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해파랑길 걷기, 29코스(삼척, 호산-임원-장호-용화) 기행
푸른 하늘, 푸른 산, 파아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며 해안길 걷는 건 동해안 해파랑길을 가는 이들의 로망이다. 눈부신 맑은
햇살에 끝 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있다면 금상첨화. 그런데 평범하고 당연할 것 같은 그런 바램이 한달에 두 번
가는 해파랑길에선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일상의 동해는 늘 쪽빛 푸르고, 수평선을 달려온 파도는 해안선을 따라 하얀 꽃을
피운다. 쉼 없이 피었다 지는 하얀 포말들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리고 가끔은 성난 바다가 질풍 노도를 몰고와 거칠 때도
있다. 격렬한 몸부림의 야성미 넘치는 바다지만 그것대로 또 볼만하다. 맑으면 맑은 대로 바람 불면 바람부는 대로, 잔잔한
바다나 성난 바다 모두 도회지에 사는 이에겐 낯 설어 보기에 더 좋다.
지난 주말 해파랑길 29코스를 다녀왔다. 부산에서 고성까지 전구간의 중간지점을 막 넘어선 삼척 구간이다. 삼척시 원덕읍
호산항을 시작으로 북진해 근덕면 용화해변에 이르는18km 거리다. 대관령을 넘어서니 영서와 달리 영동 해안엔 비가 내리
고 있었다. 제17호 태풍 타파는 일요일 밤에야 영남해안에 이른다는데, 그 태풍과 관계가 없는 비가 내린다. 흔치 않는 가을
장마비다. 전날 밤 체크한 일기예보엔 삼척에 비가 없었다. 그래서 우의를 준비하지 않았다. 10시 40분, 호산항에도 비가 내
리고 있었다. 큰비도 아닌 부슬비다. 바다와 하늘을 가득 뒤덮은 짙은 먹구름을 보아하니 비 그칠 기미가 전혀 없다. 다행히
현지에서 비닐 우의와 우산을 구입했다. 그렇게 빗속을 걸었다. 2주 전,13호 태풍 링링으로 인해 28코스 직전 구간은 출발조
차 못하고 순연한데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동해안이 흔히 그렇듯, 삼척시 원덕읍 해안에도 작지만 곶(串)과 만(灣)들이 발달해 호산항을 비롯, 노곡, 임원, 신남, 갈남
항이 연이어 있고, 양양 남애항과 더불어 동해의 미항으로 손 꼽히는 장호항이 있다. 항구마다엔 그 지역의 독특한 전설들
이 전해오고, 곳곳마다엔 또 그것들을 테마로 한 멋진 볼거리들을 꾸며 놓았다. 이곳은 평소7번 국도를 따라 차를 타고 달리
며 주마간산만 해도 아름다운 곳. 그러나 파도 소리 벗하며 직접 걸어가면서 살피면 볼거리 배가 된다. 울진이 고향이라 지
금 껏 백 번을 넘도록 오갔던 길이지만, 그래서 빗속을 무릅쓰고 걸어서 간다. 임원항의 바닷가 언덕에서는 헌화가(獻花歌)
의 수로부인 설화를 빌려 꾸민 공원을 보러 바닷가 직벽에 세운 50m 높이의 엘리베이트도 타 보고, 애랑의 전설이 깃든 신
남항에서는 폭풍의 언덕에 조성한 해신당공원을 올라도 보았다. 보기 망측한 과장된 남근상들이 헤아릴 수 없고, 그것도 인
종별로 실사에 가깝게 부풀려 깍아 놓았다. 민망하지만 그러나 결코 웃을 수만도 없다.풍어를 염원하는 이곳 어민들에겐 그
것은 오직 삶과 직접 결부되는 것, 애랑의 혼을 달래어야만 해난을 피하고 만선(滿船)도 기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랑의
농염한 춘심이 피었음인가, 폭풍의 언덕엔 배롱나무 꽃들이 비에 젖었어도 그저 붉다.
동해의 미항 장호항을 찾았다. 태풍을 피해 피접온 어선들이 항구를 가득 채웠다. 항구는 정중동인데, 정작 바다 위 허공엔
새로운 낭만이 떠가고 있다. 동해의 명물 삼척해상케이블카다. 장호와 용화역을 이으며 장호항 바다 위를 부지런히 오간다.
빗속을 뚫고 한 줄 삭도에 매달려 바다를 건너는 해상케이블카. 그기엔 또 새로운 로망이 기다리는 듯하다. 길게 굽돌아 가
는 백사장을 따라 항구 북쪽 용화역(용화 쪽 삭도역) 언덕에 올라 보았다. 빗줄기는 차츰 더 굵어 진다. 그래도 아름다운 장
호항을 한눈에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는다. 작지만 또 아름다운 만(灣), 용화해수
욕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왜정 때 놓았던 철길을 이용하는 용화레일바이크가 명물. 아름다운 백사장과 바다를 보며 달리
는 바이크다. 18km의 여정이 끝났다.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린다. 종일토록 내릴양이었으면 바람이라도 같이 불어서 파도라도
일었으면 더 좋았을 걸. 아무튼 오늘 여정은 예의 3청(푸른 하늘, 푸른 바다, 푸른 산)과는 전혀 판이한 길이었다. 그래도 지
나온 길 더듬어 보니 곳곳에 추억의 여운이 남는다.
촬영, 2019, 09, 21.
해파랑길 29코스 / 호산터미널-임원항-수로부인헌화공원-신남항-해신당-갈남항-장호항-용화항
- 삼척시 원덕읍 호산항, 버스터미널 / 29코스 출발지점에서 빗속 인증 도장(스템프)을 찍는 트레커들
- 임원항
- 임원항 수로부인헌화공원 엘리베이터 타워
- 수로부인헌화공원 안내판
- 수로부인헌화공원과 수로부인 상
- 임원항
-삼척 갈람산 자락 7번 국도 임원재 / 신남항으로 가는 해파랑길 트레일임
- 신남항과 해신당공원
- 해신당공원에서 본 신남항
- 해신당 공원 '폭풍의 언덕' 길
- 남근석에 새긴 12지신 상과 옛 3칸 '어촌가'
- 7번 국도 갈남항 샛정류장
- 갈남항
- 갈남항의 아름다운 바위섬, 월미도(月尾島)
- 갈남항 쉼터
- 7번 국도변, 장호항 입구
-장호항과 삼척해상케이블카 장호역 타워
-제17호 태풍 '타나' 를 피해 항구 가득 정박 중인 장호항 선착장
- 장호항과 건너편 해상케이블카 용화역 풍경
- 해상케이블카 용화역 언덕
- 용화역 언덕에서 본 아름다운 장호항
- 7번 국도변 용화항 입구 반사경에 담은 필자
- 용화해변 레일바이크 터미널
- 용화해변
- 해상 관광용 아치교
- 용화해변
- 비를 피해 해변 백사장에 쉬는 갈매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