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의 사주칼럼]
유약겸하 <柔弱謙下>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말했다. “혀가 있느냐?”“네 있습니다.”“이는?”“하나도 없습니다.”
상용이 물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라고 말하자 상용은 이제 됐다는 듯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먼저 깨지고 만다. 부드러움이라야 오래 간다.
어떤 충격도 부드러움의 완충 앞에서 무력해진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결국
둘 다 상한다. 출입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 쉬 썩는다. 하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좀먹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금방 썩는다. 흘러야 썩지 않는다. 자연의 모든 법칙은 순환 속에 영원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산다면 백년을 산들,
천년을 산들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그것은 살아는 있지만 정체돼 있고 죽어있는 인생(人生)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완충적인 지렛대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
바로 자신이 타고난 인성(人性)과 성품(性品)이다.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성격의 모난점은
그것이 어떤 개성이든 간에 강한 것이다. 섬세하고 예민하고 감성이 풍부한 것이 부드러운 것같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사이코패스적인 살인마와 정신적인 중독자가 많이 나오고 외고집과 독선으로
뭉친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평화를 깨뜨리게 하는 암적인 존재들이 많이 나온다.
타고난 성품의 장단점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자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필자에게 왔던 한 중년 여성은 남편의 모난 성격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다.
“자식들이 대학교를 갔는데도 제게 손찌검을 일삼았어요.
죽어도 이혼은 안해준다고 하니 저는 따로 나와 살려고요. 자식들도 아빠와는 살기 싫데요”라고
말했다.
남편의 사주는 너무나 신강한 사주에 괴강살과 양인살이 중첩된 명리학에서 말하는 강성의 성격을
받고 태어났다. 이렇게 태어난다고 해서 모두다 독불장군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개선해
보려는 시도를 전혀 안한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성품을 부드러운 기운으로 완충되게 조절하는 것,
그것이 노자가 말한 조화(調和)의 선(善)이다.
천문역원(062-673-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