.
“윗도리를 입으면 등이 따끔 거리 그냥 가겠습니다.” 대답을 하자 할머니는 빙섹이 웃으면서,
“위에 옷을 입지 않으면 밭에 못 갈 줄 알아라!”
“안 입어도 되는데, 어머니 옷이라도 입고 올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마당에 어머니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감으로 물들인 갈적삼을 할머니에게 왔더니 할머니는 배를 움켜쥐고,
“하! 하~ 나 못살아? 허수아비가 따로 없구나.”
“엄마 옷인데 어떠세요?”
“안 입은 것 보다 낫다.”
“근데, 몸에 물집이 터지면서 몸이 따갑고 가려워서 미치겠습니다.”
“밥만 먹으면 죽자, 살자! 물에서만 살고.” 하면서 할머니가 먼뭇간을 나서자 나는 우리 집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 다니듯이 할머니를 따라 올레를 나섰다. 집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신작로를 따라 동네를 벗어나자 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길가 풀숲에는 파란 이파리 위로 붉게 익은 보리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양손으로 쉴 새 없이 보리탈을 하나도 남김없이 따 먹기 시작하자 얼굴에는 땀이 흘려 내리며 숨이 차올랐다. 가만히 있어도 측 늘어지는데 보리탈을 따 먹는데 정신이 팔리다 보니 어깨와 등에 생긴 물집이 옷에 짓눌리며 터져도 가렵거나 따가운 줄 몰랐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더운데 천천히 먹어라!”
“덥긴요? 할머니하고 밭에만 가면 등이 아픈 줄도 몰라요?”
“조심해라 보리탈 옆에 뱀이 꼭꼭 숨이 있다.” 할머니 말처럼 뱀이 풀 속에 노끈처럼 사리고 숨어 있을지도 몰라 옆에 보이는 돌멩이를 들고 보리탈이 있는 옆으로 힘껏 던지자 툭 소리가 나면서 애꿎은 보리탈만 바닥으로 둘둘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떨어지는 보리탈을 보면서,
“뱀이 어디 있어요? 거짓말이지.”
“발밑을 보아라!” 하면서 할머니는 웃은 것이었다.
“할머니! 나를 골탕 먹일려고 했지! 누가 속을 줄 알고. 뱀이 어디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겁이 났지만 태연한 체 하면서,
“맛만 좋다.” 하면서 정신없이 타 먹자.
“성구야 개미 식량도 좀 남겨 놓아라!” 하는 말에 보리탈을 한 움큼을 따고,
“할머니, 보리탈 맛있어요?” 하면서 드렸더니,
“너나 먹어라, 이 할망은 됐저.”
“남기기가 아깝지 않아요?”
“너는 외삼촌 닮아서 잔정과 욕심도 꾀 있구나!” 할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나에게 하면서도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대충 외삼촌은 20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외삼촌도 나처럼 보리탈과 할머니를 좋아 했나요?”
“보리탈 말고도 바릇도 잘 잡았다.”
“거짓말! 난 우리 친구들보다 보말을 더 잡을 수 있어요!” 할머니와 얘기를 하면서 밭으로 가다보니 참외와 수박을 지키는 원드막이 보였다. 나는 원두막 앞으로 잽싸게 달려가 나무 상좌 안에 있는 참외를 만지작거리자 주인아저씨는 나를 보면서,
“오늘도 할머니하고 밭으로 가는 구나?” 하면서 먹던 수박 반쪽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단숨에 하모니카를 불듯이 수박씨를 퉤퉤 뱉으면서 먹어 치우자 아저씨는 웃으면서,
“배고팠던 게로구나” 할머니가 원두막으로 들어오더니 헝겊에 포갠 동전 오원을 주머니에서 깨내 주먹 만한 참외 두 개를 사서 한 개는 나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에 둘둘 말아서 골체 안에 넣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성구야 이젠 됐으니 빨리 가자.” 원두막 주인아저씨는 참외 하나를 어디에 쓸 건지 아는 눈치였다. 주인아저씨는 할머니를 보면서,
“열흘 뒤에 참외 밭이 파장되면 어쩌려고요?”
“먹을 게 참외뿐인가?” 하면서 나를 보더니,
“우리 성구도 있는데. 그렇지, 성구야! 참외 왜 안 먹니.”
“아끼면서 먹으려고 그럽니다.” 하면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새를 참지 못하고 참외를 깨물자 입안에는 단물이 질질 흘려내며 달짝지근하였다. 참외를 와삭와삭 씹어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할머니 참외를 조금 먹어 보세요?” 할머니는 웃으면서,
“성구가 참외를 맛있게 먹고 있어 할머니는 참외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와! 맛있다.” 할머니가 들고 있는 참외를 어디에 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참외를 사각사각 씹으면서 걷다보니 우리 콩밭이 보였다. 나는 밭 안으로 뛰어 가서는 산소에 비해 유난히 크게 만들어지고 있는 산담 앞에 붉게 열려 있는 보리탈을 따 먹기 시작하였다. 밭에만 오면 걸신들릴 것처럼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산담이라 해 봐야 처음에는 왕 수박만한 돌을 한 덩이, 두어 덩이를 놓기 시작 해 길다랗게 놓다 보니 시일이 흐르면서 네모나게 쌓아올린 돌덩이가 높진 않아도 산담처럼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할머니는 산담 위로 열린 보리탈을 타 먹고 있는 곳으로 오더니 들고 있던 참외를 돌 위에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 산소 안팎으로 조금씩 던지더니,
“산담은 내가 죽기 전에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산담을 만들겠다는 얘기와 밭에 올 때마다 맛좋은 음식을 사들고 와서 산에 뿌리려도 그러려니 하였다. 할머니가 밭에 올 때 마다 하는 일이라 맛좋은 참외를 버리지 말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심각한 표정으로 조금씩 던지고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할머니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다 산담이 넓고 높아졌네요?”
“산에 산담이 있으니 보기 좋지 않으냐?”
“에이! 산소는 조그만데 산담만 크면 뭐 합니까!”
“산담이 만들어지면 산담 위로 열린 보리탈을 따먹어서 좋지 않으냐.”
“그야 그렇지만, 산담을 왜 만드는 거예요? 그냥 평평하게 놓아두어도 좋은 돼.”
“산에 산담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농사가 끝난 후 소와 염소가 뿔로 산을 헤갈아 놓기 때문에 산담을 높고 보기 좋게 만들려는 거다.”
“밭에 올 때 마다 할머니는 제일 먼저 산소부터 살피더라.”
“밭에 와서 내가 할 게 뭐 있겠니.”
“할머니는 밭에서 검질 매거나 거름도 주지 않아요? 근데, 산담 위에 돌을 올려놓는 것은 빠지지 않더라!”
“산담 얘기는 그만 하고 어른이 되면 알게 될 테니 그런 줄 알라!” 정확하게 말을 해주지 않고 얼버무리면서 골체에서 호미를 꺼내어 검질 매기 위해 밭 가운데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에게 괜한 말을 했나 생각하면서 저녁에 집에 가면 외삼촌 산소에 얽힌 사연을 어머니에게 물어 보아 야지.’ 집이나, 동네서이건, 씩씩해 보이는 할머니가 밭에만 오면 초라하게 보여 가끔은 불쌍해 보일 때도 있다. 할머니가 콩밭에서 검질 매는 순간 산소 옆에서 설익은 참외 하나가 보였다.
“할머니 우리 밭에도 참외가 하나가 달려 있어요?”
“작년에 먹다 버린 참외 씨가 참외를 열었구나, 더 익으면 따 먹지 않고.”
“놓아두면 꿩이나 참새가 부리로 쪼아버리면 상처가 나서 먹을 수 없어요.” 하면서 파랗게 설익은 참외를 따서 한 움큼 씹에 먹었더니 약을 먹은 것처럼 칼 칼 쓰면서 먹을 수가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산소 안으로 던져 버렸다. 입에 물고 있던 참외를 땅바닥에 내뱉고 달콤한 보리탈을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자 입이 쓰지 않아서 살 것 같았다. 설익은 참외로 먹는 것에 싫증 느낀 나는 산담 위와 콩잎 사이로 보이는 메뚜기와 나비를 잡기위해 정신없이 콩밭을 헤집고 다녔다. 어머니하고 밭에 올 때에는 밭 한가운데서 뛰어 노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할머니하고 단 둘이 있을 때에는 밭 가운데서 뛰어 놀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는 뛰어 노는 것을 박수치면서 좋아 하신다. 콩밭 가운데서 메뚜기를 잡아서 보리탈을 입에 들이대면서 먹이는데 큰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성구야! 성구야! 소나무 있는 곳으로 오너라.” 하는 말에 메뚜기를 잡아서 장난치다 말고는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할머니는 큰 돌을 양손으로 잡고서 낑낑거리며,
“성구야! 이 돌을 할미하고 삼촌 산소로 굴려가자.”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간만에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돌이 멋져 보입니다. 삼촌 산소에 산담으로 쓸 거예요?”
“성구가 할머니하고 산담을 나르고 있어 너의 외삼촌도 좋아 할 거다.” 하면서 큰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큼직한 돌을 산소까지 떼굴떼굴 굴려 오고는 할머니는 내가 먹다 산담 안에 버린 침외를 보더니,
“성구는 참 착하구나! 너희 삼촌에게 참외를 드려서.” 하는 말에 황당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참외가 써서 먹을 수 없기에 삼촌에게 드린 것이 아니고 버린 거예요.”
“그래도 삼촌은 맛있게 먹었을 거다.” 할머니는 밭에서 검질 매다 말고는 산담을 만들기 위해 굴려온 돌을 보면서,
“성구 덕분에 큰 돌로 나르게 되었구나.” 하면서 할머니는 석공(石工)처럼 소나무 밭에서 굴려온 돌을 보기 좋게 산담 위로 서너 덩이 올려놓고는,
“성구하고 크고 예쁜 돌로 산담을 만들고 있어 최고 멋진 산담이 될 것 같다.”
“할머니 돌을 나를 때에는 저를 꼭! 부르세요?”
“성구를 매일같이 밭으로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다.”
“할머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오늘은 그만 집에 가요?”
“그래도 하늘이 으슥해졌으니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할머니하고 소나무 밭에서 굴려온 돌로 산담 쌓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 오게 되었다.
먼 문턱을 넘어 먼 문간에 들어오자 어머니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잡아온 자리를 짊어지고 웃드르로 자리장사를 갔다 와서는 평상에서 할머니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침에 빨래 줄에 걸어 놓았던 적삼이 어디 갔나 했더니 성구가 입고 갔구나!”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었다. 엄마가 제일 무서울 때는 화를 낼 때이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머니를 보면서 자랑스럽게,
“엄마! 나 오늘 밭에서 할머니하고 산소를 만들었다.” 했더니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언짢아하면서,
“어머니는 언제까지 밭에서 산담을 만들 겁니까! 이젠 딸을 시키다 부족해서 손자까지 산소에서 산담 쌓는 일을 시킬 겁니까!” 하면서 상방으로 들어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화를 내는 엄마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를 않고,
“그래!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죄인이다.” 하면서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서 부엌으로 가서는 수돗물로 시원하게 몸을 헹궈 주면서,
“성구야! 할머니하고 밭에서 삼촌 산소로 돌 나르는 게 힘들었니?”
“아니에요, 엄마는 뻑 하면 할머니에게 화를 잘 내더라.” 할머니 하고 시원한 물에 몸을 씻고 상방에 왔더니 밥상 위에는 어머니가 수박화채와 개피 잎을 뜯어 놓아 싸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리물회를 만들어 놓아 있었다. 밭에서 돌을 나르다 와서인지 배가 수박처럼 뽕뽕하도록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밭에서는 집에 오면 외삼촌이 젊은 나이에 돌아간 사연을 엄마에게 물어 볼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할머니에게 화내는 바람에 들어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일어났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햇볕이 비취기 전 새벽녘에 콩밭에 검질 매려 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새벽에 만들어 놓은 자리볶음에 아침을 먹고 친구들과 헤엄을 치기 위해 빨래터로 왔더니 물이 빠져 나가 헤엄 칠 수 없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빨래터 밑으로 내려와 큰 배에서 버려져 파도에 떠밀려온 식용유를 담았던 양철깡통을 들고서는 해초와 모래로 윤이 반짝 반짝 나도록 문질려 바닷물로 헹구었다. 깨끗하게 씻은 양철깡통에 보말을 잡아 삶는 그릇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친구들과 갯바위로 내려가 보말을 잡으면서 양철깡통에 넣기 시작하였다. 얕은 바닷물 속 바위 밑에는 소라와 새끼 전복도 많이 보였다. 바위 구멍을 헤집으며 보말을 양철깡통 가득 잡자 햇빛이 비치지 않은 구렁진 곳에서 보말을 삶기로 하고, 친구들과 바닷가에 버려진 고무신과 나무쪼가리를 주어다 깡통 밑으로 불을 때면서 보말을 삶기 시작하였다.
“성구야! 보말을 삶고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좋아 하니.”
“엄마는 싫어하는데 할머니는 매일 잡아 와도 괜찮 돼.”
“우리 집은 보말을 잡아가면 형이나 누나에게 혼난다.”
“우리 집은 형이 없어도 엄마는 얼마나 무서운데.”
“야! 그럼 보말을 어떻게 자져가니. 또 엄마에게 혼 날려고.”
“아침에 엄마와 할머니는 밭에 가 없어서 내가 삶아 놓았다가 저녁에 엄마 몰래 할머니에게 들이면 돼.”
“그래서 너는 바닷가에서 보말을 삶고 가는 구나.” 보말 삶은 깡통에서 뽀글뽀글 거품이 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자 보말 익어가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양철깡통에서 익어가는 보말 하나를 나무쪼가리로 꺼내어 껍데기를 돌로 두들겨 알맹이를 꺼내고 먹었더니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하였다. 삶아진 보말을 친구들이 먹기 좋게 넓은 바위에 반을 비우고 나머지는 식용유 깡통에 들고 우리 집 먼 문간에 왔더니 할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평상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마당 빨래 줄에 걸려 있는 하얀 보작이로 손을 칭칭 감으며,
“할망 때문에 딸이 제명까지 못 살겠다.” 하는 말이 들이고, 어머니 손에 상처가 크게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화를 내도 할머니는 못 들은 체 하면서 평상 옆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성구야! 오늘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보말을 삶아서 가져 왔구나.” 하는 말에 어머니는 보말을 삶으면서 연기에 검게 그을린 식용유 깡통을 보더니 할머니가 앉아 있는 평상으로 달려오면서,
“아이고! 속 터져, 너는 누굴 닮아 죽으나 사나 바다에서만 사니.” 나는 화내는 엄마가 무서워 할머니 등 뒤로 숨으려 하자. 할머니는 안색이 굳어지면서,
“왜, 착한 아들에게 돼먹지 못하게 욕을 하니 이, 못된 년!” 할머니는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엄마, 아빠, 외삼촌이든 간에 나를 때리거나 욕을 하면 할머니는 달려들어 발로 차 버린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화내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발로 차지 않는 걸로 보아 할머니가 엄마에게 잘못 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가재는 게편이라고 나는 할머니를 보면서,
“할머니 엄마 손에 붉게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아요?”
“삼촌 산소에서 산담을 쌓다가 엄마 손이 돌에 찍혀서 상처가 난 모양이다.”
“무척 아플 덴데 고약이나 의원에게 침을 맞혀야 할 것 같아요?”
“어이구 내 새끼 착하구나. 엄마 손에 가서 호하고 오너라.”
“예” 하고 달려가서는 부루퉁한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 손에 호 해줄게, 그러면 곧 낫는대! 할머니가 그랬다.” 하는 말에 엄마는 웃으면서,
“성구 때문에 산다.” 엄마는 나의 말 한마디에 화가 풀렸는지 내가 잡아온 보말을 평상에 앉아서 함께 까먹게 되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성구야! 커서 뭐 될래.”
“할머니 되려고요.”
“어이구! 화상아 고추달린 놈이 할머니가 뭐니.” 하면서 엄마는 나에게 주먹으로 알밤을 주는 것이었다. 가끔은 할머니가 옆에 있을 때에 엄마에게 말대꾸를 해도 할머니는 나의 편을 들어주기 때문에 큰 소리로,
“할머니가 어쩌서요?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에고, 철딱서니 하곤! 어머니가 손자를 감싸주고 있어 큰일입니다. 삼촌처럼 군인이나 아빠처럼 큰 배를 타고 세계 바다를 다녀야지.” 이야기를 나누며 보말을 다 먹고 나자, 엄마는 방으로 가서는 벽장에 걸려 있는 작은 외삼촌 사진을 수건으로 깨끗이 닦고서는 묵묵히 사진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다. 엄마는 할머니 마음이 울적하거나 기분이 좋아 질 때에는 사진을 보면서 말하는 습관이 있다.
“어머니가 서운해 하시거나, 좋아하실 때에는 작은 오빠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하면서 눈물 흘리며 혼자서 얘기하는 모습을 종종 본적이 있었다.
가을 추수와 추석이 다가 오면서 집안에는 산소에 벌초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집안은 친척들로 꽉 찼으며 육지에서 군인인 삼촌도 내려 왔다. 할머니는 저녁이 다가오면서 내일 산소에서 쓸 둠비전, 돼지고기와 문어로 산적을 만들고, 옥돔을 구워 놓고는 밀가루로 노르스름하게 상웨떡도 만드는 것이었다. 음식 중에는 좁쌀과 엿기름으로 달콤한 감주 만들 때가 제일 좋았다. 감주를 만들 때면 장작불을 때면서 붉게 달아오른 장작 불덩이에 밤이나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은 것도 쏠쏠하였다. 호기심에 감주 만드는 것을 자세히 봤더니 좁쌀을 쇠죽처럼 풀풀하게 쓴 다음 30도 되도록 식히고 엿기름 좁쌀 진액을 1대1비율로 섞고 4~6시간을 삭힌 다음 헝겊에 싸서 짜고 다시 향이 나도록 끊였더니 감주의 특이한 인동고장과 비슷한 향기가 났다. 유독 벌초 때에는 우리 집은 제삿날과 다름이 없었다. 할머니는 벌초 할 때에는 옛날부터 나를 꼭 데리고 다녔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산소를 잊어버리지 않고 웃어른을 공경 할 줄 안다고 하였다.
아침 해가 중천에 뜨자 집에서 할머니하고 어제 준비한 차례음식을 들고 삼촌 산소에 벌초하기 위해 콩을 심었던 밭으로 향했다. 밭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친척들이 올 때까지 습관처럼 산담 위에서 돌을 편편하게 고르는 것이었다. 나는 산담 위에서 풀을 뜯으며 사람들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산소에서 벌초를 끝내고 친척들이 몰려와서는 외삼촌 묘지에 풀을 호미로 깨끗하게 베고 할머니가 만들어온 음식으로 재를 지낸 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구 산소에 봉분도 작은데 산담이 목욕탕처럼 넓기 때문에 산담을 새로 손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처음 학구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올 때에는 봉분 둘레에 돌덩이 몇 개를 쌓아 올렸다 싶더니 제법 산담 틀이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만.”
“봉분은 크고 산담 네 귀탱이에 어귀 돌 없는 산담이라서 밭에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웃지 않을 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예편삼촌님에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포클레인으로 산담을 허물고 새로 건사하게 산담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만.” 건설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얘기를 하자.
“우리 아들 산소에 산담을 좋게 쌓으면 어떻고 나쁘게 쌓으면 어떤가!”
“산담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봉분에 맞고 보기 좋게 쌓아 드리는 말씀 입니다.”
“죄 많은 할망은 아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산담을 쌓고 있습니다.”
“삼춘님! 아들이 ‘시국’에 억울하게 죽은 것을 모르는 봐는 아니지만, 더 좋은 산담을 만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죽기 전까지는 학구 산담 얘기를 안했으면 합니다.”
“좋게 벌초를 끝냈으니 이제부터 학구 산담 얘기는 하지를 맙시다.” 그 후로는 외삼촌 제삿날이나 벌초 할 때에도 산담 얘기를 꺼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
시일이 흘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3학년이 되면서 할머니는 팔십이 된 해였는데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밭에도 갈 수 없을뿐더러 할머니의 똥오줌도 어머니 혼자서 받아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정신이 들자 친지들을 보면서,
“학구에게 집을 지어 줘야겠다.”
“죽은 사람에게 집이 필요 합니까!” 하면서 사람들은 할머니를 치매 환자 취급하면서 할머니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대입 준비 때문에 엄마는 벌초하는 날에는 벌초를 허락 하질 않았다. 만약에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학교가지 않는 날에는 내 손으로 할머니 대소변 수발을 들어 주어도 엄마는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 하는데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왔더니 할머니는 이미 운명(殞命)하고 말았다. 친척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죽기 전에 나를 무척 찾았다고 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자 직업군인 외삼촌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화장시켜 납골당에 안치시키고 집에 와서는 할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심방을 데려다 굿을 하게 되었다. 심방 말로는 저승에서도 아들 산소인 학구 무덤을 지켜 달라고 할머니가 나에게 당부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굿을 보면서,
“할머니! 삼촌 묘지는 내가 책임지고 지켜 드리고 산담도 내손으로 완성할 테니 저승에서 푹 쉬세요?” 하며 심방 앞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말았다. 심방도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고맙다! 고맙다! 성구야! 우리 착한 성구야? 너만 믿고 편히 눈을 감으마.” 하는 말에 가슴이 섬뜩했다. 심방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영혼이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 장사를 지내고 며 칠 뒤 외삼촌이 잠들어 있는 산소로 갔더니 산담 앞에는 큰 돌 몇 덩이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 산소에 마지막으로 산담을 쌓다가 중풍으로 산담을 완성 시키지 못하고 돌아간 것으로 보였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가을 단풍을 보는 순간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아들 산소 산담은 내손으로 만들겠다.’ 하던 할머니의 말이 엊그제 같은데, 돌덩이를 보는 순간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굴려다 놓은 돌을 산담에 올려놓자 봉분과 산담이 어우러져 보기가 좋아 보였다. 넓게 펼쳐진 파란 잔디와 봉분 둘레로 완성된 산담을 할머니가 보고 돌아갔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산담 쌓는 일을 끝내고 외심촌묘에 절을 하고 집에 와서는 어머니에게 할머니가 쌓다만 산담을 내가 쌓았다고 자랑을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다 컸구나!” 하시면서 좋아 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직업군인인 큰 외삼촌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군에 지원하고 입대 하게 되었다. 군대 생활 2년을 넘기면서 원양어선을 타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면회 와서는 큰 외삼촌을 만나고, 4.3 사건 때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 묘지에 대해서 의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병 신분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족들도 얘기를 해 주지 않아 관심 없는 척 하였다.
군복무를 3년 끝내고 제대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전역신고를 하자,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이름 있는 관광지가 아니라 외삼촌이 잠들어 있는 묘지였다. 기대 반 설렘으로 집에 도착을 하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 뒤꼍을 돌면서 큰 소리로,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불려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물질이나, 웃드르로 생선 장사를 나간 것으로 보였다. 집이 텅 비어있어서인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어머니가 올 때까지 외삼촌 묘지를 먼저 가 보기로 하였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군화를 신은 채 집 밖을 나서자, 문득 빈손으로 산소에 가기가 섭섭해 보여 들길을 걸으며 할머니가 살아생전 하던 대로 참외를 사려고 참외밭을 찾았지만 예전 참외 밭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했던 들길이 건설장비의 시끄러운 굉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면서 회오리바람처럼 먼지가 공중으로 빙빙 도는 모습도 보였다. 원두막이 있었던 길을 조금 벗어나자 관광객을 상대로 팔기 위해 시멘트로 아담하게 지어진 과일 가게가 보였다. 과일을 낱개로 파는 게 아니라 얇고 예쁜 종이 상자에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그래도 점원 아가씨를 보면서,
“참외 포장을 뜯고서 낱개로 팔지 않나요?” 아가씨는 기가 막혀 하면서,
“요즘 과일 하나 두 개 낱개로 파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까칠하게 말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참외 하나가 필요해서 그래요.”
“필요하시다면 세 개 포장된 참외를 사고 가면 되겠네요?”
“그럼 포장된 참외는 얼마 입니까!”
“정가대로 오천 원입니다.”
“예전 이곳에서 할머니하고 참외 두개를 사면 오원이었는데.”
“어느 시대에 살다 왔습니까! 살려면 사고 싫으시면 관두세요? 짜증나게!”
“오천 원 이치 참외 팝서. 비라리 아줌마.” 퉁명스럽게 말을 되받아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밭에 왔더니 밭 한가운데 있던 외삼촌 묘지가 보이지 않아 겁이 덜컥 났다. 밭을 잘못 찾아 왔나하고 소나무 밭을 둘러보았더니 소나무는 모두 파 헤쳐져 있어, 나의 등과 이마에는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입술을 깨물면서 정신을 가다듬어 산소가 있었던 자리로 갔더니 상석으로 사용했던 넓적한 돌이 중간까지 흙 속에 마묻혀 있어서 무덤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반쪽이 땅속에 파묻혀진 돌을 보면서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참외 상자를 뜯지 않고 상석으로 사용했던 돌 위로 힘껏 내리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달려 와서는 단숨에 먼 문을 열어 마당에 들어왔다. 난간 아래에는 어머니가 늘 신고 다니는 끝이 뾰쪽한 흰 고무신이 보였다. 난간 앞에 군화를 벗고 상방으로 들어 와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 어머니!”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는 구들에서 머리에 꽃을 수놓은 하얀색 수건을 쓰고 여유롭게 상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성구야! 제대 하고 왔구나? 너의 큰 삼촌에게 연락 받았다.” 태평하게 하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어머니! 외삼촌 묘지를 왜 의장 하셨습니까!”
“미안하게 되었구나! 네가 군대 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농사를 지었던 밭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으로 너의 큰 외삼촌이 보상받은 돈으로 산을 의장하고 납골당에 안치 시켜 놓았다.”
“군부대에 나를 면회 올 때에 그 관계로 큰 외삼촌을 만난거로군요?”
“할머니의 유언에 때라 작은 오빠 묘지를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었다.” 하면서 어머니는 지금까지 참았던 울음을 목 놓아 우는 것이었다.
“어머니! 뭐가 서럽다고 우세요?” 하면서 나는 달려가 어머니를 끼어 앉으며 같이 울었다. 왠지 어머니가 목 놓아 우는 모습이 가슴에 쌓였던 응어리를 쏟아 내려는 듯 보였다. 모자가 눈이 퉁퉁 붙도록 울었더니 어머니는 마음이 진정 되었는지 머리에 썼던 수건으로 땀과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할머니가 없는 집에 성구가 제대하고 와서인지 오늘은 집이 가득 차 보인다.”
“어머니는 무척 울고 싶었나 봐요? 그렇지 울고 싶으면서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한없이 울고 싶어도 세상 이목이 두려워서 울 수가 없었단다.”
“울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힘들었나요?”
“힘든 것 보다, 이 마을에는 우리 집처럼 된 집이 한 두 집이니.”
“외삼촌이 어떻게 돌아가셨기에 할머니는 살아생전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고 산담에 억매였습니까!”
“너의 외삼촌은 너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제주도 4.3 사건 때 폭도들에게 끌려가 죽창으로 난자당했다. 난자당한 시신을 폭도 중에 우리 밭을 아는 분이 산소를 찾기 쉽게 밭 가운데로 묻었다는 얘기가 있더라.”
“그래서 할머니는 산소를 지키려고 밭에 갈 때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손으로 산담을 쌓아 올린 거로군요?”
“너의 할머니는 아들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늘 마음속에 살아 있어서 산소에 과일 같은 음식을 가져갔던 거다.”
“아들을 묻지 못하고 할머니 먼저 세상을 뜬 셈이네요?”
“그래서 엄마는 우리 오빠 무덤을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 드리고 싶었던 거다.”
“어머니! 4.3 비극이 남의 일로만 알았는데 우리 집은 삼대에 걸쳐 고통을 격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이 억울한 누명을 빨리! 벗겨 들여야 할 덴데 걱정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4.3의 뼈아팠던 과거가 세월이 흐르면 잊혀 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성구가 그렇게 말을 해주어서 고맙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4.3으로 돌아간 남편과 아들의 묘에 벌초 할 때 심정은 어땠겠니.”
“할머니는 산소에 산담을 쌓으면서 아들을 보살피던 심정이었겠네요?”
“아마 그러셨겠지?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너의 말을 듣고 계실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아들과 남편이 돌아간 사연을 한 번도 꺼낸 일이 없죠.”
“엄마도 할머니 못지않다. 피비린내 났던 시국을 누구 에게 얘기 할 거니.”
“말을 해도 들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죄인 취급 당할까봐 쉬쉬한 게군요.”
“아들과 남편이 몰살당했는데 겁날게 뭐가 있다고, 더러워서 말을 아니 했을 지도….”
“허기야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데 어머니 누가 남의 하소연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할머니가 생각하는 피붙이는 일찍 돌아간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도 4.3 사건 때 희생 되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 산소에는 잘 가지 않았죠.”
“왜 가지야 아니 했겠냐마는 할머니 생각으로는 남편은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아들은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아들 생각이 더 났겠지.”
“그래서 할머니는 잠을 자다가 학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속에서도 아들 이름을 부른 거군요?”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니?”
“엄마도 참! 밤이나 낮에 할머니가 주무실 때에 잠꼬대 레파토리 일번이 누군지 아세요? 학구야! 학구야! 하는 학구 거든 요?” 하는 말에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면서 나를 보더니,
“우리 성구도 알고 있었구나!” 얘기 도중에 마당에 자라나 있는 몇 백 년 된 팽나무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와 함께 마당을 쳐다보았더니 비둘기 두 마리가 햇볕이 내리쬐는 사이로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비둘기가 공중을 나는 모습에서 할머니는 가족을 잃은 절망과 슬픈 속에서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과 마음으로 예술가처럼 살아 왔기에 할머니는 보헤미안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