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문학촌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불광동 성당
바다의 별 작은도서관
자원봉사자 김 데레사
2019.5.26.(일)에 바다의 별 작은 도서관 봉사자들과 늘푸른공동체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강원도 동춘천의 ‘김유정문학촌’에 다녀왔다. 청량리역에서 itx청춘 열차를 타고 강촌역에서 내린 후 춘천행 완행열차를 타니 곧바로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오월의 조금 뜨거운 햇살과 강원도의 초록 숲을 온전히 느끼며 점심 때가 되어 닭갈비집으로 직행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휑했던 논에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김유정 작가의 생가 인근에는 새로운 황토벽의 초가집들이 새롭게 조성 되어 있어서 조금 낯설었다. 오직 김유정 생가만 있고 주변이 모두 벌판이었던 2011년 무렵이 좀 그리웠다.
우린 점심을 맛있게 먹고 김유정 생가로 향했다. 생가 안에 김유정문학관이 있고 해설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설가 성함은 권영승 님이다. 중년의 남자분이셨다.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유정 작가의 문학성과 슬픈 죽음을 전해 주었다. 특히 한자가 쓰이지 않은 32편의 소설을 소개할 때 감동을 받았다. ‘김유정 작가가 우리말 달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년간의 짧은 작가생활 중에 32편의 작품을 썼다는 것도 놀랍고 ’필승전‘이라는 짤막한 편지글에서 그의 생에 대한 불타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29세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슬픔을 알았을까? 마지막까지 병을 이겨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처절할 정도였다. 돈 백원이 필요하다는 말과 닭을 서른마리 가량 먹고 싶다는 말, 그리고 살모사나 뱀 등을 먹고 싶다는 처절함에서 마지막 생을 넘기는 그 안타까움이 저절로 전해졌다.
요즘 같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인데 당시에는 의술이 발전하지 않아서 그렇게 아깝게 생을 마감했다니 마음 깊이 슬픔이 스며들었다. 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되어 한강에 묻혔다는 말을 듣고 작가가 죽은 몸이지만 우리가 살았던 서대문구 홍제동에 왔었다니 반갑기도 했고 한강에 뿌려졌다고 하니 그 의미도 새로웠다. 작품으로 작가는 독자 가슴에 남는 게 당연하지만 그 죽음 이후 서울 어느 공간을 지나갔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더욱더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김유정 작가의 사랑을 그린 전상국 소설가님의 <유정의 사랑>을 아주 감동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김유정의 짝사랑이 이뤄지진 못했지만 그의 사랑은 어쩌면 일찍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면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김유정 작가는 작품을 써 발표한 지 4년 동안 활동하다 가셨지만 더 일찍 어려서부터 열심히 책을 읽었을 것이고 습작도 했을 것 같다.
혹자는 너무 쉽게 소설을 쓰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천재적인 소설가적 재능과 노력이 함께 하지 않았을까? 말싸움하는 동네 사람들이 있으면 옆에서 메모했다가 등장인물로 만들어낼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고 그들의 삶의 처절함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아픔을 극복해내는 힘이 대단하다. 김유정 어록이 있을 만큼 뛰어난 우리말 구사력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다. 서울 재동초등학교나 휘문고보 등을 다니면서 웬만한 소설을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비작가들에게 권하고 싶다.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와 보라고. 실레 이야기길을 천천히 걸어 보라고. 그리고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보라고. 다녀온 사람들은 말하리라. 김유정 작가는 아직 그곳에 살아 있었노라고. 해설사의 언어 속에도 표정 속에도, 그리고 매표 직원의 표정 안에서도, 여기저기 닭갈비 장사를 하고 있는 음식점에도, 마을 앞산에도, 이야기 집에도, 그리고 김유정우체국에도, 김유정역에도, 김유정문학촌 모든 공간 곳곳에 그가 살고 있었다. 마을을 이고 있는 하늘에도 나무들에도 길거리에도 그리움처럼 김유정이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서에 맞는 김유정을 그 부피만큼 만나고 미소 지으며 돌아오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