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 12. 11. 독일통일교회등록이 있었다.
1964. 12. 13. 제1회 공기총 수렵대회가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심히 궁핍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냥을 위한 공기총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시대를 앞선 사건이었다. 공기총을 만들어 판매를 하는 것은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식구들이 자립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둘째는 취미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시고 삶의 여가를 즐기도록 레저스포츠시대가 될 것을 예측하고 준비한 것이었다. 셋째는 비상시에 북한군의 남침이 있게 되면 전쟁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1990. 12. 13 “소련과 그 위성국가의 당수들 58명이 미국에 왔다가 갔습니다. 소련과 위성국가는 서로 원수입니다. 서로 지배하기 위해서 으르렁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받고 나서는 서로 완전히 하나되어 문 파티 클럽(Moon Party Club), 문당(文黨)을 만들어 놓고 돌아갔습니다. 유럽의 위성국가들을 소련과 합하게 하고 공산권을 합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의 사상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파티(Party)는 당이라는 말입니다. 이 클럽을 만들어 위성국가들이 연합전선을 펴서 세계적으로 선생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국책, 국가의 시정방침을 취해 나갈 수 있도록 선포하겠다고 각오하고 돌아갔습니다.” (213-103, 1991.01.16)
참부모님의 사상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수라는 단어는 메시아의 사역(使役)에 의하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한 사건이었다. “무지에는 천년만년이 지나도 완성이 없습니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곧 마음이 개방되면 시간이나 세월의 흐름과 별도로 곧장 소통이 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메시아께서 밝히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과 말씀을 인하여 인류의 무지가 극복되면, 그 날이 종말의 정점이 될 것이다. 무지에 대한 타파와 극복이 종말을 마무리하고 신천신지를 불러들이는 시작이 될 것이다.
러시아와 위성국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 참부모님의 심정과 사랑과 말씀이다.
1955. 12. 15. 대모님의 공식 입교일자이며, 1956년 1월 29일에 먼저 입교한 식구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림으로써 춘천교회 설립을 보게 됐다. 그런 상황 중에 대모님은 참어머님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만 13세 때인 1956년 3월 초에 ‘복중교에서부터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던 분이 서울에 나타나셨으니 경배 드리러 가자.’라고 하시며 함께 서울로 가게 됐다. 그리고 청파동교회에서 참아버님께 인사를 올리게 됐다. (참어머님 증언. 1999.10.21,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
1990. 12. 15 알래스카 코디악 수련소 준공식이 있었다. 지구를 돌게 하려면 남극과 북극의 축을 잡고서 돌리면 된다. 그처럼 추운 지역인 알래스카를 개척하시고, 또한 더운 지역인 브라질에 가정연합 수련소를 세우시고 세계의 축복가정들을 초청하여 참가정 교육을 시키셨다. 추위를 극복하시고, 모기에게 쏘이기도 하면서 초극적 자세를 보여주신 참부모님께서는 극과 극의 생활을 승리로 이끄셨다. 알래스카는 해양문화의 기반이다.
1999. 12. 15. 지상천국 출발 선포가 08시 30분에 우루과이에서 있었다. 참부모님은 중심식구들을 모아놓으시고 이 엄청난 선포를 하셨다. 그리고 2002년 2월 10일 참부모님 탄신 80주년 행사에서 ‘역사적인 대전환시대 선포’를 하셨는데, 이는 곧 천년왕국도래 선포였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처럼 섭리는 진행되었다. 역사의 중심인물들이 추구해 온 천국 건설이 현실로 다가 온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교육하는 것이 남미 브라질에서 있었던 이상가정 수련이었고, 그런 교육을 토대로 하여서 지상천국 출발 선포가 있었다.
2000. 12. 15. 한국문화재단 초청 금강산 가극단 내한 공연(리장준 단장 외 82명)이 있었다. 이때에 한국은 북한 노래가 유행하였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등이 소개되었다.
2000. 12. 16. 세계평화 초종교 초국가 미국 연합 창설대회가 있었다.
1950. 12. 18. 용매도를 건너신 사건이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박정화씨를 등에 업고서 차가운 갯벌을 건너셨다.
1971. 12. 18. 미국 선교가 시작되었고 선교본부가 미국으로 이전되었다. “선생님이 자유당 간부들의 회의를 거쳐서 미국 가는 비자를 얻은 것이 1962년이었어요. 미국에 가서 미국에 있던 한국 대사관 직원들과 영사까지 ‘당신의 사상만 있으면 미국을 앞 설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1962년도에 비자를 받아 가지고 왜 1972년 12월 18일에 갔느냐 이거에요. 기반이 없었어요. 집 한 채도 내가 없어서 쫓겨다니던 신세였습니다.” (614-272)
“나는 1971년 12월 18일 워싱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날이 바로 우리의 운동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합니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를 깨닫는 날, 그 날이 진정한 미국의 희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내 개인의 뜻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왔습니다.”(참부모님 생애노정 제5권, 245쪽)
성혼식 직후에 곧장 미국선교를 시작하여서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계획이 10년이나 지연되었다.
1973. 12. 18에 자녀님들 도미가 있었다. 예진, 효진, 인진, 흥진, 은진, 현진, 국진 등 7남매가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시게 되었다. 참가정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참자녀님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여서 참부모님의 뜻을 세계에 구현하는 중심인물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1975. 12. 18. ‘미국을 중심한 하나님의 계획’ 강연이 미국 전역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72개 국가에서 온 의장단이 ‘12∙18선언’ 선서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세계 72개국에서 72문도를 잃어 버렸던 것을 전부 다 찾아 놓는 거예요, 세계적 대표, 최고의 지성인들을. 국가의 수반들까지 지지하는 그 나라의 최고의 정상이라 볼 수 있는 72개 국의 석학들을 아카데미의장단으로 묶어 전부 다 한국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음을 가지고 와라 이거예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믿고 와라 이겁니다. 나를 믿어라 이거예요.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옥중에서 12제자를 찾은 거와 마찬가지로 72개 국 세계적인 대표를 한국에 갖다가 전부 모은 거예요. 모아 가지고 뭘 하느냐하면 공산주의를 방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세계적 승공대회를 하는 거라구요. 그 때 학자들도 전부 다 김포공항까지 와 가지고도 승공대회를 하는 줄 몰랐다구요.”
1983. 12. 18. “1983년 12월 18일은 의의 있는 날이예요. 여러분들에게 12월 18일이 무슨 날인가 기도해서 찾아내 나한테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로 그 날이라구요. 선생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날이라구요. 인간 세계에서 배신을 당한 잊을 수 없는 날이라구요.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제2 출발기지를 향해 나올 때에 믿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잊을 수 없는 날이라구요.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세계의 석학들이 나를 믿고, 모든 국민들이 환영하고, 통일교회 전체가 안팎이 하나 돼 가지고, 또 승공연합도 가인 아벨 같은 이런 2부 조직된 환경의 모든 일반 사람들도 완전히 하나 되어 가지고 이 기간에 지원한 거라구요. 세계 공산주의를 대해서 선전포고하는 때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예수가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로마에 들어가서 세계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그 때와 맞먹는 거라구요. 문화혁명의 출발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선언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통일교회 맹세문 5번, 제5번을 써 놓고 사인하라고 했습니다. 그거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해서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사인하도록 해야 할 텐데, 서구사회에서는 그 사인이라는 건자기 목을 매야 하는 거예요. 자기 간판을 거는 거라구요. 한다하는 의장단들을 모아 놓고 전부 다 사인을 하도록 해 가지고 12월 18일로 세계에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역사적인 기록이라구요.”
1985. 12. 18 가 발행되었다. 참부모님 사상과 삶 및 복귀섭리의 진행 과정을 영어로 발간하여서 세계에 보급하였다.
1998. 12. 19. 워싱턴타임즈사가 개최한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대회가 있었다.
세계주의는 사해동포사상으로 연결된다. 어느 한 개인이나 민족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만민이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향유하는 세상이 되게 해야 한다. 유대교에서와 같은 선민사상이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세계주의 사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참부모님께서는 일생을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여 왔던 내용을 1998년 12월 19일에 워싱턴타임즈사가 개최한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대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어떤 특정 국가나 특정 민족을 위하여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내 목적은 세계 구원입니다. 나는 그 목적을 위해서 지금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적으로 목숨을 바쳐 일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세계를 위해서 살고 죽어야 합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아내를 안고, 가정을 안고, 자기 종족을 안고, 민족을 몽땅 안고 죽을 수도 있어야 됩니다.”
1970. 12. 20. <통일세계>가 창간되었다. 그로부터 매월마다 발간되어서 2014년 12월호는 통권 520호가 된다. 통일세계에는 참부모님과 식구들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고, 복귀섭리 진행 상황이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가정연합의 족적이 가장 잘 드러난 월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