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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3권
38. 정거천품(淨居天品)[1]
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이 법의 굴림과 굴리지 않음을 듣는 품[聞法轉不轉品]을 설하실 때에 당시 정거천자(淨居天子)가 있었다.
그는 과거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상으로부터 온갖 공덕을 심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했으며,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법장을 통달해 다했고 변재가 걸림 없었으며,
큰 자비를 행하여 공의 법성[空法性]을 얻었고, 권도로 하늘에 태어남을 나타내서 하늘을 제도코자 하는 까닭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로 잡아 정돈하고는 데리고 온 시종을 거느리고 엄숙하게 서 있었다.
[하늘에 태어난 복]
그때에 그 천자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계신 데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여러 하늘은 숙세(宿世)에 공덕과 복을 심었으므로 이제 하늘에 태어나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으로 스스로 즐기며, 좌우의 시종이 자연히 향응하면서 욕지에 노닐면 그 쾌락은 헤아리기 어렵나이다.
저희들은 무슨 복을 닦았기에 하늘에 태어남을 얻었나이까?
저희들이 사는 대궐은 길이가 49유순이요, 7보(寶)로 장엄된 전당(殿堂)은 세상과 더불어 기묘하며, 뒤에 있는 욕지에는 7보의 나무가 일곱 겹이나 둘러싸고 있나이다.
무슨 복을 닦았기에 이 덕을 얻었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천자가 능히 여래 앞에서 이 뜻을 묻는구나. 이제 마땅히 너에게 낱낱이 분별하리니,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과거 항하 모래 수효의 모든 부처님 세존도 또한 이 뜻을 설하셨고, 현재와 미래의 온갖 여러 부처님도 또한 마땅히 이 미묘한 법을 설하시리라.
어떠한가, 천자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너는 마땅히 낱낱이 나에게 답하여라.
네가 사는 하늘 이전의 과거를 기억하느냐, 못하느냐?”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과거 온갖 하늘의 그 명호는 기억해낼 수 없나이다.”
“어떠한가, 천자야, 너의 지금 이 몸은 항상함이 있느냐, 항상함이 없느냐?”
“저의 지금 이 몸은 항상함이 있는 법이지 항상함이 없는 법은 아니옵나이다.”
“설사 너의 지금의 몸이 항상함이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여러 하늘은 지금 존재하고 있느냐?”
“마멸(磨滅)했나이다.”
“어떠한가, 천자야, 과거의 여러 하늘은 모조리 다 마멸했는데, 너의 지금 이 몸이 어찌 영원히 존재하겠는가?”
“과거의 여러 부처님은 모두 멸도를 취하셨는데, 오늘의 세존은 어찌하여서 살아계시나이까?”
“과거의 여러 부처님과 나의 지금 몸이 같으냐, 같지 않느냐?”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과거 속에서 과거의 나타남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모조리 멸도하셨다고 말하겠나이까?”
“3세는 있는 것입니까, 3세는 없는 것이옵나이까?”
“3세의 이름은 있지만, 그러나 3세의 행은 다른 것이니라.”
천자가 또 물어 여쭈었다.
“여래께서 지금 과거의 부처님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저는 의심하지 않고,
다시 시방에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말씀하신 것도 저는 또한 의심하지 않습니다마는,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부처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네가 지금 나에게 묻은 3세는 과거의 3세를 말하는 것이냐, 현재의 3세를 말하는 것이냐, 미래의 3세를 두고 말하는 것이냐?”
“저는 또한 과거의 3세, 현재의 3세, 미래의 3세를 묻지 않고, 오늘은 다만 3세의 모든 부처님만 물었나이다.
어떻게 미래에 부처님을 설하시나이까?”
[미래의 부처님의 두 가지 인연]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의 부처님에게는 두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혹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큰 자비를 행하고 온갖 상(相)을 갖추어서 훌륭한 권도의 방편을 행하여 5도(道) 속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는데,
법계를 헐지 않은 채 다시 속세에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범천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석의 몸[釋身]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부처의 형상을 감추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미래에 성불한다고 이르느니라.
혹은 어떤 보살은 여래의 지혜를 받아 불사[佛事]를 베풀어 행하고,
삼천대천의 부처님 나라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이미 성불은 못해서 온갖 상(相)은 갖추지 못하였어도 혹은 하늘의 몸을 짓기도 하고 혹은 귀신이 되기도 하면서 법계를 헐지 않나니,
이것을 천자가 미래에 성불한다고 이르니,
이런 두 가지 인연이 있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여, 과거 모든 부처님 세존께 다시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이 되는가?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를 얻어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에 집착한 바가 없으며,
[다함이 없는 행]
속으로는 스스로 열 가지 법의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가 되는가?
이 보살이 여러 부처님 세존의 생각하는 법을 생각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고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일체 모든 법을 분별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나아가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분별하여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하고 중생을 교화해서 지혜를 헐지 않고 염(念)하는 법대로 성취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부처님 세존이 행하신 바처럼 금계(禁戒)로 해탈의 법을 닦고,
이 금계로 인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하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출요(出要)를 관하고,
보리수[樹王] 아래에 있으면서 뭇 마군을 항복시키고,
마음을 대지처럼 잡아서 기울거나 동요함이 없게 한다.
이때에 마군 파순(波旬)은 약간의 변화를 부려 찾아와서 부처를 무섭게 하니,
혹 사람 머리에 짐승 몸을 하기도 하고,
혹 짐승 머리에 사람 몸을 하기도 하고,
혹은 네 눈깔 내지 여덟 눈깔로 백천의 눈깔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원숭이나 호랑이 혹은 표범으로 변하여 와서 부처를 무섭게 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대지처럼 잡아서 기울거나 동요하지 아니하니,
이것을 일러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억백천 겁에 이르도록 총지를 강력히 기억하여 앞에 나타나 있게 하나니,
혹은 일생에서 백천 생에 이르기까지, 혹은 한 겁을 생각하여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행한 선이나 악을 낱낱이 분별하여 모조리 잊지 않음이니,
이것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이 능히 3세의 모든 행을 분별해서 온갖 착한 공덕이 모두 나타나 앞에 있고,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능히 삼천대천세계의 날아다니고 기어 다니는[蜎飛蠕動] 부류로 하여금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하거나 나한이나 연각이나 벽지불의 도를 이루게 하니,
이것을 일러 다함없는 행이라 한다.
다시 다음에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과거의 수없는 여러 부처님께서 제도한 중생의 몸ㆍ입ㆍ뜻의 행을 기억하여 온갖 법을 헐지 않고 지혜를 펼쳐서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면,
이것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한다.
이와 같이 천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사자분신정의 뜻을 얻으면 능히 3세의 모든 법을 갖추느니라.
[열 가지 무상법(無相法)]
다시 다음에 천자야, 혹 어떤 때에 보살은 열 가지 무상법(無相法)을 분별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열 가지 무상법을 분별하는 것인가?
여기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안으로 스스로 몸을 관하고 여러 가지 행을 분별하여 온갖 근이 순숙(純熟)하면,
혹은 선한 행[善行]이 있기도 하고 혹은 선하지 않은 행이 있기도 하며,
때로는 청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청정하지 못하기도 하다.
또다시 천자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밖으로 남의 몸을 관해서 온갖 근(根)의 순숙함과 온갖 근의 순숙하지 못함을 하나하나 분별한다면,
때로는 청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청정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것을 천자의 첫째 무상행(無相行)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저 수행하는 사람이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여 뜻을 어지럽지 않게 거두고는
‘나의 행하는 바는 성현의 경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출입하고 경행(經行)하는 것이 몸ㆍ입ㆍ뜻과 상응하여 법보(法寶)를 품고 와 큰 법륜을 굴리면서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3세에 제도하지 못한 중생을 교화한다.
그 가운데서 문득 스스로 그러한[自然] 법륜을 얻어서 한정 없고 한량없이 모조리 법률에 들어가니,
이것을 둘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가득 채우고,
지혜와 사유가 또한 다함이 없고,
음향이 흘러나와 걸리는 바 없이 온갖 중생의 소리를 분별하고,
혹은 한 음성으로 백천만의 음성에 답하여 모두 도의 가르침을 연설해서 온갖 중생의 무리를 윤택하게 한다면,
이것을 셋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위없는 법륜을 굴려서 널리 중생을 교화해서 모두 멸도를 취하여 3세에 물들지 않고,
모든 하늘과 인간 백성이나 야마천[若魔] 혹은 타화자재천[魔天]이 일찍이 굴리지 못한 바로서 부처님만이 홀로 굴리셨다면,
이것을 넷째의 무상법이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생 가운데 출가(出家)하여 도를 배우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몸이 이미 청정하여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즐기는 바를 즐기게 한다면,
이것을 다섯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성품의 행(行)이 공(空)에 합하여 공으로부터 오고 감이 한량없고 한정 없어서 끝내 스스로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공을 초월해 지나서 걸리는 바 없다면,
이것을 여섯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중생 속에서 홀로 걸으면서도 걸림 없고,
온갖 법의 지혜에서 통혜의 뜻[通慧義]을 널리 펴고,
앉아서 광명을 놓아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이르고,
혹은 멸도를 취하여 무상(無常)의 뜻을 나타내고,
혹은 존재하기도 하고 혹은 없어지기도 하며,
혹은 상호(相好)를 보이고 혹은 상호를 숨기며,
그 가운데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한다면,
이것을 일곱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가령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시 항마(降魔)라는 이름의 통혜(通慧)가 있어,
이 정의(定意)를 얻은 이는 네 가지 마(魔)인 애착[愛], 욕심[欲], 죽음[死], 하늘[天]의 마군을 항복시켜서 보살로 하여금 이 법에 의지하여 성취하게 하는데,
법왕이 되어 가장 앞에 있고자 하는 이는 먼저 이 마군을 항복받는 정의(定意)를 반드시 익혀야 하나니,
이것을 여덟째의 무상의 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두루 온갖 법을 배워서 지극한 요체에 깊이 들어가 선의 근본[善本]을 갖추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 요체에 들어감을 얻게 하고,
보살의 힘을 보아서 지관(止觀)을 더 자라게 하고,
나고 멸함이 없는 법의 다함과 다함없음을 이미 마쳤고,
비록 모습을 보더라도 본래 모습 모양이 없고,
앉으나 누우나 보살의 온갖 행을 사유한다면,
이것을 아홉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라면 열 가지 선의 근본[十善本]을 갖추어야 하니,
어떤 것이 열이 되는가?
몸에 셋, 입에 넷, 뜻에 셋이니,
온갖 법에 자재하여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한량없는 무위(無爲)를 즐겨하고, 다시 능히 한량없는 백천의 정의(定意)를 즐겨하여서 낱낱의 정의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니,
이것을 열째의 무상법이라 이르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야, 대저 법을 익히는 이는 마땅히 법이 없음[無法]을 익혀야 하고, 행 없음으로 행을 삼고 관(觀) 없음으로 관을 삼으니, 이것을 왕(王)이라 한다.
온갖 행 속의 묘함이요, 모든 부처님의 찬탄하는 바이며, 불사(佛事)를 행한다고 하고, 동등한 짝이 없다고 하느니라. ”
[부처님의 3세의 문제]
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3세의 모든 부처님에게는 즉 3세가 없나니,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과거의 여러 부처님은 현재에 이르렀고, 현재의 여러 부처님은 다시 미래에 이른다고 하면,
법계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세존께서는 3세가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이 뜻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멸했지만 권도로 현재에 돌아왔고, 현재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시 미래를 말하니 온갖 법과 서로 어긋나나이다.
어찌하여 과거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 모래와 같고, 미래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의 모래와 같고, 현재의 여러 부처님 수효가 항하의 모래와 같다고 말씀하시나이까?”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너의 지금 질문은 모두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너로 하여금 이 뜻을 묻게 함이니,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나는 마땅히 너에게 낱낱이 분별하겠노라.”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과거는 어째서 과거가 되느냐?”
“점점 생겨났다 멸하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색이 지금의 색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몸이 지금의 몸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고, 어제의 힘이 지금의 힘이 아니므로 과거라 하나이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신상(身想)과 지(知)가 다르냐?”
“다르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명색(名色)과 갱락(更樂)이 다르냐?”
“다르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출요(出要)와 지도(至道)가 다름이 있느냐?”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부처님의 곳간[佛藏]은 광대해서 너의 경계가 아니니라. 과거의 지혜도 한도가 있고, 현재의 지혜도 한도가 있고, 미래의 지혜도 한도가 있으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법과 법이 서로 나고 법과 법이 서로 멸하여 본래 법이란 것이 없고,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며,
또한 금세ㆍ후세(今歲後歲)와 선행ㆍ악행도 없으며,
또한 성현의 과증(果證)이란 것도 본래 없느니라.
이것을 일러서 족성자여, 어떻게 3세의 법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3세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을 말미암아 멸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생겨나도 본래 생겨남이 없고 멸해도 본래 멸함이 없다.
일체 모든 법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생겨나도 본래 생겨남이 없고 멸해도 본래 멸함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은 자연히 공하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부처님께서는 나셔서 계시옵나이까, 나지 않으시고 계시옵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몸이란 과거ㆍ미래와 지금 현재에도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생겨남이 없으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는 것이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만 여래ㆍ지진ㆍ등정각만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서 생겨남이 없나이까?
일체 모든 법도 생겨남이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다 생겨남이 없으니,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고 생겨남 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我], 사람[人], 목숨[壽命], 중생(衆生)의 근본에서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도 일어남을 보지 않고 또한 일어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온갖 법은 얻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지니, 이 까닭에 생겨남이 없다[無生]고 한다.
3세의 모든 부처님은 욕심도 없고 더러움도 없어서 생겨남이 있지도 않고 생겨남이 없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일어나는 바가 없다.
삼매의 정수(正受)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설해도 설한 바가 없으니, 이 때문에 언교(言敎)가 없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네 가지 의지[四依]와 네 가지 도[四道]는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의지와 네 가지 도는 본래 생겨난 바 없거늘 하물며 이제 생겨남이 있으랴?
미래에도 또한 생겨나지 않으리라.”
그때에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정지(淨地)ㆍ성지(性地)ㆍ박지(薄地)ㆍ본래 없음의 경지[本無地]와 음행ㆍ분노ㆍ어리석음이 없는 경지[無婬怒癡地]는 생겨남이 있나이까, 생겨남이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받음[受] 있고 취함[取] 있음에서 나아가 온갖 여러 법에 이르기까지,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ㆍ어리석음[癡]ㆍ애착[愛]ㆍ갱락(更樂)에서 나아가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에 이르기까지,
수다원으로부터 위없는 도에 이르기까지 또한 생겨남이 있지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지 않느니라.”
그때에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생겨남이 있음이고 어떤 것이 생겨남이 없음이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의(如意)의 바라밀을 얻은 자는 이 때문에 생겨남 있음을 보지 않고, 생겨남 없음도 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여의의 바라밀로서 또한 생겨남이 있지도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지도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차안(此岸)으로부터 피안(彼岸)에 이르기까지에 중생으로서 생겨남이 있는 자와 멸함이 있는 자를 보지 않으며, 또한 소굴(巢窟)과 처소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또한 생겨남을 보지도 않고 또한 생겨남이 없음을 보지 않느니라.”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일체 모든 법과 여래의 몸은 생겨남이 있음에 존재하나이까, 생겨남이 없음에 존재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생겨남 있음에 존재하기도 하며, 또한 생겨남 없음에 존재하기도 하며, 생겨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생겨남 없음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삼야삼불(三耶三佛)도 또한 생겨남 있음에 존재하지 않고 또한 생겨남 없음에 존재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통혜의 정의[通慧定意]를 얻어서 온갖 법을 관하여 요달하면, 생겨남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고 생겨남 없음에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여래의 경법(經法)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생겨남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고 생겨남 없음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온갖 법에 집착이 없고 얽맴이 없고 또한 해탈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네 가지 마군을 항복시키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