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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3권
22. 수보부(受報部)
[여기에는 아홉 가지 연(緣)이 있음]
22.1. 술의연(述意緣)
대개 선업과 악업의 작용은 진실로 세 가지 과보의 좋은 정조이니, 마치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유하면 여섯 갈래 세계의 명백한 정험과 같다.
그 세 가지 과보란 천후(天后)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홉 가지 색(色)의 깊은 은혜를 뒤집고 금왕(禽王)의 온전한 목숨을 외로이 던져 오올(五兀)의 절박하고 가혹함을 번갈아 받았으니, 이것은 곧 현보(現報)가 된다.
중생의 무리가 깊은 골짜기에 잠기고 빠져 그 정신을 윤표(輪飄)에 올렸으나 고치지 못했고, 몸은 역대의 재앙으로 고달폈으나 왕자(王子)가 눈 잃음을 깨닫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생보(生報)이다.
외도(外道)들은 재앙을 비상(非想)에 풀어놓아 법을 잃어 처음과 끝에 대하여 영원히 미혹되어 사나운 이리에게 날개를 붙여 날고 잠기며 곤혹스러움을 느낀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으니, 이것이 후보(後報)가 된다.
삼대(三代) 익상(溺喪)의 흐름이 현묘한 거울로 삼고 내변(來變)하는 배형(坏形)의 누(累)를 깊이 기억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사제(四諦)와 삼명(三明)의 방에서 깨어나게 하고 세 가지 과보와 다섯 가지 괴로움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22.2. 보류연(報類緣)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善男子)야, 중생들이 짓는 업(業)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보(現報)요[현재의 몸으로 지극히 선하고 악한 업을 짓고, 곧 그 몸이 받는 것을 바로 현보라고 말한다],
둘째는 생보(生報)며[현재의 몸이 업을 지어 다음 생의 몸이 받는 것을 바로 생보라고 말한다],
셋째는 후보(後報)요[현재의 몸이 업을 짓고 또 다음 생에서는 받지 않고 제이ㆍ제삼의 생이 이미 지난 뒤에 받는 것을 바로 후보라고 말한다],
넷째는 과보가 없는 것이다. [무타등업(無他等業)이 바로 이것 이다.]
이 과보가 없는 업에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기는 결정되었으나 과보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요
[이것은 삼시(三時)는 결정되어 변하지 않지만 업은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보가 결정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이며
[업의 힘은 결정되었기 때문에 과보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시기는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정되지 않은 것이라 한다],
셋째는 시기와 과보가 다 결정된 것이요
[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감지하는 때도 또한 결정된다],
넷째는 시기와 과보가 다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업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와 과보도 또한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중생들이 짓는 업에 구족(具足)과 불구족(不具足)이 있다.
만약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지으면 이것을 짓고 나서 구족하였다고 말하고,
만약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곧 바로 지으면 짓고 나서도 구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 지은 것이 있으나 구족하지 못했다고 한 것은 지은 업은 이미 결정되었으나 과보는 결정되지 않은 것을 말하고,
또 짓고 나면 또한 구족한다고 한 것은 지은 업이 이미 결정되었으면 마땅히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며,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과보는 비록 결정되었으나 시절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요,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한다고 한 것은 시기와 과보가 다 함께 결정되었다는 것이며,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계율을 지키고 견해가 올바르다는 것이다.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한다고 하는 것은 계율을 훼손하고 견해가 삿 된 것이요,
또 짓고 난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삼시(三時)로 참회 하는 것이며,
또 짓고 나면 또한 구족한다고 하는 것은 삼시로 참회하지 않는 것이다.
악(惡)이 이미 이러한 것처럼 선(善)도 또한 이와 같다.”
22.3. 현보연(現報緣)
『불설행칠행현보경(佛說行七行現報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한 것으로서 이것은 세간에서 더할나위없는 복밭[福田]이니라.
어떤 것이 그 일곱 종류의 사람인가?
첫째는 사랑[慈]을 실천하는 것이요,
둘째는 불쌍히 여김[悲]을 실천하는 것이며,
셋째는 기쁨[喜]을 실천하는 것이요,
넷째는 버림[捨]을 실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공(空)을 실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무상(無相)을 실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무원(無願)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어떤 중생이든지 이 일곱 가지 법을 실천하면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그 과보를 획득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 때문에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洹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은 말씀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이 일곱 가지 일만을 말씀 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랑[慈] 등의 이 일곱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은 그 행(行)이 수다원에서부터 나아가 부처님의 자리까지 수행하는 것과는 그 일이 같지 않다.
비록 수다원 등을 공양하더라도 현재 세상에선 그 과보를 얻지 못하지만, 그러나 이 사람을 공양하는 사람은 현재 세상에서 그 과보를 얻는다.
그러므로 아난아, 부디 열심히 용맹정진하여 저 일곱 가지 법을 힘써 이룩해 야 하느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건타위국(乾陀衞國)에 어떤 한 백정[屠兒]이 있었는데, 그는 오백 마리의 작은 소를 끌어와서 그 소를 다 형건(形犍 : 去勢)하려고 하였다.
그 때 어떤 내관(內官)이 돈을 주고 그 소를 사서 모두 놓아주었다. 그는 이 인연으로 현재의 몸에 곧 남자의 과보를 원만하게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왕가(王家)로 돌아가 사람을 보내 ‘아무개[某甲]가 밖에 있다’고 통보하여 아뢰게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그는 바로 우리 왕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제 마음대로 쏘다니고 있다.
전에는 일찍이 알려온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그렇게 알려왔는가?’
그 때 왕이 곧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조금 전에 어떤 백정이 송아지 오백 마리를 끌고 와서 형(刑)으로 다스리려고 하기에 신이 곧 돈을 주고 사서 놓아주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신체를 원만하게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감히 바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놀라워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다.
대개 화보(華報)로 감득(感得)하는 것도 이와 같거늘 더구나 그 과보야 어찌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소를 잡아 파는 사람이 소를 몰고 길을 가다가 사람은 많은데 양식이 떨어져서 굶주림과 갈증이 너무도 심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쉬면서 의논하였다.
‘이 소들은 끝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저 소들의 혀를 끊어 굶주림과 목마름을 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는 즉시 소금을 모든 소들의 입 안에 발랐다. 소가 소금의 맛을 탐내어 혀를 내밀어 소금을 핥을 적에 이들은 예리한 칼로 일시에 그 혀를 다 잘라 불에 구워 함께 먹었다. 그것을 다 먹고 나서 모두들 물가에 나아가 양치질하고는 다 양지(楊技)를 씹어 이를 닦은 뒤에 엄지 손가락으로 혀를 닦았다.
그 때 그 악업(惡業)의 힘 때문에 그들의 혀는 썩은 과일과 같아져서 한꺼번에 다 떨어져 나갔다.”
[이상은 다 현보(現報)이니, 그 업이 중하기 때문이다.]
22.4. 생보연(生報緣)
『열반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목숨을 버리고 큰 고통을 받을 때에 종친(宗親)들이 둘러싸고 슬프게 울면서 오뇌(懊惱)하면, 그 사람은 두렵고 무서워 의지하여 구제받을 바를 알지 못한다.
비록 다섯 가지 감정은 있지만 깨달아 아는 것이 없으며, 사지는 벌벌 떨려 스스로 가누지 못한다.
신체는 허해지고 차가워져서 따뜻한 기운이 곧 끊어지려고 할 때에는 앞서 닦은 착하거나 악한 과보의 현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해가 넘어가려 할 때에 산 언덕의 그림자가 나타나 자꾸 동쪽으로 옮겨 가고 서쪽으로 갈 이치가 없는 것처럼
중생들의 업과(業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중음이 멸하려 할 때엔 저 중음이 이어 생긴다.
이것은 또 비유하자면 마치 등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고 어둠이 사라지면 등불이 생기는 것과 같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밀랍으로 만든 도장[蠟印]을 진흙 위에 찍을 때 도장이 진흙과 합해지면 도장은 소멸되고 글자는 이루어지지만, 그 밀랍 도장은 변하지 않고 진흙 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글자가 진흙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다른 곳에서 온 것도 아니다. 그것을 찍은 인연 때문에 이 글자가 생긴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현재에 음(陰)이 사라지면 중음(中陰)의 음이 생겨나지만, 이 현재의 음이 끝내 변하여 중음의 오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중음의 오음도 또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요 다른 데서 온 것도 아니며, 현재의 음을 인(因)하여 중음의 음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납인(蠟印)을 진흙에 찍으면 도장은 부서지고 글자만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름에는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은 각각 다르니,
그런 까닭에 나는 말하기를
‘중음의 오음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요 천안(天眼)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 중음 가운데에는 세 가지 식(食)이 있다.
첫째는 사식(思食)이요, 둘째는 촉식(觸食)이며, 셋째는 의식(意食)이다.
중음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니는 선업의 과보요, 다른 하나는 악업의 과보이다.
선업으로 인하여 착한 각관(覺觀)을 얻고 악업으로 인하여 악한 각관을 얻는다.
부모가 서로 화합하여 교회(交會)할 때에는 그 업의 인연을 따라 생(生)을 받을 곳으로 향하므로 어머니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성을 낸다.
아버지가 정액을 낼 때에는 그것을 제 소유라고 말하고, 그것을 보고 난 뒤엔 마음으로 기뻐하며 환희심을 낸다.
이러한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의 오음은 도장을 진흙에 찍으면 도장은 부서지고 글자만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모든 감각기관이 갖추어진 이도 있고 갖추어지지 않은 이도 있다.
원만히 갖추어진 이는 색(色)을 보면 탐심(貪心)을 내나니, 탐심을 내기 때문에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치기 때문에 탐욕을 내니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말한다.
탐애(貪愛)와 무명, 이 두 가지 인연 때문에 보여지는 경계에 대하여 다 착각하는 것이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행은 순수하지 못하여 혹은 착하기도 하고 더러는 악하기도 하다.
마땅히 사람의 세계에 이르러 부모가 화합하여 그 정액을 잃지 않을 때에는 자식이 와서 마땅히 태어나는 것이다.
그 때 그 어머니의 태는 사방으로 통하여 구애됨이 없고 마음 속에 기쁨을 품고 삿된 생각이 없으면 곧 유연(柔軟)하게 되어 아이 배는 것을 감내하여 담당할 수 있다.
그 정액은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으며 꼭 알맞아서 그리 억세지도 않고 또한 부패(腐敗)하는 일도 없으며, 또 검지도 않고 붉지도 않으며, 바람과 추위나 온갖 독(毒)이 뒤섞이지도 않고 또 소변과도 다르다.
마땅히 와서 아이로 태어나게 되면 그 정신이 문득 일어나는데, 가령 이 남자가 여자와 함께 교합하지 않고 오욕으로 더불어 통과하려고 할 때 남자는 공경하는 생각으로 여인을 향하다가 아버지가 정액을 쏟으면 그 정신은 기뻐하며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말한다.
그 때에는 곧 중음을 잃어버리고 오음에 머물러서 곧 태에 들어가 안착한다.
부모의 정액이 합하여 이미 포태(胞胎)에 있게 되면 배나 더 기뻐서 날뛰는데 이것을 색음(色陰)이라고 한다.
환희(歡喜)할 때를 통락음(痛樂陰 : 受陰)이라 하고, 정액을 생각할 때를 상음(想陰)이라고 하며,
본래의 죄와 복으로 인하여 연(緣)을 얻어 태에 들어가는 것을 행음(行陰)이라 하고,
정신이 태 안에 있는 것을 곧 식음(識陰)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화합하는 것을 오음(五陰)이라고 한다.
만약 아이가 태 안에 있을 때 곧 두 감각기관을 갖추는데, 그것은 의근(意根)과 신근(身根)이다.
7일 동안은 그 가운데 머물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고
이칠일(二七日 : 14일)이 되면 그 태가 점점 변하여 비유하면 엷은 낙(酪)과 같이 되며,
삼칠일(三七日 : 21일)이 되면 흡사 생락(生酪)과 같이 되고,
사칠일(四七日 : 28일)이 되면 정액이 응결되어 익은 낙과 같이 되며,
오칠일(五七日 : 35일)이 되면 태 안의 정액이 마침내 변하여 마치 생소(生酥)와 같이 되고,
육칠일(六七日 : 42일)이 되면 변하여 군살처럼 되며,
칠칠일(七七日 : 49일)이 되면 다시 변하여 저민 살과 같이 되고,
팔칠일(八七日 : 56일)이 되면 그것이 단단해져서 술잔처럼 되며,
구철일(九七日 : 63일)이 되면 변하여 오포(五胞)가 되어 두 팔과 두 넓적다리와 머리ㆍ목이 그 가운데로부터 나온다.
십칠일(十七日 : 70일)이 되면 다시 오포가 생기는데, 그것은 두 손목과 두 발목 그리고 그 머리가 생겨나고,
십일칠일(十一七日 : 77일)이 되면 계속해서 열네 개의 포가 생기는데 다섯 개의 손가락ㆍ다섯 개의 발가락과 눈ㆍ귀ㆍ코ㆍ입이 이 가운데로 부터 나오며,
십이칠일(十二七日 : 84일)이 되면 이 모든 포의 모습이 변하여 점점 성취된다.
십삼칠일(十三七日 : 91일)이 되면 곧 배[腹] 형태가 나타나고,
십사칠일(十四七日 : 98일)이 되면 간(肝)ㆍ폐(肺)ㆍ심장[心]과 비장[脾]ㆍ신장[腎] 등이 생기며,
십오칠일(十五七日 : 105일)이 되면 대장(大腸)이 생기고,
십육칠일(十六七日 : 112일)이 되면 소장(小腸)이 생겨나며,
십칠칠일(十七七日 : 119일)이 되면 곧 위장이 생기고,
십팔칠일(十八七日 : 126일)이 되면 생장(生藏)과 숙장(熟藏) 이 두 곳에 일어나며,
십구칠일(十九七日 : 133일)이 되면 곧 넓적다리와 전장(躔腸)ㆍ뼈ㆍ손가락ㆍ발바닥ㆍ팔ㆍ힘줄 등이 생겨 연결되고,
이십칠일(二十七日 : 140일)이 되면 배꼽ㆍ젖ㆍ턱ㆍ목 등의 형상이 생긴다.
이십일칠일(二十一七日 : 147일)이 되면 붐 뼈의 각 부분이 그 적당한 곳에 붙는데, 두 뼈가 머리에 있으며 서른두 개의 뼈가 입에 붙고 일곱 개의 뼈는 목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넓적다리에 붙고 두 개의 뼈는 팔꿈치에 붙으며, 네 개의 뼈는 팔에 붙고 열두 개의 뼈는 가슴에 붙고 열여덟 개의 뼈는 등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허리에 붙고 네 개의 뼈는 무릎에 붙으며, 마흔 개의 뼈는 발에 붙는다.
또 일백여덟 개의 작은 뼈가 있어 몸의 살과 합쳐지나니, 열여덟 개의 뼈를 갖추어져 양쪽 갈비에 붙고 두 개의 뼈는 어깨에 붙는다. 이와 같이 몸의 뼈가 무릇 삼백 개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뼈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갖달린 박과 같다.
이십이칠일(二十二七日 : 154일)이 되면 그 뼈가 차츰 단단해져서 아직 익지 않은 박과 같고,
이십삼칠일(二十三七日 : 161일)이 되면 그 뼈가 점점 단단해져서 비유하면 마치 호도(胡桃)와 같아진다. 이 삼백 개의 뼈는 각각 서로 연결되어 발뼈는 발에 붙고 무릎뼈는 무릎에 붙는 등 이와 같이 어깨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등뼈ㆍ가슴뼈ㆍ옆구리뼈ㆍ어깨뼈ㆍ목뼈ㆍ턱뼈ㆍ팔뼈ㆍ손과 발의 모든 뼈 등은 다 각각 저절로 변하여 서로 연결되어 붙어 있다. 이와 같은 뼈 무더기는 마치 환화(幻化)와 같아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십사칠일(二十四七日 : 168일)이 되면 일백 개의 힘줄이 그 몸에 연결되어 붙고,
이십오칠일(二十五七日 : 175일)이 되면 칠천 개의 맥(脈)이 생기지만 아직 완전하게 갖추어지지는 못하였으며,
이십육칠일(二十六七日 : 182일)이 되면 모든 맥이 다 통하여 원만하게 갖추어 성취되어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고,
이십칠칠일(二十七七日 : 189일)이 되면 삼백육십세 개의 힘줄이 다 성취되며,
이십팔칠일(二十八七日 : 196일)이 되면 그 피부가 비로소 생긴다.
이십구칠일(二十九七日 : 203일)이 되면 피부와 살이 차츰 두터워지고,
삼십 칠일(三十七日 : 210일)이 되면 겨우 피부의 형상이 있게 되며,
삼십일칠일(三 十一七日 : 217일)이 되면 가죽이 더욱더 두텁고 단단해지고, 삼십이칠일(三十二七日 : 224일)이 되면 가죽[皮]이 바뀌어 겉껍질[革]을 이룬다.
삼십삼칠일(三十三七 : 231일)이 되면 귀ㆍ코ㆍ입술ㆍ손가락과 무릎 마디가 이루어지고,
삼십사칠일(三十四七日 : 238일)이 되면 구십구만 개의 털구멍이 생기기는 하나 아직 완성되지는 못하며,
삼십오칠일(三十五七日 : 245일)이 되면 털구멍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삼십육칠일(三十六七日 : 252일)이 되면 손톱 이 처음으로 이루어지며,
삼십철칠일(三十七七日 : 259일)이 되면 그 어머니의 배 속에서 약간의 바람이 일어나 아이의 눈ㆍ귀ㆍ코ㆍ입을 열게 하고 혹 어떤 바람은 일어나서 아이의 털을 물들이기도 하는데, 혹은 단정하기도 하고 혹은 추하기도 하다.
또 어떤 바람은 일어나서 몸과 얼굴의 빛을 이룩하는데 혹은 희기도 하고 붉기도 하며 검기도 하다. 그 좋고 추한 것은 다 전생의 행업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레 동안 있으면서 바람과 차고 더운 기운을 내고 대ㆍ소변이 통한다.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59일)이 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 본래의 행을 따라 저절로 바람이 일어난다.
전생의 행업이 착한 사람은 향기로운 바람이 있어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결함이 없게 하고 그 뼈마디를 바로잡아 그로 하여금 단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한다.
전생의 행업이 악한 사람은 곧 냄새나는 바람이 일어나서 그 몸을 편안하지 않게 하고 마음과 뜻대로 할 수 없으며 그 뼈마디에 불어닥쳐 뼈를 구부려뜨려 그로 하여금 단정하지 못하게 하고 또 남자 구실도 못하게 하며 사람들마다 기뻐하지 못하게 한다.
이상은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일)로서 아홉 달에 나흘이 모자라는데, 이 때 그 아이의 신체와 골절은 완전하게 이루어져 완벽한 사람이 된다.
그 어린 아이의 몸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일분(一分)은 아버지에게서 받았고 일분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몸의 모발(毛髮)과 뺨ㆍ눈ㆍ혀ㆍ목구멍ㆍ심장ㆍ간장ㆍ비장ㆍ신장ㆍ창자ㆍ피 등 연한 것은 어머니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그 밖에 손톱ㆍ발톱ㆍ이ㆍ뼈ㆍ골절ㆍ골수ㆍ뇌ㆍ힘줄ㆍ맥박 퉁 단단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는 생장(生藏)의 아래와 숙장(熟藏)의 위에 있다.
만약 그것이 사내 아이일 경우 바깥을 등지고 안을 향해 그 왼쪽 옆구리에 있고,
만약 그것이 여자일 경우는 어머니를 등지고 바깥을 향해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냄새나는 오로(汚露)의 깨끗하지 못한 곳에 있으면서 모든 뼈마디가 움츠러들어 펼 수 없으며, 가죽주머니인 배 안의 그물에 쌓여 장혈(藏血)이 묻어 더럽고 있는 곳도 비좁은데, 그것은 대ㆍ소변의 더러운 곳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아홉 달째가 되어 그 남은 나흘 동안 그 아이의 전생에 선한 행이 있으면,
첫날과 뒷날에 마음을 내서 생각하기를
‘나는 공원에 있으며 나는 또한 천상에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행이 악한 사람은 말하기를
‘지옥[泥犁] 또는 세간의 감옥에 있다’고 하면서 사흘째가 되면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다.
나흘째가 되었을 때 어 머니의 배에서 바람이 일어나 혹은 올라가게도 하고 혹은 내려오게도 하여 그 아이의 몸을 굴려서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가 산문(產)을 향하게 한다.
복이 있는 사람은 그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하여 말한다.
‘나는 욕지(浴池)에 몸을 던져 물 속에서 유희(遊戱)하나니,
이것은 마치 높은 평상에서 꽃향기 나는 곳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그 복이 없는 이는 스스로 생각을 내어 말한다.
‘나는 산으로부터 몸을 던져 나무가 있는 언덕 더러운 구덩이에 떨어지나니,
혹 이것은 마치 지옥의 그물이 쳐진 가시 위나 넓은 벌판 돌 사이의 칼과 창 속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시름하고 근심하며 즐거워하지 않나니, 그 선악의 과보는 이와 같이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작은 아이가 태어나 이미 땅에 떨어지면 바깥 바람에 불리우게 된다.
사람 이 손을 대어 따뜻한 물로 씻어내면 심한 고통에 핍박받는 것이 마치 창병(倉病)을 앓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아이는 죽을까 두려워서 곧 어리석은 미혹이 생기게 되고 그런 까닭에 정신을 잃고 헷갈려서 오고 가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피묻은 땅 오로(惡露)의 냄새나는 곳에 태어나 있게 되면 귀신과 도깨비[鬼魅]가 와서 희롱하고 간질[癇] 같은 삿된 질병에 걸리며, 죽은 송장이 몸에 와 닿고 고도(蠱道)와 전귀(顚鬼)가 각각 틈을 엿보아 침범한다.
또 네 거리 길에 고기 덩어리를 떨구어 땅에서 조각이 생길라치면 까마귀ㆍ솔개ㆍ독수리ㆍ이리 따위가 각각 다가와서 그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처럼,
온갖 삿된 요귀(妖鬼)들이 그 아이를 침범할 틈을 엿보려고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나 만약 전생에 착한 덕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삿된 것들이 그 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가 이미 장대(長大)해지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 몸을 자라게 하며 곡식 기운을 적절하게 얻으면, 그 몸에는 곧 여든 가지 벌레가 생겨나게 된다.
두 가지는 털 밑에 있나니, 하나는 설시(舌蝭)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중시(重蝭)라고 이름한다.
세 가지는 머리에 있으니, 견고(堅固)ㆍ상손(傷損)ㆍ훼해(毁害)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뇌(腦)에 있으며,
두 가지는 뇌의 표면에 있으니, 첫 번째 뇌에 있는 것은 철주(▼(虫+喆)蛛)라 이름하고 두 번째는 모요(秏擾)라 이름하며, 세 번째는 궤란(慣亂)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이마[額]에 있으니, 하나는 갑하(甲下)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휴부(杤腐)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눈에 있으니 하나는 설시(舌蝭)라고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중시(重蝭)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귀[耳]에 있으니, 하나는 식미(識味)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미막(味莫)이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귀뿌리에 있으니, 하나는 적(亦)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적(復亦)이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코[鼻]에 있으니, 하나는 비(肥)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비(復肥)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입[口]에 있으니, 하나는 요(搖)라고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동요(動搖)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이[齒] 사이에 있으니, 하나는 악폐(惡弊)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흉포(凶暴)라고 이름한다.
세 가지는 이뿌리[齒根]에 있으니, 천식(喘息)ㆍ휴지(休止)ㆍ졸멸(捽滅)이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혀[舌]에 있으니 그 이름은 감미(甘美)요,
한 가지는 혀뿌리[舌根]에 있으니 그 이름이 유연(柔軟)이다.
한 가지는 상단(上斷)에 있나니 그 이름은 왕래(往來)이고,
한 종류는 목구멍에 있으니 그 이름이 삭후(嗽喉)이다.
두 가지는 눈동자에 있으니, 하나는 생(生)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불숙(不熟)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어깨[肩]에 있으니, 하나는 수(垂)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수(復垂)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팔[臂]에 있으니 주립(住立)이라 이름하고,
한 가지는 손[手]에 있으니 주선(周旋)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 는 가슴[胸]에 있으니, 하나는 액갱(額坑)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광보(廣普)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섬장[心]에 있으니 반박(班駁)이라 이름하고, 한 가지는 젖[乳]에 있으니 중현(▼(豸+重)現)이라 이름한다.
한 가지는 배꼽[臍]에 있으니 그 이름은 위요(圍繞)이고 두 가지는 옆구리[脇]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월(月)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월면(月面)이다.
두 가지는 척추[脊]에 있으니, 하나는 월행(月行)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윌모(月貌)라 이름한다.
한 가지는 등골[背骨] 사이에 있으니 그 이름은 안풍(安豐)이고,
한 가지는 살갗 속에 있으니 그 이름이 호조(虎爪)이다.
두 가지는 살[肉]에 있으니, 하나는 소부(消膚)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은 소수(燒樹)이다.
네 가지는 뼈[骨]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심독(甚毒)이요, 둘째의 이름은 습독(習毒)이며, 셋째의 이름은 세골(細骨)이고, 넷째의 이름은 잡독(雜毒)이다.
다섯 가지는 골수[髓]에 있으니 , 첫째의 이름은 살해(殺害)요, 둘째의 이름은 무살(無殺)이며, 셋째의 이름은 파괴(破壞)요, 넷째의 이름은 잡해(雜骸)이며, 다섯째의 이름은 백골(白骨)이다.
두 종류는 창자[腸]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당랑(螳蜋)이요 다른 하나는 당랑주(螳蜋▼(口+雋))이다.
두 가지는 작은 창자[細腸]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아자(兒子)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장자(腸子)이다.
한 가지는 간(肝)에 있으니 그 이름이 은시(銀喍)요,
한 가지는 생장(生藏)에 있으니 그 이름이 지목(技牧)이며,
한 가지는 숙장(熟藏)에 있으니 그 이름이 태식(太息)이요,
한 가지는 곡도(穀道)에 있으니 그 이름이 중신(重身)이다.
세 가지는 똥 속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근(筋)이요 둘째의 이름은 목결(目結)이며 셋째의 이름은 목편변(目編髮)이다.
두 가지는 오줌 속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유하(流河)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중류(重流)이다.
다섯 가지는 포(胞)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육성(肉姓)이고 둘째의 이름은 악족(惡族)이 며 셋째의 이름은 와오(臥寤)요 넷째의 이름은 오(寤)이며 다섯째의 이름은 호계(護計)이다.
한 가지는 넓적다리[髀]에 있으니 그 이름은 과지(撾枝)요,
한 가지는 무릎에 있으니 그 이름이 현상(現傷)이며,
한 가지는 장딴지에 있으니 그 이름이 철주(鐵▼(口+雋))요,
한 가지는 발가락에 있으니 그 이름은 소연(燒然)이다.
한 가지는 발 바닥에 있으니 그 이름은 식피(食皮)이다.
이상의 것들이 바로 여든 가지 벌레이다. 이 벌레들은 온 몸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몸을 파먹는다.
사람의 몸은 바람으로 인하여 일백한 가지 병이 생긴다. 추위와 더위가 한 곳에 어울려서 각각 일백한 가지 병이 생기니 모두 합하면 사백네 가지 질명이 사람의 몸 속에 있는데,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불을 내어 도로 스스로를 태우는 것과 같이 병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나무가 몸이 커짐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같고
마치 몸 안의 벌레가 요동하여 불안(不安)한 것과 같다.
서른여섯 가지 물(物)을 임시로 사람이라 하고 그 거짓된 것을 덮음으로써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게 만들어서 부질없이 사랑이란 생각을 일으켜 서로 함께 친근히 하고 붙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이 비어 있는 것인 줄 알고 있는데 어찌 가까이 하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질그릇이 끝내는 깨져 버리는 것처럼,
이 몸도 거짓된 것이라서 일찍 죽는 이도 있고 오래 사는 이도 있지만
귀하건 천하건 간에 모두 혼미하여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한다.
또 비유하면 마치 큰 성의 네 문에 불이 붙어 차례로 타다가 마침내 동문(東門)에 이르러 그 문마저 다 타버려 재가 되고 마는 것처럼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또 태(胎) 안에서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 동안 지내면 이것을 태장(胎藏)이라 하는데
그 때 일체의 지분(支分 : 支節)이 모두 다 원만하게 갖추어지며,
그 이후로 다시 나흘을 지내면 비로소 태에서 나오는데 이것을 지극히 원만하다고 말한다.
혹은 태 안에서 아홉 달을 지내기도 하고 혹은 이보다 더 지내기도 하는데
만약 여덟 달만 지내면 이것은 원만하다 하고
만약 일곱 달이나 여섯 달을 지내면 원만하다고 말하지 않고 혹 결함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태를 받은 미세한 형상은
세상마다 항상 늘어나고 자라지만
덕이 엷고 복이 적은 사람은
온갖 괴로움에 핍박을 당한다.
또 『삼매경(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몸 안의 화계(火界)는 점점 늘어나고 수계(水界)는 점점 작아진다. 그런 까닭에 가라라(伽羅邏)는 조밀하지만 점점 견고해지고 마침내는 살 덩어리가 된다.
중생들은 이 박복함으로 인하여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이르는 동안 그런 고통을 받는다.”
또 『선비요경(輝秘要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몸을 셋으로 나누면 배꼽이 중원(中原)이 되고 머리는 전당(殿堂)이 되며 이마는 천문(天門)이 된다.”
또 『처태경(處胎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태를 받을 때에
처음 이레 동안은 사대(四大)가 생겨나고
이칠일(二七日 : 14일)에는 더욱더 바람이 불어 겨드랑이로 향하고 나아가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일)이 되면 그 바람을 꽃이라고 말하는데, 그 아이를 산문(產門)으로 향하게 한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바람은 물을 치고[▼(牚*支) ; : 撞也] 물은 땅을 치며 땅은 불을 친다.
강한 것은 남자가 되고 약한 것은 여자가 되며
바람과 물이 서로 부딪치면 사내아이가 되고 땅과 물이 서로 부딪치면 여자 아이가 된다.”
또 『해탈도론(解脫道論)』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몸에 있는 지계(地界)가 부서져서 티끌이 되면 그것은 한 섬 두 되가 된다.”
또 『증일경(增一經 : 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한 사람의 몸 속에 있는 뼈는 삼백스무 개나 되고 털구멍은 구만 구천 개가 있으며, 힘줄과 맥(脈)은 각각 오백 개가 있고 또 몸 속에는 여든 개의 벌레집이 있다.”
또 『오도수생경(五道受生經)』에서 말하였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 먹는 젖은 무려 일백여든 섬[斛]이나 되나니, 그것도 태 안에서 먹은 피는 제외한 것이다.
동쪽의 불우체(弗于逮) 사람들은 일천팔백 섬의 젖을 먹고 서쪽의 구야니(抱耶尼) 사람들은 일만 팔백 섬의 젖을 먹으며, 북쪽의 울단월(鬱單越) 사람들은 이레 동안에 몸을 성취하는데 태어나는 날에 일백이나 되는 길머리에 놓아두면 길 가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처음으로 손가락을 주어 빨게 한다. 그런 까닭에 젖은 먹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섬[斛]이니 말[斗]이니 하는 것은 곧 옛날의 작은 말이니, 이 말로 세 말이 지금의 한 말이다.
옛날 사람의 몸은 특별히 커서 지금의 어린아이와는 같지 않았다. 젖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괴상하게 여길까 염려하여 따로 풀이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