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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참회록
cjc58 2024. 1. 31. 13:41
* 톨스토이 - "1828년 9월 9일,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야스나야 폴랴나'란 마을에서, 아버지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의 오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남. 2살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9살때 아버지가 사망 함. 16세에 카잔으로 이주해 카잔대학교 동양어학부에 입학. 19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함. / 35세에 <전쟁과 평화>를 집필하기 시작. / 49세에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 / 52세인 1880년 <참회록>을 완성 함. / 71세에 장편 <부활>을 발표. / 82세인 1910년 10월 29일 아침에 "삶의 마지막 며칠 동안을 고독과 정적속에서 지내고 싶다"라는 쪽지만 남긴 채 몰래 집을 나와 방랑길에 들어선다. 11월 7일 여행도중 폐렴으로 랴잔-우랄선의 간이역인 '아스타포보역'(현 톨스토이역)의 역장 관사에서 사망 함."
* 나는 러시아 정교의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세례를 받고 양육되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이 신앙을 배웠고, 소년시절과 청년시절 내내 이 신앙을 배웠다. 그러나 내가 열여덟살이 되어 대학 2학년을 그만두었을 때, 나는 그때까지 배운 것을 이제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몇가지 기억으로 판단해 볼 때, 나는 결코 진지하게 믿지 않았으며, 다만 그때까지 배운 것과 어르신들이 내 앞에서 참회한 것을 막연히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도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 믿음이 사라진 것도 역시 우리처럼 교양을 지닌 사람들의 내면에서 일어났으며, 지금 일어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다음과 같이 발생하는 것 같다. 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종교적 교리와 보편적인 것이 전혀 없는 원리를 기반으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이 종교적인 교리에 대립하는 원리를 기반으로 살고 있다. 이 종교적 교리는 삶에 관여하지 않으며, 다른사람들과의 교제에도 절대로 적용되지 않으며, 그들 자신도 자신의 삶에서 이 교리를 참조하지 않는다. 이 종교적 교리는 삶과 동떨어진 어딘가에서 행해지는 고백에 불과하며, 삶과는 무관하다. 만약 종교적 교리를 적용한다면, 이는 단지 삶과 연관되지 않은 외적 현상에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옛날처럼 지금도 인간의 삶이나 그의 행위로 그가 신자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러시아 정교를 공공연히 믿는 사람들과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불리하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오늘날에도 러시아 정교를 공공연히 인정하고 믿는 믿음은 대개 어리석고, 잔인하며, 비도덕적이며, 자신을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곤 했다. 지혜, 정직, 솔직함, 선량, 도덕성은 대개 자신을 불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곤 했다.
* 나는 신을 믿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신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신인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도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도 역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제 그 시절을 회상해 보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나의 신앙이란 동물적 본능들 외에 나의 삶을 움직였던 것이었며, 당시 나의 진실하고 유일한 신앙은 완성을 믿는 것이었다. 그러나 완성이 무엇에 있었고, 완성의 목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지적으로 완성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고, 삶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다 배웠다. 나는 자신의 의지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온갖 연습을 통해 체력과 민첩성을 키우고, 온갖 결핍을 통해 인내와 끈기에 익숙해 지면서 자신을 육체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도덕적 완성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이 곧 일반적 완성으로 바뀌어버렸다. 즉 자기 자신 앞이나 신 앞에서 더 훌륭해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훌륭해 지려는 욕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더 훌륭해지려는 이 갈망이 다른사람들보다 더 강해지려는 욕망, 즉 다른사람들보다 더 명예롭고, 더 중요하고, 더 부유해지려는 욕망으로 재빨리 바뀌어버렸다.
*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내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이 자연스러운 의문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알 필요가 없으며, 예술가와 시인은 무의식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이 이론속에서 밝혀졌다.
* 당시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능한 한 더 빨리, 더 많이 말하고, 글을 써서 실을 필요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온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우리 수 천명의 인간들은 서로 부정하고, 욕하면서, 모두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글을 써서 실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삶의 가장 단순한 문제, 즉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라는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관용을 베풀고 칭찬해 주도록 하기 위해 서로 칭찬하면서, 또한 가끔은 정신병원에서와 똑같이 서로 크게 화 내고 큰소리로 남을 윽박지르면서도 무엇을 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 계몽은 책과 신문의 보급에 의해 측정된다. 우리는 책을 읽고, 신문에 글을 쓰는 대가로 돈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유익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면, 매우 훌륭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각각의 의견에 대해 다른사람들의 정반대 되는 의견이 항상 나타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해 주었고, 우리 동료들은 우리를 칭찬해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즉 우리들 각자는 자신을 옳다고 간주하곤 했다. 이제 나는 정신병원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것을 단지 어렴풋이 의심하고 있을 뿐이어서 모든 정신병자들처럼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 나의 삶이 멈추어 버렸다. 나는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고, 먹지 않을 수 없었으며, 마시지 않을 수 없었고, 잠을 자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삶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바랐다면, 내가 나의 희망을 이루게 될지, 또는 못 이루게 될지, 이것으로부터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지를 미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살고 살다가, 걷고 걷다가 낭떠러지에 도착해서야 파멸 이외에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안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멈출 수도 없었고,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앞에 기만적인 삶과 행복, 그리고 진정한 고통과 진정한 죽음, 즉 완전한 파멸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 "무한한 공간에서 시간상 끊임없이 일어나는 미분자의 무한한 변화의 무한한 복잡성을 연구하라. 그러면 그대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진실한 사람들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으며, 작은 부분마저도 알 수 없는 전 인류의 삶을 탐구하라. 그러면 그대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이 지식의 분야에서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나의 의문에 대해 준 답은 하나였다. '너는 네가 네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너는 미립자의 일시적이고 우연한 결합이다. 이 미립자들의 상호작용과 변화가 네가 네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네 내부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이 결합은 잠시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이 미립자들의 상호작용이 정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지할 것이며, 네 모든 의문들도 정지하게 될 것이다. 너는 무엇인가가 우연히 결합된 덩어리다. 덩어리는 비등(沸騰)한다. 덩어리는 이 비등을 자신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덩어리는 분해될 것이고, 그러면 비등은 끝나게 되고, 모든 의문들도 끝나게 된다. 이와같이 지식의 선명한 분야는 답하지만, 이 지식의 선명한 분야가 자신의 원리를 엄격히 따른다면, 아무런 다른 대답도 해 줄 수 없다.' 이 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나는 나의 삶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의 삶이 무한함의 일부라는 사실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온갖 의미를 파괴하고 있다.
* 나는 내가 곧 그리 떨어지게 될 저 깊이를 모르는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가슴이 조이고,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아래를 내려다 보기가 무섭다. 왜냐하면 머지 않아 마지막 끈이 끊어지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마지막 힘을 잃어 버리자 내 등이 서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한 순간에 내가 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때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문뜩 떠오른다. '이게 사실일리가 없어. 꿈이야. 잠에서 깨자.' 나는 잠에서 깨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지?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위를 쳐다본다.
위도 역시 심연이다. 나는 이 하늘의 심연을 바라보면서 아래쪽의 심연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정말 잊어버렸다. 아래쪽의 심연은 나에게 반발하며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러나 위쪽의 심연은 나를 끌어당겨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계속 심연 위에서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마지막 끈에 매달려 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위쪽만 쳐다보고 있다. 공포가 사라지고 있다. 꿈속에서 흔히 일어나듯 어떤 소리가 들린다. "이걸 잘 봐. 이게 그거야!" 나는 아득히 높은 위쪽의 심연을 응시한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본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던 일. 그로인해 심연 위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일,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일.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 시작해서 구원을 받은 일을 회상해 본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본다. '지금은 어때? 계속 그렇게 매달려 있는거야?' 나는 주위를 돌아보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매달려 있는 그 지주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걱정도 없이 단단히 받쳐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 몸이 어떻게 받쳐져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 몸을 만져보고, 주위를 살펴본다. 그래서 내 밑에, 내 몸의 중심부 밑에 끈 한가닥이 가로로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위를 쳐다 보고는 내가 그 끈 한가운데의 평행이 유지된 위치에 누워있다는 것과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고 있던 것이 한 가닥의 끈이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때 꿈속에서 흔히 그렇듯 잠을 깨고 보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인데도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매커니즘이 나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명료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왜 지금까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을까하고 놀란다. 내 머리맡에 기둥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무심코 눈에 띈다. 이 가는 기둥이 땅에 꽂혀 있지는 않지만, 이 기둥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기둥에서 하나의 코 매듭이 묘하게도 툭 튀어나와 있다. 이 코 매듭 위에 몸의 중심을 얹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떨어질 것이라는 의심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자 나는 기쁘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다. "조심해, 명심해." 그리고 나는 꿈을 깼다.
** 톨스토이는 49세에 장편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하고, 52세에 <참회록>을 완성했다.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의 부유한 지주이자 헌신적인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들을 가진 행복한 가장이었으며, 러시아 최고의 인기 작가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행복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안나 카레리나>를 쓰던 중, 세 아이를 잃음과 동시에 자신을 돌보아 준 두 부인을 잃었다. 이처럼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뒤 톨스토이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예술은 인생의 거울이다. 인생이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거울의 유희는 이미 관심을 끌지 못한다."라고 생각해 예술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학문에서 그 답을 찾으려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사고와 과학 등 여러 지식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느끼는 절망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1879년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의 탈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과거, 삶, 문학을 부정하는 <참회록>을 썼다. 즉, 톨스토이는 철학이나 과학 등에는 인류를 구원하고 이끌어 갈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온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신은 어떤 사람이든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타락시킬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게 창조했다. 인간이 삶에서 갖는 사명이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신의 뜻에 따라 살려면, 삶의 모든 쾌락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며, 인내의 미덕을 키우고 자애심을 지녀야 한다."