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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2권
14. 무더기(蘊)
14.1. 통찰지란 무엇인가
1.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게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Ⅰ§ )
여기서 삼매(samādhi)는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표현되었으며, 이제까지 비구가 초월지라는 이익을 얻어서 더 깊은 삼매수행을 갖추어 모든 측면에서 이를 잘 닦았다.
이제 삼매 다음에는 통찰지(paññā, 般若, 慧)를 닦아야 한다.
이 [통찰지는 앞에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는(viññātuṁ)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그것을 닦음이랴.
그래서 이제 [통찰지의] 상세한 [설명]과 통찰지를 닦는 방법을 드러내기 dnlgoyj 다음 질문을 제기한다.
(1) 무엇이 통찰지인가?
(2) 무슨 뜻에서 통찰지라 하는가?
(3) 통찰지의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은 무엇인가?
(4) 얼마나 많은 종류의 통찰지가 있는가?
(5)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6) 통찰지를 닦으면 무슨 이익이 있는가?
2. 이것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1) 통찰지의 정의
(1) 무엇이 통찰지인가?
통찰지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여러 측면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드는 대답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오직 여기서 필요한 것에 관해서만 말하려한다.
통찰지는 유익한 마음(善心)과 연결된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이다.
(2) 통찰지의 뜻
3.
(2) 무슨 뜻에서 통찰지라 하는가?
꿰뚫어 안다(pajānana)는 의미에서 통찰지라 한다.
그러면 대체 꿰뚫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식하는(sañjānana) 형태와 자세히 아는(vijānana) 형태와는 달리 여러 측면에서 아는 것(nānappakārato jānanaṁ)말한다.
왜냐하면 인식(saññā)과 알음알이(viñāṇa)와 통찰지(paññā)가 공히 아는 성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인식(산냐)은 ‘푸르다, 누르다’라고 단지 대상을 인식하는 정도이며, 무상ㆍ고ㆍ무아라는 특징을 통찰(paṭivedha)하지는 못한다.
알음알이(윈냐나)는 ‘푸르다, 누르다’라고 대상을 알뿐만 아니라 특징을 통찰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도(magga)의 현전에 이르지는 못한다.
통찰지는 이미 설한대로 대상도 알고 특징을 통찰할 뿐만 아니라 노력하여 도와 현전에 이른다.
[어린아이와 농부와 금속 세공인이 동전 더미를 보는 비유]
4. 예를 들면, 어느 분별없는 어린아이와 시골 농부와 금속 세공인 세 사람이 금속 세공인의 모루 위에 놓여진 동전 더미를 보았다 하자.
분별없는 어린아이는 동전이 아름답고 장식이 되어있으며 길고 네모지고 둥글다는 정도로만 안다. 그러나 인간들이 일용품이나 향락을 얻으려고 이것을 보배처럼 여긴다는 사실은 모른다.
시골 농부는 이것이 아름답고 장신이 되어있다는 것 등을 알고, 인간들이 일용품과 향락을 얻으려고 이것을 보배처럼 여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이고, 이것은 가짜이며, 이것은 반쯤 섞인 혼합물이다’라고 이들의 차이점은 알지 못한다.
금속 세공인은 이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는 동전을 보기만 해도 알며 부딪히는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혀를 대 보거나 손으로 무게를 어림잡아보아도 안다.
그는 이것이 어느 특정한 마을이나 읍이나 도시나 산이나 강가에서 만들어졌는지도 알고 어느 장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도 안다.
이와 같이 이 비유의 적용을 알아야 한다.
5. 인식(샨냐)은 분별없는 어린아이가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의 나타난 양상을 푸르다 등의 정도로만 알기 때문이다. 알음알이(윈냐나)는 시골 농부가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의 양상을 푸르다 등으로 알고 나아가 [무상ㆍ고 ㆍ무아의] 특징을 통찰함에 이르기 때문이다.
통찰지(빤냐)는 금속 세공인이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대상의 양상을 푸르다 등으로 알뿐만 아니라 그것의 특징을 통찰함에 이르고 여기서 더 나아가 도의 현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식함(sañjānana)의 형태와 자세히 앎(pajānana)의 형태와는 달리 여러 측면에서 아는 것을 꿰뚫어 앎(pajānana)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것을 두고 ‘꿰뚫어 안다(pajānana)는 의미에서 통찰지라 한다’라고 말했다.
6. 그러나 이 통찰지(빤냐)는 인식(산냐)이나 알음알이(윈냐나)가 일어날 때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령 통찰지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인식이나 알음알이로부터 분리(vinibbutta) 할 수 없다.
‘이것은 인식이고 이것은 알음알이며 이것은 통찰지다’라고 분리해서 차이점을 취할 수 없고, 아주 미세하며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가세나 존자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을 하셨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무슨 하기 힘든 일을 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하기 힘든 일을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동일한 대상에서 일어나는 형상이 없는 마음(心)과 마음부수(心所)의 법들을 구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감각접촉(phassa, 觸)이고 이것은 느낌(vedanā, 受)이고 이것은 인식(saññā, 想)이고 이것은 의도(cetanā, 意思)고 이것은 마음(citta, 心)이라고 설하셨습니다.(Miln. 87)”’
(3) 통찰지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
7.
(3) 통찰지의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은 무엇인가?
통찰지의 특징은 법의 고유성질(sabhāva)을 통찰(paṭivedha)하는 것이다.
그것의 역할은 법의 고유성질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moha)의 어둠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통찰지는 미혹하지 않음(asammoha)으로 나타난다.
통찰지의 가까운 원인은 삼매(samādhi)다.
“삼매를 잘 닦은 자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A.v.3)”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4) 통찰지의 종류
8.
(4) 얼마나 많은 종류의 통찰지가 있는가?
[한 가지]:
① 먼저 법의 고유성질을 통찰하는 특징으로 오직 한 가지이다.
[두 가지]:
② 세간과 출세간으로 두 가지이다. 그와 같이
③ 번뇌를 가진 것과 번뇌가 다한 것 등으로
④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것으로
⑤ 기쁨이 함께한 것과 평온이 함께한 것으로
⑥ 견(見, dassana)의 경지와 수행(bhāvanā)의 경지로 두 가지이다.
[세 가지]:
⑦ 생각(cintā)으로 얻은 것과 들어서(suta)얻은 것과 수행(bhāvanā)으로 얻은 것으로 세 가지이다. 그와 같이
⑧ 제한된 대상을 가진 것과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과 무량한 대상을 가진 것으로
⑨ 증장시키는 데 능숙한 것과 손상시키는 데 능숙한 것과 수단에 능숙한 것으로
⑩ 안을 천착하는 것 등으로 세 가지이다.
[네 가지]:
⑪ 네 가지 진리들(四諦)에 대한 지혜로
⑫ 네 가지 무애해로 네 가지이다.
9. 여기서
① 한 가지의 분류에 관해서는 그 뜻이 분명하다.
두 가지 분류에서,
② 세간의 도와 함께하기 때문에 세간의 [통찰지]이고 출세간의 도와 함께하기 때문에 출세간의 [통찰지]이다.
이처럼 세간과 출세간으로 두 가지이다.
10. 두 가지의 두 번째에
③ 번뇌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번뇌를 가진 것(sāava)이라 하고,
[번뇌들의] 대상이 아닌 것을 번뇌가 다한 것(anāsava)이라 한다.
뜻으로 이것은 각각 세간의 [통찰지]와 출세간의 [통찰지]와 같다.
번뇌와 함께한 것을 번뇌를 가진 것이라 하고,
번뇌와 분리된 것을 번뇌 다한 것이라 한다는 등에서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
이와 같이 번뇌를 가진 번뇌가 다한 것 등으로 두 가지이다.
11. 두 가지의 세 번째에
④ 위빳사나를 수행하고자하는 사람에게 네 가지 비물질(arūpa, 정신)의 무더기를 구분하는 통찰지가 있다. 이것이 정신(nāma, 名)을 구분하는 통찰지이다.
물질의 무더기(色蘊)를 구분하는 통찰지가 있으니 그것이 물질을 구분하는 통찰지이다.
이와 같이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것으로 두 가지이다.
12. 두 가지의 네 번째에
⑤ 욕계의 두 가지 유익한 마음(kusalacitta, 善心)과, 오종선(五種禪)에서 네 가지 禪과 함께하는 열여섯 가지 도의 마음(maggacitta)에 속하는 통찰지는 기쁨이 함께 한 것이고,
욕계의 두 가지 유익한 마음과 제5선과 함께하는 네 가지 도의 마음에 속하는 통찰지는 평온이 함께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기쁨이 함께한 것과 평온이 함께한 것으로 두 가지이다.
13. 두 가지의 다섯 번째에
⑥ 첫 번째 도의 통찰지는 견(見, dassana)의 경지이고,
나머지 세 가지 도의 통찰지는 수행(bhāvanā)의 경지이다.
이와 같이 견의 경지와 수행의 경지로 두 가지이다.
14. 세 가지의 첫 번째에
⑦ 타인으로부터 듣지 않고 얻은 통찰지는 본인의 생각으로 얻었기 때문에 생각으로 얻은 것(cintāmayā)이라 한다.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얻은 통찰지는 들어서 얻었기 때문에 들어서 얻은 것(sutamayā)이라 한다.
이렇건 저렇건 간에 수행을 통하여 얻었고 절정을 이룬 통찰지를 수행으로 얻은 것(bhāvanāmayā)이라 한다. 이처럼 설하셨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어떤 것이 생각으로 얻은 통찰지인가?
직업적인 일의 분야나 기술의 분야나 지식의 분야에서, 업이 자신의 주인임에 대한, 혹은 진리(四諦)에 수순함에 대한, 혹은 물질은 무상하다거나, 느낌은 … 인식은 …의도적 행위는 … 알음알이는 무상하다라고 하는 이치에 대한 수순, 인내, 견해, 선호, 의견, 판단, 현상을 사유하기를 좋아함 등을 타인으로부터 듣지 않고 얻은 것을 ‘생각으로 얻은 통찰지(cintāmayā paññā)’라 한다. …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얻은 통찰지를 ‘들어서 얻은 통찰지(sutamayā paññā)’라 한다. 체득한 자의 통찰지는 모두 ‘수행으로 얻은 통찰지(bhāvanāmayā paññā)’라 한다.(Vbh.324-25)
이와 같이 생각으로 얻은 것과 들어서 얻은 것과 수행으로 얻은 것으로 세 가지이다.
15. 세 가지의 두 번째에
⑧ 욕계의 법들을 대상으로 하여 생긴 통찰지는 제한된 대상을 가진다.
색계와 무색계를 대상으로 하여 생긴 통찰지는 고귀한 대상을 가진다.
이 둘은 세간의 통찰지이다.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생긴 통찰지는 무량한 대상을 가진다.
이것은 출세간의 통찰지이다.
이와 같이 제한된 대상을 가진 것과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과 무량한 대상을 가진 것으로 세 가지이다.
16. 세 가지의 세 번째에
⑨ 증장(āya)은 향상(vuddhi)을 뜻한다.
이것은 두 가지인데 손해(anattha)를 버림과 이익을 생기게 함이다.
이것에 능숙함을 일러 증장시키는 데 능숙함(āya-kosalla)이라 한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이 증장시키는 데 능숙함인가?
이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해로운 법( 不善法)들을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해로운 법들을 버린다.
그리고 이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다시 더 자라게 하고 번성하게 하고 닦고 완성으로 인도한다.
여기서 통찰지, 꿰뚫어 앎 … 어리석음 없음, 법의 간택(擇法), 바른 견해(正見)를 일러 증장시키는데 능숙함이라 한다.(Vbh.325-26)”
17. 손상이란 파멸을 뜻한다.
이것도 두 가지인데 이익을 버림과 손해를 생기게 함이다.
이것에 능숙함을 일러 손상시키는 데 능숙함(apāya-kosalla)이라 한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서 어떤 것이 손상시키는 데 능숙함인가?
이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는자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들을 일어나지 않게 하고 … (Vbh.322)” 등이다.
18. 모든 곳에서 결과를 가져오게 할 여러 가지 법들의 수단들 가운데서 특정 순간에 즉시 떠올라서 그 경우에 맞게 생겨난 능숙함을 일러 수단에 능숙함(upāya-kosalla)이라 한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수단에 대한 모든 통찰지가 수단에 능숙함이다.(Vbh.326)”
이와 같이 증장시키는 데 능숙한 것과, 손상시키는 데 능숙한 것과, 수단에 능숙한 것으로 세 가지이다.
19. 세 가지의 네 번째에
⑩ 자신의 무더기들(五蘊)을 취하여 시작한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안을 천착(abhinivesa)하는 것이다. 남의 무더기들을 취하거나 혹은 기능(根)들이 없는 외부의 물질을 취하여 시작한 것이 밖을 천착하는 것이다. 둘 다를 취하여 시작한 것이 안팎을 천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을 천착하는 것 등으로 세 가지이다.
20. 네 가지의 첫 번째에
⑪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대상으로 하여 생긴 지혜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이다.
괴로움의 일어남을 대상으로 하여 생긴 지혜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이다.
괴로움의 소멸을 대상으로 하여 생긴 지혜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이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대상으로 하여 생긴 지혜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지혜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진리들(四諦)에 대한 지혜로 네 가지이다.
21. 네 가지의 두 번째에
⑫ 네 가지 무애해라고 하는 뜻(attha,결과) 등에 대해 통달한 네 가지 지혜들이 있다.
이처럼 설하셨기 때문이다.
“뜻(결과)에 대한 지헤가 뜻(attha)에 대한 무애해(義 無碍解)이다.
법(원인)에 대해 지혜가 법(dhamma)에 대한 무애해(法無碍解)이다.
뜻과 법에 대해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함에 대한 지혜가 언어(nirutti)에 대한 무애해(詞無碍解)이다.
지혜들에 대한 지혜가 영감(paṭibhāna)에 대한 무애해(辯無碍解)이다.(Vbh.293)”
22. 이 가운데서 뜻(attha, 義, 결과)이라는 것은 간략하게 말하면 원인(hetu) 에 대한 결과(phala)의 동의어다.
원인에 걸맞게 결과에 이르고 도달하고 얻는다고 해서 원인에 대한 결과를 뜻이라 한다.
자세히 분석하면
① 무엇이든 조건 따라 일어난 것
② 열반
③ [부처님이] 설하신 [경의] 뜻
④ 과보로 나타난 [마음](vipāka)
⑤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kiroya)
이 다섯 가지 법들을 뜻이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그가 이런 뜻을 반조할 때, 그 뜻에 대해 통달한 그의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義無碍解)이다.
23. 법(damma)이라고 한 것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조건(pacca-ya)의 동의어다.
조건이 이런 저런 결과를 낳게 하고 생기게 하고 가져오게 한다고 해서 법이라 한다.
자세히 분석하면
① 결과를 생기게 하는 원인
② 성스러운 도
③ 설하신 [경]
④ 유익한 [마음](kusala, 善)
⑤ 해로운 [마음](akusala, 不善)
이 다섯 가지 법들을 법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가 이런 뜻을 반조할 때, 그 법에 대해 통달한 그의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法無碍解)이다.
24. 논장(Abhidhamma)에서 다음과 같이 바로 이 뜻을 설했기 때문이다.
“괴로움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
원인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원인의 결과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 …
태어남, 생성됨, 생을 받음, 생김, 다시 생김, 나타남, 이런 법들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
어떤 법들로부터 이 법들이 태어나고, 생성되고, 생을 받고, 생기고, 다시 생기고, 나타나는 그런 법들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 늙음과 죽음의 원인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
형성된 것(saṅkhāra, 行)들의 소멸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
형성된 것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
여기 비구가 있어 법을 알고 경(經, sutta)과 응송(應頌,geyya)과 … 방등(方等, vedalla)을 아는 것이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그는 여러 가지로 설해진 [경]의 듯을 안다.
‘이것이 이 경의 뜻이고 이것이 이 경의 뜻이다.’라고 이것을 일러 뜻에 대한 무애해라 한다. …
어떤 것이 유익한 법(善法)들인가?
욕계의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 … 이러한 것이 유익한 법들이다.
이러한 법들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이다.
그들의 결과에 대한 지혜가 뜻에 대한 무애해이다.(Vbh.293-95)”
25.
‘뜻과 법에 대해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함에 대한 지혜’:
그 뜻과 법에 대한 고유한 언어(nirutti)와 예외 없는 일상적 표현(vohāra)이 있다.
그것을 설하거나 발음하거나 표현함에 관한 지혜이고, 그것을 설하거나 발음하거나 표현함을 들으면 즉시
‘이것은 고요한 언어(sabhāva-nirutti)이고 이것은 고유한 언어가 아니다’라고 아는,
모든 중생들의 근본어(mūla-bhāsā) - 법다운 언어로 잘 알려졌고 고유한 언어인 마가디어(Māgadhika)다 - 에 대해 통달한 지혜가 언어에 대한 무애해이다.
언어에 대한 무애해를 증득한 자는 팟소(phasso), 웨다나(vedanā) 등의 말을 들으면 이것은 고유한 언어라도 안다.
그러나 팟사(phassā), 웨다노(vedano)등의 말을 들으면 이것은 고유한 언어가 아니라고 안다.
26.
‘지혜들에 대한 지혜(ñāṇesu ñāṇa)’:
그가 모든 곳에서 지혜들을 대상으로 반조할 때, 지혜를 대상으로 한 그의 지혜가 영감에 대한 무애해이다.
혹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지혜에 대해 각각의 대상, 역할 등으로 상세하게 아는 것이 영감에 대한 무애해라는 뜻이다.
27. 이 네 가지 무애해는 유학의 경지와 무학의 경지의 두 단계에서 통달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 상수 제자들과 큰 제자들은 무학의 경지에서 통달했고 아난 존자와 찟따 장자와 담미까 청신사와 우빨리(Upāli) 장자와 쿳줏따라(Khujjuttarā) 청신녀 등은 유학의 경지에서 통달했다.
28. 무애해가 비록 이렇게 두 단계에서 얻어지지만
① 증득 ② 교학 ③ 들음 ④ 질문 ⑤ 전생의 수행이라는 이 다섯 가지에 의해서 선명해진다.
그 가운데서
① 증득(adhigama)이란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② 교학(pariyatti,배움)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외는 것이다.
③ 들음(savaṇa)이란 신중하고 주의 깊게 법을 듣는 것이다.
④ 질문(paripucchā)이란 성전과 주석서 등에 대한 까다롭고 난해한 문장을 논의함이다.
⑤ 전생의 수행(pubba-yoga)이란 과거세 부천미들의 교단에서 걸식을 가고 올 때 항상 명상주제를 자졌던 자가 위빳사나를 수행하여 수순(隨順,anuloma)과 고뜨라부(gotrabhū, 種姓)근처까지 이르렀던 것을 말한다.
29.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① 전생의 수행
② 넓은 견문
③ 방언
④ 전승된 가르침
⑤ 질문
⑥ 증득
⑦ 어른을 모심
⑧ 선우를 가까이 함
이것이 무애해를 얻는 원인이다
30. 이 가운데서
① 전생의 수행은 앞서 말한 것과 같다.
② 넓은 견문(bāhu-sacca)이란 여러 가지 지식이나 기술에 능숙함이다.
③ 방언(desabhāsā)이란 백 한 가지 일상적 표현에 능숙함이다. 특히 마가디어에 능숙함이다.
④ 전승된 가르침(agama,阿含 )이란 적어도 비유품 정도라도 부처님 말씀을 반복해서 외는 것이다.
⑤ 질문이란 비록 한 개의 게송일지라도 그 의미를 논의합이다.
⑥ 증득(adhigama)이란 예류과를 얻거나 내지 아라한과를 얻음을 말한다.
⑦ 어른을 모심(garu-sannissaya)이란 견문이 넓고 영감이 뛰어난 어른들 곁에서 지냄이다.
⑧ 선우를 가까이 함(mitta-sampatti)이란 그러한 선우를 얻음이다.
31. 이 가운데서 부처님들과 벽지불들은 전생의 수행과 증득에 의해서 무애해를 얻으셨고, 제자들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얻는다.
무애해를 얻기 위해 명상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은 없다.
유학들은 유학의 과를 통한 해탈 다음에 무애해를 얻고,
무학들은 무학의 과를 통한 해탈 다음에 무애해를 얻는다.
마치 여래들이 오직 성스러운 과에 의해서 열 가지 힘(十力)을 성취하듯이,
성자들도 오직 성스러운 과에 의해서 무애해를 성취한다.
이런 무애해를 두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네 가기 무애해를 통해서 [통찰지는] 네 가지이다.’(§8)
(5) 닦는 방법, 통찰자의 토양과 뿌리와 몸통
32.
(5)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여기서 무더기(khanda, 蘊) [14장],
감각장소(āyatana, 處), 요소(dhātu, 界) [15장],
기능(indriya,根) [16장],
진리(sacca, 諦) [16장],
연기(paṭiccasamuppāda, 緣起) [17장]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이 이 통찰지의 토양(paññā-bhūmi)이다.
계청정 [1장],
마음청정 [18장],
이 둘은 이 [통찰지의] 뿌리(mūla)이다.
견청정,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 [19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知)와 견(見)에 의한 청정 [20장],
도닦음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21장],
지와 견에 의한 청정 [22장],
이 다섯은 [통찰지의] 몸통(sarīra)이다.
그러므로 먼저 토양이 되는 법들에 대한 파악과 질문을 통해서 지혜를 굳건하게 한 뒤,
뿌리가 되는 두 가지 청정을 성취하고,
몸통이 되는 다섯 가지 청정들을 성취함으로써 통찰지를 닦아야 한다.
이것이 요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