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7사단이 '군량현' 전투가 개시될
때,
우인접(右隣接)의 미 해병 제1사단(배속:국군 해병 제1연대)도
양구 북쪽의 대암산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때 국군 해병 제1연대는 '양구' 남쪽의
'원동지곡'에서 사단예비대가 되어 부대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 군단의
부대 재배치 계획에 의거 해병 제1사단의 작전지역이 '소양강' 서쪽까지 확대되자
사단은
'대암산'-'도솔산'-'대우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형을 공격중, 험난한 지형과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은 미 해병 제5연대를 '소양강'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국군 해병
제1연대를 미 해병 제5연대 지역에 투입하였다.
국군 해병 제1연대가
공격할~
'광치동'에서 '대암산'에 이르는
산악능선에는
북괴군 제12사단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주요 고지 마다 아군의
항공폭격과 포병화력에도 견딜 수 있는 개인 및
공용화기 진지를 구축함과
동시에
능선 통로상에는 무수히
지뢰를 매설하여 강력한 거점을 편성하고 있었다.
해병
제1연대는 '대암산'을 목표로 6월 4일 항공 및 포병화력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험준한 지형과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의 발판만 확보한 채 일몰로 공격을 중지하였다.
연대의 공격이 부진하자 연대장 '김대식' 대령은 적의 전투력을 분산하기 위하여
연대예비인 제3대대(김윤근 중령)를 우전방에 투입함으로써 3개 대대가
병진공격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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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웅
도솔산 전투에서 맨몸으로
목표를 탈환했던 김문성 해병대
중위
1951년 6월 4일, 김문성
해병중위가 속한 해병
제1연대는
강원도 양구지역에 위치한
도솔산에서 인민군
최정예 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도솔산 지구는 중동부전선의
핵심요충지로
이 곳을 확보하지 못하면 현재의 해병대는 물론,
좌우에 인접한 아군마저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는 전략상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이를 알고있던 북괴군의 저항은 완강했고,
전투는 쉽사리 승패를 가를 수가 없었다.
해병대는 도솔산의 24개의
목표를 설정하여 이를 탈환하려 하였고,
김문성
해병중위는 그 중 가장 험준하다는
'목표 13'에 투입되었다.
험준한 지형덕분에 북괴군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자동화기로 집중공격을 해왔으나
김문성
중위는 적진지 50미터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갔고,
우회공격을 지휘하며 전진하다가 그만 적탄에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김문성 해병
중위의 죽음을 목격한 소대원들은
이에 격분하여 총 돌격을
감행하였고,
마침내 적을 격멸시키고 '목표 13'을 탈취하여
도솔산 지구를
확보하였다.
미 해병대도 성공하지 못했던 요새였던 도솔산 목표를
김문성
해병 중위의 살신성인 정신덕분에 탈취하게 된
것으로
이로 인해 김문성 중위와 그 소대원들은 도솔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물론
대한민국 무적해병(無敵海兵)의 신화(神話)를 창조하는 데에 큰
몫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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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 제3대대장
6월 8일 제3대대 김윤근 대대장은
그간의 전훈과 북괴군 능력을 분석한 결과, 지형의 불리에도 불구하고
대대 전력으로 공격할 것을 결심하고
; 제11중대는 정면으로, 제9중대는
우회 공격을 개시토록 하였다.
제2소대장 김문성 소위의
전사(戰死)와 함께 돌격을 감행함으로써, 만 4일간에 걸친 분전 끝에 목표 지점을 점령하였다.
사단장으로 부터 방어에 실패한 북괴군 연대장이 문책을 당하자
전세를 만회하고자 북괴군의 역습 부대가 중대 분초선을
넘어
기관총 및 로케트포 진지마저 파괴하면서 광란하였으나...
아군의 제9, 제11의 양개 중대가 협조된 반격을 가하여 북괴군을 모조리
격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