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척이나 다람쥐가 아침에 일어나 길을 건너기 전에, 태양이 떡갈나무 관목들 위에 떠오르기 전에, 그리고 새벽이슬이 한 방울이라도 마르기 전에 나는 콩밭에 자라고 있는 거만한 잡초들을 쓰러뜨리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농부들은 새벽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가능하면 아침 이슬이 있는 동안에 모든 일을 마치라고 권하고 싶다. 이른 아침 나는 마치 조형미술가처럼 맨발로 이슬을 머금고 있어 잘 부스러지는 모래흙을 밟으며 일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햇볕 때문에 발에 물집이 생기곤 했다. 태양이 이 황색의 자갈 많은 고지대의 밭을 비추는 가운데 나는 거의 80미터 길이로 길게 뻗쳐 있는 푸른 콩두둑 사이를 천천히 왔다갔다며 김을 맸다.
콩두둑의 한쪽 끝에는 떡갈나무 관목의 숲이 있어서 그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다른 끝에는 검은딸기밭이 있었는데, 김을 한 차례 매고 돌아올 때마다 푸른색의 딸기들은 한층 더 색깔이 진해져 있었다. 나의 일과는 풀들을 뽑아버리고 콩대 주위에 새 흙을 덮어 격려하며, 이 황색의 흙이 자신의 여름 생각을 쑥으나 개밀이나 피 같은 잡초가 아니라 콩잎으로 나타내도록 설득하고, 그리하여 댜지가 '풀!' 하고 외치는 대신 '콩!' 하고 외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소나 말을 부리지 않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체의 고용인을 쓰지 않았으며, 또 개량 농기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몹시 더디었다. 그 대신 콩들과는 한층 더 친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손으로 하는 노동은 아무리 지리한 일이라 하더라도 가장 나쁜 형태의 게으름은 결코 아니다. 노동은 지속적인 불후의 교훈을 담고 있으며 학자에게는 고전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나 링컨이나 웨일랜드 마을을 지나 서쪽으로 가는 여행자들에게 나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표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륜마차에 편안히 앉아서 무릎 위헤 팔꿈치를 얹어놓고, 말고삐는 화환 모양으로 감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집에 남아서 힘들게 땅을 파는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나의 농원은 곧 그들의 시야와 생각에서 벗어났다. 단지 상당한 거리를 달리는 동안 도로 양쪽에 눈에 띄는 경작지라고는 나의 농원뿐이었으므로 여행자들은 그것을 심심풀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때때로 여행자들이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잡담과 비평이 밭에 있는 나의 귀에까지 들려오기도 한다. "강낭콩이 저렇게 늦다니! 완도콩이 저렇게 늦다니!" 다른 사람이 김매기를 시작했을 때도 나는 계속 콩을 심었던 것이니 저 농사일을 잘 아는 목사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일 것이다. "여보게, 가축 사료로는 옥수수가 제일이야. 암, 옥수수가 단연 낫지." "저 사람 저기서 사는 걸까요?" 하고 검은 보닛을 쓴 여자가 회색 외투를 입은 남자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