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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경복궁 왕가의 산책
남촌 추천 0 조회 7 10.11.27 10: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경복궁 산책 나들이

img1.jpg

<경복궁 궁성(宮城) 약사>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궁성은 1398년(태조7)에 동쪽, 남쪽, 서쪽이 조성되었으며, 이때 궁성문인 건춘, 광화, 영추문도 세워졌다. 이 보다 뒤에 북쪽 담장이 완성되고 북문인 신무문도 갖추어졌다. 궁성은 거의 네모난 형태를 이루고 있고 전면 좌우 끝에는 각루(角樓)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이 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궁궐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을 때에도 일반 백성들로부터 궁궐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종 년간 경복궁 중건 시 궁성이 새 단장을 하게 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앞부분이 헐려 나가고 또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다. 현재의 궁성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고, 일부는 본래 위치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상태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옛날에 경복궁 후원이 있던 자리다. 북쪽 문인 신무문 뒤로 후원이 있었는데 후원에서는 왕과 신하들이 활쏘기를 하거나 나라의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 장소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총독부를 경복궁으로 옮겨 청사를 지으면서 총독이 살 집을 경복궁 후원에 지었다. 총독부를 경복궁에 지어 나라의 기운을 빼앗고 독립의 의지를 꺽으려는 의도였다. 해방 후에 후원의 시설은 ‘경무대’로 이름을 바꾸어 대통령 사무실로 사용되었는데, 후에 새로 집을 짓고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총독이 살던 집과 총독부청사는 헐어 버렸다.

<왕가의 산책 재연행사>

조선왕조 왕가의 산책 행사는 왕과 왕비가 강녕전을 비롯하여 향원정 일원을 거니는 모습을 매일 오후 3시30분부터 재연한다. 시대배경은 조선 세종대(15세기)로 세종실록, 국조오례의, 궁중기록화를 근거로 당시 국왕, 왕비, 상궁, 시위의장등을 분장한 30여명이 출연하여 재연한다.

-자료출처:경복궁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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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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