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
봄이 깊어 간다. 송홧 가루 날리는 계절이 되면 개구쟁이 시절이 떠오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마을에서 바깥 세상을 접하는 시간은 오일 장이 열리는 날이다. 시 오리 길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흙 먼지를 일으키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오솔길 따라 하얗게 핀 찔래 순을 따 겉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야금야금 씹어 먹는다. 염소나 토끼가 따로 없다. 어느 새 초식 동물이나 다름 아니다. 껍질을 없앤 새 순은 먹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버들강아지 새순은 먹고 약지 정도의 가지는 잘 비틀고 껍질을 통으로 만들어 버들피리로 화음을 만든다. 논밭의 보리가 한 뼘 정도 자라 대궁이가 빳빳할 때 속을 뽑아 끝 부분은 자른다. 보리 피리로 시골의 흥을 돋운다. 이맘때 주변 작물들은 온통 소리를 내는 재료다.
산과 들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은 송이 째 따서 입에 넣는다. 몇 줌을 먹고 나면 입술이 분홍색으로 바뀐다. 동네 어귀에 잘 다듬어진 묘 근처에는 봄의 전령 할미꽃이 자리잡는다. 어린 순부터 다 자란 개체조차 고개를 숙여 겸손함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할미꽃이 머리를 조아려 봄 소식을 안겨준다. 꽃은 흰색이나 분홍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시간이 지나면 꽃은 하얀 머리를 풀어헤친 노인 마냥 시간을 뒤쫓아 간다.
소 몰고 풀 뜯는 일은 한가로운 일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맡아 하는 놀이로 인식되었다. 또래 친구와 어울려 마을 안 길을 돌며 술래잡기와 깡통 차기는 해지는 줄 모르고 열중하는 관심사다. 이 놀이에 함께 하지 못하고 산으로 소를 몰아 또래들과 멀어지는 일은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였다. 어른들의 판단으로 마을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 마음은 소를 팔아 없애고 마음대로 뛰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하다. 면 단위에서 규모가 큰 편인 초등학교 시절 학생 수가 많아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었다. 얼마전까지 대도시에서 가끔 들려오는 이야기다. 뉴스에서나 나옴 직한 일이 그때 우리들에게 있었다.
신작로는 키 큰 버드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만든다. 날씨가 뜨거워 진 계절에는 몇 종류의 매미 울음소리는 화음에 맞춰져 귀청을 때린다. 나무 종류마다 매달려 우는 매미가 달랐다. 짧은 일주일 여를 성충으로 살기 위해 긴긴 세월을 유충으로 지내 온 노력이 애잔하다. 이때는 풍뎅이와 장수 하늘소는 귀엽기까지 하다.
마을 뒷 산 큰 바위에 올라 그 이전 목동들이 바위에 새겨 놓은 자국에 칠교 놀이는 한 때의 재미를 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 판에 젖어 소가 인근 밭 작물을 잘라 먹어 밭 주인에게 호통을 듣고서 소를 찾아 나선다.
밤 시간은 짧기만 하다. 커 가면서 또래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몰려 다닌다. 어른들의 간섭이 뒤따른다. 어쩌면 이때부터 이성의 차이를 보여주었는지 모른다. 골짜기와 산 등성이마다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민둥산은 뛰노는 앞 마당으로 정겹다. 어느 곳에는 모퉁이를 돌아 오르면 목을 축일 수 있는 산 딸기가 반겨준다. 모자란다 싶으면 옹달샘이 대신 해 준다.
늦 봄 뽕나무 열매 오디를 만나는 것은 축제분위기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한 낱 옛 이야기로만 남아있다. 그 이전 동무들과 어울려 어린 시절을 함께 누렸던 시간이 새삼 떠오른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이 들면서 동무들이 하나 둘 부모들이 터를 잡고 자식을 길렀던 고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친구야, 동무야! 우리 함께 남은 인생 즐겨보자구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산과 들판은 추억을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