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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하지 투닥거리며 남편과 논쟁이 벌어졌다. 작정한 건 아니지만 뭔가 뜨겁고 매운 여름이 코앞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걸까. 뿌옇게 시야를 가린 습한 공기와 더운 태양이 성가시게 약을 올렸다. ' 왜 우리는 이렇게 안 맞는데도 맞추고 살고 있는 걸까?' 혼잣말을 하며 남편의 침묵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 산책을 나선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니 진
댓글4Jun 21. 2022무당벌레의 안부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에 무당벌레가 하나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한 주황 바탕에 희미한 반점이 탈피한 지 얼마 안 된 무당벌레 같았다. 언제부터 내 머리 위에 붙어 있었을까? 일단 밖으로 나가 놓아줘야겠다 싶었는데, 무당벌레가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베란다 텃밭상자에 놓아주었다. 진딧물을
댓글0Jun 18. 2022홀로서기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이 물음은 나를 오랫동안 침묵하게 했다. 나서지 못하고 자꾸만 숨고 싶은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면에 깊은 물처럼 닿지 않는 진실이 있을 거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되물었고 분석도 해봤다. 백과사전처럼 찾아서 배우면 될 일 같았다. 손에 닿는 대로 책을 펼쳤지만 나에게 맞는 사전은 어디에도 없
댓글2Jun 15. 2022텃밭상자 꿈이었다. 여태껏 복권을 살만한 꿈을 꾼 적 없지만 지난밤 꿈은 횡재한 듯 기분이 좋았다. 꿈은 아침이 되어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꿈속에 나는 집안 텃밭상자를 손보고 있었다. 울창하게 자란 덩굴 틈에 잘 자란 오이가 세 개나 달려있었다. 오이를 따려고 잡았는데 그만 잠에서 깼다. '어머, 설마 태몽 같은 건 아니겠지?' 채소나 과일을 따는 꿈은 보통
댓글4Jun 10. 2022글쓰기 작은 것들을 잘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관계에선 내가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별거 아닌 일에 섭섭해지기도 했다. 더 보태면 작은 것을 두고두고 잊어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날카로운 조각이 발에 찔린 듯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글을 쓸 땐 작은 기억이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모두가 글이 되지는 않는다. 망설일수록 글쓰기가 자꾸만 멀
댓글2Jun 09. 2022여름 야생화 여름이 왔다는 건 아이들의 이마가 알려준다. 촉촉해진 아이의 이마에 풀로 붙인 듯 머리카락이 딱 붙었다. 언제 여름이 왔을까. 토실한 매실이 풍기는 향내가 마트 매대에서 맡아지는 걸 보니, 봄 태양이 할 일은 이미 끝이 난 듯싶다. 산책로에서 마주친 바람은 시원한 온도가 느껴졌지만, 내리쬐는 태양에 달아오른 몸에서 나는 땀은 사라지지 않았다.
댓글2Jun 05. 2022애도 일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 주저앉았다.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고 온갖 어두운 상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짝 마른 날씨 때문인지 식물들이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물조리개에 물을 채우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울컥한 감정이 쏟아졌다. 식물에 물을 주고 나서 화분마다 하나
댓글4May 29. 2022야생화 들판 태양이 가장 뜨거운 정오에 집을 나섰다. 더 미룰 수 없는 도서관 반납일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무겁게 들고 간 책들을 도서반납함에 넣고 나니 곧바로 집으로 가기 싫어졌다. 새로운 책을 골라 가볼까 싶었지만, 가벼워진 가방에 아무것도 넣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눈부시던 태양은 오전에 내렸던 소나기가 남긴 비구름이 감춰버려 하늘이 흐릿했다. 목이
댓글0May 20. 2022오월의 장미 장미의 계절이 왔다. 동네에 장미꽃이 불을 켜듯 한꺼번에 피었다. 길가에 꽃이 많은데도 꽃바구니가 전시된 꽃집 앞을 지나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원들은 바쁜 걸음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꽃바구니마다 가격이 붙여있었다. 꽃집 앞에 만들어진 꽃바구니들을 보며 저 꽃들은 누구의 것이 될까 싶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담은 꽃을 받는 얼굴을 상상해
댓글2May 14. 2022봄망초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비비추가 뒤덮은 곳은 제비꽃이 절반은 차지했었는데, 올봄엔 아무것도 솟아나지 않았다. 찔레꽃은 향기를 풍기며 만개했는데, 봄망초들이 보이지 않았다. 기대하던 야생의 향기는 달콤함과 풀향을 뒤섞은 것이 었지만 바람에 맡아지는 건 찔레 향뿐이었다. 풀밭에 초록 야생이 만발하지만, 나는 사실 초록이 아닌 것들이 궁금했다. 풀숲을 기웃
댓글0May 09. 2022밭주인의 스타일 열어둔 베란다 창으로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느 집에서 삼겹살을 굽는지 알 수 없지만 냄새는 한참을 진동했다. 고소한 삼겹살 냄새가 풍기는데 정작 다른 것이 나를 군침 돌게 했다. 머릿속에선 지난봄 실컷 먹었던 텃밭 채소가 어른거렸다. 잘 구워진 고기를 상추와 깻잎에 포개서 한입 먹고 싶었다. 연두색 상추는 부드럽게 아삭거리고,
댓글0May 07. 2022호랑이 콩 키우기 동네 유치원 텃밭에 강낭콩을 심었나 보다. 텃밭에 키가 비슷하게 자란 콩 모종을 보니 반가웠다. 심은 날짜를 보니 한 달 전인데, 빈자리 없이 모두 싹이 잘 올라온 듯싶었다. 얼마 전에 아이와 나도 베란다 텃밭상자에 호랑 콩을 심었다. 첫째 아이손은 신기하다. 식구가 같은 씨앗을 심었는데도 싹이 트는 쪽은 늘 첫째의 것이다. 그렇다고 식물을 키
댓글0Apr 30. 2022꿀벌의 노래 몇 해 전이었다. 장미꽃이 필 무렵 유난히도 눈에 거슬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온갖 종류의 장미덩굴이 있었지만, 하얀 찔레꽃에만 벌들이 많이 모였다. 꽃을 보는 사람들 틈에 수상한 손이 보였다. 그들은 벌들이 꽃에 앉자 슬쩍 비닐봉지를 감싸며 벌을 잡았다. 이미 봉지 안엔 꽤 많은 꿀벌이 들어 있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왜 잡는지 물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댓글2Apr 28. 2022등나무 꽃 바닥에 뒹구는 꽃잎을 보기도 전에 향기가 먼저 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보라색 꽃송이가 떨어진 위로 긴 꼬리처럼 늘어뜨린 등나무 꽃이 보였다. 마스크를 내리기도 전에 향내가 맡아졌는데,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향수를 코앞에서 뿌린 듯 아찔해졌다. 라일락이나 장미향의 그윽하고 묵직한 향내와 달콤한 아카시 꽃향이 한꺼번에 섞인 듯 진한 향기를 갖고 있다
댓글4Apr 25. 2022하늘매발톱 꽃 만날 수 없었다. 골목길을 잘 못 찾은 건가 싶었다. 지난주 도서관 가는 길에 보기 드문 야생화를 만났다. 아스팔트와 담벼락이 맞닿는 틈을 화분 삼아 애기똥풀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었는데, 반질반질한 잎은 세 갈래로 나뉘어 귀여운 레이스 모양을 한 다른 풀포기가 있었다. 초록잎을 뭉게구름처럼 띄운 채 겹겹이 우아한 꽃잎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하늘매발
댓글2Apr 2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